1. 기사 소개

한겨레21 2913 .11. 11.자 제985호는 사금융 고리대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특히 고리대금업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결국 파악,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처에 나선 일본 사회의 경험을 함께 보여주는 유이한 기사다. (71쪽 장애가 있는 남편과 오빠와 살던 여성 이렇게 3명이 불법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철로에 누워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재 이자제한법(개인이 돈 빌려줄 때)상으로는 연30%가 최고한도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자가 돈 빌려줄 때)상으로는 연 39%가 최고한도다. 즉 우리가 보통 보는 대부업 광고를 내는 대부업체들이 제한받는 것은 연 39%다.

 

1천만원을 빌리면, 390만원을 이자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1천만원을 빌려서 1년 뒤에 1390만원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1천만원을 빌린 사람은 1년 뒤에 무슨 수로 1천만원에다 다시 390만원을 더해서 갚을 수 있을까. 만약 일하거나 사업을 해서 그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살인적인 금리로 애초에 그 돈을 빌릴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적인 금리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다중채무자의 함정으로 빠지게 된다.

 

i) 자격 요건을 보지 않고 대출하는 고금리 --> 고금리 갚을 방안이 없음 --> ii) 혹독한 빚추심 ---> iii) 다른 곳에 사채 내어 돌려 막기 --> iv)> 더 갚기 힘듬 ---> vi)  다중채무자로 전락 --> 자살을 생각함.

 

이러한 함정을 법질서가 의도적으로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함정의 심각성을 알아채어 현재 일본은 (위 기사 71-72면)

1) 2006년 대부업법 개정되면서 최고이자율이 연20%로 낮아졌다. 금액이 커질 수록 실제 최고한도는 달라지는데 10만엔 미만은 연20%, 10만~100만엔은 연18%, 100만엔 이상은 연15%다.

2)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면 그 순간부터 채권 추심이 금지된다.

3) 50만엔이 넘는 돈을 빌리려면 소득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 원칙적으로 연수입의 3분의 1이 넘는 돈을 대출받을 수 없다

4) 불법채권추심은 엄격히 금지되고 중한 형을 받는다.

5) 무등록 대부업체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책의 효과는 무엇인가?

현재 일본에서는 대부업의 3대 악(고금리, 가혹한 추심, 과잉 대출)이 사라졌다. 대부업 수는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6년(4만7504곳)의 6.9% 수준인 3313곳에 그친다.(2013년 6월 기준) [1970년대 후반 일본 정부가 허용한 최고이자율은 연109.5%]

 

 

2. 생산성의 이념에 비추어 본 한국의 대부업 규제

한 나라의 생산자원이 도박이나 복권, 또는 지대추구에 대거 투입되는 경우, 현명한 국가 정책은 이것을 교정하여 축소하는 것이지, 확대하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정의의 이상과 관련 없는' 재분배적 활동으로, 이러한 활동에 많은 생산자원이 투여되면 투여될수록 그 나라의 부는 줄어든다.


복권을 한 예로 보자. 복권의 제작, 유통, 판매, 광고, 당첨방송, 당첨금 지급은 어느 것도 이 세상에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두 재분배적 활동이다. 그런데 이를테면 한 나라 노동인구의 30% 정도가 이와 같은 직간접적인 복권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나라의 생산성은 그만큼 크게 하락하게 된다. 생산성이 하락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므로 복권으로 이를 회복하려는 열망이 강해지고, 복권 사업이 이 정도 규모로 커지면, 당첨자도 체감적으로 숫자가 매우 많아지므로(그러나 복권투입 액수에 비해 당첨확률은 높아지지 않는다) 더 복권을 많이 사려는 인지적 왜곡이 일어난다. 그 결과 복권사업이 더 잘되고, 그래서 생산성은 더 악화된다. 이러한 사태는 국가의 경제정책의 파산이다.


고리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통상적인 생산활동으로 올린 이윤으로 낼 수 없는 이자를 요구하는 금전대여다. 현재 영업이익률은 잘나가는 10대 대기업이 6-7% 수준이다. (영업이익률이란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누어 100을 곱한 것이다. 한 마디로 생산활동을 해서 노동이나 자연자원 등의 생산비용을 빼고 새로이 벌어들인 부분이 얼마나 되느냐 그 비율을 보여주는 것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570576


이자는 이 영업이익에서 나가야 된다. 생산을 해서 팔고 벌어들인 돈이 있어야 이자를 내는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영업이익률이 10%가 넘는 경우가 드문데, 39%의 이자를 낼 돈(실제 대부업계 평균 이자율은 이보다 약간 낮은 35-39% 사이의 비율이다)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실제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돈을 쓴 용도는 생활비 46.1%, 사업자금 23.9%, 타대출상환 10.1%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30638

생활비에 돈을 써버렸는데 39%의 이자를 내는 생산활동에 투여될리 만무하다. 사업자금에 쓸 경우는 다르지만 39%의 이자를 내고도 돈이 남으려면 영업이익이 40%는 넘는다는 것인데, 세상에 그렇게 좋은 사업이 있으면 자기 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뛰어들어서 그 분야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분야는 금방 영업이익율이 낮아진다. 운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상당히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업이익 40%를 내는 사업을 국민들이 돈을 빌려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전제는 환상 속의 전제다. 


결국 쓴 돈에 이자까지 붙여 갚지 못하면 타대출 상환 용도로 돈을 빌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자가 엄청 커져서 그 사람의 필수적인 재산-전세보증금이나 미래의 월급-으로 추심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생산자원의 효율적 조정과 배분과는 거리가 먼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 활동은 복권이나 도박과 비슷하다. 사람들의 근시안과 착각을 이용하여 아무런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재분배 활동을 하는 것이다. 즉, 돈을 빌린 사람들의 기초재산, 돈을 빌린 사람들의 지인들의 재산으로부터 대부업 종사자 및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은 사람들에게로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용이나 기술 등 미래의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심사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다. 돈을 추심하지 못해서 보는 손해보다, 돈을 고리대로 추심해서 보는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업은 이런 베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베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베팅 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의 생산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이자율을 상회하는 이익을 내지 못하는 고리대금의 차용은 일종의 조삼모사다. 눈 앞의 급한 불은 끄지만, 결국 더 큰 불이 생긴다. 사회적으로, 대부업계에 투여되는 생산자원을 돌려, 불이 작은 규모일 때 끄도록 하는 것이 맞다. 조삼모사를 활용하면, 어떤 기본적 필요가 결핍되어 있는지를 은폐하는 효과만 생긴다. 병원비나 음식비가 없어서 대부업체를 이용해서 다중채무자가 되면, 이것은 '병원비'나 '음식비'의 문제가 아니라 다중채무자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의 문제로 전환되고, '도덕적 해이' 따위의 단어가 주된 위치를 차지하는 정책 담론 영역으로 넘어간다.


소액 자금의 경우에는 좀 높은 이자율(10%를 약간 넘는)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소규모 자영업은 자본과 기술력에 따른 이득이 아니라 노동 투여의 대가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노동을 투여하려면 최소한의 자본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20%를 넘는 높은 이자율은 그러한 생산촉진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한국 사회에 영업이익이 40%가 넘는 사업이 광범위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그것을 전제로 해야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대부업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라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일본의 경험을 다시 상기하라. 100%가 넘는 고리대가 허용되는 사회보다, 20%를 최대한도로 규정한 사회가 어떤 이유로 생산성이 떨어질 것인가? 오히려 100%가 넘는 고리대와 가혹한 추심이 허용되는 사회는 그러한 추심사업 활동에 사람들이 몰리도록 할 뿐이고, 그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이들을 양산하여 큰 사회적 비용을 낳을 뿐이다.


3. 자유의 이념과 대부업의 통제

고리대를 빌리는 사람은, 스스로 영업이익률 40%를 내는 사업을 하고 있으나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위기를 더 크게 늦추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의 진정한 목표는 '위기를 더 크게 만들어 조금 늦추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의 위기를 넘기는 것만이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늦추어져 미래의 위기로 변환된 것은 결국 현재의 위기가 된다. 이 점은 특히 다중채무자에게서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의 자유는 총 위기 수준을 감소시키는 정책으로 증가되지, 총 위기 수준을 증가시키는 정책으로는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회생/파산의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전자의 예이다. 이자율 제한을 더 완화해서 대부업자의 수를 늘리는 것은 후자의 예다. 국가는 위기를 감소시키는 정책을 직접 시행해야지, 위기의 존재를 이유로 위기를 증가시키는 선택의 자유를 운위해서는 안된다.


존 롤즈는 무제한적 계약의 자유는 기본적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계약은, 부존 재산권의 분포를 전제한 협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부존 재산권 분포가 부정의하거나 불공정하다면, 정의로운 재산권 분포에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내용으로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계약은 일단 체결되면 당사자의 삶의 기회구조를 법적으로 제약한다. 그 계약이 당사자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그 계약을 무제한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할 수 있다는 법적인 뒷받침은, 협상 열위에 있는 사람의 자유를 오히려 축소하는 것이지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결혼퇴직제를 생각해보라. 여성의 결혼퇴직제를 취업규칙에 정해놓고, 입사하는 사람은 결혼퇴직제를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입사하지 않는 '선택'을 하라고 한다. 이 경우 결혼퇴직제를 법적으로 무효화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인가? 아니다. 여성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일률적으로 실시됨에 따라, 결혼의 자유와 취업의 자유를 접합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접합 행사 불가능). 이로써 자유가 더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인가? 아니다. 사용자는 여성 노동자의 결혼여부를 대신 선택할 권리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것은 원래 자기 몫이 아니었는데 행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사할 수 있었던 토대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분포된 재산권 질서였을 뿐이다. 그럼로 결혼퇴직제의 규제는 그 누구의 자유도 제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산하여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이익율을 전제로 돈을 빌려주는 자는, 자신이 생산에서 기여하는 바보다 더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하는 사회적 착취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착취활동은 본래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계약 당사자의 궁박을 기화로 자기가 채어가려고 하는 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업으로 인정해주고, 이 업에서 체결된 계약의 집행을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해 조력하는 것은, 자기 몫이 아닌 것을 취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을 조력하는 것일 뿐이다 .


이 점에서 고리대 대부업은 복권의 경우와 많이 다르다. 복권의 경우 궁박에 빠져 공정한 재산분포에서는 받아들이지 아니할 계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재산분포 하의 사람들도 힘들이지 않고 큰 돈을 가질 수 있는 기회에 운을 심심풀이로 걸어볼 수 있다.) 복권의 경우에는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타인의 열위를 이용해서 가져가 타인의 자유를 추가적으로 감축하려는 행위가 없다. 즉, 결혼퇴직제와 유사한 것이 없다. 반면에 고리대 대부업은 자유제한적 활동이며, (더 많은 복권활동이 단지 경제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생산성 감퇴만을 가져올 뿐임에 비해) 더 많은 고리대 대부업의 활성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전체적인 자유의 더 많은 축소를 의미한다.


일본이 대부업 규제를 하기 전보다 한 후에, 일본 구성원들이 자유의 박탈에 더 시달리고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다. 국가는 생산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사회적 비용만 발생시키며, 위기를 확대시키는 활동들을 규제할 권한이 있다. 


대부업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는 판에 박힌 주장은 일종의 사익에 지향된 종교와 비슷하다. 그것은 국가의 경제정책과 생산성의 이념을 함께 검토하지도 않고, 무엇이 자유를 증가시키는지 축소시키는지를 보지도 않으며, 계약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들이 사회로 비용을 전가시키고 떠넘기는 것은 전혀 보지 않는다.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의 이자율 상한을 더 낮추게 되면, 대출은 물론 적게 발생할 것이다. 만약 이자율 상한을 그렇게 정하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 거래는 덜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의 불발생 중 우리가 그 자체로 아쉬워할 자유의 제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만일 생활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고리대를 빌려 다중채무를 짐으로써는 벗어날 수 없다. 약간의 시기 뒤에 그보다 더 큰 결핍과 억압의 상태가 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생활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헌법적인 구제 방안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먹고 입고 자고 치료할 돈이 없어 그것을 다중채무가 예정되는 방식으로 구할 수밖에 없다면, 이 사람을 더 큰 족쇄의 함정에 빠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가?

 

고리대를 허용함으로써 이 의무를 국가가 면탈할 수 있다는 사상은, 스스로의 인신을 노예로 파는 계약을 허용함으로써 국가가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보장 의무를 면탈한다는 사상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두 가지의 과제가 놓여 있다.

첫째로, 지금 당장, 고리대 대부업 규제에 관한 일본의 정책과 같은 취지의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의 최고 이자율은 아무리 많아도 15%를 넘지 않을 것이 요구된다. 

둘째로, 돈을 빌리는 것 외에는 생활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은 헌법에 호소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곤궁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지금과 같이 명목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함을 의미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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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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