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회 통합'이라는 말은 크게 오해되고 있다.

 

'사회 통합'이 사회의 구성원이 어떤 목표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서부터 정책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일치된 신념과 태도, 행동을 갖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치는 설사 달성된다고 할지라도, '통합'의 증거가 아니라 '통합을 무시하는 순응의 압력'의 증거가 될 뿐이다.

 

만약 한국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지금과는 달리 단일한 종교를 모두 갖게 된다면 그것은 '더' 통합된 사회가 된 것인가?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웓늘이 정부의 어떤 정책에 대하여 똑같이 열렬히 찬성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면 '더' 통합된 사회가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전자와 후자의 경우 모두 반대자들의 견해나 활동이 어떤 방식으로 진압되어 사람들이 대안에 대하여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실현을 위해 행동할 여지를 잃게 되었음을 이야기해줄 뿐이다. 이런 식의 통합을 가장 많이 달성한 사회는 북한이나 이슬람근본주의 국가들이다.

 

믿음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고정된다. '일치된 믿음의 고정'은 그 결과만을 이야기해줄 뿐 믿음을 고정하는 방식이 제대로 된 방식이었는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통합'은 어떤 임의의 속성을 사람들이 일치하여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기술적 개념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기술적 개념이라면, '사회 통합'은 당위로서 이야기될 수 없다. 그런데 순응적 일치는 결코 바람직한 가치가 될 수 없다. 순응적 일치를 지지하는 자는 다름과 갈등의 원천을 따지지 아니하고 무조건 그것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이런 입장에 서면, 노예제가 있는 계급 사회에서 누구나 노예제에 대하여 순응하는 태도를 지닌다면(노예도 주인도), 이 사회는 '통합된' 사회가 된다. 그러나 그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는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회가 단순히 주관적 신념들의 일치에 의해 어떻게 통합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한 사회를 '통합'이라고 묘사한다고 해도 그 통합은 일고의 규범적 가치도 갖지 않는 말로 변질된 것이다.

 

광범위한 국가기관의 불투명한 정치, 선거개입으로 당선된 정부 수반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교민들의 시위를 두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일갈을 하는 정치인은, '통합'을 '순응적 일치'와 혼동하여 사용하는 한국의 언어관행에 기대어 교묘하게 자신의 반헌법적인 욕망을 뻔뻔하게 펼쳐보일 수 있게 된다.

 

통합이 바람직한 이상이라면, 그것은 규범적 정당성을 지닌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규범적 정당성을 지닌 이상이란, 사람들의 서로의 권리를 진지하게 여기면서도 합당한 행위의 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 사람들이 필요한 협력과 협동을 순조롭게 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가 되려면, 그 사회의 운영 원리는 '공지되어 있고', 그 사회의 운영 원리가 규범적으로 합당하다는 점이 '각 인의 이성의 사용으로 인정되며', 서로가 이러한 '인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통합은 어느 개인의 권리도 무시하지 않는 공적 이성의 가치를 기초로 사회가 운영되며 그 사실이 공지되어 있음에 의해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동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이것은 롤즈가 말한 '질서정연한 사회'의 이상이다. 질서정연한 사회는 '이데올로기'가 없는 사회다. 롤즈가 한탄하였듯이, '이데올로기'라는 맑스의 개념은 매우 사소한 방식으로 격하되어 쓰이고 있다. 단순히 대립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말하는 의미로. 그러나 그렇게 용법을 쓰려면 그냥 단순히 세계관과 가치관이라고 쓰면 되지 왜 어렵게 외래어를 쓰는가. 롤즈가 강조한 바와 같이, 맑스가 사용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어떤 사회가 순조롭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가져야 하는 망상, 즉 '허위의식'이다. 여기에는 생산수단에 대한 특정 계급의 독점적 소유는 그 사회의 효율적 생산을 위해 필수적이고 이롭다는 것, 경제의 불황과 공황은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사태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 시장은 오로지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질서라는 것, 시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조정'은 이루어질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조정이라는 것, 계급제도는 인센티브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 등등의 허위의식. 그런데 이러한 의식은 비단 생산양식과 결합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특정 당파나 교파가 지배하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위해,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갖는 허위의식 또한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공지성'(publicity)의 이상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통합은 공지성의 이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이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의 타락과 혼동을 이용한 것이며 허위의식을 중심으로 순응적 일치를 만들어내겠다는 엄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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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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