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당사자들에게만 직접 관계된 행위로 동의에 의한 행위를 제3자(특히 국가)는 언제 금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인데, 사람들은 관습이 반대하는 몇가지 사례만 떠올리고는 곧바로 후견주의로 달려간다. 즉,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선)이 중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제대로 된 자유주의가 없다. 왜냐하면 겉보기에는 자유주의적 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실제로는 이 정식 자체에는 동의한 다음,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 이익이 그만큼 중대하냐 아니냐만 가지고 다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이익은 매우 중대하다. 그러므로 동의를 압도한다"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과 "아니, 그건 당사자들의 의사를 압도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의 대립만 있게 된다. 심하냐 심하지 않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가(또는 다수가) 보기에 심하고 중대하다면 개입이 가능하고, 내가(또는 다수가) 보기에 그렇게 심하지 않고 중대하지 않으면 개입은 불허된다. 정말 그것 문제인가?

 

2. 후견주의에 대한 일반적 반박

 

이 글에서는 후견주의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 다룰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후견주의(연성 후견주의)를 판별하는 정식으로는 롤즈의 정식이 채택되어야 한다는 점만 지적하겠다.

 

롤즈의 정식은 스캔론이 정리한 바 있다.

 

(인용) 이런 종류의 제도 중에서 수용가능한 형태와 수용불가능한 형태를, 이러한 영향이 낳는 인간의 특정한 유형의 상대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것 이외의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롤즈의 이론에서 이 구별을 할 수 있는 적합한 기준은 (1031) 정당화될 수 있는 후견주의와 정당화될 수 없는 후견주의를 구분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기준에 의해 제시되는 것 같다. 여기서 유관한 원칙은 첫째로, 후견주의적 개입은, 즉 그의 바람에 반하여 또는 그가 아는 바 없이 개인의 삶에 “그 개입되는 사람을 위하여” 개입하는 것은 사태 이후에 그에게 합리적으로 정당화가능하여야 한다. 둘째, 그러한 개입은, 그 주체의 이성과 의지의 명백한 실패나 결여가 그 자신의 합리적인 고려와 결정으로 쟁점들을 직접 해결케 하는 것을 개입 당시에 배제한다는 근거에서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 요건은, 그 개입이 “정의의 원리 및 그 주체의 더 항구적인 목적과 선호에 관하여 알려져 있는 바, 그러한 선호와 목적에 관한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기본적 가치(primary goods)에 의해 제공되는 것 같은 어떤 중립적인 규준에 의하여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용 끝) (Thomas M. Scanlon, Jr., "Rawls' Theory of Justice"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Review, Vol. 121, No. 5 (May, 1973),  p.1030)

 

이 정식을 뒷받침하는 이유, 반면에 국가완전주의를 반박하는 이유의 정수(essence)는 스캔론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있다.

 

 "롤즈의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사회에서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들의 선의 객관적인 구성요소가 되는 그러한 것들들을 확보해주는 수단 뿐만 아니라,, 이 선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데 필수적인 여건들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같은 글, p.1029.)

즉, 당사자들은 자신이 다수나 국가나 엘리트에 의해 조작당하거나, 자신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선인지를 지정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로 바라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롤즈의 정의론과 같은 "사회적 협동의 일정한 원칙들이 사회의 각 구성원들을 이런 의미에서 주권적으로 동등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반면에, 다른 원칙(인용자-국가완전주의 원칙들)들은 이러한 지위를 적어도 일부 구성원들에게는 부인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사실은,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사실로 보인다.(같은 글, p, 1330)

 

3. '자발성'의 문제.

 

이 글에서는 한 가지 문제에만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것은 당사자가 동의한 행위에 대하여, "진정한 자발성"이 아니므로 그 자발적 의지는 무효이며, 따라서 국가의 개입은 당사자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럴법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찬성하는 국가 개입의 많은 사안들이, 얼핏 보기에는 '당사자의 동의'는 존재하나, 국가가 한 당사자의 이익을 위해 개입하고, 그 때 당사자의 동의는 진정한 자발적인 동의가 아니라는 논리구조에 따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자발성'이 자유에서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고 본다. 그래서 '진정한 자발성' 위에서 한 행위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자유 침해이지만, '진정하지 않은 자발성' 위에서 한 행위에 개입한다면 자유 침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논의의 핵심은 표출된 자발성이 진정한 것이냐 아니냐에 있게 된다. 이렇게 지목된 핵심에 비해서 자발성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방법은 형편없이 박약한데, 결국 주장하는 이가 선호하는 방향의 행위를 한 사람, 주장자가 규정한 본질에 맞는 행위를 한 사람은 '진정으로 자발적'이고, 거기에 어긋난 사람은 '진정으로 자발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결책도 엉터리이지만, 애초에 논의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자유의 침해에서 근본적인 것은 '자발성'이 아니다. 자유의 침해에서 근본적인 것은 '평등하게 자유로운 관계'의 왜곡이다. 즉, 그 관계가 보증하는 몫의 결정권과 그에 따른 선택지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왜곡되면 그것은 자유 침해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 용어는 '자발성'을 여러가지 뜻을 가지는 느슨한 단어로 사용한다. 계단에서 떠밀려서 앞의 사람이 넘어지게 만드는 예와 같이 물리적으로 떠밀려서 물체로 작용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한 일이 아니라면, 모든 선택된 행동은 '배경이 되는 기준' 없이는 약간이라도 '자발적인 요소'가 있다. 즉 무배경적, 무맥락적인 의미에서 '자발적이다.'

 

이를테면 강도가 은행창구 직원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이 주머니에 돈을 쓸어 담지 않으면 너를 쏘겠다. 쓸어 담는다면 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면, 그 직원은 '돈을 쓸어담아 강도의 행위에 조력하는 쪽'을 '조력하지 않고 죽는 쪽'에 비해 더 나은 선택지(option)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였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자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 '자발적'이라는 것이 어떤 바랄만한 이상화된 선택 여건이 성립될 경우에만 충족되는 성격이라고 본다면, 거의 모든 행위는 비자발적이다. 예를 들어 큰 병에 걸려 성공 여부가 어느 정도 불확실한 수술을 하느냐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느냐의 선택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더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이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수술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상태에서는 취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자발적이다.

 

노동자가 월급 140만원을 받는 직장에서 지루하고 힘들고 반복적인 일을 한다. 그가 만일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났거나,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했거나,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그는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중에서 최선의 옵션이라서 그 일을 한다. 그러므로 은행창구 직원이 행위 시점에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돈을 쓸어담는 쪽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 의미에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여건에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위라는 측면에서 대부분의 행위들은 '비자발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행위들이 자유가 침해된 상태이며 곧바로 무효화, 복구해야 할 상태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모든 행위는 무맥락적으로는 (즉 물리적으로 떠밀린 것이 아니라면 모두 자발적이라고 부르는 의미에서는, 즉 선택 여건의 기준을 전혀 상정하지 않는다면) 자발적이고, 어떤 높은 선택 여건이 성립되어야 자발적이다라는 어떤 이상화된 기준을 들이대면 '비자발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간취해야 하는 것은, 자발성에 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 배경의 기준이 고정되어야지, 선택지의 축소나 불리한 변형을 이야기할 수 있다.

(2) 정당한 배경이 되는 기준에 비해 타인이나 국가의 행위에 의해 선택지의 축소나 불리한 변형이 일어날 경우에, 그것은 자유 침해 상황이다.

(3) 이러한 자유 침해 상황에서의 행동은 '비자발적'이다.

 

'자발성'을 판단하는 배경기준을 확립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현실 여건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행위를 규제해야 되냐 되지 않느냐 판단에서, '자발성'이나 '선택', '의지'라는 요소가 아무런 역할도 못하게 된다.

 

즉, '자발성'을 먼저 판단하고 나서 그 판단을 토대로 해서 자유 침해 상황을 결론으로 끌어내는 것은 논의 순서가 잘못되었다. 그럴 경우 자발성은 단순한 심리적 속성으로만 제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도 상황을 다시 검토하자.

(1) 배경의 기준은 돈도 보지((保持-보유를 유지하다)하고 목숨도 보지(erhalten)하는 접합적 행위 경로가 열려 있다는 상태다.

(2) 강도는 권총을 들이밀어 이 둘을 동시에 보지하는 행위 경로를 제거하였다. 강도는 행위에 따른 결과 행렬의 내용을 변경하였다. 원래는 돈을 건네주지 않으면 목숨이 계속 남아 있는 결과가 되어야 되는데, 이제는 돈을 건네주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간다. 강도에게는 이러한 행위경로 축소의 권한이 없다. 또는 행위에 따르는 결과의 불리한 변형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이러한 행위 경로의 축소는 규범적으로 즉각 복구되어야 할 상황이다.

(3) 따라서 이 때, 강도에게 돈을 건네는 행위는, 이미 변형된 행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을 숙고해서 골랐다 하더라도, 여전히 비자발적인 행위다. 여기서 비자발성은 배경 기준인 자유 비침해상황과 비교한 비자발성이다.

 

4. 배경의 기준

 

여기서 배경의 기준은 정당화되는 자유의 기준선을 의미한다. 즉, 구성원 각자에게 가장 밀접하게 결부된 자유가 근거없이 축소되지 않은 가장 광범위한 영역으로 평등하게 부여되어 있는 자유이다. 자유(liberty)의 기준선이므로 자유의 가치(worth of liberty) 기준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의 가치와 자유는 다르다. 중국어를 배우지 않아 중국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중국어를 할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중국어를 현재 지금 말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통상 자유의 배경 기준에서 이탈되었다는 상황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강도가 협박을 했을 때는 자유의 배경 기준에서 자유 상황이 이탈된다.

다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자유의 가치 수준으로 자유가 축소되어 있고 그리고(And) 그 축소가 다른 사람의 자유 탈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예외 상황을 이룬다. 이 경우에는 자유 탈취 상황을 제거하고, 원래의 기준선으로 자유 상태를 복구하여야 한다. 이런 예외 상황이 아닌 한, 자유의 가치 문제는 그 부족한 가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A가 B보다 돈이 없어서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상황은, A와 B의 해외여행과 관련된 자유의 가치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것이지, 자유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B가 A에게 자신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주면 해외여행 티켓을 주겠다고 하는 제안은, 배경 기준에 비해 A를 악화시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A가 번역을 해주겠다고 동의하는 것은, 배경 기준에서 이탈된 상황에서의 동의가 아니다.

 

5. 혼동되는 사례

 

이번에는 Feinberg의 <Harm to Others>에 예시로 제시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떤 여인이 희귀병에 걸린 아이를 위해 거액의 수술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수술비를 국가는 보조해주지 않는다. 즉 동료시민들로부터 돈을 걷어 그 여인에게로 재분배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한 억만장자가 자신과 하루밤을 보낸다면, 아이의 수술비를 내어주겠다고 한다. 이 여인은 그러기로 하였다. 이러한 동의는 비자발적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 위하여, 잘못된 순서를 따른다면, 여인이 심리적으로 느꼈을 압박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비자발적인 것이고, 그래서 자유를 침해당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논의 방식임을 앞에서 보았다.

 

(1) 배경이 되는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2) 억만장자는 새로운 제안을 함으로써, 선택지를 추가시켰다. 여인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행위 선택지 중에 새롭게 닫히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새로운 행위 경로만이 열리게 되었다. 

(3) 따라서 이 때 여인이 억만장자에게 동의를 하는 행위는, 억만장자가 선택지에 변형을 가져왔다 할지라도 불리한 변형이 아니므로, 자발적인 행위이다. 여기서 자발성은 배경 기준과 비교한 자발성이다.

 

배경 기준은 관련된 자유의 기준선으로서, 배경 기준을 살펴본다.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즉 자유의 가치 수준으로 자유가 수축되고 그 수축의 원인이 다른 이의 자유 탈취에 있는 경우) 자유의 가치에 관한 대응은 논의의 결론에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이 점을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이 사안에서 국가가 아이의 수술비를 보조해주지도 않으면서, 즉 억만장자의 제안만을 금지한다고 하여보자. 그 경우 국가는 아이의 수술비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을 규범적으로 고정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선택지 추가를 금지한 것이다. 이로 인해 여인은 제안을 받을 수도 있었던 상태보다 더 나빠지고, 오히려 그로 인해 자유가 침해당한다. 왜냐하면 취할 수도 있었던 행위 경로가 강제로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와는 달리, 이 사안에서 아이의 치료받을 권리를 인정하여 보자. 이 때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 책임이다. 즉, 그 권리를 인정하기 위하여 어떤 행위의 행사가 금지되어야 할 주체로 특별히 지목될 단 한 사람이나 특정 사람들이 있지 않다. 그것은 과세를 통하여 재정을 마련하여 보조해줘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아이의 수술비를 보조해준다 하여도, 여전히 억만장자의 제안은 여인의 행위 경로 선택지를 새로 추가하였을 뿐, 이전에 열려 있던 선택지를 닫은 것이 없다.

 

따라서 국가가 아이의 수술비 보조에 관하여 어떤 정책을 취하든 간에, 배경이 되는 기준에 비해 억만장자의 제안은 자유 침해를 하는 선택지 악화나 변형을 가져오지 않으며, 따라서 비자발적인 행위를 유도하지 않는다.  

 

이 경우를 결혼퇴직제의 실시와 비교하여 보자. 결혼퇴직제를 실시하는 사업장의 사용자는 노동자가 결혼을 하고 동시에 취로를 하는 선택지를 자신이 대신 행사한다. 그런데 온당한 배경 기준은 각자가 결혼과 취로의 접합적 선택지를 동등하게 행사하는 자유 상태이다. 이 상태에 비해 사용자는 불평등한 결정권 탈취를 하였으므로, 배경 기준에서 이탈하였다. 따라서 결혼퇴직제에의 동의는 비자발적이다. 그러므로 결혼퇴직제는 무효가 된다.

 

6. 과제 질문

 

이제, 좀 더 어려운 질문으로 가보겠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거나 국가의 보조를 받는 학교에서 기도회나 예배에 참석케 하되, 기도나 예배를 직접 할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때, 그 때 기도나 예배를 하는 것은 비자발적인가, 자발적인가.

 

이 질문은 과제로 남겨두겠지만 푸는 순서는 마찬가지다.

 

(1) 배경이 되는 자유의 기준을 먼저 확인한다.

(1-2) 자유의 가치 수준으로 자유가 수축되며 불평등한 자유 상태가 발생한 예외적인 경우인지를 확인한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탈취가 없는 상황이 배경 기준이 된다.

(2) 그 기준에 국가나 개인, 집단이 변형을 가하여 생긴 선택지에 미친 결과를 확정한다.

(3) 선택지의 불리한 변형이나 축소에서의 행위는 비자발적이다. 선택지의 유리한 변형이나 확장에서의 행위는 자발적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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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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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 성우맨
    2016.05.20 01: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의 마지막 문단, 문제 푸는 순서 (3)에서 "유일한 변형"이 아니라, 유리한 변형이 아닌가요?

    그리고 문제를 풀어 보았습니다!

    (1)

    배경이 되는 기준은 학생들이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종교의 자유를 완전하게 누리는 행위의 경로가 열려 있는 상태다. 국가는 모든 구성원을 평등하게 배려해야 하며,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은 학교는 국가의 공무를 대신 수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특정 종교 집회 참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2)

    해당 학교는 학생들에게 종교 집회 참석을 강제함으로써, 학생들이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종교의 자유를 완전하게 갖고 있는 행위 경로를 자의적으로 제거해버렸다.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해당 학교는 이러한 행위 경로 축소의 권한이 없다. 해당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종교의 자유 침해를 감수하는 것이 반드시 수반되는 결과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였다. 이는 규범적으로 즉각 복구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3)

    따라서 학교를 다니기 위하여 종교 집회에 강제로 참석한 이후에 학생이 예배에 동의하는 행위는, 배경 기준에서는 열려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종교 집회는 불참하는 행위의 경로가 해당 학교의 자의로 닫혀 있는 자유 탈취 상황에서의 선택 행위이므로 비자발적이다.
    • 2016.05.22 16: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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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리한 변형이 맞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2. 문제 풀이는 제 견해에 기초해서 볼 때는 완벽합니다.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3. PJH
    2018.10.08 01: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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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위 문제를 풀어보니 위 모범답안과 다소 다른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점이 생겨 댓글 작성합니다. 혹시 기간이 많이 지났지만, 답변해 주실 수 있을까요?

    (1) 배경의 기준: 국가의 보조를 받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예배에 참여해야만 한다면, 그 학생은 기도나 예배를 하는데 있어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는 상황인가 아닌가.

    (1-2) 예배나 기도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도를 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므로 자유가 자유의 가치 수준으로 축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2) 국가의 보조를 받는 학교가 개인이 '기도'할 자유를 축소시키지는 않는다. 여전히 학생은 기도회에 참석한 뒤 기도하지 않을 자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배경 기준으로 볼 때, 학생들의 선택지는 열려 있으므로 자유의 축소로 볼 수 없다.


    Q1: (1)~(3) 사고 과정이 말씀해주신 푸는 과정을 준수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단, 여기서 추가적으로 문제가 되는 점은 국가의 보조를 받는 학교가 과연 '학생에게 기도회의 참석을 강제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다. 만약 국가의 보조를 받는 학교가 학생에게 하여금 기도회 참석을 강제할 정당한 권한이 없다면, 애초에 기도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학생들은 '종교 수업을 들을지 말지를 선택'할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게 된다. 즉, 비자발적인 상황(종교수업 참석)에서 자발적인 선택(기도 여부)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경우 자유를 축소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그리고 이 경우 축소되었다면 반드시 '복원'해야하는가?
    애초에 소급해서 올라간다면, 자발적 상황(대입)에서 비자발적인 상황(종교수업 참석)으로 바뀌었는데, 자발적인 선택(기도 여부)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학생들은 애초에 특정 종교집회를 강제하는 학교를 거부할 수 있었다. 대입 시험을 본 뒤 그 학교에 지원하지 않으면 된다. 거기에 더하여, 이 상황에서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자유는 자유의 가치 수준으로 축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학생들은 여전히 특정 학교가 아니더라도 입결이 비슷한 학교를 지원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학한 이후 종교 집회 참여가 수업이라는 명분하에 필수적으로 주어진다면, 그리고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입학했다면 이는 자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위의 비자발적인 상(종교수업 참석)황은 성별이나 유전적 질병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다.

    Q2: 기도 -> 종교 집회 필수 참여 -> 대입. 이렇게 소급해서 올라갔는데, 이 사고 과정이 이 글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에 부합하는 사고가 맞나요?

    Q3: 소급해서 올라가는 방식이 문제가 있다면, 도대체 어디서 소급을 중단해야 하나요?



    그리고 학교가 학생에게 기도회 참여를 필수화할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ㄱ) 배경의 기준: 국가의 보조를 받는 학교가 종교 수업을 필수교양으로 지정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국가의 보조를 받는다고 하여 학교가 종교 집회 참여를 필수로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바로 도출할 수 없다. 재정 지원을 받았다고 하여 바로 공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재정 지원을 받지만, 그렇다고 공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ㄴ) 반면, 특정 학교 건학 이념에 비추어 볼 때 특정 종교 수업을 필수교양으로 지정할 결정권이 없다면, 이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이므로 결정권의 축소, 곧 자유의 축소에 해당한다.

    (ㄷ) 따라서 학교의 결정권이 보장된다면, 자유의 축소를 즉각 복원해야 한다.

    Q4: 이 과정을 거치니, 학교의 자유와 학생의 자유는 양립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 중 하나의 자유의 축소를 복원하면, 바로 다른 편의 자유의 축소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믿음에 기반해서 판단하는 수 밖에 없는건가요? 그저 관점의 차이일 뿐, 옳은 답이 없는 셈이 되는 건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8.10.08 14:5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배경의 기준은 의문문으로 설정하여서는 안 됩니다. 배경의 기준은 양립가능한 가장 광범위하고 밀접한 자유의 전체계에서 주어지는 평등한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배경의 기준 단계에서 '침해받는 상황인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적으신 것은 방법을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전제가 의문문일 때,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추론이 되지 않습니다.

      2. 배경의 기준은, '구성원 각자가 종교의 자유를 평등하게 행사하는 자유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자신의 신앙생활의 기회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배경의 기준선이 되는 종교의 자유에는 '타인의 종교생활을 부분적으로 결정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배경의 기준선이 되는 신체의 자유에 '타인의 신체 활동을 부분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포함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각자가 자기자신의 종교생활을 결정하고 수행해나갈 권리만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국가재정을 지원받고 국가로부터 학력인정을 받는 학교는 공공의 자원과 제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립학교가 자신의 선교활동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선택을 학생이 하면 그 공공의 자원과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생활의 기회비용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기회비용을 전가할 수 있는 지위는 부분적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지위입니다.
      즉, 예배의 형식으로 종교활동을 하는 자유는, 그 예배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예배를 할 자유만 있는 것이지, 그 예배에 참석하고자 하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공공의 자원 배제의 불이익을 주어 예배에 참석하게끔 하는 자유가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후자의 자유는 불평등하고 밀접하지 않은 자유로서, 양립가능한 자유의 전체계에 속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3. 종교의 자유에는 강제적 신앙고백을 하지 않을 자유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정치적 자유에 강제적으로 정당지지고백을 하지 않을 자유만 포함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학교가 특정 정당의 강령을 칭송하는 수업을 졸업필수학점으로 정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학생들은 그 정당의 강령에 찬성한다는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봅시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는 침해된 것입니다.
      국가가 예비군 훈련에서 특정 종교의 예배를 진행하게 되면 그것은 국민의 종교의 자유의 침해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기준에 의하면 이러한 경우도 예비군이 '신앙고백'을 강제당하지 않았고, 예비군 훈련은 원래 참석해야 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종교 자유 제한이 없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성교를 거부할 권리'로 축소시키고, 어떤 학교에 입학하려면 누군가와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규정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입니다.

      4. 신학대학 등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학문탐구 및 교육 직업훈련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 졸업필수학점에 예배수업을 포함시키지 못하게 될 때, 배경의 기준선이 되는 자유의 행위 경로는 닫히는 것이 없습니다. 대학은 선택과목으로 예배수업을 개설할 수 있고, 또한 과외활동으로 여러가지 목회 활동 등의 참여를 권유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원한다면 선택과목으로 예배수업을 들을 수 있고, 과외활동으로 원하는 종교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립대학에 행사하고 있던 것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종교생활을 부분적으로 탈취하여 대신 행사할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5. 요약하자면, 배경 기준에는 각자의 종교생활만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종교생활의 기회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없는 상태의 평등한 자유만이 성립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자유는 졸업하기 위하여 특정 종교 예배에 참석이 강제됨으로써 행위 경로가 제한되었습니다. 따라서 선택지의 불리한 변형이나 축소입니다. 그 상황에서의 선택은 따라서 '비자발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5. 전개하신 논증은 (i) 배경의 기준을 의문문으로 처리하고, (ii) 종교의 자유를 '신앙고백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축소시키고 (iii) 논의 중간에, 답으로 추론되어야 할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부당한 논증이 되었습니다.







    • PJH
      2018.10.08 21:0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1. '배경의 기준'을 잘못 이해함
      2. 종교의 자유 개념 이해 부족 및 정의 축소
      3. 기회비용 전가의 문제 미고려
      4. 중간에 '자발적'이라는 단어 사용은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

      이와 같이 위에서 언급해주신 내용들 염두에 두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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