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기주의의 오류에 대해서는 이미 논증한 바 있다.

http://www.civiledu.org/568

 

그런데 이러한 직접적 논박 형식으로 들이대면 심리적 이기주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그러한 편견을 자신의 규범적 추론에 깔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권력 행사의 헌법합치성 심사와 처분의 적법성 심사에서 사용되는 '공익과 사익의 형량'이라는 표제다. 이 표제는 크게 오도하는 것인데,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i) 공익과 사익은 같은 차원과 평면, 즉 동등한 추상수준에서 지정될 수 있는 이익이다.  

 

(ii) 어떤 사안에서 형량되어야 할 이익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당해 사건에서 구체화되어 특정된 이익이다. 즉, 한편으로는 사건의 청구인이나 원고가 주장하는 이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권력 행사나 처분으로 달성되는 이익이다.

 

(iii) 이렇게 실체화된 이익들을 모종의 양적 방법으로 크기나 무게를 따지는 것이 형량이다. .

 

공사익 형량이라는 표제가 암시하는 위와 같은 명제들은 모두 틀렸다.

 

첫째로, 헌법합치성이나 적법성 심사에서 형량되는 것은 양쪽 모두 공익이지, 공익과 사익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공익의 상이한 측면을 조망한 것일 뿐이다. 

 

'사익'이라고 불리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전한 사적 이익이라면 그것은 아예 형량 대상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만약 형량 대상으로 들어오는 이익이라면 그것 또한 일반화된 이익, 즉 공익이지 결코 사익이 아니다. 이런 점도 생각해보지 않고 '공사익 형량', '공사익 형량'이라고 주워섬기는 것은 무의미한 추임새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을 예를 통해 설명해보자.

 

사례: 국가가 공기업을 통해 어떤 지역에 송전탑을 건설하기로 한다. 그런데 고전압 송전탑이 건설되면, 그 지역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주민들의 건강에 대해 아직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주의'와 '경고'를 발하기엔 충분히 의심이 가는 근거가 있는 위험이 발생한다. 즉, 이러한 위험에 대한 의심은 단지 신조가 특이하고 기이한 사람들의 주관적인 미신에 의해 제기되는 것이 아닌 상황이다. 그래서 관련된 의학적, 통계적 사실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예전과 동일한 비용을 치르고 그 지역에 새로이 입주하고자 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활환경이 그 곳에 얽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지역에서 떠나고자 한다. 정부의 보상은 이러한 '불확실하지만 합당한 근거 위의 선택'을 변경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오도된 표제로 유도된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다. 송전탑을 통해 달성되는 이익은 대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공익이다. 송전탑 때문에 소유지와 임차지의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건강상 추정되는 위험을 감수케 되는 것은 사적인 이익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 공익과 사익을 형량하면 된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사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도 일반화될 수 없는 이익일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무임승차의 이익이다.

 

어떤 개인이 세금을 내지 않고 공공재의 혜택을 받는 것은 그 특정 개인에게는 이익이다.

그러나 이 이익은 일반화될 수가 없다.

즉, 그 개인은 '세금을 내지 않고 공공재의 혜택을 받는다'는 내용의 법률을 통과시키는 데 찬성표를 던질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의 사적 이익들은, 특정 분야의 기업에 독점을 유지시켜주는 것, 기술 혁신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 계속해서 보조금을 주는 것, 그리고 다른 동료시민에 대한 자의적 권력 행사의 여지를 늘려주는 것 등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신이 거주하고 정착하여 경제생활을 오래 영위했던 지역의 환경 안전성이 자의적으로 갑자기 축소되지 않는 데서 얻는 이익은 그런 의미에서 사적인 이익이 아니다.

 

이 이익은 일반화될 수 있는 이익이며, 그래서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범주인 기본권의 범주에서 표현될 수 있는 이익이다. 그것은 환경권이며,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관한 권리이다.

 

이러한 이익을 사익으로 표기하고자 하는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

 

그것은 실제로는 일반화될 수 없는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을 받는 수혜자들의 숫자가 다수이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우세를 점하는 분파이기 때문에 그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익'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의 주거와 경제생활의 환경의 안전성을 자의적으로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악화시키면, 송전선에 의해 얻는 이익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그 이익은 무임승차의 이익이다. 대가 없이 이득을 추구하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 이익을 얻는 자가 대도시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것은 사사로운, 사악한(sinister) 이익이다.

 

이러한 이익 자체는 형량의 대상으로 식별될 수 없다.

 

형량의 대상으로 식별되는 이익은 정당한 공공재의 대가를 지불하고서, 즉 그 공공재를 추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고서 공공재가 주는 혜택을 누리는 이익이다.

 

그러므로 공사익 형량은 있을 수 없다.

 

수행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일반화된 범주로 기술될 수 있는 법익 간의 형량이다.

 

그리고 그 법익들은 대표적 시민의 관점에서 형량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형량이라는 것은 단순히 법익의 비중을 심리적으로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여건에서 일정한 법익을 우선시키는 원칙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키는지 아니면 유지, 강화, 구체화시키는지를 살펴보는 추론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전체 글 보기 (949)
공지사항 (19)
강의자료 (89)
학습자료 (343)
기고 (489)
  •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