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미나란 무엇인가.

 

세미나(Seminar)란,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발제자가 어떤 주제에 관하여 자신이 탐구한 것을 발표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발표를 듣고 질문하거나, 논평하거나, 반론하거나, 보충설명을 요구하거나 하는 활동이다.

 

한국어에는 이 말에 해당되는 말이 없다. 영어사전에서는 '토론식 수업'이라는 풀이가 나와있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둘은 용례가 그리 많이 겹치지 않는다.

 

세미나는 꼭 수업활동만을 일컫지 않는다. 정치경제학회 세미나라고 하면, 정치경제학자들이 모여서 그 중 일부가 연구한 것을 듣고 논평하는 자리이다.

 

2. 세미나가 아닌 토론식 수업의 무용성

 

그리고 보통 한국에서 '토론식 수업'은 교사가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들이 중구난방으로 생각나는대로 논거들을 집어던지면서 찬반을 우기는 활동을 가리킨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제를 듣고 연상작용에 따라 생각나는대로 찬반의 이유로 생각됨직한 것들을 쏟아놓고는 자신의 마음의 끌림에 따라 각자 결론을 골라잡고 자위하거나, 아니면 교사가 얼버무리면서 정리하는 활동을 토론식 수업이라고 하면서 뭔가 대단히 필수적인 활동인 듯이 생각하는 것은, 사유(Denken)를 만만한 인간활동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사유를 하찮게 취급하는 토론식 수업을 몇 번해보면, 우기기 기술을 갖춘 자를 토론을 잘한다고 치켜세우거나, 아니면 심리적 끌림의 과정을 추론이라고 착각하는 기이한 결과가 생긴다.

 

이런 토론식 수업은 사람들이 나하고 다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사회화 체험으로서의 의미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3.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기

 

무엇에 관하여 가치있는 앎에 도달하려면, 그 무엇을 탐구하는 지식의 구조에 맞춘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하여 그 고민을 먼저 깊이 있게 한 사람이, 전제와 추론, 결론을 나름대로 내어놓은 것을 알리고, 그것이 결함이 있는지, 새롭게 음미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는지 등을 여러사람들이 생각해보는 자리가 바로 세미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토론식 수업에서만큼이나 세미나에 대하여도 환상을 가지고 있다. 세미나에서 무슨 중지가 모여지고, 찬반의 논쟁진영이 뚜렷이 갈리고, 새로운 예리한 논의의 측면들이 발굴되고 하는 일들이 생산성 있게 풍부하게 일어날 것 같다는 환상 말이다. 그러나 세미나의 현실을 보면 시궁창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개선한다고 해도, 그와 같은 환상은 결코 충족시킬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인 사람들도 신선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다들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한정 시간을 끌면서 논의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발표시간과 토론시간에 제한이 생기고, 토론시간에도 논평을 하고 싶은 여러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돌아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둘째, 발표자가 멍청할 수 있다. 발표자는 자신이 탐구하는 주제를 엄밀한 기초 위에서 사유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사유의 기초도 제대로 다져놓지 않고 진행시키지 않거나 엉터리로 진행시킨 채 나와서 발표를 한다면, 그 주제의 탐구선은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세미나의 토론은 탐구자의 발표를 출발점으로 해서 이루어지므로 발표 자체가 멍청해버리면 그 상태에서는 뭔가를 의미있게 논의할 수가 없다.

셋째, 토론을 하는 나머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할 수 있다. 발표자의 문제설정이나 추론도구를 제대로 음미하지 않고, 오도하는 개념들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함부로 사용하여 자신이 종래에 잘못 생각하고 있던 틀에 발표 내용을 끼워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이 임계점을 넘어선 수(대충 때려잡아 30% 정도면 충분한 듯 하다)에 이르면 토론은 매우 풍부해진다. 반면에 모르는 사람이 70%를 초과하게 되면, 그 모르는 사람 중 일부가 자꾸 발언을 하게 되기 때문에 토론이 산으로 간다. 토론이 끝나고 나면 다들 더 멍청해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인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거의 항상 발생하기 때문에, 중지가 모아지고 새로운 앎에 이르고 하는 청량음료처럼 명쾌한 사태는 일어나기가 힘든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 잘 아느냐 모르느냐는 지능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 주제에 관하여 제대로 된 탐구의 선을 따라 탐구해온 역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아주 대가가 아니라면, 발표되는 주제에 따라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고, 자신이 모르는지도 모르면서 안맞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또 예리한 논평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공부가 진척되면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충실하게 듣고, 아는 부분은 열심히 토론에 기여하는 자세가 잡히게 되지만, 그런 태도를 모두에게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제대로 된 탐구의 역사라는 것은 짧은 세미나 시간에 쌓일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탐구의 많은 시간은 개별작업이나 팀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세미나에 모인 사람들은 팀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세미나에서 애초에 중지가 모이고 새로운 앎에 이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세미나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가치있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대하고 가야지 세미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4. 세미나에서 기대할 바란.

 

그렇다면 세미나에서 기대할 바는 무엇인가?

발표자 외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탐구 주제에 새로운 시각이나 통찰을 안겨줄 관련된 분야의 지식들의 단초를 알아서 간다.

둘째, 토론에서 오고간 얘기들을 통해, 그 분야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떤 선을 따라 사유하는가를 감지할 수 있다.

셋째, 운이 좋을 때에는, 핵심적인 통찰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얻어갈 수도 있다.

 

발표자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탐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이해되는지를 평가할 수 있고, 예리한 논평은 세미나 이후 중심적으로 탐구해야 할 세부주제가 된다.

둘째, 예리하지 않은 논평도 도움이 된다. 즉, 그 주제에 대한 탐구의 역사가 짧거나 오도된 방식으로 탐구해온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어떤 보충 설명을 해야 할지, 오해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셋째,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논평도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면 타당할 때가 있다.

 

5. 세미나 활용하기

 

이렇게 기대를 현실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가치 수준으로 조정하고 나면, 오히려 세미나를 십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첫째로, 중요한 초점 세 가지만을 잡는다. 자신이 예습하고 가지 않은 세미나 자리에서 발표자가 발표하는 내용을 다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다가는 발표의 핵심을 파악하거나, 아니면 발표내용 중 자신의 탐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포착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발표자가 과욕을 부려 준비해온 많은 분량의 글을 그 자리에서 읽어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세 가지 초점은 다음과 같다.

1) 핵심주장이 뭔가?

2)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론의 얼개는 무엇이며, 제시된 핵심 근거는 무엇인가?

3) 핵심추론과 방론을 모두 포함해서, 내 탐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띄는가?

 

둘째로,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세미나에서 의미있는 합의에 이를 것을 기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논평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서 참고할 것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그리고 세미나는 무슨 지적 능력을 드러내는 경연이 아니므로, 장광설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초점을 제한하면 세미나 가서 할 일은, 자신의 탐구 메모장을 채우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배포되는 자료집이나 간단하게 만든 프린트물에 뭔가 적는 것은 의미없다. 그것은 어차피 다 버릴 것이고, 안버리고 모아둬도 다시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메모장에 세가지 초점과 관련된 것, 그리고 논평과정에서 통찰을 주는 참고할 바를 적어넣는 것이 좋다. 그 일만 하면 세미나는 십분 생산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세미나가 길면 지칠 때가 있다. 괜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거나, 초점 이외의 일에 부산하게 정신을 쓰기 때문이다. 차라리 초점이 되는 일만 하고, 세미나에 단순노동 일거리(단어찾기, 타이핑하기, 검색하기, 메일 보내기, 자료 올리기 등등)를 갖고가서 하면 더 낫다.

 

6. 세미나의 개선 방향

 

발표에는 세가지 방식이 있다.

발표제1식 : 고 로널드 드워킨 교수가 방한했을 때, 드워킨은 자신이 준비해온 원고는 전혀 보지 않고 청중들을 보며 비문 하나 없이 논리적인 문장들을 뽑아내며 이야기를 했다. 드워킨을 보거나 눈을 감고 듣기만 하면 되었다.

 

발표제2식: 알렉시 교수가 세미나에서 발제하는 동영상을 보면, 준비해온 원고를 줄줄 읽는다. 그러므로 다른 참가자들은 안심하고 코를 박고 그 원고를 따라서 읽으면 된다. 아니면 그냥 발표자의 얼굴을 보거나 눈을 감고 내용을 들으면 된다. 원고를 발표시간에 딱 맞게 준비해왔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서 정리한 만큼을 듣게 된다.

 

1식은 미국식, 2식은 독일식이라고 하기도 하나, 분야에 따라 다르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발표제3식: 발표자는 과욕에 넘쳐 많은 분량의 원고를 준비하고, 원고를 중간중간 건너뛰기도 하고 보충 설명을 임의로 하기도 하면서 설명을 해간다. 청중은 코를 박고 원고를 읽다가, 발표하는 음성을 듣다가, '어? 지금은 어느 부분 하지?'하고 원고를 부산하게 탐색하다가 하는 여러가지 과업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집중도 못한다.

 

물론 3식은 한국식이다.

 

한국식 세미나라 할지라도, 글을 동시에 보면서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집중에는 더 도움이 된다. 정말 알아야 하겠다, 알고 싶다 하는 내용은 집에 가서 찬찬히 보면 된다. 그러나 어쨌건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3식은 주장되는 내용 자체의 이해와 관계없는 인지부하를 청중에게 과도하게 부가하기 때문이고, 이런 인지부하는 전혀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자는 자신이 1식으로 할지, 2식으로 할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1식으로 한다면 칠판과 분필을 사용하여 강의를 하는 식으로 발표하는 것이 좋다. 그림이나 구조화된 도식으로 형상화하면서 발표하면, 말로만 하는 것보다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파원포인트 역시 아주 잘 만들지 않으면, 파워포인트에 적힌 내용을 보고 읽는 활동과, 발표자가 발화하는 내용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인지부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다지 효과적이지가 않다.

 

그래서 보다 많은 세미나가, (1) 자료는 미리 읽어오거나, 아니면 끝나고 집에 가서 자세히 읽는 것으로 전제하고 (2) 발표자에게 정식으로 서서 칠판과 분필을 사용해서 강의식으로 발표할 기회를 준다면, 훨씬 더 초점이 제대로 잡힌 세미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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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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