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형기가 만료된 성범죄자에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화학적 거세를 강제하는 것은 합헌인가?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하 ‘성충동약물치료법’으로 약칭한다)([시행 2013.6.19.] [법률 제11556호]) 제1조(목적)는 “이 법은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서 성폭력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하여 성충동 약물치료를 실시하여 성폭력범죄의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그 명목으로 ‘치료’라는 이름을 쓰고는 있지만, 그 실질적 목적은 범죄의 방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제2조 제3호에서는 “‘성충동 약물치료’(이하 ‘약물치료’라 한다)란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서 성도착증 환자에게 약물 투여 및 심리치료 등의 방법으로 도착적인 성기능을 일정기간 동안 약화 또는 정상화하는 치료를 말한다.”고 하여, ‘치료’라는 이름의 활동의 실질이 ‘성기능 무력화’에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피치료자에게 투여할 약물은 ‘성호르몬의 생성을 억제․감소시키는 약물’, '성호르몬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는 약물‘ 중에서 법무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약물로 한다.(시행령 제8조 제1항) 즉 특별히 “도착”적인 부분을 제거하는 치료효과가 있는 약물이 아니라 성호르몬을 생성하지 못하거나 수용체에 결합하지 못하게 하는 무력화 약물을 투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판단을 하기 위해 무게의 은유를 주로 사용하는 정신적 과정을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성범죄가 심각하다는 점, 성범죄로 입는 피해자의 고통을 지적하고, 성범죄자를 육체적으로 무력화함으로써 가능한 범죄 예방의 이익을 가늠한다.(또는 생생하게 열거한다.)
 ② 성범죄를 저지르고 화학적 거세를 당함으로서 생기는 신체적 불이익과 재사회화의 위협을 가늠한다.(또는 생생하게 열거한다.)
 ③ 이 중에 위 ①항 쪽이 무겁고 심각하다.
 ④ 따라서 합헌이다.
 
 물론 위 ③항 이하는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③' ②항의 불이익과 위협이 극심하여 ①과 같은 중대한 공익으로도 압도하지 못한다.
 ④ 따라서 위헌이다.

 

둘 모두 조건부 우열관계를 확정한다. 그러나 이런 정신적 과정에서는, 원래 꼭 거쳐야 하는 관문들을 열쇠로 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건너뛰거나 부수고 없앤다. 그래서 만일 논의가 지속된다면, 반대 주장자에게는 ‘왜 이 고려사항을 더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는가?’, ‘왜 이 고려사항에 마땅히, 응당, 당연히 부여해야 할 중요도를 부여하지 않는가?’라는 반문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관련 당사자들이 입게 될 이익과 불이익의 사태들은 모두 열거되어 있고, 한 측이 보는 것을 다른 측도 보기 때문에 더 이상 제시할 것은 없다. 더 진척되어야 할 논의는, 이 사안에서도 ‘비중’이나 ‘크기’의 언어로 그저 부수고 지날 수 없는, 원리의 그물망에 의해 세워지는 관문을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1) 공형벌권의 행사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그 능력에도 불구하고 범죄로 나아가 피해자를 존엄을 갖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국가가 그 범죄자의 구체적인 동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 행위를 비난하며 제재를 강제하는 것이다.

 

(2) 범죄행위에 대한 공적인 비난과 제재는,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가 동등한 기본권주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그 지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규범 준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3) 공적인 처벌은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능력을 갖춘 이성적 존재이며, 수형 후 그와 같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능력, 즉 통제력이 객관적 여건이나, 자신이 보유한 신체 때문에 없거나 극히 약한 정도로 감소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를테면 어떤 이가 자신의 자녀를 인질로 잡고 절도하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하고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절도한 사람, 정신분열증에 걸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착각하고 상해를 입힌 사람, 뇌에 종양이 생겨 충동억제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자신의 양녀에게 성적 접근을 한 사람 등이 그 예다.)
 만약 성범죄자가 자신의 신체가 아니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터인데, 그러한 신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오로지 치료의 대상만 된다. (앞의 괄호 예의 뇌종양 때문에 양녀에게 성적 접근을 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뇌종양의 제거이다.)

 즉 정말로 범죄자가 “성적 이상 습벽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판명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체의 구조상 통제불가능한 것을 통제하지 않았다 하여 처벌하는 것이 되어 처벌의 정당성이 사라진다.

(그런데  성충동약물치료법 제2조(정의)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성도착증 환자’란 「치료감호법」 제2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는 사람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감정에 의하여 성적 이상 습벽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판명된 사람을 말한다.")


 

(4) 반면에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신체를 갖추고도,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비난받을 범의를 가졌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원인은 통제할 수 없는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처벌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신체 자체의 변경은 정당성 있는 국가의 권한에 속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신체의 완전성 훼손은 이미 발휘할 수 있었던 ‘규범 준수 능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5) 즉, 헌법의 인간존엄성 규정은 ‘태형’과 같은 직접 신체를 훼손시키는 일이나 ‘뇌수술’과 같은 신체에 대한 물리적 침범을 통한 신체의 변경을 금지한다. 통상인과 마찬가지로 온전한 신체 능력이 없다면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장애가 되는 사정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능이 높은 사기범에게 지능을 몇십퍼센트 낮추는 약물을 투여하지 않으며, 손재주가 대단한 절도범에게 손을 굼뜨게 만드는 약물을 투여하지 않는다. 지능이 높고, 손재주가 좋다는 것은 범죄의 아무런 원인도, 비난이 되어야 할 대상도 아니며, 그러한 지능과 손재주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다른 시민들을 동등한 주체로 다루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그 범죄행위가 비난되는 것이다.


 

(6) 한편 치료는 환자의 신체가 보다 더 나은 능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신체 완전성을 훼손시키는 의료행위다. 따라서 어떤 신체에 침입적 효과를 가지는 의학적 조치가 정당한 치료로 성립하기 위하여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그 조치의 목적이 조치를 받기 전보다 더 나은 신체 완전성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 신체 완전성을 침해당하는 주체는 '동의'를 해야 한다. 동의를 하지 못할 상황이면 ‘추정적인 동의’가 있을 상황이어야 한다. 명시적 거부가 있다면 추정적 동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암에 걸린 사람이 암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 수술대에 강제로 눕혀서 수술을 강행할 수는 없다.
 
(7)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능력이 크게 훼손되어 인간 능력의 보편적 향상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중한 환자다.


 

(8) 치료 동의능력이 없는 정도로 의사결정능력이 훼손된 환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책임의 조각)


 

(9) 성범죄자는 규범적으로 비난받고, 형사처벌을 받는다. 즉 성범죄자는 환자가 아니다. 그 사람의 그 육체(성기와 뇌를 포함한 모든 육체)가 불가피하게 범죄 행위에 이르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 행위를 하지 않을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본권주체의 지위에 대한 존중을 부당하게 몰각해서 범죄를 스스로 저질렀다는 데 있다.


 

(10) 그러므로 그의 신체는 온전하고 범죄를 저지를 능력이 성욕이 있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규범 준수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성욕은 범죄의 원인이 아니다. 성욕은 모든 건강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이며, 삶을 살아가게 하고 혼인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등의 핵심적인 생활측면들의 통상적인 원동력이자 구성부분 중 하나다.


 

(11) 그러므로 성범죄자는 치료의 동의 요건을 무시하고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12) 만약 명제 (11)을 부인하면, (10)을 부인하게 되고, 결국 (9)를 부인하게 된다. 즉, 동의받지 않고 ‘치료’를 강제로 할 대상적격이 있다면 처벌적격은 부인된다.


 

(13) 화학적 거세는, 인위적으로 성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목적만을 갖는 약물을 외부에서 주입시키는 것으로,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한다.


 

(14) 화학적 거세의 그 목적은 신체의 능력을 더 낫게 통상적인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신체의 한 능력을 단기적으로 더 열악하게 훼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며(즉 물리적 거세와 같은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신체의 한 기능을 무력화), 여러 다른 신체기능에도 단기적‧장기적인 능력 저하와 훼손을 가져온다.[내당능장애, 지각착오, 척수압박, 심부전, 심부 근경색증, 혈압 이상, 다한증, 발진, 골통증을 가져오며 가슴을 여성형 유방으로 변형시키며, 우울증을 낳으며, 골다공증을 유발해 가벼운 사고에도 뼈가 부러지게 만들며, 혈당·혈압 상승, 간기능 이상, 고열, 두통과 같은 직접적인 고통을 유발한다. 또한 시신경을 압박하여 시력저하, 시야감소, 심혈관계 질환을 가져오는 뇌하수체샘종을 발병시킬 수 있고, 다른 질병 치료 목적이 아니라 재범 방지 목적으로 장기적으로 투약하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는 신체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대전지방법원 제12형사부 2013. 2. 8. 위헌제청결정문 (2012고합512 등 사건에서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에 관하여 이루어진 위헌제청결정) 제14-17쪽 참조.)]

(15) 따라서 화학적 거세는 치료의 측면에서는, 치료로도 볼 수 없으며[명제(14)], 치료로 본다고 하여도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명제 (3), (11)]

처벌의 측면에서는, 책임능력 없는 자에게 책임을 지우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거나[명제 (3)], 자유의사에 의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범죄를 비난하는 형법의 토대와 모순되는, 신체의 물리적 구조에 책임을 묻는 ‘신체를 훼손하는’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정당성이 없다.[명제 (4),(5)]

 

명제 (15)에 집약적으로 거론된 명제 (3), (4), (5), (11), (14) 등은 열쇠로 열어야 하는 '관문'을 이루며, 이 관문이란 다름 아니라 처벌, 자유, 비난, 행위능력, 치료, 동의와 관련된 가치와, 그 가치를 정식화한 원칙이 구조와 그물망이 가하는 제약이다. 이 가치들의 구조를 그냥 무시할 수 없다. 이 관문은 그냥 부수거나 건너뛰어 무시할 수 없다. 관련된 가치의 구조에 자신의 결론이 더 부합한다는 점, 즉, 자신의 결론이 그 예화인, 일반화된 원칙이 오히려 그 가치의 구조에 정합적으로 들어맞는다는 점을 보이는 더 심층적인 논증으로만, 닫힌 문을 열고 나아갈 수 있다.

‘성범죄의 경우에는 매우 중대하니 예외로 한다’와 같은 ‘예외 규칙’을 자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예외 규칙을 정당화하라는 요구에 결론으로 답하는 것이므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한다. 그것은 예외가 원리에 부합한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 아니라, 단지 독단적으로 단언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독단 선언은 논증가치 상쇄 망치에 의해 언제나 그 외견상의 그럴듯함이 상쇄된다. “성범죄 예방이라는 이익이 성범죄자가 입는 불이익 등보다 더 크다”라는 단언은 “성범죄자가 입는 불이익이 성범죄 예방이라는 이익보다 더 크다”라는 동일한 형식의 단언으로 상쇄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즉, 위와 같은 논의에서 드러난 원리들이 형성한 관문들이 제기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러나 역시 성범죄의 예방은 중대하다”라는 심리적 느낌만 되풀이 하는 것은 논의의 단계적 지반에 핵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다. 즉, ‘더 중대하다’, ‘더 크다’는 요구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면서 문을 한꺼번에 부수는 것에 해당한다. 논증은 ‘일반적 이유’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 일반적 이유들 중 하나를 변경하면 원리의 그물망에서 다른 원리들도 같이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변경된 원리 하에 운영되는 생활세계를 안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안의 경우에는 ① 환자 본인 입장에서 신체를 객관적으로 향상시키는 점은 전혀 없으면서 더 퇴락시키며 더 나아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 것을 ‘치료’로 보는 원칙 ② 동의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처치를 강제하는 것을 허용하는 원칙, ③ 책임능력이 없어 책임이 조각됨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하는 원칙, ④ 규범 준수 능력이 없음에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고통을 가하는 원칙을 모두 헌법에 편입되는 헌법규범으로 안착시키고, 그로 인해 변경되는 생활세계를 감수하여야 한다.

일응의 문제만 살펴보더라도, ④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타인이 떠밀어서 피해자를 밀쳐 다치게 하거나, 몽유병 상태에서 재물을 손괴한 것에 대하여도 형사 책임을 지는 생활세계를 안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그 세계를 감수하여야 한다. 만일 ①을 받아들인다면, 의사가 신체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것 이상의 이유가 없는 수술을 실시하여도 ‘치료’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생활세계를 안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그 세계를 감수하여야 한다. 감수하는 주체는 뒤에서 살펴볼 바와 같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주체다.

 감수하여야 할 생활세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처벌을 처벌되는 사람에게도 역시 정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 그 부분만큼 법은 범죄자에게 법으로서의 핵심 성질을 잃는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범죄자는 처벌하는 사회 및 나머지 구성원에 대하여 규범적으로 홉스적 상태가 인용되어 있는 것이다.

 

원리들이 관문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순히 ‘비중’의 언어를 써서 뭉개거나 뛰어넘는 경우 논증대화는 붕괴된다. 그것은 더이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의적 독단을 표명하는 사건에 불과하게 된다. 더 심층적 원리에 의해 그 관문이 사실은 적합하지 않은 원칙이라는 점을 논증하거나, 아니면 그 관문을 통과하기에 적합한 논거들을 제시함으로써만, 헌법적 논증대화는, 원리로서 편입될 수 있는 헌법규범들을 도출하는 활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논증에서 결론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지만, 그 근거들이 구조없이 아무렇게나 투입되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근거들이 이루고 있는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게 된다. 즉 논거구조와 그 구조에 적합한 논거형식들을 무시하게 된다. 그 때 나오게 되는 것이 바로 논거들의 '용광로'이다. <끝>

 

참고: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명령의 위헌성 고찰

https://www.lawtimes.co.kr/Legal-Info/Cases-Commentary-View?serial=1159

신고
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김태희
    2015.03.12 22:3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http://www.civiledu.org/588
    이 글에서 이야기하셨던 논의를 더 자세히 풀이해주신다고 생각하는데, 권리 충돌을 해결하는 관문-열쇠 은유에 대한 논의는 어떤 책을 참고하면 될까요? 번역된 책이 있을까요?
    • 2015.03.13 03: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가 새롭게 구성한 이론이므로, 올해 하반기에 출간될 연구서-언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를 참조하시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 책을 보고 나면 모든 의문이 남김없이 해소되시리라 생각합니다.
  2. 2017.09.08 20:4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안녕하세요 작성해주신 글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문의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성도착증을 가진 경우 처벌이 아닌 치료의 대상만이 되어야 하며, 통제가 가능한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하되 화학적 거세 또한 치료가 아닌 처벌이 되며 이는 정당하지 않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헌데 '성도착증, 즉 성적 이상을 가지고 있으나 개인의 의사 판단이 가능해 의사에 따라 성범죄를 저지를 성범죄자'의 경우 국가에서 형사 처벌과 함께 '통제가 가능하지만 성적 기호에 영향을 미쳤을 성도착증'을 치료하기 위해 화학적 거세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경우, 환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강제 화학적 거세 뿐만 아니라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경우에도 치료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좋은 글 감사하며,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 2017.09.08 21:1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그 신체를 가진 사람에게 개인으로서 자율적인 의사판단과 통제능력이 있다면, (심리통계상이 아니라) 형법상 문제삼을 성도착증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법익을 침해하지 아니하고 주류의 성애의 패턴에 벗어난 성애를 향유하는 사람은 심리통계적인 의미에서 '이탈적인deviant'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형법상으로는 아무런 차이를 가져오지 아니합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은 타 동료시민의 동등하고 자유로운 지위를 존중하는 시민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차원 만화에 의해서만 흥분하는 성적 경향을 갖고 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그러한 성애의 추구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능력과 행위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어느 누구의 형법상 보호되는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형법은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it is no business of criminal laws) 그것은 단지 통계적으로 이례적인 성적 기호일뿐이며, 따라서 중립적 국가는 그에 대해 형벌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2. 그러므로 규범준수능력을 훼손하지 않는 성적 기호 자체는 형법의 소관 사항이 아닙니다. 반면에 규범준수능력을 훼손하는 신체적 이상현상(예를 들어 브로카 영역과 성적 흥분을 담당하는 두뇌부분의 경게선상에서 발생한 뇌종양)이 확인되는 경우에 이는 치료명령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종양의 크기가 작다고 판단되었을 때, 즉 규범준수능력에 영향은 실질적으로 미쳤으되, 규범준수능력을 박탈할 정도는 아니라면, 형사상 감경을 받게 되며, 또한 치료명령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화학적 거세는 어떠한 경우에도 치료명령 조치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욕 자체는 규범준수능력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뇌의 종양을 제거하는 것과 달리, 성욕을 무력화하는 것은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것에 불과하며 어떤 경우에도 종전형적인 신체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대의학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체이상(뇌에 발생한 종양 등)이 아니라면, 치료는 이러한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강제 화학적 거세가 정당화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4. 동의에 의한 화학적 거세는, 그것이 가석방의 요건이 된다면 실시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아도 치료가 아니라 신체 무력화에 해당하지만 (즉 그것은 손재주가 좋은 절도범에 있어서 그의 규범준수능력을 향상시키는 신체기능의 회복이 아니라 절도로 나아가지 않게 만드는 신체적 장애를 창출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장애를 감수하고서도 스스로의 동의를 통해 가석방을 통해 보다 빨리 사회에 적응하고자 하는 재사회화의 경로를 열어두는 것은 행형정책의 하나로 설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것은 치료는 아니고, 재사회화를 촉진하는 신체 무력화를 곁들인 행형정책으로서 합헌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3. 2017.09.08 22:2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자세한 답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가지만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성욕 자체는 규범준수능력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 잘 와닿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령 소아기호증 환자의 경우 화학적 거세가 아닌 '소아를 마주했을 때 흥분을 느끼는 상태' 자체를 치료해줘야 한다는 말씀이신건가요? 성욕을 무력화시킨다고 해서 소아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죠.

    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선생님의 조금 더 구체적인 답변을 부탁드려도 될지요.

    소중한 개인시간을 이리 뺏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 2017.09.09 16:4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정과 흥분의 구분이 아니라

      신체적인 능력인 성욕 자체와, 그 성욕의 지향성을 구분해야 합니다.

      화학적 거세는 신체적 능력만을 제거할 뿐이지, 그 성욕의 지향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아니합니다. 성욕의 지향성은 뇌에 있는 것이지 생식기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성욕을 타인의 지위를 준수하면서 충족하고자 한다면 아무런 규범준수에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반면 신체적인 성적 능력이 낮다 할지라도 얼마 안 되는 그 성욕을 충족하기 위하여 타인의 지위를 박탈하는 폭력을 쓴다면 규범 준수에 큰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소아기호증 환자의 경우에 성욕 자체가 아니라 성욕의 지향성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학적 거세는 성욕 지향성에 대한 아무런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성욕 지향성을 바꾸는 과학적인 치료방법이 있다면, 이는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실시할 수 있는 '치료'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 2017.09.09 20:3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 생각에는 질문자께서 '규범준수능력'을 '규범을 잘 지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 여러 여건들'이라는 느슨한 의미로 이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과 답글의 '성욕 자체는 규범준수능력과 무관하다'라는 말을 '어떤 사람이 성범죄를 안 저지르는 데 있어서(규범을 잘 지키는데 있어서) '성욕'은 전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욕을 무력화시키는 행위가 성범죄를 안 저지르는 것(규범을 잘 지키는 것)과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면, 아예 원천적으로 '흥분을 느끼는 상태'를 없애야 규범을 잘 지키도록 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 물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규범준수능력'은 규범을 잘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여러 여건들(참을성, 적당한 성욕 등)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규범준수능력'은 '범죄의 성립요건' 중에서 '행위자의 책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자가 적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규범준수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보통사람보다 성욕이 다소 과하더라도 그가 '성범죄를 안 저지를 수 있는 의사결정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법을 준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규범준수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욕이 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욕이 아무리 과하다고 하더라도 "타인이 떠밀어서 피해자를 밀쳐 다치게 하거나, 몽유병 상태에서 재물을 손괴한 것"에 비교될 수 있을만큼 성욕이 의사결정능력(규범준수능력)을 훼손시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욕이 규범준수능력과 무관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사람의 성욕이 많냐 적냐 (또는 특정한 성적 기호를 가졌느냐) 여부와 그 사람이 '규범준수능력'을 갖고 있느냐 여부는 서로 별개로 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에 '규범준수능력'과 '성욕'(또는 '성적 기호')은 서로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국가의 공형벌권 행사가 정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관문들을 '강제 화학적 거세'는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관문들을 일단 통과하지 못한다면, '강제 화학적 거세'가 결과적으로 성범죄 발생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논의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절도범의 손목을 자르고 실명케하는 행위의 재범방지 효과를 논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 2017.09.10 01:1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적확한 보충 설명입니다.
  4. 2017.09.11 02:1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네요.

    다만 궁금한 점이 있다면 만약 정당한 국가의 공형벌권 행사가 규범준수능력에 대한 처벌이어야 한다면

    살인죄를 비롯한 모든 죄에 대해 '징역형 혹은 벌금형'등을 부과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가령 살인죄의 원인, 즉 살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점에 대한 처벌이 어떻게 징역형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관점에서, 그렇다면 변호사님께서는 '전자발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범죄자의 범죄 원인에 대한 원론적 접근이 아닌 전자발찌 또한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2017.09.11 20: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처벌이 규범준수능력에 대한 처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처벌의 수형 대상이 규범준수능력이 기거하는 물리적 장소인 전전두엽의 대뇌피질인양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부정확한 말입니다.)
      처벌을 하는 이유가, 규범준수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범준수능력을 발휘하여 타인의 지위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범준수능력, 즉 의사판단과 그 판단에 따른 행위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지만 원리상 이치에 닿는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2. 형사사법제도의 목적은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서, 다음 두 가지를 그 일부로 포함합니다.
      첫째, 해당 범죄로 인하여 다른 시민들의 지위가 침해되었음을 실효적으로 선언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만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범죄로 인하여 그 자유와 권리에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범죄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시민은 '함부로 그 법익을 침해해도 되는 존재' 즉, 이등시민으로 취급되는 셈입니다. 범죄 피해자가 이등시민이 아님은 가해자 본인에게도, 그리고 그 범죄가 발생한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규범준수능력이 있음에도 범죄로 인하여 타인에게 해를 가한 사람은, 어떠한 형태의 제도화된 불이익을 공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3.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불이익의 형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여전히 규범준수능력을 가진 이성적 존재라는 인정과 양립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즉, 그것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 역시 그 협약의 구성원으로 포함하는 공적 원리에 의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과거의 처형 방식들, 즉 모든 피부를 벗기고 그 피부에 짚을 채워넣는 형벌이나, 사지를 절단하고 귀와 눈을 멀게 하고 혀를 뽑은 후에 돼지우리에 넣는 형벌과 같은 것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더 이상 사회의 인격적 구성원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원리, 즉 범죄를 저지른 순간 인간이 아닌 어던 바퀴벌레나 모기와 같은 존재로 곧바로 전락한다는 원리를 도입해야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이 봉화를 올렸던, 근대 계몽주의의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은, 바로 범죄자에게 불이익을 부과하는 공형벌권의 행사 방식이, 그 수형자도 자율적인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는 원리에 의거하여야 한다는 이념이었습니다.

      그러한 원리에 의거하여 그 형태가 제약되는 불이익 부과 방식 중 인류가 지금껏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이 '징역형 혹은 벌금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처벌은 처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동료 시민의 자유와 권리 어느 것도 소홀하게 보거나 경시하지 않는 질서정연한사회의 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전자발찌는 형사보호처분의 일종입니다. 형벌이 아닙니다.
      형사보호처분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향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이들에 대하여 국가가, 그러한 전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허용되지 아니할 감독을 시행하는 제도입니다.
      그러한 감독의 시행은 원칙적으로 정당화된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호처분 대상자의 위치를 기록함으로써, 범죄를 저지른다면 거의 확실하게 체포되고 처벌될 수밖에 없다는 위하력을 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독의 구체적인 시행조치가 형사사법제도의 다른 목적인 '재사회화'에 저해가 된다면, 그러한 조치는 정당성에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자발찌제도는 위치를 기록하고 감독의 대상이 되는 것 이외에도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다른 목적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란 바로 '낙인'을 찍는 목적입니다.
      즉, 전자발찌를 차고 있음으로 인해 이 사람은 성범죄 전과자로서 보호처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사실상 가까운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사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발찌는 매우 커다랗게 생겼고, 발찌라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는 차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 낙인이 찍힌 저열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며,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중지하게 됩니다.
      범죄자의 재사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동료시민의 지위를 전적으로 존중하면서도 자신도 존중받으며 상호작용하고 서로 의지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발찌로 낙인을 찍으면 그런 상호작용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발찌를 찬 사람은 자포자기하여, 최근에는 전자발찌를 찬 사람의 재범률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이처럼 낙인효과를 전시하는 것을 겸하는 목적은, 일반적으로 전과를 민감한 정보로써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법제도의 다른 부분과도 충돌합니다.
      그러므로 위치를 기록하고 관찰하고 감독하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봐서 알 수 없는 초소형화된 위치기록장치를 신체에 부착하거나 삽입함으로써 보호처분을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5. 2017.09.11 02:3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아울러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가 병행되지 않은 사회심리적 치료의 결과(재범율)가 화학적 거제가 병행된 사회심리적 치료의 결과보다 6%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화학적 거세를 병행하였을 때 재범방지율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인데요.

    약물에 의해 저하되지 않은 성욕을 여태껏 제어할 줄 몰랐던(성욕의 지향성을 조절할 줄 몰랐던) 성범죄자들이 약물에 의해 저하되어 상대적으로 제어하기 쉬워진 욕구를 제어하는 경험을 쌓으며 이를 통해 성욕의 지향성을 조절하는 법을 학습함으로써(마치 백신처럼) 이러한 사회심리적 치료를 병행한 화학적 거세의 재범방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본다면,

    화학적 거세가 범죄의 원인과는 무관한 것을 무작정 낮추어 효과만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성욕의 지향성을 치료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 2017.09.11 20: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절도범의 손을 절단하면 절도죄를 저지르는 재범률이 낮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손을 절단한 것이 그의 절도지향성을 치료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6. 아마추어
    2017.09.11 20:5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 수준 높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군요.. 저도 언제쯤이면 성우맨 님이나 시민교육 님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자주 이곳에 와서 많이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7. 아마추어
    2017.09.11 21: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의문을 풀고 싶습니다. 시민교육 님의 <언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연구서는 언제 출판되나요? 혹시, 이미 출판되었나요? 출판되었다면 정확한 책 제목을 알려주세요. 궁금합니다.
    • 2017.09.11 21:3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네. 이미 출간되었습니다.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익 형량>을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BLOG main image
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전체 글 보기 (941)
공지사항 (20)
강의자료 (88)
학습자료 (311)
기고 (516)
  •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