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개념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생기는 혼동 중 하나가, 이기적인 것과 사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위를 도덕적 지평에서 평가하기 위하여 통상 언중들이 사용하는 개념은, '이기적임'과 '이타적임'이라는 양분적인 개념이다. 모든 행위는 이기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타적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이러한 개념만 가지고 사람들의 '행위'를 기술하면 흑백 논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가 있다. 이 농부의 목적은 사과를 잘 키워서 비용을 상쇄하고도 이득을 남기는 돈을 받고 그 사과를 파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과를 잘 재배하는 농부의 행위는 이기적인가?

 

우리 말에서 '이기적'이라고 할 때는, 비난의 뜻을 포함한다. 즉, 그것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교정되어야 할 행위이다. 그러나 위 농부의 행위는 직업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와 같은 종류의 계획 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농부가 스스로 손해를 보고 사과를 싸게 팔아야 한다면, 다른 모든 이들이 손해를 보고 용역과 재화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시장경제는 붕괴하고 모두가 더 못살게 될 것이다. 일반적 준칙으로 따랐을 때 모두가 더 못살게 되는 행위를 이타적인 행위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결국, 인간 행위를 '이기적 행위'(egoistic behaviour)와 '이타적 행위'(altruistic behaviour)로 양분하는 것이 흑백 논리의 오류를 범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기적인 행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행위다.

이타적인 행위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희생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빠진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리적 행위'다. 사리적 행위(self-interested behaviour)는, 행위자가 행위하는 주된 동력이 행위자 자신이 향유하는 선이 되는 행위이다. 

 

사리적 행위는 그 행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을 때 결부되는 합법적 기대치(legitimate expectancy)가 어떤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는가에 따라, 행위자 이외의 사람들 일반의 처지를 더 낫게 만들기도 하고 더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앞서 든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의 경우에는 사리적인 행위가 보통 사람들의 처지를 더 낫게 만든다. 맛있는 사과를 잘 재배하면, 사람들은 적정한 값을 쳐주고 사과를 먹고 쾌락을 느끼고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

 

한편, 업무능력과 별 관계없는 공무원 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하기 위해 시험준비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여하는 것은, 타인의 이익에 중립적인 효과를 미치는 사리적인 행위이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법질서 하에서는 사리적인 행위는 곧 사람들의 처지를 더 나쁘게 만든다.

 

1)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에는 언급된 모든 사고에 대하여 다 보험금을 지급할 것처럼 하지만, 실제 계약서에는 많은 예외조항들을 숨겨놓는다. 이 예외조항에 애매하게 걸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하여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2) 독과점을 용이하게 하는 입법을 국회의원을 통해 합법적으로 추구하면, 이윤이 늘어난다.

3) 일반에 무해하지만 권력자에게 불쾌한 행위를 실정법에 의해 처벌하면, 수사기관의 구성원이 승진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리적 행위는 곧바로 '이기적' 행위라고 등치시켜버리면, 중요한 매개고리가 상실된다. 즉, 법제도가 사람들의 정당한 몫을 잘못 지정해놓고 있다는 바로 그 고리 말이다.

 

규범은 사람들의 행위기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이 저렇게 행동한다고 기대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행위기대 말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철저히 자발적으로 규범을 준수하리라는 강한 전제 없이도, 정당한 규범에 따른 행위 조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법이라는 매체는 복잡한 행위조정과 약한 행위 동기 유발의 문제를 제재의 결부를 통해서 해소한다. 즉, 사람들이 법을 따른다면, 그것이 단지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한 이유에서건, 아니면 그 법이 진정으로 정다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서건, 그것은 정당한 행위기대에 부합하는 행위가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조절매체인 법이 엉터리가 되는 경우, 사리적인 행위는 이기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데, 법 자체가 공식적으로 그러한 사리적 행위를 만인이 할 것을 기대하게끔 만들기 때문에, 어느 특정 구성원만 사리적인 행위를 억제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공동으로 쓰는 우물물이 있는 마을에, 법으로 한 가구당 하루에 3리터까지 퍼서 쓸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우물물의 저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실은 한 가구당 2리터까지만 퍼서 써야지 가뭄 기간을 잘 날 수가 있다. 그런데 3리터까지 상한을 높여 놓았다. 그래서 어느 가구가 2리터까지만 자발적으로 사리를 억제하는 경우에, 나머지 가구들이 3리터씩 퍼가서 자기들 비축분을 쟁여놓고, 억제한 가구는 오히려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고 기갈에 시달려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 뻔할 때, 법은 고치지 않고 사리적인 행위가 공공재의 비극에 이른다고 하여, 그 행위를 곧 이기적인 행위라고 딱지 붙인다고 하여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다수 당사자가 참여하는 상호작용에서 행위조정의 기준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는 데 있지, 각자가 제재를 받지 않는 범위에서 사리를 추구한다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리적 행위에는 네 가지가 가지가 있을 수 있다.

i) 그 행위가 일반적으로 수행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더 낫게 만들어줌.

ii) 그 행위가 일반적으로 수행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중립적임

iii-1) 그 행위가 일반적으로 수행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저해하는데, 나머지 행위자의 행위를 공적으로 규율하지 않으면서, 한 행위자에게만 사리를 억제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iii-2) 그 행위가 일반적으로 수행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저해하는데, 나머지 행위자가 여전히 그 행위를 한다고 하여도, 한 행위자만이라도 사리를 억제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

 

iii-2)의 경우는 공원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제재하는 규칙이 없지만, 어쨌거나 공원에서 놀고 먹은 것은 각자가 챙겨가서 버리라고 촉구하는 경우다. 즉, 이 경우는 원래 제대로 된 규칙에 의해 부과되었을 의무, ,각자가 먹고 논 것을 버리는 일이 명확하게 특정될 수 있고, 그로 인한 응당한 불편함 이외의 다른 불이익이 사리를 억제하는 사람에게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iii-1)의 경우에는 이기적인 결과가 총합적으로 나기는 하지만, 그 사회 자체가 질서정연한(well-ordered) 것이 아닌 한, 행위자 개인의 사리적 행위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위선적 사회를 낳을 뿐이다.

 

그러므로 법으로 허용된 사리적인 행위 중 이기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iii-2)의 경우 뿐이다.

 

i)과 ii)는 '이기적'이라는 말도, '이타적'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iii-1)은, 사실은 그 행위자의 동기 측면에서 i)이나 ii)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조절매체인 공식적 규칙이 잘못되어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그 결과는 이기적인 결과로 이를 수 밖에 없는 경우이다.

 

특히 사회문제를 다루는 정치가는 이러한 구분에 민감해야 한다.

 

기존의 이기적/이타적 용법의 구분은

첫째로, 타인의 이익에 일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오히려 증진하는 행위를 '이기적'이라고 잘못 딱지를 붙이게 만들어서 사고의 혼동을 가져오고

둘째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일반적으로 저해가 되는 행위 중에, 조절매체인 법이 잘못 설정되어 있음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와, 애초에 행위자의 의도가 타인의 이익을 부당히 희생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경우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다.

 

첫째 혼동은, 자신의 권리 내의 범위에 있는 행동에 무단적인 간섭을 함부로 가져오는 정치문화를 낳고,

둘째 혼동은, 시급히 교정되어야 할 것은 조절매체인 법임에도 불구하고, 피상적으로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탓하면서 무위하는 정치문화를 낳는다.

 

 다른 사리적인 행위와 분명하게 구분하여 비난하지 못하도록 한다. 즉, 그것을 일반적인 사리적 행위와 마찬가지의 단순한 하나로 생각하게끔 한다.

 

이 혼동은 반대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할 수 있다.

 

첫째로는, 사회질서에 의해 강제적으로 부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희생당하는 것을 '이타적인 행위'로 이름붙임으로써 그러한 희생을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사회질서에 의해 허용되어 있어 마치 정상적인 상호작용의 일종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를, 마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거나 꼭 필요한 행위처럼 보이게 착각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수 있다.

 

결국, 이기적인 것과 사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은

1)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는 간섭적 정치문화를 낳고

2) 시급한 조절매체의 교정을 지연하게 만들고

3) 부당한 희생을 정당한 자발적 기여로 둔갑시키고

4) 법에 의해 주어진 지위와 권한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일반적 이득에 기여한다는 착각을 가져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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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15.03.15 22:1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러셀책에서 본 이기적이란 단어들을 사리적으로 바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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