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

 

UQ란 엉덩이지능을 말한다. 엉덩이에는 뇌가 없으므로 엉덩이가 발휘하는 지능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루 꾸리뭉태고 앉아 있는 것이다.

 

2. 중요성

 

UQ의 중요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기술을 갈고 닦는 일, 자료들을 탐색하고 검토하는 일, 추론을 전개하고 정리를 정립하는 일, 정립한 지식을 남들이 공유할 수 있게 정리하는 일.

 

이 일들은 탐구에서 빠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들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이 일들로 달성한 것을 P로 표시해보자. 그리고 시간을 T로, 효율을 E로 표기하자.

 

그러면 임의의 주어진 사람에 대하여

 P = T*E가 된다.

 

사람 자체는 이미 주어져 있고, 바꿀 수 없기 때문에, E는 요령과 두뇌 스트레스의 함수가 된다. 두뇌 스트레스는 휴식 시간을  거의 갖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풀가동할 때 생기는 스트레스로, 부작용으로 두통과 기진맥진 소진된 두뇌 증후군(exhausted brain symptoms)이 생긴다. 요령들의 효과는 보통 약간의 상승효과와 간섭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합의 효과를 갖는다. 곱이 되지는 않는다. 좋은 요령 두 개를 함께 실행한다고 해서 곱한 만큼의 효율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제, 해당 탐구자가 평균적인 주의로 요령을 동원하고, 평균적인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탐구할 때 생기는 탐구효율Ee를 1이라 두자.  

 

그러면 P = T*1 = T 이다.

하루에 탐구 시간을 4시간 둔다고 하면, P = 4가 된다.

 

이제, 탐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지금 실천할 수 있는 모든 요령을 실천하면서, 두뇌를 풀 가동해서 입에서 단내가 날때까지 효율을 끌어올린다고 해보자. 그 효율을 강제로 고양된 효율(Forced hightened Efficency)의 약자인 Eh라고 하자.

 

Eh의 최대값은, 저절로 잘 될 때, 완전 리듬을 타고 몰입을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네, 하는 그런 날을 기준으로 잡으면 안된다. 그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에 단내가 나고 몸이 비비 꼬이면서 두통이 발생할 지경에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생각을 짜내고 짜낼 때의 효율로 잡아야 한다.

 

사람마다 그 값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필자에게는 이것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1.5를 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균적 효율값인 Ee만 하여도, 이미 투입할 수 있는 요령들은 다 투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로 고양된 효율값으로 초사이어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평균적 효율로 3시간 동안 할 일을 2시간 정도로 단축시키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로써 UQ의 중요성이 증명된다.

일요일은 원래 다른 일이 잡혀서 공부를 할 수 없는 사람을 기준으로 일주일 치만 계산해보자. 매일 4시간씩 공부할 시간이 나는 사람의 경우, 평균적 효율에 의한 탐구량은 4*6=24이다.

그런데 어느날 UQ가 부족하여 하루를 날렸다고 해보자. 재미도 없는 걸 하면서 시덥잖게 시간을 보냈다고 하여보자. 그럴 경우 4시간치를 보충해야 하는데, 이미 시간은 써버렸으므로,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의 고양된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고양된 효율성을 발휘할 때 주어지는 보너스는 0.5시간치다. 그것으로 4시간치를 보충하려면 무려 8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즉, 평소에 평균적 효율로도 매일 4시간을 해내기가 힘든 일이어서 엉덩이를 뗀 탐구다. 그런데 무려 8시간이나 강제적으로 고양된 효율성으로 두통을 겪으면서 그것을 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하면 기진맥진해져서 오히려 다음날에는 더 하기가 싫어진다. 그러면 또 시간을 날려버리게 되므로, 고양된 효율성으로 보충해야 하는 시간은 더 늘어난다.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꾸리뭉태기가 싫은 이유는 부담이 많기 때문이다. 부담이 많은 이유는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많으면, 에이 하고 자리를 떠서 시간을 날리고 싶은 유혹이 더 강해진다. 그런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게 되면 일정한 리듬이라는 것이 온데간데 없게 되고, 탐구의 길은 멀어진다. 왜냐하면 탐구는 지금 당장 누군가 나에게 명령해서 마감을 정해놓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감을 정해놓은 일이라든지, 유혹적인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세상 마감할 때까지 후순위로 미뤄두게 된다. 그러면 탐구를 마치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탐구는 하지 않고 탐구의 외양만 번드르르하게 갖추면서 자신이 탐구를 하고 있다고 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결과가 된다.

 

결국 탐구의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UQ를 십분 발휘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다.

 

3. UQ도 증가시킬 수 있다.

 

T를 결정짓는 것이 결국 UQ다. 그런데 다행히 UQ 역시 증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효율을 결정짓는 요소 중 일부가 요령이듯이, T를 결정짓는 UQ의 요소 중 일부 역시 요령이다

 

요령에는 인생관의 요령과 기술적 요령이 있다.

 

(1) 인생관의 요령

 

인생관의 요령은 생활 전체를 조망하여 그 재미의 정도를 직시하는 것이다.

즉, 인생 별 것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탐구할 시간을 날려서 굳이 할 만한 재밌는 것이 별로 없다!  진짜 재밌는 것은 원래부터 계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하루종일 탐구만 하지는 않는다. 자기 전에 휴식 시간이 있을 것 아닌가. 또 일주일 중에서도 탐구를 쉬는 날로 정한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지금 탐구의 시간을 날리고 즉흥적으로 할 일들은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인터넷 서핑을 한다든지,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것도 없는 친구나 직장 동료와 술을 먹는다든지, 하릴없이 전화를 걸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든지 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인지적으로 부담이 덜한 일일 뿐이다. 인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고 해서 재밌는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민방위 훈련을 가면 인지적으로 부담이 별로 없지만, 재미는 하나도 없다.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재미있는 영화는 한 분기에 하나, 둘 나올까 말까 한다. 그 외는 재미가 없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것은 민방위 훈련 가서 강사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탐구를 하는 것이 재밌었을 것이라고 결국 생각하게 된다. 인지적 부담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찬찬히 그 둘, 예를 들어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것과 탐구를 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이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정말로 재미가 있는 일이라면, 탐구를 희생할 만하다. 그러나 재미도 없는 일에 탐구를 희생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시간을 날리고 싶을 때마다 멈추어 서서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즉흥적으로 하려고 하는 일이 진짜 탐구보다 재미있는가?

 

(2) 기술적 요령 - 휴식의 요령

 

꾸리뭉태는 UQ의 실천을, 그야말로 꾸역꾸역 고역을 치르는 이미지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탐구의 끈을 정해진 시간 동안 계속 놓지 않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정말로 엉덩이를 한 장소에서 떼지 않거나, 자세를 바꾸지 않거나, 하나의 작업만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이미지를 잘못 잡으면, 엉터리 휴식을 하게 된다.

 

니컬러스 카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둘러싸여 주의집중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저자인 카 자신이 그 책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 인터넷으로부터 단절된 환경을 일부러 몇 달간 만들었다고 하니 오죽할까. 카가 책을 쓰고 난 후 스마트폰 열풍이 몰아쳤으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단지 우리의 시간을 뺏고 정신을 팔리게 하는 새로운 오락거리가 추가된 것이 아니다. 카에 따르면, 인터넷을 자주 하다 보면 우리의 인식 습관, 지각 방식을 바꾼다고 한다. 새로운 정보를 간략하게 계속 검색하려는 성질을 갖도록 뇌에 물리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영어단어 검색하려고 인터넷 창 열었는데, 영어단어는 검색하지 않고 포털 사이트 정면에 뜬 뉴스를 검색하다가 결국 몇 시간 뒤 누군가의 블로그 글을 모조리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변화된 뇌가, 다른 활동을 할 때에도 계속 그런 식으로 지각을 사용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는 일을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쉬고 있는 게 아니고 두뇌를 혹사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는 끊임없이 이 정보를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내릴 것을 두뇌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10분 동안 도마 위에서 무를 계속 다지는 건 그리 지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성 없이 도마 위에 무를 올려놓았다가 양파를 썰었다가 마늘을 다지는 식으로 계속하면 우리는 철저히 지치게 된다. 그래서 인터넷을 하고 나면 개운하게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적게 하라’는 소극적인 지침은 실제로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원래 단순한 금지 명령 형태로 진술된 지침은 실천하기 어렵거니와, 이미 뇌가 그 지침을 실천하기 어렵게 변했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요령으로 대처하는 것이 낫다.

그중 하나는 ‘제대로 쉬자’는 것이다. 쉰다고 하면서 늑대를 피하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공부하거나 일하던 내용으로부터 뇌를 도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나 자세에서 몸을 도피시켜야 한다. 지루하거나 답답해지면 번잡한 정보를 새로 받아들이지 말고 몸을 돌리거나, 스트레칭하거나, 근육운동을 하거나, 걷는다. 단순하게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것도 효과가 좋다. 집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켠다? 한마디로 ‘쉬지 않겠다’는 뜻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느릿느릿 산책을 하면 훨씬 상쾌한 느낌이 든다.

다른 하나는 ‘제한된 감각이나 정보를 온전히 음미하고 갖고 노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흥미로운 토론을 하거나 조금 있다 할 일을 생각하다 보면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맛있는 걸 먹을 땐 음식의 색깔과 맛, 촉감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이런 습관은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을 때에도 익힐 수 있다. 걸어갈 때 눈과 귀로 들어오는 풍경이나 소리의 세부 사항을 세밀하게 훑어 느끼고 때로는 언어로 표현하려고 해보자. 생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계속 보려고 하지 말고, 일단 이미 갖고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려 보며 노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주의집중은 흔히 생각하듯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억제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과 몽상으로 온전히 현재를 음미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공부시간보다는 공부효율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이 둘이 마치 대립되는 관계에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탐구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휴식하게 되면, 휴식 시간이 좀 많아도 공부의 효율은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공부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흔히 잘못 지적되는 것이 "딴 생각"이다. 딴 생각은 실은 그렇게 크게 공부의 효율을 저하시키지 않는다. 생각을 아무리 많이 해도 연속적으로 몇십분이나 하기는 힘들고, 정말로 재미있는 생각이라면 노트에 적어놓고 나중에 또 이어서 생각하면, 그것이 공부에 어떤 방향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딴 생각은 탐구의 끈을 놓는 휴식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스트레칭을 하고, 멀리 시선을 한 번씩 두는 것도 탐구의 끈을 놓게 하지 않는다. 그런 짓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러한 활동 전후에 탐구를 계속하면서 일정 시간을 확보한다면, 탐구의 평균효율은 구현된다. 

 

탐구의 흐름과 끈을 잘라내는 잘못된 휴식은, 항상 다른 일을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다. .

(1)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2) SNS를 하거나

(3) 신문을 읽거나

(4) 메신저를 하거나

(5) 만화책을 읽거나

(6) 이야기를 하거나

(7) 다른 곳으로 가서 놀거나.

 

엉덩이를 꾸리뭉태는 것은 은유다. 실제로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팔짱을 끼고 왔다 갔다 하거나, 5-10분 정도 주위 산책을 하고 오거나 하는 것은 오히려 효율을 높인다. 산책을 떠나기 전에는 막혀 있던 부분이 산책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풀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트나 수첩을 쓰는 것의 중요성이다. 힘들 때에는 노트에다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지,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해야지 하는 것을 매우 시시하고 시시콜콜해보이더라도 쓰면 도움이 된다. 인지 부담을 확 줄어주게 되고,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생각을 전개하거나 전개한 생각을 정리할 때에 특효약이다.

 

4. 정리 - 잘못 알고 있었던 것

 

(1) 공부시간보다는 공부 효율이 중요하다.

- 이미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요령들을 실천하고 있다면, 공부 효율은 오직 강제된 고양을 통해서만 올릴 수 있으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효율로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은 계산해보면 턱없이 작다. 즉, 평균적 효율로 공부하는 탐구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2)공부가 잘 안될 때는, 노는 것이 낫다.

- 그렇게 완전 휴식해서 날린 시간은 아무리 효율을 높여도 보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범위에서 원하는대로 휴식을 하다보면, 결국에는 좋은 리듬이 돌아온다.

 

(3) 공부하면서 딴생각을 하거나, 자꾸 몸이 움직이면 오늘은 공부 리듬이 아닌 것이다.

- 원래 그런 것이다. 책을 덮거나 컴퓨터를 끄지 않고 딴 생각을 하는 것은 무해하다. 몸이 자꾸 들썩거리면 팔짱을 끼고 왔다갔다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근력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갔다 오면 된다. 그렇게 하면 리듬은 살아나고,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떤 몸의 움직임 상태에 있건 끈을 놓지 않으면 된다. 지하철을 타고 책이 잘 읽힌다면, 지하철을 타면 된다.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이 잘된다면, 몸을 계속 움직이면 된다. .

 

(4)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공부하기가 힘들다.

- 세상에는 인지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이 많을 뿐, 재미있는 것은 얼마 없다. 지나고 보면 민방위 훈련 같다는 점이 분명하게 판별될 때가 많다.

 

(5) 전업으로 공부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말로 공부를 잘 할 수 있을텐데.

- 전업으로 공부한다면 UQ가 더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UQ 높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를 하리라 생각했던 그 자유시간에, 인지적으로 부담이 적은 일들을 하면서 날리기 딱 좋다. 어느 정도 마감 시간이 가깝게 느껴져야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으로서 공부하면서 하루에 기껏해야 3-4시간만 꾸리뭉태면 된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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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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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9 21:5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 읽었습니다.
    정신만 산란케 하는 재미없는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게 좋군요.
  2. 시민
    2015.03.20 23: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글이네요
    경험이 묻어납니다 변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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