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gan S. Lloyd et al., Alice in wonderland and philosophy : curiouser and curiouser, 앨리스처럼 철학하기, 인벤션, 2014,  제4장 Dennis Knepp, “너희는 카드 묶음에 불과해!” 92-94면에서는 일상에서, 정치담론에서 흔히 보는 바보같은 논증형태를 재소개한다.


"하트 왕과 여왕 부부의 법정은 힘 있는 자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힘 있는 자에 의해 진행된다. (…) 법정에 선 것은 앨리스가 아니라 하트 잭이다. 앨리스는 증인이다.
(…)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가 증거로 제출된다. (분명히 수신자가 있을 것이므로!) 흰 토끼는 그것이 잭의 필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왕은 잭이 다른 사람의 필체를 흉내 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잭은 항변한다. “제가 쓴 것이 아니고, 그랬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끝에 서명이 없지 않습니까.” 왕은 정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편지에 서명했을 것이므로 이것은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한다!
  앨리스는 정확한 분석을 제시한다. “이걸로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어요!” 편지의 내용에 대해 왕에게 이의를 제기한 흰 토끼는 말도 안되는 구절을 읽고, 왕은 더 말도 안되는 해석을 한다. 그런 다음 배심원들에게 판결을 내리라고 (“그날 하루만 해도 스무 번은”) 말한다. 하지만 여왕은 형을 먼저 선고하기를 원한다. 판결보다 선고를 머저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앨리스가 이의를 제기하자 여왕은 “저 아이의 목을 베어라”라고 소리를 지른다."

 

하트 왕과 여왕은, 잭이 범인이라는 결론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모든 다른 근거는 잭이 범인이라는 결론을 논거로 삼아 취하고 버린다.

 

비슷한 일이 정치철학 논증이나 헌법 논증에서 벌어진다.

"사회는 이러저러한 행위들을 무제한 내버려 두지 않고 제한할 수 있다."

라는 형식의 명제는 결론이다. 그것은 잭이 범인이라는 것에 해당한다.

 

잭이 범인이라면 잭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잭이 범인이라는 점을 논하기 위해서 오히려 잭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는 이러저러한 행위들을 제한할 수 있다"는 언명은 논증되어야 할 결론이다. 그것을 논거로 삼아 구체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잭이 범인이라는 점을 논거로 삼아 잭이 칼을 들었었다는 것을 이끌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도 이런 형식의 추론이 등장한다.

그것은 "입법자는 --에 대한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갖는다."는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사회는 ---의 필요를 위하여 제한할 수 있다"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에라스무스는 "법률가라는 직업은, 철학자들이 대개 이구동성 조롱하는 것처럼, 이런 말을 내 입에 올리긴 싫지만, 멍청한 당나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당나귀들의 처결에 따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재산이 점차 자라납니다."라고 우신의 입을 빌어 일갈하였다. 이상한 나라의 여왕과 왕의 추론형식이 그대로 타당한 법논증으로 인정되어 판결문에게 적히는데에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학문은 당나귀들의 학문이며, 우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 이렇게 어리서음과의 친연성이 큰 학문일수록 그만큼 만고에 복되고 복되다"!

(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Moriae Encomium id est Stultitiae Laus. 김남우 옮김, 우신예찬, 열린책들, 2011, 83면.).

 

하트 왕과 여왕은 물론 이러한 비판에 대해 목을 베듯이 써컹써컹 그냥 베어라고 소리치며 날려버릴 것이다. 어떨 때에는 자신의 화행의 행태가 거울에 비춰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즉, 하트왕과 여왕의 것인지를 본인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이는 마차 전복 사고에서 말들을 무사히 건졌다 하고, 어떤 이는 집이 무너졌으나 살아남았다 합니다. 어떤 이는 본서방에게 걸렸으나 도망쳤다 합니다. 이렇게 누구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온갖 것들로부터 도망쳤음에 감사하지만 나 우신에게서 벗어났음을 감사하는 사람은 없은즉, 어리석은 것만큼 달가운 것은 없다 하겠습니다. "(Erasmus, 위의 책, 102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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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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