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표현의 자유' 개념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표현을 하도록 국가에 의하여 허락받은 상태'이다. 이러한 개념 이해에 따르면, 문제를 일으키는 표현은,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정의상(on definition)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이해는 좌우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토론에서는 애초에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오직 수사적인 값만을 갖는다. 왜냐하면 결국 핵심은 "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표현될 수 없고,  그렇지 않은 것은 표현될 수 있다"에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에 대한 의견 차이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 개념은 논증 끝에서야 등장하며, 결론을 수사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또는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을 미리 수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 서두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유를 한정하여 단정하는 문장에서 언급된다.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기득 질서에 위협이 되는 것을 그들의 관점에서 배제하고 남은 영역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거나 바꾸고자 하는 급진적인 표현은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들어가지 않으며, 또한 음란 표현과 같이 지배적인 풍속에 반하는 표현도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것은 표현의 자유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들어가지 않는가? 그러한 것을 허용한다면 바람직한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는 논증에서 잉여적인 개념이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새로운 질서 수립에 방해가 되는 것을 그들의 관점에서 배제하고 남은 영역으로 정의한다. 그리하여 소수자를 경멸하거나 비하하거나, 비판하는 표현은 자유의 보호 영역 내에 들어가지 않으며, 또한 음란 표현과 같이 성평등에 반한다고 보는 표현도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것은 표현의 자유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들어가지 않는가? 그러한 것을 허용한다면 바람직한 질서 수립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는 논증에서 잉여적인 개념이 된다.

 

'자유'와 같은 일반적 범주는 상이한 포괄적 선관과 정치관을 가진 사람이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자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이 정당성을 갖게 하는 전제가 되는 규범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자유 이해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는 그러한 역할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민감하고 영향받기 쉬운 저능하고 우둔한 대중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만 관계된다. 그래서 한 측의 관점에서 일단 표현의 자유가 한정적으로 수립되면 다른 한 측의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는 배제된다. 그래서 이것은 공존의 범주가 아니라 전쟁의 범주가 된다.

 

그러나 롤즈가 그의 정의의 제1원칙에서 명시적으로 정립하였듯이, 자유는 오로지 자유의 전체계 강화를 위해서 제한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자유 이외의 부, 효율성, 정치적 수월성, 정치적 영향력, 사회적 파급력 등을 이유로 인해 제한될 경우에, 그것은 일부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의 궁극적인 숙고와 검토, 태도의 표명과 동조, 그리고 지식과 정보의 입수, 설득과 설득당함에 관한 결정권을 찬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자유는 법적 자유를 의미하며, 법적 자유는 법질서에 의하여 행위경로가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집단이 표현의 자유를 손쉽게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게리맨더링해온 것은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 지배를 다른 통치로 교체하고자 하는 선의를 가진 이들 역시 동일한 게리맨더링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흔히 눈에 띄는 글들 중 하나는 "동성애는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차별이자 혐오표현이며, 따라서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은 타고 나는 것이기 때문에 천성적인 것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존재를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허약한 주장이다. "소아성애는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범위에 들어가냐 마냐는, 소아성애가 유전적 소인으로 결정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지 않다. 어떤 행위를 할 성향이 선천적이냐는, 그 행위 자체가 허용가능한가에 관하여 독립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어떤 성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배척되어서는 안되지만, 그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 성향을 그대로 따르는 행위는 하지 말고 극복해보라는 것은 존재를 배척하는 발화가 아니다. 물론 '동성애는 옳지 않다'라는 발화는 규범적으로 부당하다. 그러나 어떤 규범적 발화가 부당하다고, 규범적 차원에서 '위'인 명제를 발화한다는 이유로 그 발화가 처벌되고 규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분리주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듯는'남성은 선천적으로 옳지 않다'는 위인 명제 역시 그 표현 자체를 처벌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X당의 정책은 언제나 옳다'는 발화 역시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당의 정책도 항상 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먹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발화는 종교적 이유로도, 또는 윤리적 이유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고기를 좋아하는 성향 자체는 압축적으로 칼로리를 얻고자 하는 진화된 속성으로 선천적인 것이다. 그러한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를 하지 않는 쪽으로 권고하는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한 비판이 기반하고 있는 종교적 이유는 타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는 반대로 '소고기를 먹는 것은 규범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오히려 오히려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근거를 교환하면서 할 기회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져 있고, 한 쪽의 주장의 힘은 다른 쪽이 반대되는 주장을 설득력 있는 논거와 함께 제시함으로써 상쇄할 기회는 한 쪽이 어떤 주장을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표현이 타인의 자유 자체를 축소시키는 경우는, 그 표현이 타인의 결정권을 찬탈하거나 찬탈할 위험을 가져오는 행위와 결합되는 경우다. 범죄행위의 교사와 방조, 공모, 명백 현존한 미래에의 범죄 선동(이것은 불법적인 차별을 선동하는 것을 포함한다), 재산을 사취하기 위한 사기의 발화처럼 범죄 행위 자체의 구성요건이 되는 경우, 사제폭탄을 만드는 기술적 지식과 같이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에게 타인을 폭력으로 강제할 힘을 쥐어주어 타인의 결정권을 탈취하게 만드는 도구적 정보 전파, 그리고 개인이나 일정한 집단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고정시키는 발화와 같은 경우이다. 의견을 표명하거나, 평가를 내뱉는 것은, 그러한 발화를 한 사람 자신의 신빙성과 판단력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동조를 일으키는 것일 뿐, 타인의 결정권을 찬탈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발화의 내용을 문제삼아 발화자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자유의 축소는, 전반적인 유불리의 영향과는 같지 않다. 어떤 정치적, 사회적 표현이 보장됨으로써, 아예 그 표현이 금지되었더라면 훨씬 더 우호적이었을 여건에 있지 않게 되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행위에 그러나 자신에게 더 우호적인 발화됨의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권리는 일반적 원리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경우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되는 모든 사람의 거의 모든 발화는 금지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일반적 범주로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의 발화는,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배제함으로써 더 평등한 사회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에게 복합적인 인과적 연쇄에 의해 일종의 장애가 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수 있다. 여건의 유불리를 이유로 표현을 금지시킬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어떠한 자유 옹호 표현에 대한 금지에 대해서도 논거가 될 수 있다. 

 

자유의 경계를 긋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논증의 과정에서 자유의 체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논증은, 자유에 관한 논증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허락하고 싶은 것과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심정적 태도를 여러 수사로 둔갑시키며 강조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우리사회에서 시민의 입헌적 지위를 허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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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궁금이
    2017.08.20 16: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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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허위사실을 담은 피켓팅은 처벌 가능한가요? 처벌해야 할까요? 궁금합니다.
    • 2017.08.22 01: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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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거론한 진술은 규범적으로 그릇되며 오도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서, 시민으로서는 그러한 피켓팅을 하지 않을 도덕적 의무가 있으며, 그러한 피켓팅을 비판할 도덕적 당위도 있습니다.

      1. 현행법으로 처벌가능하지 않습니다.

      2. 제가 제시한 지침에 따르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관한 명제로서 허위 사실로 한 집단에 대한 불리한 차별을 유도하는 진술들은 처벌가능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에서 표현을 처벌할 때에는 명확한 경우로 한정함으로써 명확성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피켓팅의 문구가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고 되어 있는 경우에는 '유발'이라는 것은 '잇달아 일어나게 한다'는 뜻이므로 허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성애를 하더라도 성적 접촉으로 인한 성병의 전염을 막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에는 감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성애를 하더라도 안전하지 못한 성교를 한다면 감염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동성애 자체가 에이즈 자체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사실을 전달함으로써 한 집단의 기회의 전제가 되는 사실적 신념들을 부패시키는 것은 처벌가능한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동성애자에게 불리하게 인식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처벌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남성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보다 같은 기간에 많은 상대와 파트너가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유병률이 더 높다는 통계가 확인되었다'는 표현이 사실일 경우나, '동성애자의 성행위 중 일부는 콘돔을 쓰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어 유병률이 더 높을 수 있다'는 표현이 사실일 경우, 처벌가능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법은 '애매한 경우는 처벌한다'는 원칙을 취할 수도 있고 '애매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의 원칙은 '애매하여 무효'나 '광범위하여 무효'라는 명확성 원칙의 두 구성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자의 원칙, 즉 '애매할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취할 수밖에 없고 부득이하게 처벌되지 않는 많은 애매한 표현들도 있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는 에이즈 감염의 한 원인이다'는 표현은 이성애와 동성애를 포함하여 성적 접촉은 에이즈 감염의 한 원인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허위의 사실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그리하여 이런 경우는 처벌가능한 범주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이러한 피켓팅의 경우에, 시민사회에서 대응할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피켓팅을 하는 앞에서 '동성애뿐만 아니라 이성애 역시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피켓팅을 할 수도 있고, '성적 접촉의 안전 조치와 관계 없이 특정한 성적 지향 자체가 마치 감염의 원인인듯이 오도하는 피켓팅은 비겁하며 비열한 그릇된 짓이다'는 피켓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궁금이
    2017.08.22 12:2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민교육센터 너무 좋은 곳인 것 같아요!
  3. 성우맨
    2018.11.16 01: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1. 한 집단의 삶의 기회의 전제가 되는 사실적 신념들을 부패시키기 때문에 처벌 가능한 범주에 들어가게 되는 표현에 해당되기 위한 요건은 다음 세 가지라고 이해했습니다.

    (i) 사실에 관한 명제이어야 한다.

    (ii) 허위 사실이어야 한다.

    (iii) 사람들의 행위의 기초가 되는 정보를 부패시키는 표현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부패된 정보를 기초로 생각하고 행동함에 따라 소수자 집단의 삶의 기회와 여건이 부당하게 축소하게 된다.)

    사람들이 ~P(=사실)를 받아들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허위 사실인 P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게 되면 행위의 기초가 되는 정보의 부패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라는 표현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해할지 생각해보면,

    (1) 동성끼리 사랑을 하면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에이즈가 잇따라서 발생한다.

    (2) 동성끼리 성관계를 하기만 하면 100% 에이즈에 걸린다.

    (3)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에 비해서 에이즈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

    1번처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2번의 경우는 1번 보다는 많겠으나 그래도 극소수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3번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피켓팅 문구,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허위 사실을 담고 있기는 하나 그 표현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허위 사실을 기초로 삼아서 행동을 변경하지는 않기 때문에 허위사실에 의해 신념의 부패가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2. 혐오 발언(hate speech)의 종류에 다음 두 가지가 있다고 할 때,

    (1) 문화상 전형적으로 혐오감정을 일으키는 단어와 소수자를 반복 결부시키는 발화 (단, 여기서 제재 대상이 되는 혐오 표현 문구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함.)

    (2) 소수자 집단 자체에 대한 허위 사실의 적시로 부패된 인식을 고정시킴으로써 그들의 삶의 여건과 기회를 축소시키는 행위

    (1)에서, 처벌 대상이 되는 "문화상 전형적인 혐오 표현"의 목록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한국에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 표현은 어떤 것이 있는지 혹시 여쭤볼 수 있을까요?
    • 2018.11.16 22: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그러한 해석의 애매함이 있다는 지적이 적확합니다.

      2. 형사처벌은 (1) 그 타겟이 되는 행위 자체가 처벌가능함의 범주에 일응 들어간다는 실체적인 이론적 근거뿐만 아니라 또한 이에 더하여 (2) 그러한 범주에 들어가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를 명료하게 가려내는 명확성 원칙을 만족시키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적정절차가 요구하는 공정성까지 만족시켜야 있어야 정당화될 것입니다.

      3. 이와 같은 해석상의 애매함이 많이 발생하기에, 한 집단의 삶의 기회가 전제가 되는 사실적 신념들을 부패시키는 발화들이 처벌가능하다는 정당한 이론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실체적인 이론적 근거들만을 활용한 법문을 가지고 곧바로 명확하게 개개의 사례들을 가려낼 수는 없다고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4. 따라서 제가 위에 단 댓글은 그런 난점이 있음을 충분히 밝히지 않은 점에서 오도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5. 이러한 난점은 아주 많은 경우에 생길 것이므로, 결국 이 난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처벌정당성을 근거짓는 이론적 기초 개념만 가지고 법규정을 만들면, 표현의 자유에 매우 불공정한 처벌 위협을 가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6. 따라서 (1) 이러한 이론적 기초에 의해 처벌가능한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논증에 더하여 (2) 위아 같이 일응 포섭되는 범주들 중 애매한 것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또다시 명확성 원칙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절차적인 규칙정립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개개의 구체적인 사례를 명확하게 포섭할 수 있는 법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그렇다면 (1) 실체적인 이론적 기초에 의하면 처벌정당한 것으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많은 발화라 할지라도 (2)의 요건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곧바로 처벌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의 댓글 사례는 아마 이러한 사례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애매함을 가지는 발화를 모조리 처벌하려고 하는 일은 결국 처벌적격이 없는 표현까지 처벌하는 입법을 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실체적인 이론적 기초가 있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입법에 의해 처벌대상이 되는 표현은 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법치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이는 형사처벌이 특별히 명확성 원칙을 아주 엄격하게 요구하는 구성요건을 가져야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실체적 이론 기초상 처벌가능한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을 처벌하는 법문을 만들어야 한다'와는 상이한 것을 말하게 됩니다.

      8. 따라서 집단에 관한 진술이면서 어떤 애매한 해석이 발생할 수 있는 일상 표현을 처벌하면서도 과잉금지원칙과 명확성 원칙 어느 것도 위배하지 않는 법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9. 그러므로 실제 이 두 원칙 모두를 충족시키면서 가능한 유일한 형태의 표현은 어떤 주체A가 K에 관하여 발표한(또는 발표하지 아니한) 통계숫자를, 그 주체A가 K에 관하여 발표한 것이라고 하면서 거짓으로 그 내용을 변경/조작하는 경우 등으로 매우 축소되어 한정된다고 볼 것입니다.

      10. 문화상 전형적인 혐오감정을 일으키는 단어와 특정 집단을 반복해서 결부시키는 표현은 결국 다수의 합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런 문제는 1인의 언어감각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각자가 자신의 언어감각을 권위의 기준으로 내세운다는 점이 오히려 작금의 문제라고 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신체의 분비물, 동물을 상스럽게 일컫는 말, 신체의 특정 부위와 특정 집단을 결합시키는 단어들은 이러한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한 많은 표현들이 모두 거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기준 자체가 다수의 합의에 의해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상 전형적 혐오 표현은, 형사처벌이 요구하는 실체적인 이론적 기준과의 직접적인 고리가 사실상 매우 약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범주는 발화되었다는 것 자체로 처벌가능한 범주가 아니라 특정한 시공간에서 규제가능한 범주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국가는 그것이 직장이나 교육기관 등 인생경로상 필수적인 실제 공간에서 발화되거나 게시된 것이라면 그러한 공간에서의 제재를 입법해야 할 것이고, 불특정 다중이 어떤 이념을 담은 표현 이외의 별개의 다른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인터넷상의 공간에서는 그러한 표현들이 보이지 않도록 000 처리를 할 수 있도록 규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 저는 혐오표현에 대한 대안적 정의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표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법학적으로 어떤 통제를 가하기에 이미 폭발해버린 개념이므로 이러한 개념 자체를 매개로 하여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글을 쓴 것입니다.

      12. 지금으로서는 이 사회의 어느 집단도 형사처벌의 정당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형태의 법문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삶의 필연적 경로로 거치는 시공간에서 게시되거나 발화되는 말에 대한 (형사처벌 이외의) 규제는 과잉금지원칙에서 피해의 최소성이 달리 평가되기 때문에, 명확성원칙만 충족하는 경우 과잉금지원칙을 함께 충족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 성우맨
      2018.11.29 20:0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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