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이치사다(市定), 雍正帝, 차혜원 옮김, <옹정제>, 이산, 2001에서는 청나라 명군으로 꼽히는 강희제와 옹정제에 관한 일화들을 들려준다.

 

어느날 강희제는 불시에 백관을 궁중에 소집하였다.

짐의 황자 중에서 누가 황태자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경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대신들은 황제의 의향을 헤아릴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서로 눈치를 보며 궁리에 잠겨 있을 때 어디선가 신호가 전달되어 왔다. 그것은 팔이라는 글자였다. 여기에 이끌려 일동은 팔아거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황제 앞에 제출하였다. ()

너희들은 이전에 태자가 제정신을 잃고 광포한 행동을 할 때는 누구 하나 간하는 자가 없더니 이제 와서 팔아거를 천거하는 속셈이 무엇이냐?”

대신들은 황제로부터 엄하게 질책을 받고 물러났다. 팔아거라는 글자 신호를 보낸 장본인으로 지목된 대신 마치(馬齊)는 사형을 면하고 집안에 유폐되었다. 대신 가운데 유일하게 리광디(李光地)만이 팔아거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태자의 행동은 병으로 인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병은 양생 여부에 따라 치유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는데, 이것만이 황제의 뜻에 맞았기 때문에 칭찬을 들었다.(위의 책, 43-44면)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는 태도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권력 관계에서 이러한 태도는 단지 헛웃음만을 유발할 뿐이지만, 권력 관계에서는 중대한 의사결정을 그르치게 만든다. 권력자가 마음에 들어하는 정보만을 제출하려고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고려하여야 할 실제 사항들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의중'만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상사의 눈치를 봐서 발언해야 하는 회사는 제대로 된 혁신을 하지도, 위기 상황에서 타당한 대응을 하지도 못한다. 국회의 대표들이 행정부 수반의 눈치를 봐서 의결을 하고 발언을 하고 정치를 하는 국가 역시, 입법의 결과물들이 이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과 멀어지게 된다. 그것은 단지 정치력의 중심에 선 자의 어조 하나하나를 따지며 눈치싸움을 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아무렇게나 라벨링(labelling)을 하고 인신공격하기에 신난 대중들 앞에서 발언하는 식자들 역시, 어떻게 하면 그 대중들의 관념에 아첨할 수 있을까 눈치를 보게 한다. 그 경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아무런 타당한 지적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눈치보고 보신하고 아첨하는 정서적 태도의 산물이 될 뿐이다.

 

권력자는 한 명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특정한 힘을 관철시키는 틀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제왕은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힘에 의해, 정치가는 자신이 업고 있는 지지세력에 의해, 수시기관은 법률에 의해 주어진 광범위한 수사와 기소의 재량에 의해, 그리고 대중은 사람을 낙인찍고 배척하며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능력에 의해 권력자가 된다.

 

물론 이러한 권력의 속성은 제왕에게서 가장 선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강희제 다음으로 황제가 된 옹정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아거였다가 황제가 된] 옹정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자의 후보로 운위되었고 인망이 있었던] 팔아거를 대하였고 여러 가지 책무도 맡겼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 대하여 끊임없이 모든 각도에서 밀정의 눈이 빛나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팔아거가 명령받은 최초의 임무는 선제의 산릉을 짓는 공사를 감독하는 것이었다. 팔아거는 옹정제가 검약가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공사 예산을 될 수 있는 대로 절약하였다. 예컨대 선례대로라면 능을 쌓기 위하여 필요한 적토는 베이징에서 운반해 와야 하였지만, 운임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현지의 적토로 벌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팔아거는 예상과 달리 옹정제에게 선제의 산릉 공사를 허술히 하는 것은 짐에게 불효의 악명을 덮어씌우려는 것이다라는 질책을 당하였다. 다음에는 황실의 목장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목장에는 쓸모 없는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팔아거는 그 수를 줄이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에도 옹정제는 선제가 하던 방식이 너무 사치스러웠다는 것인가? 만일의 경우 말이란 아무리 많아도 쓸모 없는 일은 없다며 팔아거를 나무랐다.

거듭 질책을 당하자 팔아거는 더욱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 다음 명령받은 것은 내무부의 인원관리였다. 이 일은 까딱 잘못하였다가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큰 원한을 사게 되는 일이다. 최초의 인원관리 계획은 지나치게 사정을 봐준 거라고 야단을 맞았다. 이번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인원을 대폭 줄이자 과연 쫓겨난 쪽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내무부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깃발을 앞세우고 팔아거한테 몰려간 것이다. 폭동에 이르기 일보 직전에 소동은 진정되었으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옹정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황제에게는 이것이 팔아거가 일부러 천자에게 원망이 쏠리게 하기 위하여 꾸며 낸 연극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소동 자체도 팔아거가 뒤에서 선동하였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팔아거 쪽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네가 선동자인가라고 물어도 예, 예 하고 인정해 버렸다. 이런 식의 긍정 역시 옹정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방이 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져주는 것만큼 울화통이 터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차츰 조사를 해나가자 팔아거가 소동을 선동하였다는 것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타인의 죄까지 스스로 뒤집어써서 인기를 얻고 세상의 동정을 끌려는 책략이 아닌가 하고 옹정제를 넘겨짚었다 (위 책,58-59)

 

결국, 옹정제는 팔아거를 평민 신분으로 강등하고 독방에서 감금생활을 하게 했다. 팔아거는 일단 옹정제의 눈 밖에 난 이상, 그가 일을 어떻게 처리하건 간에 패가망신할 운명이었다.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는 법치주의와 반대된다. 법치주의란 사람들 사이의 권리 의무 관계가 단지 법률이라는 형식으로 규율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법의 내용이 사람들을 존엄을 가진 대등한 존재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위 이야기에서 옹정제는 산릉 공사의 기준을 불명확하게 제시하여 자신의 눈치를 보게 만든 뒤에,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기준을 들어 일을 잘못하였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잘못'은 법에 의하여 규정된 요건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마음에 걸리는 일, 권력자가 배신스러운 일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의해 판단된다.

 

권력자의 속성 중 하나는, 사람들의 일을 샅샅이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가 낱낱이 알려져서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불순한 사고와 행동을 한다면 그것을 적발하여 경고하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팔아거와 가장 친했던] 구아거는 [옹정제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총독 녠겅야오의 감시하에서 거의 죄수와 다름없는 취급을 당하였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밀정을 통해 옹정제에게 보고되었다. 황제가 추쭝이라는 사자를 보내 시찰을 하러 왔을 때였다. 구아거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희망도 야심도 없다. 출가해서 세상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떻게 좀 자유롭게 해줄 수는 없는가?”

사자로부터 보고를 받은 옹정제는 그의 말꼬리를 잡고 힐문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출가하면 형제지간이 아니다. 세상을 버리면 군신도 아니다. 형제도 군신도 아닌 신분이 되고 싶다는 말인가? (위의 책, 64면)

 

옹정제는 구아거가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한탄하는 것 자체를 반역으로 보았다. 옹정제 치하에서 개인이 개인의 처지에 한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비판이다. 그러므로 말 한 마디 한 것을 꼬투리잡아 힐난하고 경고한 것이다.

 

말꼬투리가 잡히고 도중에 편지도 압수당하고 하니, 구아거는 암호로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러자 옹정제는,

 

짐은 별달리 구아거의 가족의 서신왕래를 금한 일이 없다. 그런데도 암호로 편지를 써서 옷 속에 꿰매어 보내다니 이것은 적국의 첩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음에 틀림없다. 샅샅이 조사하라.”고 하였다. (64면)

 

결국, 옹정제는 구아거의 황족신분을 박탈하고 만주어로 돼지라는 뜻의 사스헤로 불리게 하고는 독방에 감금되어 설사병을 앓아 죽게 하였다. ‘라는 뜻의 아키나로 불린 팔아거도 그 해 9월에 병사하고 만다.

 

떳떳하다면 말을 다 쏟아놓을 것이고, 떳떳하지 않다면 적발해서 엄중하게 처벌하면 될 일이니, 사생활 따위는 개나 줘라는 것이다. 이미 누가 어떤 발언을 하였는지 다 드러나 있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압수수색을 하여 광범위한 물품들을 가져가는 권력자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동의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 부작위를 두고, 곧바로 자신의 적이라고 추론한 뒤 딱지를 붙이고 배척의 운동을 펼치는 대중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인간은 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정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민이나 동료 시민을 존중한다고 립서비스는 할 것이다.

 

위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군주제가 아무 이상도 없이 완전히 자의적이고 무원칙하게 움직였다거나 딱딱한 껍질처럼 고정된 채 백성을 억압하기만 하였다면 아무리 참을성 많은 중국 민중이라도 이를 타도하고 새로운 정치양식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역사에서는 이른바 명군(名君)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끊임없이 군주제의 이상과 실행방법을 고쳐나갔고, 따라서 대중으로부터 무언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옹정제의 독재정치는 그야말로 그 정점에 위치한다. 이렇게 해서 독재제를 신뢰하게 된 민중은 독재제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민중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점에서 말하자면 옹정제의 정치는 그야말로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선의에 넘친 악의의 비극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며, 지금도 거대한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위의 책, 213면)

 

권력자의 자의가 때때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경우, 권력자의 힘은 자신의 힘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법치에 의해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큼 처벌할 수 없었던 사람을 절차를 뛰어넘는 권력자의 힘으로 철저히 산산조각 낼때, 정의의 이름으로 환호하는 것은 인간의 취약한 속성 중 하나다. 권력자가 소수의 반대자들을 묵살하고 억압함으로써 다수에게 그들이 바라는 경제성장의 떡고물들을 안겨줄 때도, 다수는 그들의 의사가 관철되었다는 힘의 착각을 느낀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대중은 권력자에 중독된다. 그들은 이런저런 형태의 자의적 지배에 중독된다. 그 지배의 칼날이 자기들을 직접 겨누기 전까지, 그들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칼날이 그들을 겨누게 되었을 때, 그들은 주위에는 환호하거나 무심해하는 사람들을 볼 뿐이다. 그들에게는 자의적 지배의 칼날에 직접 베이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상상할 능력이 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전체 글 보기 (949)
공지사항 (19)
강의자료 (89)
학습자료 (343)
기고 (489)
  •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