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아상의 의미

 

자아상이란, 나는 어떠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2. 자아상의 역설

 

자아상은 우리의 행동을 향도하기 위한 것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도 우리의 행동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 '나는 늘 부지런히 공부만 하는 사람이어야 해'라는 자아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자아상이 그 사람을 늘 부지런히 공부만 하도록 향도할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그 자아상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자책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할 것이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야'라는 자아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될 리 만무하다. 그 사람은 타인에게 '흘륭한 사람에게 응당 보여야 할 대접을 보여라'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젊고 예쁘다'라는 자아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미모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나이가 들어 미모가 퇴락하는 순간 자아상에 큰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 경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하면서 '몇살로 보여?'라는 질문을 연신 던지는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못낫다'라는 자아상이나 '나는 멍청해', '나는 게을러', '나는 쓰레기야'라는 자아상이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 경우 마음 속에 우울감과 짜증, 불만감이 기반으로 깔리게 되고, 때때로 그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저 사람은 왜 갑자기 폭발하는 거지?'라는 의아한 눈으로 보게 되고, 그런 시선을 받은 사람은 다시 '나는 쓰레기야'라는 피드백을 자신에게 준다.

 

3. 규정적 자아상과 당위적 자아상의 문제점

 

결국,

(1) '나는 -이다'라는 규정적인 자아상.

(2) '나는 -여야 한다'라는 당위적이고 의무를 부과하는 자아상

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규정적인 자아상은 그것이 잘난 면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타인에 대한 이기적인 행동과 속물근성으로 나타나기 쉽다. 못난 면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불만이 정신의 기반에 깔리게 되고 가능한 것들을 지레 포기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또한 그 자아상과 현실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혼란을 겪으면서 좌절과 우울,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쉽다.

 

당위적이고 의무를 부과하는 자아상은, 역설을 가져온다. 자아상 자체에 당위와 의무를 짜넣음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항상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계속되는 스트레스를 가져오며, 그 스트레스 때문에 수행의 기쁨을 오히려 잃어버린다. 그래서 오히려 가치 있는 수행을 하지 않게 된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당위와 의무 자체가 허공에서 떨어졌을 경우에 그것을 검토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라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한다면, 그 의무는 대체 무엇 때문에 부과되었는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나를 들들 볶고 괴롭힌단 말인가. 이렇게 별 반성적 근거 없이 부과된 당위적 자아상은 긴장의 끈이 어떤 계기로 끊어질 때, 전면적인 자아 붕괴로 이어지기 쉽다.

 

4. 가치 경험 가능성으로의 자아상

 

그렇다면 우리의 행위를 향도하는 자아상은 어떤 자아상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가치를 경험하는 가능성을 지닌 자아'라는 관념이다.

 

쾌락을 느낄 수 있고,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생성하고, 추구할 수도 있으며, 진리를 발견하고 파악하고 공유할 수도, 정치적 책임을 다해 정의로운 질서에 한 조각 기여할 수도 있으며, 타인과 접촉하고 소통할 수도, 애착과 유대를 형성할 수도 있는 그러한 가능성을 지닌 자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대면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가치 경험의 가능성이다.

 

몇가지 요령을 통하여 가치의 세계와 접촉하는 경험에 진입하고, 그 경험을 풍부하고 깊이 있게 향유하는 것이 이 자아가 대면하게 되는 가능성인 것이다.

 

5. 점진적 수련의 주체로서의 자아상

 

또한, 이러한 가치 경험이 아주 만족스럽게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에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자책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가치 경험 가능성으로서의 자아상은 점진적 수련 주체로서의 자아상과 결부된다.

 

점진적 수련이란, 어떤 가치를 경험하는 과거의 수행을 교훈 삼아, 다음 번에는 좀 더 잘 해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훈련해나가는 활동이다.

 

언제나 점진적 수련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이상적인 규준을 들이밀고 그것 때문에 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점진적 수련 과정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슬럼프에 빠져 이전보다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점진적 수련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어찌되었건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면을 발견할 수 있고, 또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질 가능성도 여전히 감지할 수 있다.

 

6. 자기 자신을 돌보기

 

이 자아상은 자기에 대한 실망을 기반에 깔고, 포기하여 좌절하며 변명하는 것도,

자기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기반에 깔고, 자책하고 자기 비난하는 것도,

자기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기반에 깔고 타인을 깔보고 우쭐대는 것도

유도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의 삶의 의미는 가치들을 경험하는 수행에 있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아상이다. 그러한 수행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 외에는 아무도 이러한 '가능성의 실제 구현'에 관하여 우리를 돌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만 그것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해줄 뿐이다.

 

우리를 돌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아상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퍼질러 놓거나, 가지도 않는 방향으로 엉뚱하게 모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를 돌본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경험으로 유도될 수 있는가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요령을 개발하고, 그 요령에 따라 실제 수행으로 들어가며, 조금씩 전진하여 수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태도도 바꾸게 된다.

타인 역시 못나게 또는 잘나게 규정되는 대상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가능성, 잠재성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아지게 되는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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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나미나
    2015.07.12 02:2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힘이 들때마다.
    뭔가 가치있는 읽을 거리를 찾을때마다.
    잘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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