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 자유론을 읽고난 뒤, 그리고 C.L.Ten 의 <밀의 자유론> 강의를 들으신 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연습문제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스와핑에 대한 처벌주장을 재구성하여 이를 비판하라는 형식으로 주어진 문제입니다. 어렵지 않으니 꼭 풀어보시고 자유게시판에서 공유합시다.
참고) 홍인표님의 답변
스와핑 처벌 -Mill on liberty연습문제-
저에게 비교적 난해하지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적어보았습니다.
앞의 숫자는 문단 번호입니다.
1 - 1) - (1) 이슈화된 스와핑 때문에 국민들이 스와핑을 하게될 확률이 증가한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와핑을 하거나 하지않는 것에 대한 행동의 선택은, 정보의 입력유무보다는 스와핑이라는 정보가 인식되었을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의 인성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기때문입니다. 아주 쉬운 예로 헐리우드 영화 속의 수많은 폭력적인 장면과 살해장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출되어있지만 그로인해 살인을 하거나 무고한 이웃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수 있습니다.
2 - 1)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은 올바르지못합니다. 무엇보다도, 과연 어디까지가 최소한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윤리 전반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을 법제화했다기보다는 사회 주류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통념이 법제화된 것이 많습니다. 글쓴이가 언급했던 효도법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충분한 윤리적 고찰을 통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주류 통념을 법제화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아는 한 법이라는 것은 '공적 영역의 윤리가 지향하는 바를 보장하는 것들의 집합'과 동의어입니다.
3. 마지막 결론부분에서 글쓴이는, 스와핑을 행한 개인들에 의해서 사회가 피해를 입었다는 앞의 말을 반복하며 '사회'에 의한 '개인'의 처벌을 정당화하려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라는 존재는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즉, 사회에게는 도덕적 판단을 내릴수 있는 지위가 부여되어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글쓴이가 언급하는 사회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주류 통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법입니다. 그러므로 법(=주류통념)에 의한 스와핑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않다고 반박가능합니다.
이상입니다. 조곤조곤 잘못된 점 지적해주시고 조언해주시면 감사~
이한
2007/01/24
네. 마침내 연습문제를 하시는 분이 나왔군요~!
글쓴이의 주장을 떠받치는 연결고리 중 몇가지를 골라서 반박하는 형식으로 서술하셨습니다. 제가 제3의 입장에서 홍인표님 논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보다는, 원래 숙제에 인용된 처벌론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채택하였으리라 생각되는 세련화된 논지로 재반박하는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다음 댓글로서 제가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 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스와핑에 대한 정보가 유포되면, 유포되지 않았을 때에 비해 스와핑이 증가되는 것은 확실하다. 비판자가 첫문단에서 제시한 "인성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논지는 오히려 이를 지지해주는 근거다. 예를 들어 전국민을 100이라 놓고, 이 중 80은 스와핑 정보를 들어도 일부일처제의 전통적 양태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나머지 20은 신념에 확신이 없었고 새로운 실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스와핑이라는 것이 가능하고 그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곧바로 행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즉, 스와핑이 이슈화됨으로써, 그 정보를 취득하지 않았다면 스와핑을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스와핑을 하게 되는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비판자가 예로 든 헐리우드 영화 속의 폭력적인 장면이 사람들의 폭력성에 상당인과적일 정도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하나의 조건이 되었음에는 분명하다. 즉, 폭력영화로 인해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폭력영화와 현실을 잘 구별못하고 과격해지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 개봉 이후 주유소가 습격되는 일은, 그 영화의 무목적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이 대중에게 전시display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다.
둘째, 비판자가 '사회'에 도덕적 지위를 주지 않으려는 논리체계로 구축되어 있는 담론을 따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내 논지의 핵심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가 사회전체의 도덕적 환경ethical environment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가치있는 제도들이 존재한다. 그 제도들은 공식적인 법을 한 요소로도 하고 비공식적인 관행, 즉 개개인의 생활태도로 구성되기도 한다. 친구관계는 비공식적인 관행으로 유지되는 우리사회의 가치goods 중 하나이고 친구관계가 없는 우리 사회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제도는 그러한 가치로운 공동체의 환경 중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가족제도의 핵심은 바로 일부일처제이다. 민법은 중혼을 금지하고 있고, 또한 중혼자는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 사건의 양상에 따라서는 혼인빙자간음죄, 사기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또한 민법은 정조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겼을 때는 이혼사유가 된다. 이는 우리 공동체에서 가족제도의 핵심에 일부일처제와 상대방에 대한 성적 성실의무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핵심은 단지 공식적인 제도, 즉 민법의 규정에 의해서만으로는 잘 보호되지 않으므로, 형법에 의해서 비공식적인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보호해야만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다른 가족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섹스하는 가정이 과연 이 사회의 기본구성 요소로서 건전한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건전하지 못한 가정으로 인하여 이 사회의 가치로운 제도들이 파괴되어 나가는 그러한 환경에서 우리는 살고 싶지 않으며, 우리의 아이들을 그러한 공동체에서 키우고 싶지도 않다. 즉, 우리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는 윤리적 환경을 집단적으로collectively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비판자는, '사회'는 도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용어상의 장난으로 이러한 논지를 단순하게 기각시킬 수 없다. 비판자는 계속해서 이러한 도덕적 다수의 판단을 '통념에 의한 맹목적 판단'이라고 폄하하는데, 그것이 통념이라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차지하는 주권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지, '맹목적'이라는 가치폄하로 이어지는 비약의 고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다수가 무언가를 지지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이미 넓은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법률은 심의의 공간을 통해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제정한다. 국회의원들이 토론을 통해서 이러한 법을 만들게 되었는데도, 비판자는 이를 '맹목적'인 것이라 부르겠는가? 우리의 헌법구조 하에서 정치구조 하에서 더 이상 뭘 원하는가? 자신이 반대하는 도덕적 결론에는 무조건 '맹목적이라는' 딱지만을 붙임으로써 생떼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요약하자면, 사회는 곧 도덕적 다수를 의미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덕적 다수는 공동체에 핵심적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윤리적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분야의 다양한 법을 만드는 의회 자체가 맹목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한, 이것이 의회의 손을 거쳐서 나오는 한, 맹목적인 통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제가 생각할 때, 먼저, 비판자는 논변을 펼침에 있어, 목표기반 전략goal-based strategy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권리기반 전략right-based strategy을 택할 것이냐를 결정해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어떤 목표를 잘 달성하게 해주는데 금지정책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공리주의적 논변을 취한다면-이 공리주의적 논변은 통상 생각하는 조야한 형태 뿐만 아니라 Mill이 On Liberty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때 택하였던 인간의 발전과 번영의 필수조건임을 천명하는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이는 바로 목표기반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반면에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선호에 압도되지 않는 으뜸패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논증해나간다면, 이것은 바로 권리기반전략입니다.
스와핑하는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다른 스와핑을 유발한다는 경험적 명제에 반박하는 것은 오직 goal-based strategy에 기반하여 논지를 전개했을 때에만 필요한 지적점입니다. 즉, 스와핑을 허용했을 때 그 연쇄적인 부의 효용 negative utility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략을 택했다 하더라도 비판자가 제시한 지적점은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와핑 그 자체가 negative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어서, negative를 더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negative를 인정한다는 자기모순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더 이상의 negative가 나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최초의 negative 역시 제거해야 할 되상임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반면에 권리기반전략right-based strategy에 의거해서 연습문제에 인용된 글쓴이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논지는 전혀 무관계irrelevant한 것이 되겠지요. 따라서 이러한 논지를 건드리지 않는게 더 일관되어 보이겠습니다. 특히, 홍인표님은 둘째, 셋째 문단에서 권리기반전략의 뉘앙스를 보이는 담론을 채택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두가지 비판점은 그 전략의 방향이 달라,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게 됩니다.
그 외 지적점은 제가 위에서 제시한 재세련화된 원문쓴이의 가상의 재반박을 비판함으로써 풀리리라고 생각됩니다. ^^
이한
2007/01/24
참고사항으로 현행법으로 스와핑이 범죄인지, 범죄라면 왜 처벌하지 못하는지와 관련하여 정보를 적시하고자 합니다.
스와핑은 현행법으로도 범죄가 성립됩니다.
형법 제241조
제1항 배우자 있는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제2항 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한 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위 법조항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제1항으로서 범죄의 성립요건은 완결됩니다. 즉, 배우자와 함께 난교를 했든 스와핑을 했든 그러한 배우자의 동의는 본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현재 통설이 취하고 있는 신고전적 범죄체계론(경제학의 신고전학파와는 말만 같고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에 따르면 범죄는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 이 세가지 조건이 갖추어지게 되면 성립하게 되는데, 배우자의 동의는 구성요건해당성을 조각하는 근거도, 위법성을 조각하는 근거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즉, 이 죄는 성풍속에 관한 죄에 형법전상 편재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로서, 피해자의 동의가 위법성 등을 조각시키지 못하는 것이죠. 유사한 예로, 친구의 대학졸업증명서를 취직시에 친구인척 하면서 재시하게 되면 국립대일 경우에는 공문서부정행사죄, 사립대일 경우에는 사문서부정행사죄가 성립하고 처벌됩니다. 친구가 동의했건 안했건요. 친구가 동의했다면 방조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제2항에서 간통의 종용과 유서가 고소권의 발생을 저지하는 힘을 갖고 있음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고소라 함은 범죄의 피해자 또는 그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대하여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입니다. 간통죄의 경우 고소권자는 배우자가 됩니다. 이 고소는 친고죄에서는 소송조건이 됩니다. 즉, 수사기관은 고소가 없어도 수사는 할 수 있지만-ex강간현장에서 현행범의 체포- 고소가 없다면 기소를 해소 공판절차를 진행시키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에 의하면 친고죄에 대하여는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면 고소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간통의 경우에 간통했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영원히 처벌받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형법 제241조 제2항에서 종용이라 함은 간통에 대한 사전의 동의이고 유서라 함은 사후의 승낙을 의미합니다. (사전의 동의나 사후의 승낙이 있으면 된다고 쓰면 될 것을 괜히 어렵게 써놓았으므로-거기다 잘 쓰이지 않는 한자라서 읽기도 어렵습니다- 조문의 표현수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스와핑의 경우에는 종용이 있었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범죄는 성립하되 기소를 못하게 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스와핑이 뉴스에 나왔을 때, 처벌대상이 된 것은 음란한 사진과 정보를 올렸다는 싸이트 운영자의 행위입니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은, 음란한 전자정보를 송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ex자기메일계정으로 음란한 사진을 송신하는 것도 이 싸이트 운영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받습니다. 수신하는 것은 처벌대상이 아닙니다. 파일공유프로그램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하므로 파일공유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음란물을 다운받을 때도 이 싸이트 운영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일부 여론이, 사태의 핵심은 음란물 전시가 아니라, 바로 스와핑임을 지적하고 이를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문제가 된 형법조항과 형사소송법 조항을 개정시켜야 하는데 이는 즉 간통죄를 친고죄가 아니라, 일반범죄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옆집 아저씨가 옆집 아주머니가 아닌 다른 여성과 여관에 들어가는 것이 목격되면, 경찰을 대동하여 여관에 난입하여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아주머니의 의사에 상관없이 현재 형사실무상 간통죄에 대하여 내려지고 있는 무조건적 8개월 징역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형법에는 벌금형이 선택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초범에는 집행유예를 내리는 것이 다른 범죄에 대한 실무상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간통은 초범도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물론 이혼소송의 계속이 공소유지의 요건이므로 간통죄로 처벌받는다는 것은 이혼도 하고, 위자료도 물고, 직장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연습문제에 인용된 원문을 쓴 이의 핵심의도와 일치하는 방향인데, 비단 스와핑 뿐 아니라 간통 역시 공유된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고, 이는 다른 다수에게 직간접적 해악을 가져오므로 다수는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홍인표님의 답변
스와핑 처벌 -Mill on liberty연습문제-
저에게 비교적 난해하지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적어보았습니다.
앞의 숫자는 문단 번호입니다.
1 - 1) - (1) 이슈화된 스와핑 때문에 국민들이 스와핑을 하게될 확률이 증가한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와핑을 하거나 하지않는 것에 대한 행동의 선택은, 정보의 입력유무보다는 스와핑이라는 정보가 인식되었을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의 인성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기때문입니다. 아주 쉬운 예로 헐리우드 영화 속의 수많은 폭력적인 장면과 살해장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출되어있지만 그로인해 살인을 하거나 무고한 이웃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수 있습니다.
2 - 1)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은 올바르지못합니다. 무엇보다도, 과연 어디까지가 최소한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윤리 전반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을 법제화했다기보다는 사회 주류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통념이 법제화된 것이 많습니다. 글쓴이가 언급했던 효도법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충분한 윤리적 고찰을 통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주류 통념을 법제화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아는 한 법이라는 것은 '공적 영역의 윤리가 지향하는 바를 보장하는 것들의 집합'과 동의어입니다.
3. 마지막 결론부분에서 글쓴이는, 스와핑을 행한 개인들에 의해서 사회가 피해를 입었다는 앞의 말을 반복하며 '사회'에 의한 '개인'의 처벌을 정당화하려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라는 존재는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즉, 사회에게는 도덕적 판단을 내릴수 있는 지위가 부여되어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글쓴이가 언급하는 사회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주류 통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법입니다. 그러므로 법(=주류통념)에 의한 스와핑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않다고 반박가능합니다.
이상입니다. 조곤조곤 잘못된 점 지적해주시고 조언해주시면 감사~
이한
2007/01/24
네. 마침내 연습문제를 하시는 분이 나왔군요~!
글쓴이의 주장을 떠받치는 연결고리 중 몇가지를 골라서 반박하는 형식으로 서술하셨습니다. 제가 제3의 입장에서 홍인표님 논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보다는, 원래 숙제에 인용된 처벌론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채택하였으리라 생각되는 세련화된 논지로 재반박하는 형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다음 댓글로서 제가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 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스와핑에 대한 정보가 유포되면, 유포되지 않았을 때에 비해 스와핑이 증가되는 것은 확실하다. 비판자가 첫문단에서 제시한 "인성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논지는 오히려 이를 지지해주는 근거다. 예를 들어 전국민을 100이라 놓고, 이 중 80은 스와핑 정보를 들어도 일부일처제의 전통적 양태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나머지 20은 신념에 확신이 없었고 새로운 실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스와핑이라는 것이 가능하고 그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곧바로 행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즉, 스와핑이 이슈화됨으로써, 그 정보를 취득하지 않았다면 스와핑을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스와핑을 하게 되는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비판자가 예로 든 헐리우드 영화 속의 폭력적인 장면이 사람들의 폭력성에 상당인과적일 정도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하나의 조건이 되었음에는 분명하다. 즉, 폭력영화로 인해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폭력영화와 현실을 잘 구별못하고 과격해지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 개봉 이후 주유소가 습격되는 일은, 그 영화의 무목적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이 대중에게 전시display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다.
둘째, 비판자가 '사회'에 도덕적 지위를 주지 않으려는 논리체계로 구축되어 있는 담론을 따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내 논지의 핵심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가 사회전체의 도덕적 환경ethical environment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가치있는 제도들이 존재한다. 그 제도들은 공식적인 법을 한 요소로도 하고 비공식적인 관행, 즉 개개인의 생활태도로 구성되기도 한다. 친구관계는 비공식적인 관행으로 유지되는 우리사회의 가치goods 중 하나이고 친구관계가 없는 우리 사회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제도는 그러한 가치로운 공동체의 환경 중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가족제도의 핵심은 바로 일부일처제이다. 민법은 중혼을 금지하고 있고, 또한 중혼자는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 사건의 양상에 따라서는 혼인빙자간음죄, 사기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또한 민법은 정조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겼을 때는 이혼사유가 된다. 이는 우리 공동체에서 가족제도의 핵심에 일부일처제와 상대방에 대한 성적 성실의무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핵심은 단지 공식적인 제도, 즉 민법의 규정에 의해서만으로는 잘 보호되지 않으므로, 형법에 의해서 비공식적인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보호해야만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다른 가족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섹스하는 가정이 과연 이 사회의 기본구성 요소로서 건전한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건전하지 못한 가정으로 인하여 이 사회의 가치로운 제도들이 파괴되어 나가는 그러한 환경에서 우리는 살고 싶지 않으며, 우리의 아이들을 그러한 공동체에서 키우고 싶지도 않다. 즉, 우리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는 윤리적 환경을 집단적으로collectively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비판자는, '사회'는 도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용어상의 장난으로 이러한 논지를 단순하게 기각시킬 수 없다. 비판자는 계속해서 이러한 도덕적 다수의 판단을 '통념에 의한 맹목적 판단'이라고 폄하하는데, 그것이 통념이라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차지하는 주권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지, '맹목적'이라는 가치폄하로 이어지는 비약의 고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다수가 무언가를 지지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이미 넓은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법률은 심의의 공간을 통해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제정한다. 국회의원들이 토론을 통해서 이러한 법을 만들게 되었는데도, 비판자는 이를 '맹목적'인 것이라 부르겠는가? 우리의 헌법구조 하에서 정치구조 하에서 더 이상 뭘 원하는가? 자신이 반대하는 도덕적 결론에는 무조건 '맹목적이라는' 딱지만을 붙임으로써 생떼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요약하자면, 사회는 곧 도덕적 다수를 의미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덕적 다수는 공동체에 핵심적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윤리적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분야의 다양한 법을 만드는 의회 자체가 맹목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한, 이것이 의회의 손을 거쳐서 나오는 한, 맹목적인 통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제가 생각할 때, 먼저, 비판자는 논변을 펼침에 있어, 목표기반 전략goal-based strategy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권리기반 전략right-based strategy을 택할 것이냐를 결정해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어떤 목표를 잘 달성하게 해주는데 금지정책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공리주의적 논변을 취한다면-이 공리주의적 논변은 통상 생각하는 조야한 형태 뿐만 아니라 Mill이 On Liberty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때 택하였던 인간의 발전과 번영의 필수조건임을 천명하는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이는 바로 목표기반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반면에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선호에 압도되지 않는 으뜸패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논증해나간다면, 이것은 바로 권리기반전략입니다.
스와핑하는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다른 스와핑을 유발한다는 경험적 명제에 반박하는 것은 오직 goal-based strategy에 기반하여 논지를 전개했을 때에만 필요한 지적점입니다. 즉, 스와핑을 허용했을 때 그 연쇄적인 부의 효용 negative utility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략을 택했다 하더라도 비판자가 제시한 지적점은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와핑 그 자체가 negative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어서, negative를 더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negative를 인정한다는 자기모순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더 이상의 negative가 나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최초의 negative 역시 제거해야 할 되상임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반면에 권리기반전략right-based strategy에 의거해서 연습문제에 인용된 글쓴이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논지는 전혀 무관계irrelevant한 것이 되겠지요. 따라서 이러한 논지를 건드리지 않는게 더 일관되어 보이겠습니다. 특히, 홍인표님은 둘째, 셋째 문단에서 권리기반전략의 뉘앙스를 보이는 담론을 채택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두가지 비판점은 그 전략의 방향이 달라,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게 됩니다.
그 외 지적점은 제가 위에서 제시한 재세련화된 원문쓴이의 가상의 재반박을 비판함으로써 풀리리라고 생각됩니다. ^^
이한
2007/01/24
참고사항으로 현행법으로 스와핑이 범죄인지, 범죄라면 왜 처벌하지 못하는지와 관련하여 정보를 적시하고자 합니다.
스와핑은 현행법으로도 범죄가 성립됩니다.
형법 제241조
제1항 배우자 있는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제2항 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한 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위 법조항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제1항으로서 범죄의 성립요건은 완결됩니다. 즉, 배우자와 함께 난교를 했든 스와핑을 했든 그러한 배우자의 동의는 본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현재 통설이 취하고 있는 신고전적 범죄체계론(경제학의 신고전학파와는 말만 같고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에 따르면 범죄는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 이 세가지 조건이 갖추어지게 되면 성립하게 되는데, 배우자의 동의는 구성요건해당성을 조각하는 근거도, 위법성을 조각하는 근거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즉, 이 죄는 성풍속에 관한 죄에 형법전상 편재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로서, 피해자의 동의가 위법성 등을 조각시키지 못하는 것이죠. 유사한 예로, 친구의 대학졸업증명서를 취직시에 친구인척 하면서 재시하게 되면 국립대일 경우에는 공문서부정행사죄, 사립대일 경우에는 사문서부정행사죄가 성립하고 처벌됩니다. 친구가 동의했건 안했건요. 친구가 동의했다면 방조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제2항에서 간통의 종용과 유서가 고소권의 발생을 저지하는 힘을 갖고 있음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고소라 함은 범죄의 피해자 또는 그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대하여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입니다. 간통죄의 경우 고소권자는 배우자가 됩니다. 이 고소는 친고죄에서는 소송조건이 됩니다. 즉, 수사기관은 고소가 없어도 수사는 할 수 있지만-ex강간현장에서 현행범의 체포- 고소가 없다면 기소를 해소 공판절차를 진행시키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에 의하면 친고죄에 대하여는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면 고소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간통의 경우에 간통했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영원히 처벌받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형법 제241조 제2항에서 종용이라 함은 간통에 대한 사전의 동의이고 유서라 함은 사후의 승낙을 의미합니다. (사전의 동의나 사후의 승낙이 있으면 된다고 쓰면 될 것을 괜히 어렵게 써놓았으므로-거기다 잘 쓰이지 않는 한자라서 읽기도 어렵습니다- 조문의 표현수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스와핑의 경우에는 종용이 있었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범죄는 성립하되 기소를 못하게 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스와핑이 뉴스에 나왔을 때, 처벌대상이 된 것은 음란한 사진과 정보를 올렸다는 싸이트 운영자의 행위입니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은, 음란한 전자정보를 송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ex자기메일계정으로 음란한 사진을 송신하는 것도 이 싸이트 운영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받습니다. 수신하는 것은 처벌대상이 아닙니다. 파일공유프로그램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하므로 파일공유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음란물을 다운받을 때도 이 싸이트 운영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일부 여론이, 사태의 핵심은 음란물 전시가 아니라, 바로 스와핑임을 지적하고 이를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문제가 된 형법조항과 형사소송법 조항을 개정시켜야 하는데 이는 즉 간통죄를 친고죄가 아니라, 일반범죄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옆집 아저씨가 옆집 아주머니가 아닌 다른 여성과 여관에 들어가는 것이 목격되면, 경찰을 대동하여 여관에 난입하여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아주머니의 의사에 상관없이 현재 형사실무상 간통죄에 대하여 내려지고 있는 무조건적 8개월 징역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형법에는 벌금형이 선택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초범에는 집행유예를 내리는 것이 다른 범죄에 대한 실무상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간통은 초범도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물론 이혼소송의 계속이 공소유지의 요건이므로 간통죄로 처벌받는다는 것은 이혼도 하고, 위자료도 물고, 직장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연습문제에 인용된 원문을 쓴 이의 핵심의도와 일치하는 방향인데, 비단 스와핑 뿐 아니라 간통 역시 공유된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고, 이는 다른 다수에게 직간접적 해악을 가져오므로 다수는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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