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대가리인가?

 

이 질문은 탐구를 하다보면 범재들이 사로잡히곤 하는 질문이다.

 

한 마디로 범재들은 이 질문에 부딪힐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이 잘못 설정된 질문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질문이 왜 잘못 설정되었는지를 살펴보려면, 이 질문을 던지게 되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은 왜 던지는가?

탐구를 하다가 막히니까 던지는 것이다. 속도는 느리고, 답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필요한 도구들은 한참 많이 모자란다. 

 또, 비교를 하다보니까 던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빠르고, 이런저런 답을 내고 있고, 필요한 도구들을 더 잘 갖추고 있다.

 

그러니까, 이 탐구라는 것을 계속 해도 되는가, 라는 회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질문이 잘못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그 질문은 '탐구란 척척척 진행되는 것이다'라거나 '탐구란 남들보다 더 잘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거나, 또는 '탐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다 잘 구비해야 한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로, 탐구는 원래 척척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탐구는 장애물과의 부단한 싸움이다. 그 장애물에 막 부딪히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허망한 마음이 든다. 장애물이 뭔지도 모르고 막 부딪혀서 박살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장애물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 지금 갖고 있는 이론적 장비를 가지고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는가? 무엇과 무엇이 갭인가? 무엇이 모순을 발생시키는가? 이러한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한 후, 그 장애물을 피해서 전진해나갈 요령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탐구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즉, 척척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탐구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확립된 기계적인 규칙의 적용일 뿐이다. 

 

둘째로, 탐구란 남들보다 더 잘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탐구를 잘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탐구는 다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탐구의 목적이 진리의 산출이지, 지적 위계에서 남들보다 높이 올라서는 것이 아님을 망각한 소치이다. 탐구는 오히려 거대한 지적 협동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업의 원리가 적용된다. 사람마다 자신의 적소가 있으며, 그 적소에서 발견하기에 적합한 진리들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탐구 분업 체계의 좋은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은 '내가 이 탐구로 진리에 추가로 기여할 부분이 있는가', '나는 제대로 진리에 다가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지, '남들보다 내가 빠른가 느린가', '남들보다 내가 더 똑똑해 보이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셋째로, 탐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탐구는 거대한 분업 활동이다. 또한 출생의 운이나 양육의 운에 따라, 자신이 구비하고 있는 이론적 도구의 풍부함은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 도구를 더 잘 구비하고 있다고 해서, 진리를 더 잘 발견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이론적 도구에 지나치게 깊이 묻혀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 모순점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그런 관행화된 적용만을 하게 될 위험도 있다. 근본을 묻고,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활용하는 것, 핵심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을 밀고 나가는 것, 이것이 탐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돌대가리인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돌대가리는 돌대가리처럼 생각할 때 발현되는 것이다.

돌대가리처럼 생각하지 않을 때는, 진리에 기여하게 된다.

돌대가리는, 식상한 개념들을 반성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재투입하면서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뻔한 결론들만 산출한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들은 '스마트'(smart)할 수는 있다. 즉, 무언가를 새로이 습득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좀 더 빠르거나, 정보처리 속도가 남들보다 빠르거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스마트해도 돌대가리처럼 굴 수가 있다.

 

즉, 돌대가리는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차라리 잘못된 탐구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탐구의 전략과 요령을 따른다면 되는 일이다.

조금 느리고, 완만하게 갈 수 있으며, 장애물을 처리하느라 고생을 할 수도 있고, 이론적 도구들을 동원하는 데서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접근(approach)의 문제인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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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0 12: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 2018.05.27 17:4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말고,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 대비 10%에 해당하는 시간을 공부를 어떻게 더 요령있게 할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에 할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령은 아주 여러가지가 있고, 각자의 기질과 여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것을 발굴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고 나서 응용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마도 먼저 이론을 숙지하고 나서, 그 다음 머리 속에 그것을 완전히 장악하여 넣어둔 다음 응용하는 방식을 썼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요령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머릿속에 완전히 암기한 후에 자유자재로 응용하는 방법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책을 곁에 두고 보면서, 그 응용을 여러 모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즉 다 알고 나서 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응용을 해봄으로써 그것을 더 온전하게 파악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비 장착 같은 것도, 머릿속에 모든 장비를 다 파지해서 장착하겠다는 접근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보다 편리하게 꺼내어 쓸 수 있도록, 장비가 되는 지식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정리하는 요령을 생각해두면 좋습니다.
    • 학생
      2018.06.04 13: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숙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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