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우선 롤즈 관련 부분만 읽어봤는데요.. 내용이 진짜 알차고 재밌었어요. 특히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의 희한한 주장(복지제도를 위한 과세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대한 논박이 맘에 들었어요!!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 자비심, 그런 미덕이란 도대체 어디에 써먹겠다는 건지.. 또, "우리는 본질적인 응분을 갖고 있는가?" 파트를 읽으면서 제가 자생적 롤즈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ㅋ 변호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1) '응분'이 영어로 어떤 단어인가요? '마땅히 무언가를 받을 만한 자격' 정도로 이해되던데요.. 영어 원서에는 어떤 단어로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2) 제가 <정의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 못해서 그러는데요..(롤즈 사상을 간단히 소개하는 책만 보고, 정의론은 일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보기만 했어요. "최소 수혜자는 단순히 가장 못사는 사람이나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에 성실히 참여하면서 그 대가로 가장 적은 몫을 가져가는 사람들, 예를 들어 미숙련 노동자들을 의미한다. 사고나 장애로 사회적 협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차등 원칙이 아니라 별도의 원칙을 통해 다룬다."( 185~186쪽) -> 변호사님 덕분에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던 부분을 발견하게 돼서 참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사고나 장애로 사회적 협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정의론> 어디를 찾아보면 나오는지요? )

 

답변: (1) 응분은 desert 입니다.
desert = 응분,
이와 관련된 맥락에서
entitlement = 자격
merit = 자질, 능력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통례인 듯 합니다.

 

(2) 별도의 원칙은 <정의론>에 나오지 않습니다.
롤즈는 이 문제를 "비이상적 이론"(non-ideal theory)의 일부로, 후학들에게 남겨두었습니다.
차등의 원칙은 이에 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차등 원칙이 배분하는 대상은 자유, 기회, 그리고 돈, 자존감과 같은 기본적 가치이고, 이 기본적 가치를 활용하여 실제로 얻을 수 있는 복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기본적 가치가 개인에게 실제로 갖는 복지 가치나 능력 가치로 생각하는 경우 차등의 원칙은 자원 블랙홀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눈과 귀가 멀게 된 불행한 사고를 당한 사람이 한 명이 있다고 할 때, 이 사람에게 아무리 자원을 집중시켜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복지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관하여는 롤즈 계보의 후학 중 한 명이자, 역시 뛰어난 학자인 Norman Daniels가 논한 바 있습니다. http://www.civiledu.org/726 (노먼 다니엘스의 관련논문)


그 아이디어의 기본은 결국 통상적인 종 기능의 이탈을 보완하여 '사회적 협동의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적 조치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의 경우 그가 출근을 하여 사회적 협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단지 통상적인 근로기준법 등으로는 부족하고 장애인 콜 택시나 장애인 승합차를 운영해야 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아예 사회적 협동의 참여자가 될 수 없는 경우에는, 이 시민교육센터에서도 논의한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에 나오는 가설적 보험의 원칙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보장보험의 수준을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질문2:

자세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 게 또 있습니다! 여기 시민교육센터에 올라와 있는 '롤즈 정의론 프랑스어판 서문'을 읽고 정의론 여기저기 좀 찾아봤는데요.. 롤즈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사회 체제가 '복지 국가'가 아니라 '재산 소유 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라는 걸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정의론> 개정판 서문에 이렇게 돼 있더라고요. "재산소유 민주주의는 각 시기의 마지막 순간에 적게 가진 사람들에게 소득을 재분배함으로써가 아니라, 말하자면 각 시기가 시작하는 순간 생산적 자산과 인간 자본(교육된 능력과 훈련된 기예)의 광범위한 소유를 보장함으로써 부의 집중을 피한다." -> 여기서의 '생산적 자산'이 생산수단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롤즈 <정의론> 107쪽을 보니까 "특정한 종류의 재산(가령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나 자유방임론에 의해 이해되는 계약의 자유는 기본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자유들은 제1원칙의 우선성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라고 돼 있더라고요. 계약의 자유 제1원칙의 '기본적 자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변호사님께서도 교안에서 예를 들어 잘 설명해 주셨고 해서 이해가 충분히 되는데요... 왜 롤즈가 생산수단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기본적 자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 그런 것인지가 궁금해서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나온 정의론 해제(2005년, 장동익 편저)를 보니 이런 해설이 나오던데요.. "생산수단의 소유의 권리를 인정하는가의 여부는 한 사회체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말하자면 생산수단의 소유의 권리를 기본적 자유로 인정하면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생산수단의 소유가 기본적 자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롤즈는 생산수단의 소유의 권리는 제1원칙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롤즈는 생산수단의 소유의 권리를 기본적 자유로 인정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각각의 공동체가 결정할 사항으로, 그 여지를 남김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로서 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모두 열어 두고 있다. 물론 롤즈는 자유주의 경제체제든 사회주의 경제체제든 시장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이한 변호사님도 이에 대해 장동익 씨와 같은 견해를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개인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주의의 이념(생산수단 공유)에 더 부합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모든 시민에게 생산수단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인정한다면 그게 사회주의에 더 가까운 거 아닌가요? 장동익 씨의 해설에 대해, 그리고 롤즈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제1원칙의 '자유'에 포함시키지 않은 게 어떤 맥락인지 변호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기본적 자유의 목록을 뽑는 근거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주의가 구현되는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며 이들은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선관 추구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감의 능력입니다. 기본적 자유는 이 두 능력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자유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두 능력과 관련없는 자유들은 기본적 자유에는 속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롤즈의 제1원칙에서 보장되는 평등한 자유는 기본적 자유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교통신호등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자유, 아무데나 도로를 건널 자유는 이 두 능력의 발휘와 밀접하지 않기 때문에 교통신호등을 국가가 세우고, 파란 불일 때에만 건너가도록 제약한다고 해도 기본적 자유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거나 오토바이 헬멧 쓰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롤즈가 기본적 자유에서 제외한 것에는 '계약의 자유'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인데 이 둘 모두 위 두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하게끔 하는 여건을 어떤 사회질서로 조성하느냐에 따라 달리 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더 오랜 시간 무급으로 야근해서 승진에서 유리하고 싶다는 근로자'와 가산임금을 주지 않는 계약을 맺을 사용자의 자유는 기본적 자유가 아니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공정거래법, 환경법,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하여 여러 측면에서 제약되는 계약의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자유는 기본적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유는 선관 추구 능력이나 정의감의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비중을 지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유의 행위 경로를 닫음으로써, 선관 추구 능력과 정의감의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자유의 행위의 경로를 여는 것은 자유의 전 체계 강화에 해당합니다.  

 

롤즈가 인정하는 소유권은 자기 집에 대한 소유권, 자기 쓰는 물건에 대한 소유권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은 필연적으로 희소한 생산의 기반을 어떤 이가 소유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고용계약을 통해서 통제하는 것을 수반하게 되므로, 이것을 기본적 자유라고 보는 것은 평등한 자유의 보장에 상충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민주적 사회주의보다는 재산소유민주주의가 롤즈의 정의 원칙에 더 부합한다는 분석을 한 '정원섭' 박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만, 사람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적인 소유권을 갖지 않더라도 그것이 기본적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효율적인 경제체제로서 특정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작동가능하다면, 시민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지분을 가진 사회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의 일정 측면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롤즈가 기본권이 아니라고 한 것은 자본주의적인 배타적 소유권을 무제한적으로 가지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지, 여하한 형태의 생산수단에 대한 지분이나 참여권 자체를 문제삼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이나 차등의 원칙을 구현하는 제도의 문제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장동익 선생의 견해는 롤즈의 이론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으로 보이며 저도 거기에 의견을 달리 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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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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