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래전 한 친우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인생이 의미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올라선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세속적으로 성공하거나, 공공의 일에 헌신한다고 인정받거나. 그래서 그 사람들이 반복하는 메시지 속에는, 사회가 인정하는 위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으면 인생이란 의미가 없다는 전제가 깔린 것처럼 보여요. 예를 들어 이런 말들이죠. ‘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서 일가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인생에 대한 조언을 계속 듣다 보면 오히려 내 인생이 무의미해 보이기 시작해요.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에 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는 없는 걸까요?”

 

나는 이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들을 다시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은 속물 근성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그 세계관에 자극받아 생긴 반성 없는 반응의 결과물이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삶사회라는 주제에 관해서 양극단의 이야기만이 오가고 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두고, 한쪽 극단에는 공공의 문제만을 돌보는 삶이 있고 다른 쪽 극단에는 자신의 문제만을 돌보는 삶이 있다. 전자의 삶은 자기 부정self-negation의관점을 따른다. 이 관점에서 올바른 삶이란, 자기를 희생하여 공공의 문제에 기여하는 삶이다. 기본적으로 이 관점은 독립적인자아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들을 지워 버린다. 설사 자아나 행복 같은 주제가 언급되더라도,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곧 인생의 행복이라고 개념을 조작하고 자신을 속이려 할 뿐이다.

 

후자의 삶은 자기 매몰self-indulgence의 관점을 따른다. 이 관점에서 올바른 삶이란,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회의 주류적인 위계에서 자신을 드높이는 삶이다. 이 관점은 앞의 관점과 반대로 공공의 문제에 관한 관심을 지워 버린다. 설사 정의나 공익 같은 주제가 언급되더라도, ‘자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곧 공공의 발전이라고 개념을 조작하고 자신을 속이려 할 뿐이다.

 

삶의 방식에 관해서 양극단의 모델만 통용되는 현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낸다. 우선 자기 매몰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공공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성향을 갖게 된다. 공공의 문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면,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공의 문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대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이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공공의 문제에 참여하고 당위를 주장하는 사람의 삶이 도덕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개인적인 불완전함을 드러낼 뿐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오류는 관심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은 공공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즐기고 그들을 낙인찍고 배제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낀다.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자기 부정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다른 극단적인 반응으로 인생을 이끌어 나간다. 그들은 공공의 문제에 참여하는 사람이 높은 사회적 비난과 요구에 노출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의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공의 문제에 참여하는 일의 문턱은 매우 높아진다. 높아진 문턱 때문에 참여자는 줄어든다. 따라서 일단 참여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그부담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한다. 자기 부정의 삶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자기 부정의 삶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든다. 자신은 희생하고 있는데 남들이 자신을 적절하게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이 억울함을 더 높은 기준을 서로에게 요구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독설을 퍼부음으로써 해소한다. 또한 억울함은 자기 주장에 충분히 근거를 대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론적 오류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화는 사람들을 공공의 문제 바깥으로 쫓아내는 효과를 불러온다. 자기 부정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은 명예를 통해 자기를 입증하는 것 외에는 가치를 경험할 수 없다.

 

삶의 방식에 대한 양극화된 모델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쪽 극단에서는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하고, 다른 쪽 극단에서는 우리 사회가 나쁜 사회라고 말한다. 전자의 주장은 현재 기득권 계층이 사회를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지금의 사회는 최선에 가까운데, 최선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현재의 기득권 계층에 반항하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집단만 몰아내면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재빠르게 진압해야 하고, 다양한 관점의 비판적인 목소리는 사회 통합을 위해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억눌러야 한다.

 

후자의 주장은 반대로 우리 사회가 가망이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 사회는 한마디로 지옥이다’. 왜냐하면 기득권 계층이 권력을 점점 더 키우고, 사회가 이 과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대한 절망만 남아 더 이상 어떤 실천도 무의미하다는 좌절에 이른다.

 

사회에 관한 양극단의 주장에는 사회 안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 우리 사회가 충분히 좋다는 주장은 사회의 부조리를 모두 조리 있는 것으로 수용하고, 우리 사회가 나쁜 사회라는 주장은 사회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으며 살 의미도 별로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일종의 정신적 증후이다. , 이런 현상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부조리를 직시하면서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려 주는 지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 결과 부조리를 부정하고 세속적인 성공에 골몰하거나, 부조리에 짓눌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 이외에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들은 인생이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이 이야기들이 잃어버린 인생의 가치를 찾아내는 일은, 그러므로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자기 삶의 기획을 다른 사람들의 지시에 내맡기지 않으려는 사람들, 즉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삶의 나침반이다.

 

이 나침반은 자기에 매몰되어 사회의 위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데 몰두하는 삶도, 자기를 부정하고 희생을 감수한다는 생각에 억울해하는 삶도 아닌, 개인의 관심과 공공의 문제를 동시에 돌볼 수 있는 삶을 가리켜야 한다. 또한 현재의 질서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공공의 문제를 은폐하는 삶도, 현재의 질서에 실망해서 행동하지 않는 상태를 정당화하는 삶도 아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가치를 경험하는 삶을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증명하고자 한다. 삶은 의미 있다. 외부의 강요 없이 기꺼이 의미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자존감으로 충만한 자유인으로서 삶을 경험한다.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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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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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31 20: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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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인터넷서점에서는 1월 5일 이후에 출고가 된다고 하네요. 혹시 대형서점에서는 바로 책을 구할 수 있는지요?
    • 이한
      2016.01.01 07:4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오프라인 대형 서점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연말연휴라서 책이 실물로 배포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1월5일이 아니라 3일 출고이니,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시면 1월 3-5일 사이에 받아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 서범석
    2016.01.05 09: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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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배송 어제 됐습니다. 책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 민병모
    2016.01.28 13: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속물들에게 제대로 한방 날린 책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더 크게 보면 속물들을 자유인의 길로 인도하는 사랑의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상을 지배하는 폭정에 저항전선을 구축하고 가치에 기반한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훌륭하게 터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는 힘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인생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진지하게 탐색하고 반성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속물세계에 고통당하는 모든 분들이 속물인간들의 자동발화기계들에게 인생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삶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끊이 없이 답하는 구도의 과정에 쓰여진 책이므로, 이 책은 길을 잃고 헤매는 분들에게 인생의 희망을 크게 불어넣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이한
      2016.01.28 16: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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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깊게 읽고 난 생각을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한도민병모도므찌다
      2016.05.03 00: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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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물들을 자유인의 길로 인도하는 사랑의 책'
      민병모 님 댓글 진짜 잘 쓰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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