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이란 무엇인가.

 

개성은 여러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자기 자신과 다른 이의 개성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의 문제다. 따라서 여기서는 가치론에 기반한 정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성은, '개인이 자신의 여건, 능력, 기질에 따라 독특하고 고유한 가치 경험을 해오고, 또 해나갈 수 있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자아의 성향'을 말한다.

 

삶의 의미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어떤 개인이 구현하는 가치는 오로지 그 개인의 여건과 능력, 기질에 잘 맞는 것일 때 풍부하고 기꺼운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성원들이 의미 있는 삶을 잘 살 수 있는 사회는, 구성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여야 한다.

 

개성의 존중에서 유의해야 할 전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존과 협동이라는 입헌 민주주의의 과제에 비춘 구성원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에 배치되지 않는 개성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특이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가치를 기초하지 않고 허공의 충동과 의무감을 심어주는 것에 속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좋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고자 하는 마음,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이 당위의 수사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택하고자 하는 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는 정당한 경계를 넘어서 그 개성을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성은 지배의 성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배는 가치를 구현할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다른 이의 지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개성이 그렇다는 이유로, 또는 유사한 개성을 공통으로 보유한 어떤 집단의 성향이 그러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권리 질서의 경계를 넘어서 관철시키려는 충동과 의무감에 저항하여야 한다.

 

이 두 전선은 사회에서 권력 없는 자와 권력이 막강한 자를 관찰해봄으로써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권력이 없는 자들은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자신의 기질, 여건, 능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주어져 있지 않고 항상 불시의 억압의 가능성에 시달리기 때문에 눈을 휘둥거리면서 눈치를 보는 표정을 짓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권력이 막강한 자들은 그야말로 자기 속성의 발현의 꽃을 피우는데, 하나같이 캐릭터가 분명하다. 권력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자들 중에, 그 권력자들의 특이한 성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특이한 성향은 어떻게든 관철이 되며, 그 관철에 방해되는 것을 미리 치우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역할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 없는 자는 개성이 억압당하고 있고, 권력이 막강한 자는 개성을 남용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도 개성이 가치 있게 발현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병장이 갓 전입온 이등병을 골탕먹이는 참신한 방법, 그야말로 그 병장의 자기 속성이 톡톡 넘치는 방법을 개발해서 써먹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치 있는 개성을 발현했다고 볼 수 없다.

 

개성의 억압과 개성의 남용은 맞물려 돌아간다. 만일 공직자나 다수 대중이 문학과 철학을 검열하고 작가와 사상가들의 사유 내용이나 표현 방식이 자신의 선호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순치시키려는 시도가 벌어진다고 해보자. 그러한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질수록, 그 사회는 가치 있는 개성을 잃어버린 사회가 된다. 여러 방향으로 남용되는 개성은, 인류에 선이 되는 가치 있는 문화적 족적을 전혀 남기지 못한다. 그것은 고문 기술의 참신함과 같이, 고통을 낳는 방법의 다양화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개성의 억압과 남용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기가 길어지면, 그 사회의 개성은 그야말로 죽어버린다.

 

결국 공동의 번영이라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동등하게 존중하여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존중은 개인적 독립의 윤리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 개인적 독립의 윤리(Ethics of individual independence)는 인간에 대한 어떠한 원자적 편향론도 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이 기꺼이 수행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개인의 궁극적인 판단과 선택권을, 다른 개인의 동등한 권리와 양립가능한 한, 침해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성의 발현은 개성의 존중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가치 있는 개성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 위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관계적으로 정의된 바의 개성의 존중은, 자신의 개성과 동일한 것을 무한히 확장하고 관철시키는 과업과는 무관하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동일성 사유(identity thought)가 (1) 타자를 나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 내가 지금 가진 속성을 동일하게 투사, 관철하거나 (2) 타자를 나와 동일한 것이 아니니 돌멩이와 같은 수단으로 보고 가치의 세계에서 축출하려는 태도를 낳는다고 하였다. 동일성 사유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개념들을 통해 관철된다. 즉, 어떤 개념을 창설하고는, 그 개념이 세계를 정확하게 해석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은 그 개념에 맞게 세계를 주조하려는 권력 운동을 하는 것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에서 개성의 존중은, 전자와 후자의 전선에서 개성의 동시 방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 방어는 공히 금력과 권력에 대한 방비책을 요구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권력이라는 것을 음미해보면 권력이라는 것은 방금 전에 말한 자신의 개성을 타인의 머리 위에 무리하게 강요하는 도구입니다. 도구하고 단호히 잘라 말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그런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이기(利器)인 것입니다.

권력에 따라 붙는 것은 금력입니다. 이것도 여러분이 빈민보다 많이 소유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금력을 그러한 의미에서 동일하게 바라보면 이것 역시 개성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지극히 유용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권력이나 금력이라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과도하게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을 그 방면으로 유인하거나 할 때 매우 편리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쓰메 소세키, 나의 개인주의 외, 김정훈 옮김, 책세상, 2004, 59면.)

 

금력과 권력이 개성을 억압하는 데 사용될 때, 그것은 사실상 폭력의 발현형태가 상이할 뿐, 근본적으로 같은 것을 말한다. 국가가 세금을 덜 내려고 하면, 이러이러한 신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기업주가 자신에게 고용되려면, 이러이러한 신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직업생활을 할 기회를 그만큼 잃어야 한다. 권력과 금력은 생활의 기본적 경로에, 권력과 금력 보유자들의 신조들을 패키지로 묻어둠으로써 그것을 부당하게 관철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즉,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위배하여, 개성의 정당한 경계를 넘어 폭력적으로 동일성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구성원들을 동등하게 자유로운 존재로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는 사회에서는 독특한 현상이 벌어진다. 금력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할 때에는 개성의 탄압에 대해서 불평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금력과 권력이 생기게 되면, 개성을 탄압하면서도 진정한 개성, 또는 올바른 개성을 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존중과 지배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개성을 오로지 심리학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잘못된 윤리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개성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확고히 뿌리박지 못한 사회에서 생기는 이러한 위험을 소세키는 이어서 지적한다.

 

"그런 까닭에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행히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좋아하거나 혹은 자신의 성질에 맞는 일을 만나게 돼 개성을 발전시켜가는 동안에는 자타의 구별을 잊고 꼭 저 친구도 내 동료로 끌어들이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 권력이 있다면 앞에서 제시한 형제와 같은 이상한 관계가 성립되고, 금력이 있으면 그것을 휘둘러 남을 자신과 한 패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돈을 유혹의 도구로 사용해 그 힘으로 남을 자신의 맘에 들게 변화시키려 합니다. 어느 쪽이라도 대단히 위험합니다.

따라서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개성이 발전할 수 있는 장소에 정착할 작정으로 자신과 꼭 맞는 일을 발견할 때까지 매진하지 않으면 평생 불행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만큼 개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사회가 허용한다면 타인에 대해서도 그 개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경향을 존중하는 것이 이치에 타당할 것입니다. 내게는 그것이 필요란 일이고 동시에 올바른 생각이라고 느껴집니다. “나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데 저 친구가 왼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괘씸하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긴 복합한 분자가 모여서 완성된,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해서는 잠시 정교한 해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지만 그러한 문제가 관계되지 않는 경우, 혹은 관계되어도 폐가 아닌 경우에는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한, 타인에게도 같은 정도의 자유를 부여하고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믿을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 적어도 공평한 시각을 갖추고 정의의 관념을 지닌 이상, 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켜감과 동시에 그 자유를 타인에게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타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의 개성을 마음껏 발전시키는 것을 타당한 이유 없이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왜 여기에서 방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여러분 중에는 장래에 정식으로 방해 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를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또 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위의 책, 61-62면)

 

"금력, 권력이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없애 버려!”라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이니 골탕 먹여버려!”라든지, 나쁜일도 없는데 그냥 그것들을 남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개성은 그것으로 완전히 파괴되며 동시에 인간의 불행도 거기에서 파생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조금도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는데도 단지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경시총감이 순사에게 내 집을 포위하게 한다면 어떨까요? 경시총감에게 그 정도의 권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덕의는 그에게 그러한 권력 사용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혹은 미쓰이나 이와자키라는 대상인이 오로지 나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내 집의 하인을 매수해서 모든 일에 반항하게 한다면 이 또한 어떨까요? 그들의 금력 배후에 인격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그러한 무법을 행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위의 책, 67-68면)

.

그리하여 소세키는 개성의 발현이라는 개성의 존중을 전제로 해서만 가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개성의 발전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하였다.

 

"지금까지의 논지를 요약해보면, 첫째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수반하는 의무 사항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 셋째 자기의 금력을 나타내려 한다면 거기에 수반하는 책임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 이 세 가지 사항으로 귀착됩니다."(위의 책, 64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논지로 이어지는데, 바로 현실적으로 금력과 권력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면서 남용하지 않을 사람이란 무척 적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고쳐 말하면 적어도 윤리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양을 쌓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개성을 발전시킬 가치도 없고 권력을 사용할 가치도 없으며 금력을 사용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을 다시 한번 바꿔 말하면 이 세 가지 사항을 자유롭게 향유하기 위해서는 이것의 배후에 있어야(65)할 인격의 지배를 받을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뜻입니다. 만일 인격이 없는 자기 무턱대고 개성을 발전시키려 한다면 타인을 방해하게 되고, 권력을 사용하려 하면 남용으로 흐르게 되고, 금력을 사용하려 하면 사회 부패를 초래합니다. 대단히 위험한 현상에 이르게 됩니다."(위의 책, 64-65면)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논지는, 헌법적 방비책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수양을 하기에 특별히 불리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존엄과 상충할 때라도 그것을 관철시키는 일을 방해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수양을 다 하고 나서 그제서야 비로소 금력과 권력을 취득하여 그것을 행사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실천은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금력과 권력의 남용을 방비하는 제도를 수립하는 일이다. 금력과 권력의 차이는, 오로지 그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그러한 기능을 가지는 부분에만 한정되어야 하며, 그 이상의 재량을 금력과 권력 보유자에게 안겨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에 개인적 독립의 윤리 문화를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것이다. 개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개인 대 사회의 대립은 사이비 문제다.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고자 하는 개인들과 개인들의 유대, 애착 관계가 있을 뿐이며, 대립되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존중받으며 발현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 개성을 억압하면서 자신의 성향을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관철시키면서 '사회'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남용자들의 의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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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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