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광고나 안내글은 <정보마당>게시판에 올려주세요."

  1. 김신애
    2009/04/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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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자전거도로 뒷북으로 찜찜하지만, 오늘 한 소리 또 해야겠습니다. 작년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내일 여기 코펜하겐에서 노동절 축제가 있더군요. 각 정당들이 캠프를 차리고 선전을 하기도 하고 한답니다. 덴마크어로 주로 되어 있어 좀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때마침 서범석씨가 방문하시는데 한 번 같이 가봐야 겠습니다. 핀란드에서 포닥하시는 분 말씀을 들으니 오늘이 핀란드에서는 인구 절반이 술을 진탕 마시고 즐기는 날이라고 하더군요. 오늘부터 10개월 후에 태어나서 2월이 생일인 아기들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제가 경험한 노동절은 문민정권이라고 해도 불법으로 규정된 시위, 주요 매스컴에서 기사로 다루지 않는 심각한 가투가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고 으레 꽤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는 걸 보고 어두운 마음으로 보내는 날이었는데 말입니다. 주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한국에서는 노동절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나라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기도 하고, 북유럽같은 나라에서는 정치축제같은 걸 열지.' 하는데, '음, 이게 문화의 문제인가.. 끙' 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일단 겪어보고 또 한 소리 올리지요.
    • 이한
      2009/04/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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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겠지요.
      노동을 배제하는 정치가 지배하는 나라와 노동을 (열등한 파트너기는 하지만) 파트너로 인정하는 정치가 통용되는 나라는 다르지 않을까요.
  2. 김신애
    2009/04/2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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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자다가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 한 번 합니다. 코펜하겐에서 지내다 보니 자전거문화가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90퍼센트 이상의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같이 있고. 한국에도 자전거 도로가 이 정도로 있다면 자가용 사용률이 많이 줄 것 같은데, 서울시내 자전거도로 만들기 전국민투표 같은 거 못할까요? 환경연합에서 서명작업부터 시작하면 안될까요? 평생처음 자전거 배워서 거의 교통수단으로 타고 다니는데 너무 좋아서 한 마디 합니다. -.-;
    • 이한
      2009/04/2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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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에 많이 빠지셨나 봅니다.
      저도 자전거를 애용하는데 최근 자전거 도둑을 맞아서 상심하고 있습니다.
    • 모과
      2009/04/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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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에서는 이미 자전거도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미는 정책이기도 하고 보수언론에서도 열심히 뽐뿌질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 김신애
      2009/04/2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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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고야.. 자전거는 차와 달라서 어찌 할 수가 없군요. 자전거 잠그는 거 매일 깜빡깜빡 하는데.. 저도 조심해야겠습니다. 이한씨 너무 상심 마시고 다음에 자전거 살 때 좋은 잠금쇠 사시길.. (역시 위로 안되는 거 같음.. -.-;) 서울시내 자전거 도로는 역시 뒷북이었군요. 어쨌든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한국가면 자전거 타게요.. ㅋ~ 진행되는데로 좀 알려주세요오~~
    • 이한
      2009/06/1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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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141731045&code=950100
    • 김신애
      2009/06/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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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기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의견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역시 '업적' 만들기에만 치중하는 사람이 추진하는 정책은 머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ㅋ~ 제가 자전거 도로 만들기에 대해서 의견 올렸을 때는 '서울시내' 자전거 도로를 우선으로 만드는 거였는데, 워낙 자동차 다니기도 빠듯한 서울시내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려면 저항이 있을 것도 같아서 국민투표라도 하자(물론 이건 걍 수사죠.ㅋ)는 거였는데.. 역시 어려운 건 피해가고 눈에 보이는 것만 하자는 것이군요. 정말 찌질합니다.
      2.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타다 보면, 도심의 (작지만) 90퍼센트가 자전거 도로인 것 같고, 또 간간이 차들과 공유하는 구간이 나와도 웬지 차들이 일렬로 자전거가 통과할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저 같아도 지금 서울시내에서 자전거 안 탈 것 같습니다. 탄다는 사람 있으면 말리겠습니다... 아무쪼록 헛돈 좀 안 쓰고 자전거 도로 서울시내에 좀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 가려면 아직 3년이나 남았군요. 에효에효..
  3. 모과
    2009/04/1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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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모든 사람이 소득이 똑같게 만드는 결과평등을 추구한다면 ‘평등한 배려’를 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 없다. 두번째 원리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A라는 사람은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고, B라는 사람은 빵 만드는 회사의 생산직 사원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A라는 사람의 소설이 너무 안팔렸다.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B도 그런 착각을 좀 하고 있었는데 생활이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소설가의 꿈을 포기했다. 나중에 A의 소득이 B의 소득보다 많이 못미친다고 해서 B의 소득을 떼어서 A에게로 주면 그것은 오히려 평등한 배려를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A, B의 삶의 기획과 선택을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다."

    이한선생님께서 주신 <평등에 대한 인권>이라는 글 중 평등한 배려를 설명하는 데 삽입한 비유입니다. 글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비유 자체가 가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애초에 불평등한 결과를 바탕에 두고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결과가 평등한 사회였다면 둘의 선택은 달라졌을 겁니다. 결과적 평등이 불평등임을 말하기 위해 "원래 불평등한 상황"을 전제하게 됩니다.
    "선택이 달라지면 결과가 달라야한다"를 먼저 논증하고 "경제적 결과만 결과의 차이에서 따로 떼어 낼 근거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개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요?
    (글을 읽고 바로 질문 드리려 했는데 도무지 말로 풀리질 않아 묵혀두었습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자꾸 걸리적거려서 흐릿한 문장으로나마 질문을 드립니다.)
    • 이한
      2009/04/1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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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하신대로 비유가 순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군요. 타당한 지적이십니다. 지적하신대로 논리를 전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드워킨은 Is Democracy Possible here의 관련 부분을 다시 한 번 봤는데, 드워킨 역시 인생 기획의 자유라는 것이 선택으로 인해 달라지는 결과를 전제하고 제도화된다는 점을 강조했더군요. 위와 같은 비유는 가상적 논지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지만 말씀하신대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신애
      2009/04/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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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을 읽어봤는데, 잘 이해가 안 갑니다. -.-; 어떤 글에 들어있는 비유인지요? 저도 궁금한데...
    • 이한
      2009/04/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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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보충글을 이야기합니다. 곧 보충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김신애
      2009/04/2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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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내용인데, 오고가는 문답이 제 머리 속에 있는 틀로는 잘 이해가 안가서 몇 자 적습니다. 결과적 평등이 불평등임을 말하기 위해 원래 불평등한 상황을 전제했다는 것 또는 위의 사례가 순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 안갑니다. 제 생각을 적어보면,

      1. 먼저 논의된 '결과의 평등' 이라는 것이 '소득의 평등' 이라는 문제에 한정된 것이라는 것을 환기하고 싶습니다. 즉,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 주관적인 평가요소까지를 포함하는 만큼 엄격한 의미에서 결과의 평등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다만, 개인의 선택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여기서 이야기되는 '소득)이라는 측면이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 점에서 개인들의 인생기획이 낳게 되는 소득의 결과가 평등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급자족의 경제를 벗어나 분업이 이루어지는 경제에서 사는 인간은 재능의 실현을 위해 쓰는 시간과 에너지와 (타인을 위한 노동)을 위해 쓰는 시간과 에너지 간에 모종의 타협이 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노동해야 하는 시간과 재능실현의 시간이 겹치면 겹칠수록 달가운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능실현이 가능한 노동이 시장에서 얼마나 요구되는지인데,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정도는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시장의 불평등한 구조와 상관없이 이 조합은 어느 정도 운의 문제가 늘 존재합니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재능이 마음대로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어느 재능을 얼마만큼 개발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사례에서 평균적으로 소설과 빵은 그 시장수요의 성격이 다른 제품입니다. 생필품인 빵(서양의 경우, 한국은 아닌 것 같음)은 시장에서 요구되는 양과 종류에서 수요가 안정적일 수 밖에 없고, 소설의 경우에는 사회의 문화적 수준, 문단과 독자의 경향 등등 보다 불안정한 요소가 많이 개입되겠지요. 제가 보기에 빵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소설가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게 되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보입니다.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어느 사회의 경제생활에서든 생필품의 안정적인 생산이라는 과제는 고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제빵사와 소설가의 소득을 균등하게 하고, 생필품인 빵의 생산과정을 순전히 사람들의 재능실현욕구에만 맡긴다면, 사회전체가 운이 없어서(?ㅎㅎ) 갑자기 제빵하는 사람들의 수가 필요한 수보다 훨씬 모자라게 될 때에는 아주 난감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빵만드는 데 재능을 가진 사람의 수가 사회전체가 필요로 하는 제빵사의 수보다 적다면, 소설쓰는 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안정된 수입을 위해 제빵사의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상황도 크게 비정의로운 상황은 아니고 이것이 소득의 결과적 차이에 의해서 조정이 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보다 나은 조정 방법이 있을까요?). 따라서 이 정도 수준의 소득불평등이 있는 사회는 사례의 전제가 되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연봉이 몇십억단위인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이 존재하는 상황,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수많은 사람들의 허황된 꿈을 조장하고 재능개발을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의 소득수준을 제한하거나 이들의 소득을 재능있는 다수 소설가의 개발 등으로 이전시키는 것은 공정해 보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합리한 불평등이지, 어느 종류를 막론하고 불평등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빵사와 소설가의 소득불균등처럼 정의로운 불평등이 존재하고 또 그 불평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개인들이 하게 되는 선택, 또 그 선택으로 인해 결국 개인이 애초에 예상한 정도의 불평등을 얻게 된다면 오히려 그 사회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개인들이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경제생활을 선택할 수 있고, 재능실현과 노동간의 타협을 적당히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되는 것 사회는 어느 정도 정의로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제까지 그렇게 용어를 써 와서 그런지, '불평등' 이라는 용어는 제가 앞서 쓴 '불합리한 불평등' 으로 많이 사용이 되어 온 것 같습니다. 따라서 아마도 사례에서 어느 정도 중립성이 부여된 '소득불균등'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불합리한 불평등' 과 '나름 합리적인 불평등(불균등)' 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 이한
      2009/06/17 01:20
      수정/삭제
      김신애님의 의견도 감안하여 새로이 교안을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4. 2009/04/08 21:41
    수정/삭제 댓글
    김신애님의 <임노동자기금논쟁과스웨덴사회민주주의 제1강> 필사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원래의 필사본에서 많은 점이 바뀌었으니, 위의 주소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civiledu.org/212
    • 이한
      2009/04/09 00:34
      수정/삭제
      훌륭한 필사이십니다.
      고생하셨습니다!
  5. 2009/04/08 21:42
    수정/삭제 댓글
    김신애님의 <임노동자기금논쟁과스웨덴사회민주주의 제1강> 필사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원래의 필사본에서 많은 점이 바뀌었으니, 위의 주소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civiledu.org/212

    (업데이트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
  6. 김신애
    2009/04/02 16:13
    수정/삭제 댓글
    스웨덴 임노동자 기금안 1-3강 필사를 아주 조금씩 해서 오늘 마쳤습니다. 강의를 듣는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필사를 하되 기계적이고 지루하지 않도록 하루에 조금씩 하면서 대신에 가능한 한 많은 생각들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요. 스웨덴 사민당의 이론적 성장의 역사를 다룬 사회화 위원회, 칼레비와 비그포르스 사상의 비교 부분이 필사의 내용이 되었었지요. 1-3강 필사를 마치고 제가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회주의적 변화에 대한 선택이 불가역적이어야 하는가, 가역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주로 강의 마지막에 칼레비에 대한 비그포르스의 비판이 여기에 해당되겠는데요. 비그포르스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어느 정도 불가역적이어야 한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현재 자본주의에서의 이행이 어려울 뿐더러(쉐보르스키의 이행의 계곡이 20-30년 정도로 계산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행 이후에도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시시탐탐(?)' 노리는 세력들도 많을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 검토해 보고 싶은 생각은 '사회주의로의 이행도 가역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집단적인 선택은 가역적인 것이 좋겠다는 것이 이러한 의문의 기저에 있는 가정인데요. 예를 들면,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싼 게임기를 아예 부숴버린다던지 하는 개인적인 선택은 아무래도 좋지만, 독재를 막기 위해 영구적으로 대통령 연임제를 폐기했는데 상황이 바뀌어서 연임을 해도 좋을 대통령이 나타났고 다음 선거의 나머지 후보들이 정말 형편없기만 한 상황도 있을 수 있고... 어쨌든 선택이라는 것이 될 수 있으면 가역적인 것이 좋겠다는 생각인데요. 제게는 시간을 들여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 사안인 것 같습니다. 또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반대의 길로 갈 자유라는 것도 있어야 민주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 이한
      2009/04/05 23:58
      수정/삭제
      강의필사한 것은 언제 올리시는지요?^^
    • 김신애
      2009/04/08 20:22
      수정/삭제
      아, 대통령 연임제에 대한 우리 나라 상황을 오늘에서야 분명히 알게 되었군요. '연임제의 도입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으나, 논의를 거쳐 도입을 할 경우에도 도입절차를 밟는 당시의 대통령은 연입할 수 없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임의 긍정,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 봐야 할 듯 한데, 어차피 선거를 거쳐야 하는 일이니 연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지 않을 듯도 합니다. 이 질문을 했을 때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강력한 지도자 중심의 체제전환(차베스, 볼리비아 대통령-이름 잊어버림 -.-)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되도록 사람들이 신뢰할만한 후계지도부가 있어서 여러 사람이 일관적인 개혁을 이끌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요. 어쨌거나 차베스가 연임제를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의 독재가 심해지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는데 두고 볼 일입니다. 거기 법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p
    • 이한
      2009/04/10 01:13
      수정/삭제
      불가역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그 결정의 효과 자체가 일정한 불가역성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되는 결정을 나중에 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재지주와 마름제도를 없애고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은 전자의 불가역성이고, 자본주의로 다시 돌아가자는 정치적 표현을 하거나 의제로 올리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제도는 후자의 불가역성입니다.

      민주주의라 함은 후자의 불가역성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의 불가역성은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불가역성도 아니고 법적 불가역성도 아닙니다. 그것은 일정한 효과입니다.

      만일 해방 이후에 부재지주와 마름 제도를 없애지 않고, 지주와 마름에게서 일정한 세금을 누진적으로 걷어서 그것을 농업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는 형식의 개혁을 했다면, 정치세력의 부침에 따라 그 세율이나 재분배의 양은 왔다갔다 했을 것입니다. 비그포르스가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복지제도 자체도 일률적으로 가역적이라 볼 수만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편주의적인 형식을 취해서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북구 유럽의 복지제도는 불가역적인 성격을 일정정도 띄게 됩니다. 반면에 잔여주의적인 형식을 취해서 일정한 요건에 달한 일부의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인만이 혜택을 받는 미국의 복지제도는 대단히 가역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집단적 의사결정을 새로 하자는 정치적 표현이나 결정을 법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면, 정의로운 방향으로의 변화는 불가역적인 효과를 가질 수록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p.s. 대통령 연임제 도입은 현재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연임제를 도입하는 때에 임기 중에 있는 대통령이 연임제의 혜택을 못받는다는 것 뿐입니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재임중인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연임제 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하여 여러가지 비민주적인 행태를 보일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앞날이 한 사람에게 목매는 것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시스템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7. 김신애
    2009/04/02 15:42
    수정/삭제 댓글
    참, 시간나실 때 다음의 사상가들의 이름 원어명 좀 부탁드립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더 알아보고 싶을 때가 있어서요.

    칼레비
    비그포르스
    에얼란데
    베른슈타인
    베리스트롬(?-칼레비와 비그포르스를 비교평가한 사람)
    멜러(?-사민당의 이데올로그)
    • 이한
      2009/04/05 12:14
      수정/삭제
      Nils Karleby
      Ernst Wigforss
      Tage Erlander
      Eduard Bernstein
      Villy Bergstrom(o에 움라우트 붙습니다)
      묄러 Gustav Moller(o에 움라우트 붙습니다)
  8. 김신애
    2009/04/02 15:35
    수정/삭제 댓글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칼레비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거부했다고 하는데요. '직업선택'과 '거주이전'의 자유와 모순된다는 것을 지적했다고 했습니다. 여태껏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저한테는 좀 획기적이었는데요. 사실 20세기의 사회주의 역사를 잘 몰라서 실제로 역사속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사례속에서 직업선택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어떻게 제한되었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강의자님이 권하시만한 책이라도 있을까요?
    • 이한
      2009/04/04 12:16
      수정/삭제
      1. 일단 그러한 관점이 칼레비에게 새롭거나 획기적인 것은 아니고, 집산주의적인 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이 점에 대해서 한마디씩 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리드만의 "자본주의와 자유"를 보면, 표현의 자유 및 직업의 자유와 관련하여 언급이 있지요. 출판물을 통해 표현을 하려면 종이산업에서부터, 인쇄산업, 출판산업까지 모두 집단적인 의사결정과정을 미리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는 "과연 이 내용을 출판할만한 것인가"라는 것도 포함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지요. 반면에 자본주의에서는 출판사 하나만 설득하면 되는 문제라고 비교하였습니다. 직업의 자유와 관련하여서도, 중앙계획체제에서는 각 직업과 사업장에 분배될 자원을 중앙에서 계획해서 내려보내기 때문에, 기존에 없었거나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다고 얼핏 생각하는 직업들은 새로이 생겨나기 위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고, 개인들의 직업 선택이나 선택한 직업 전환 역시 중앙에서 의식적으로 조정되어야 하는 자원배분의 문제로 다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중앙에서 설계한 경쟁절차를 거쳐서 선발하고 할당되는 형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 문헌은 저도 잘 알지 못하는데, 다른 분이 권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신애
      2009/04/04 17:09
      수정/삭제
      예,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의제에 대해서 집단적 또는 중앙집중화된 결정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관료주의를 피할 수 없고 결국 개인의 자유제한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 또는 현실에 관한 문제로군요. 그러나 여전히 '필연적으로 그런가' 라는 의구심은 남습니다. 물론 당장 선택해야 한다면 개인을 억압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시스템을 택할 것이지마는.. 여전히 제게는 검토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요사이 유럽에 있으면서 사라져가는 유럽식 공산주의(communism)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있는데, 유럽 사람들이나 특히 구소련 쪽에서 온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듭니다. 볼 것도 없이 다 독재로 이어졌거나 부패한 관료주의만 남게 되었었다는 것이지요... 여하간 고민이 되고 있는데, 저도 자료를 발견하게 되면 여기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9. 김신애
    2009/04/02 15:29
    수정/삭제 댓글
    임노동자 기금안 1강 필사본 정리중에 질문입니다.

    강의 도중에 칼레비가 총체적 국가관념 (주로 소유권을 회수하는 주체로서)을 비판하는 대목에서요. 강의자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데,

    '그렇죠. ‘소득이나 재산이 사회로 이전된다’ 는 것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문제들(예. 소득불평등)이 해결된다는 것인데요. 그렇지만 사회로 이전된 재산이 다시 개인들에게 재분배되어야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이 되겠죠.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혹은 남성들로부터 여성들에게 조세귀착 등이 일어나는 것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를 단일주체로 파악하는 사고경향은 맑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극복되어야 할 유산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회로 이전된 재산이 다시 개인들에게 재분배되어야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된다' 는 생각은 당연히 이해가 가는데, '조세귀착이 일어난다' 또는 '조세귀착이 일어나는 것을 분석한다' 는 것이 정확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 이한
      2009/04/04 12:11
      수정/삭제
      조세귀착이라는 것을 풀어 쓰면 세금이 결국 누구에게 제일 많이 부과되는 셈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류세를 올리면 직접적으로 세금을 내는 사람은 기름을 다루는 업자이지만, 사실 제일 큰 비중의 부담을 지는 것은 자동차를 사용하는 운전자들입니다.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이 세금을 내지만 소비자나 그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조세가 귀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세라는 목적세를 부가가치세 안에 포함시켜서 세금을 걷으면 역진적인 효과가 날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분석해야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걷는 것이 불평등 해소라는 관점에서 가장 목표 달성을 잘 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국가 재정이 늘어나서 국가가 하는 일이 많아지면 된다는 것은 너무 두리뭉실하지요. 대표적인 예가 복권의 수익금의 반을 공공재정으로 쓰는 것인데, 이것은 가난하고 수학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서 새로운 세금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김신애
      2009/04/04 17:11
      수정/삭제
      아하!
  10. 이한
    2009/04/18 01:16
    수정/삭제 댓글
    기업의 비업무용으로 토지를 사서 파서 얻는 차익에 대한 양도세 부담을 거의 없애겠다는 취지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맥락과 상관없는 후렴구가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902/e2009022718070870100.htm

    이러한 정책흐름으로 드러나는 MB 경제정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한 쌍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경제위기라는 사태로 인해 고통을 받는 취약계층의 고용 불안정과 채무의 급격한 증가를 친기업적인 재분배정책(노동유연화, 파견직 확대, 근로기준법 형해화)을 통해 가중시킨다.
    (2) 부동산 투기등 비생산적 활동으로 인해 생기는 수익의 보장, 기업경영의 불투명성, 공적인 사업에 대한 독점적 허가권의 민간 부여 등을 통해 현재 세계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확대한다.
    (3) 를 기화로 비생산적인 투기활동에 대한 규제를 미리 풀어서 향후 경기상승시의 투기이득을 합법적으로 보장한다.

    도대체 비업무용 토지를 사고 파는 일하고 경제 살리기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감세라는 아이디어는 "생산적 투자" "기술발전"에 대한 인센티브로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비업무용토지를 사고 파는 것으,은 "비생산적인 투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활동이 100배 늘어난다고 해도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부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국민경제는 오로지 나빠지기만 할 뿐 결코 증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부자 감세'가 아니라 '비생산적 활동에 인센티브를 주고 국민경제와 자본의 효율적 분배를 악화시켜 거품을 무한정 생산하는 정책"으로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비업무용으로 토지를 사고 파는 일이 촉진되면 될수록 고용이 보장된다는 모델을 제시한 경제학자가 있다면 한 번 그 논문을 보고 싶습니다.

    요즘 속속들이 입안되고 있는 정책들을 보면 "공개된 음모"라는 다음 글의 문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912182708&Section=

    결국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풀린 유동성이 경기회복에 쓰이지 못하고 불경기 속의 비생산적 투기만을 부추기는 효과만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http://news.kbs.co.kr/article/economic/200904/20090417/17605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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