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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립물] 규범 판단의 맥락 분기 문제와 법과 도덕의 문제 (1)

by 시민교육 2022. 4. 6.

매우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이 많은 국가에 사는 A는 어느날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외계인의 비행접시로 보이는 것이 A에게 큰 빛을 쪼았고, A는 정신을 잃었다. A가 깨어났을 때, A는 이미 초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A는 마음을 먹으면 육체적 능력을 단 번에 1000배 폭증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총을 쏘려는 상대방의 손가락 근육 움직임을 보고 총알도 피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의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속도로 5m 이내의 짧은 거리를 움직여 상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A는 새로운 초능력을 얻고 나서 여러가지로 혼자 사람이 없는 뒷산에서 실험해보고는 자기 초능력의 모든 특성과 한계를 알게 되었다. 

이 힘의 주된 두 가지 한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쓸 때에는 조절이 불가능하였다. 즉 상대 복부에 주먹을 적당히 꽂아넣을 수는 없다. 그래서 주먹을 꽂아넣으면 상대는 틀림없이 죽는다. 그리고 이 힘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처음 힘을 증폭시킨 지점에서 반경 5m 내의 곳에서만 1시간 동안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이 힘을 사용하여 슈퍼 소년 앤드류나 플래쉬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갈 수 없다. 이동은 온전히 본인의 원래 육체적 능력으로만 해야 한다.

게다가 이 힘을 얻었다고 해서 A가 금강불괴가 된 것은 아니다. A는 여전히 평범하게 취약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 즉, 총을 맞거나 칼에 찔리면 쉽게 죽는다. 

A는 처음에는 무척 기뻐했지만 이 조절불가능한 힘으로 MMA 선수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하다가 A는 1인 자경단을 설립하여 활동하기로 한다. 1인이지만 일당백의 능력을 가지므로 혼자서도 가히 자경단을 꾸릴 수 있고, 스스로 자경단장의 직위도 수여하였다. 

 

A가 사는 동네는 우범지대와 비우범지대로 나뉘어져 있다. A는 비우범지대에 산다. 비우범지대에는 우범지대의 갱들이 들어오는 법이 없다.  반면에 우범지대에는 언제나 갱들이 우글거린다. 비우범지대에 사는 사람이 우범지대에 오후 8시 이후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강도를 당한다. 갱들은 거의 100%라고 해도 가까울 정도로 신뢰성 있다고 정평이 나 있다. 즉 이 갱들이 총을 들이밀고 돈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항하면 틀림없이 죽고, 있는 돈을 다 건네주면 틀림없이 산다. 경찰들은 갱들과 결탁한 것은 아니지만, 갱들의 무력이 워낙 강하여 아예 전쟁을 하지 않고서는 갱들을 모두 소탕할 수 없다. 또한 갱들 몇 명을 죽여도 그 우범지대에는 실업률이 워낙 높아서 소년들이 결국 또 갱으로 충원된다. 경찰들은 우범지대는 아예 순찰대상에 제외하고 비우범지대로 넘어와서 일을 벌이지 않는 한 수사도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A는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해서 우범지대의 갱들을 소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A는 그렇게 마음 먹은 날 정확히 오후 8시 이후에 일부러 우범지대에 10만원을 가지고 걸어들어간다. A는 평범하게 생겼고 총도 없는 것이 분명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므로 우범지대의 갱들은 곧바로 강도를 하러 온다. A에게 몇 명의 갱들이 총을 들이대며 돈을 내놓지 않으면 쏘겠다고 한다. 갱들의 위협은 매우 믿을 만하다. 즉 A가 자신이 가진 돈 전부인 10만원을 내어놓고 순순히 돌아가면 A는 살고, 10만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항하면 갱들은 곧장 총을 쏘아 A를 죽이고 돈을 차지할 것이다.

A는 자신의 지갑에 있던 10만원을 꺼내 흔들며 "여기 10만원이 있지만, 절대로 너희들에게는 주지 않겠다!"라고 말한 뒤 자기 지갑 안으로 도로 돈을 집어 넣는다. 그 순간, 화가 난 갱들은 총을 쏘려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손가락 근육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찰나에, A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갱들 모두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갱들은 모두 사망한다. A는 다시 자신의 집에 가서 잠을 잔다. 

 

A는 이 일을 며칠간 반복하였다. A에게 강도를 하다가 A를 죽이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A의 초능력에 당하여 비명횡사한 갱들이 수백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미 그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그래서 A가 와도 이제 아무도 갱들은 A에게 강도를 시도하지 않는다. A는 이제 아무리 우범지대를 걸어다녀도 강도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A에게 죽임을 당한 갱들의 가족이 A를 경찰에 살인혐의로 고소하였다. 

 

그런데 A는 순순히 자신이 갱들을 죽였음을 인정하였다. 즉 살인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정당방위권을 행사하였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A는 자신이 초능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이미 최첨단 드론을 사용하여 자세히 찍어놓았다. 즉 A가 갱들을 죽이게 된 일련의 과정은 사실 있는 그대로 입증이 가능하다. 

 

A가 갱들을 죽인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는가?

 

위법성 조각 사유 중 정당방위가 문제된다. 논의상 A가 사는 나라가 한국과 동일한 정당방위 조항 및 그에 대한 해석 법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가정해보자. 

한국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은 결국 요건으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침해" "부당한 침해" "방위하기 위한 행위" "상당한 이유"를 갖추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방위하기 위한": A의 목숨에 대해 갱들이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A의 목숨은 A 자기의 생명권적 법익이다.  따라서 요건을 충족한다. 

(2) "현재의 침해": A가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한 순간, 갱들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놓았고 곧 당기려고 하고 있었다. 총을 겨눈 순간 갱들은 강도살인죄의 실행의 착수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침해가 목전에 임박하였다. 

(3) "부당한 침해": 애초에 A의 목숨에 대한 위협은 갱들의 것이 아니라 A의 소유인 돈을 강탈하려고 했는데 A가 거절하자 가해진 것이다. A는 자신의 돈을 넘겨주지 않기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러자 그 권리를 행사하였다는 이유로 A의 목숨을 침해하려고 한 것이므로 부당한 침해이기도 하다.

(4) "상당한 이유": 상당한 이유란 방위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A는 금강불괴가 아니다. 이미 돈을 넘겨주기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A를 죽이려고 A를 둘러싼 갱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간 순간, A가 자신의 목숨을 확실하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초능력을 사용하여 갱들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그 힘은 조절이 불가능하고, 통상적인 인간 신체의 능력만 발휘해서는 A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다. 따라서 A의 목숨을 방위하기 위해서 A가 초능력을 사용하여 죽일 힘으로 갱들의 복부에 주먹을 차례로 꽂아넣은 행위는 방위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였다고 인정하고도 남는다. 통상 방위의 필요성은 위협에 벗어나기 위해 매우 낮은 확률을 행위까지 포함해서 유일한 행위일 때에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A는 방금 명시적으로 거절한 말을 철회하고 돈을 넘겨주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는 속도가 느린데다가 갱들은 한 번 거절한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런 불확실한 구원 전략은 A가 자신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한 경로에는 속하지 못한다. 따라서 방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A의 행위의 위법성은 조각된다. 따라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다.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은 그 행위의 유형은 전형적으로 불법적인 것이지만, 그 행위의 성질 자체가 전체 법체계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A의 행위는 법체계 전체가 구성하는 법규범이 허용하는 행위이다. 

 

이제 A는 자신이 원래 가졌던 법적 믿음을 실제로 확인케 되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법적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A의 국가에는 A가 유명해진 곳 이외의 지역에도 우범지대가 많다. A는 오늘도 10만원을 들고, 갱들을 죽일 의도로, 다른 지역의 우범지대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A의 행위는 도덕을 준수한 것인가? 즉 도덕적으로 행위하였는가? 그가 도덕을 어겼다면 A는 언제 도덕을 어긴 것인가? 도덕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A의 행위가 법에 의해서는 처벌될 수 없는 이유, 심지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도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글을 달리 하여 다음 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