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학] 토끼와 거북이 우화의 거북이처럼 살기 요령
1. 서론
이 글에서는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자기 자신 내부의 두 가지 성향에 대한 이야기로 재해석하고, 그런 재해석된 틀 내에서 거북이처럼 사는 요령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은 <인생을 바꾸는 탐구습관>에 쓰인 이야기를 다른 틀로 담아낸 것이다. 인생의 적절한 습관을 파악하고 몸에 익히는 것은 여러가지 표현방식으로 제시될 때 더 잘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화의 내용과 통상적으로 이야기되는 교훈의 타당성과 그 한계
이솝 우화로 잘 알려진 「토끼와 거북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어느 날 토끼가 느릿느릿 걷는 거북이를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거북아, 너는 왜 그렇게 느리게 기어 다니니? 나처럼 다리가 빠르면 훨씬 멀리 금세 갈 텐데!” 그러자 거북이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 한 번 달리기 시합을 해보자. 누가 더 빨리 결승점에 도착하는지 보자고.”
토끼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합이 시작되자 토끼는 재빠르게 달려갔고, 거북이는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갔다. 금세 앞서간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에 있는 것을 보고 “저 느림보가 나를 따라잡을 리 없지”라고 생각하며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쉬기로 했다. 하지만 토끼는 그대로 깊이 잠들고 말았다.
그 사이 거북이는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거북이는 잠든 토끼를 지나쳐 결승선에 먼저 도착했다. 잠에서 깬 토끼는 서둘러 달렸지만 이미 늦었다.
일반적으로 이 이야기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실제로 보유한 재능에 대한 자만심보다 더 큰 힘을 낸다”는 교훈을 전한다고 해석된다. 즉, 재능이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방심하면 꾸준히 노력하는 이에게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일반적인 교훈은 대체로 타당하다. 일반적으로 분업사회에서 인간의 지식과 기술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는 매우 길고 반복적인 수련과 훈련 기간을 필요로 하고, 초기 학습 단계에서 드러나는 재능이란 보통 기존의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이해하는 능력에 불과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탁월한 수학자가 될 잠재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한 것에 만족하고 그 뒤 시간을 거의 수학에 투여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적정 수준의 공학 연구자로서 평생 수학을 다루며 살아간 경우에 비해 수학을 다루는 능력이 매우 떨어질 것이다. 이 교훈을 제대로 모른다면, 문외한으로서 자신이 뛰어난 판단과 기량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데도 그 결함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꾸준하고 성실하게 전문적인 기량을 길러내지 않았다는 아주 뚜렷한 원인은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반적인 교훈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우화는 더 이상 그렇게 깊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즉 복잡한 분업사회에 체계적인 지식 획득의 방법에 따라 쌓아올려진 인간 지식의 깊이와 넓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지속적인 수련과 훈련 없이 전문적 기량을 갖추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일단 전문적 기량의 기본을 획득한 사람도 끊임없이 그 기량을 발휘하고 갈고닦지 않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량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추가적인 삶의 지침을 끌어낼 자원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두 가지 점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지식과 기량의 본성 자체에 대해 하루 속히 깨닫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실함이라는 속성과 재능이라는 속성 둘 다 긍정적인 속성이고,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긍정적인 속성은 많이 갖추거나 실현할 수록 좋은 일이라는 것은 참이지만 사소한 진리인 것 같다.
게다가 이 일반적인 교훈은 두 명 이상의 사람을 상정한다. 성실하지 않은 재능이 뛰어난 자와 성실한 재능은 보통인 자 말이다. 그런데 진지하게 자기 삶을 대면하는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 그리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다. 그래서 두 명 이상의 사람을 상정하고서 나오는 교훈의 내용은 그렇게까지 삶을 현명하게 만드는 데 실천적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은 자기 재능을 갖고서 살아가는 것이지, 그보다 더 낫거나 더 못한 다른 사람의 재능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한 사람 내부의 두 성향에 대한 재해석
(1) 재해석
원래 이솝우화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이 우화는 한 사람의 내부의 두 성향에 대한 이야기로 재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내면을 냉정하게 관찰해보면, 매우 크고 복잡한 과업을 당면했을 때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두 성향이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는 그 과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기 때문이고, 적기가 딱 오면 의지력을 발휘해 속도를 내는 방식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향(토끼)이다. 다른 하나는 과업의 규모와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는 그것을 보다 작고 단순한 과업으로 쪼개어 하나씩 꾸준히 해나가는 상당한 시간을 거치면 결국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향(거북이)이다.
(2) 토끼 우세 성향과 그 이유의 비합리성
합리적인 자기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토끼가 우세하기 쉽다.
토끼가 우세하기 쉬운 첫째 이유는, 인간이 자신이 처리해야 할 대상에 의해 압도당하는 기분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래서 자신이 도망칠 대상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대상이라면 어쨌거나 적당한 크기의 단순한 과업이라고 과소평가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크고 복잡한 과업의 규모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토끼가 장거리 경주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평소에 짧은 거리만 달린 경험에 비추어) 과소평가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처리해야 할 대상이 크고 복잡하다고 해서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은 매우 비논리적이다. 평생 하게 될 식사를 생각해보자. 이것을 하나의 과업으로 보게 되면, 그 과업은 정말로 규모가 크고 복잡한 것이다. 한번에 그 모든 양을 다 먹고 그 전부의 식사 메뉴와 준비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다 해야 한다고 상상하면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 번에 할 식사는 작은 양이다. 게다가 그런 식사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식사의 경우에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과업을 작고 단순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을 취할 수 있으면서도 일에 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토끼가 우세하기 쉬운 둘째 이유는, 휴식(또는 휴식 시간을 활용하여 진척시키려고 하는 장기적 기획을 추진하는 활동)에 대한 잘못된 태도 때문이다. (i) 그 중 하나는 과업 처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깨끗한 상태로 맞이하는 시간을 헛되이 열망하는 태도이다. 물론 사람은 휴식의 시간을 바라기 마련이고, 이것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휴식의 시간이 과업 처리 과정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간이기를 바라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를 사는 한, 인생의 어느 시기이건 대체로 어떤 중기간의 과업을 처리하는 중에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휴식이 모든 당면한 과업 처리를 완전히 완료하고 깨끗해진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인생에서 아주 일부 기간에만 달성 가능한 소원일 뿐이다.
(ii) 다른 하나는 휴식(또는 장기적 기획 추진 활동)의 시간이 전면적이고 길어야 한다는 태도이다. 물론 사람들이 전면적이고 긴 휴식을 바라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휴식으로서 감질맛 나지 않고 만족스럽고 생기를 완전히 복돋우려면, 전면적이고 긴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외부에서 주어진 과업 대신 자신이 주도적으로 설정하고 진행해나가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외부 과업에서 완전히 깨끗해진 상태가 필요하다고 들 수 있다. 그러나 전면적이고 긴 휴식이 언제나 휴식으로서 만족스럽거나 생기를 더 북돋는 것은 아니다. 전면적이고 긴 휴식으로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루 8시간 잠이 드는 것이다. 그 외에는 오히려 부분적이고 중간중간 자주 있는 휴식이 만족스럽거나 생기를 북돋을 수 있고, 이때까지 나온 연구결과들도 대체로 같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는 활동도 부분적이고 중간중간 자주 있는 자유시간에 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성이 높다. 정작 전면적이고 긴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주도적인 활동을 그렇게 잘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그런 활동도 하나의 크고 복잡한 과업인데, 그런 과업에 적합한 처리 방식을 익히지 못한 채로 시간만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 자유시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오히려 무기력해진다. 이를테면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 소설을 단 한권도 습작하지 못한 사람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소설을 제대로 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토끼가 우세하기 쉬운 세 번째 이유는, 최대 생산성을 성공적으로 발휘했던 드문 순간을 오히려 표준적이고 정규적인 기준으로 삼아 그 최대 생산성을 긴 시간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 보통의 경우라면 보토의 생산성을 중간중간 휴식하면서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토끼도 한참을 달리고 나서는 낮잠을 자야 했다. 차라리 너무 급하게 빨리 달리지 않고 좀 천천히 달리고 중간중간 체계적으로 쉬었다면 꾸준히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토끼는 우세하기 쉬운 성향이지만 그 성향을 유지할 실천적 이유가 되는 합리적 근거는 없다. 그러므로 토끼 성향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 거북이처럼 살아야 한다.
3. 거북이처럼 살기
거북이처럼 산다는 것은, 과업의 규모와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보다 작고 단순한 과업으로 쪼개어 하나씩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선 마음이 번잡하지 않을 것이다. 거북이 꾸준히 기어가듯이 삶을 꾸준히 살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감각의 연쇄이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성취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므로 성취감도 더 많이 경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처리해야 할 과업을 미루지 않고 꾸준히 하게 될 것이므로 마음이 편할 것이다.
첫째, 일을 쉽게 하기 위한 중간 점검을 종종 하면서 일을 쉽게 최소한의 질로 일단 완성하는 지름길로 진행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거북이는 꾸준히 목표지점까지 기어가는 것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여정을 풍성하게 하려고 중간에 친한 거북이에게 방문하고 안부를 묻는 것 등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다. 일을 거창하게 하려는 욕구는 버리고 가능한 간소하게 하는 것을 늘 목표로 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일단 압도 당하는 느낌이 훨씬 덜하게 되고 마감에도 덜 쫓기게 된다. 무엇보다도 초기 시행착오의 과정이 훨씬 더 중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장인정신을 최고도로 발휘한 결과물을 목표로 삼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압도 당하는 느낌이 강하고 마감에 쫓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행착오를 해석할 중심 틀이 사라지게 되고 그래서 상당한 시간을 투여했으면서도 일을 진척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일단 쉽게 최소한의 질로 완성할 수 있을까를 중간중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알아낸 지름길서 먼저 작업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지름길의 공통 구조는, 뼈대를 먼저 완성하고 살을 붙이며 장식을 하는 순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뼈대와 최소 적정 수준의 살이 완성의 최소 문턱이다. 그 이상은 시간과 정력이 남고 더 투여할 가치가 있을 때 추가로 진행한다.
둘째, 일의 과정을 메모하면서 전략을 짜고 게임하듯이 과정의 리듬을 느끼며 일을 진척시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과 공부를 하는 것보다 게임 하는 것을 더 편하고 쉽게 느낀다. 그런데 주관적인 정동을 제외하고서 과업의 구조와 행태만 관찰해보면 게임은 일 및 공부와 상당한 공통점을 가진다. 즉 처리해야 할 성공의 기준이 있으며 성공의 결과를 행해 진행하는 활동의 문법(적합한 전략을 짜고 그 전략에 따라 올바른 순서로 과업을 처리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A라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최소 3레벨에 올라야 하고 아이템을 a, b, c를 모아야 한다고 해보자. 그러려면 우선 K숲에 가서 힘이 약한 괴물들을 먼저 처리한다. 그 다음 Q, R, P 마을로 가서 각각 어떤 의뢰를 처리하여 그 보상으로 a, b, c를 받는다. 그 다음 A가 서식하고 있는 호수가 가서 아이템 a, b, c를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하여 A를 처치한다.) 그런데도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편하고 즐겁게 느껴지는 반면 일과 공부는 불편하고 싫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게임보다 일과 공부에 있어서 불필요하게 목표에 시선을 계속 두기 때문이다. 게임의 경우에는 불필요하게 목표에 시선을 계속 두지 않는다. 누군가 게임을 하기 시작한 1분 직후 곧바로 퀘스트 완료의 화면이 나오고 실제로도 게임 시스템에서 퀘스트 완료로 처리된다고 해보자. 그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의 경우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시선을 둔다. 그리고 대결 게임의 경우에도 적절한 승리의 비율만 보장되면(이것은 50%를 넘을 필요도 없으며 게임의 종류에 따라서는 10~20%의 승리 비율로도 족한 경우가 많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누군가 절대 승리가 아니면 게임은 괴롭다는 전제에서 게임에 임한다면 게임은 즐거운 활동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게임에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고 또 전략을 짜고 나면 해야 할 일들의 적절한 방법과 순서가 보다 분명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란스럽게 마음이 부유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게임의 구조는 마음이 혼란스럽게 부유하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가능한 전략들 중 하나를 구성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전략에 따른 방법과 순서를 따르는 차근차근한 활동이 마음을 집중시켜 준다.
이와 같은 차이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 차이가 줄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과 공부의 경우에도 목표는 과정을 틀 지우는 한에서만 시선을 잡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불필요하게 목표에 계속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일과 공부의 경우에도 전략을 짜야 할 필요성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전략을 일응 짜고 적절한 타이밍에 수정한 다음, 그 전략에 따른 과업의 적절한 방법과 순서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줄이는 데는 메모가 유용하다. 아예 지금 착수한 일이나 공부를 하나의 게임이라 보고 전략을 실제로 적어보고, 또 그 전략에 따라 처리해야 할 과업의 방법과 순서를 정확하게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에서 순서대로 과업을 처리하는 것처럼, 메모된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순서대로 과업을 처리하면 된다.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다르지만 메모는 종이 노트에 써도 되고 컴퓨터의 파일상에 써도 된다. <인생을 바꾸는 탐구 습관>에서는 종이 노트에 쓰는 것을 권했다. 왜냐하면 적어놓은 과업을 사선으로 지워나가는 쾌감이 더 높아지고, 또 선형적 텍스트를 적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과업의 구조도를 그리는 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 파일 상에서 쓰는 것이 자신의 기질에 더 맞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어느 쪽이 더 맞는지는 실제로 일관된 실험을 해보면 될 것이다.
메모는 목표로부터 과정에 시선을 적절하게 돌리게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의 감각을 생생하게 해주는 것 이외의 추가적인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 그것은 복잡한 현대인의 삶에서 과업의 빠른 전환과 재착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과업을 분명하게 적어두고 쪼개고 순서도까지 적어놓았다면, 중간에 다른 일을 처리하거나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재착수할 때 매우 편하게 된다. 이것은 다소 정신없는 반나절을 보내고도 상대적으로 다시금 곧바로 평온한 정신으로 주된 과업에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안전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거북이도 재촉하고 쫓기는 마음으로 기어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업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기어가는 과정 그 자체의 리듬을 즐겼음이 분명하다.
셋째, 눈 감기를 적절히 활용한다. 눈 감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선 중간휴식으로서의 눈감기이다. 눈을 감으면 과업에 정신이 산란함을 잊고 지금 하고 있는 과업으로 정신이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된다. 중간휴식이 정말로 휴식이 되기 위해서는 과업 이외의 외부 정보를 처리하는 형태의 휴식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더라도 눈을 감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하면서 몸은 편안하고 이완된 자세로 하는 것이 좋다. 또 컴퓨터 상에서 파일을 열거나 인터넷 화면을 클릭하여 기다릴 때에도 언제 화면이 뜨는지 조급하게 기다리는 대신 눈을 잠깐 감는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작은 휴식이 된다. 다음으로 과업을 진척시키는 추진력으로서의 눈감기이다. 과업의 종류에 따라서는 아예 눈을 감고 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컴퓨터에서 문장을 적어나갈 때 의외로 눈을 몇 초간 중간중간 감으면서 쓰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디어를 노트에 필기구로 적어나갈 때도 눈감기가 도움이 된다. 또는 어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법을 떠올리려고 할 때도 이완된 형태의 자세로 눈을 감고서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거북이는 기어가면서 피로를 줄이기 위해 눈을 감기도 한다.
넷째, 움직이기를 통해서 몸을 편한 상태로 유지한다. 몸이 경직되고 뒤틀린 상태로 있게 되면 실제 과업의 본성상 주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다리를 꼰 상태에서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몽상만 한다고 해도 몇 분만 지나도 우리의 정신과 몸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 다리를 꼰 상태에서 앉아서 과업을 진행한다면 과업 자체가 주어는 정신적 부하에 더하여 다리를 꼰 뒤틀린 자세에서 오는 몸과 마음의 부하를 함께 느끼게 되는 셈이다. 자신도 모르게 불편한 자세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직된 자세로 고정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좋은 방법이 몸을 여러 가지로 적절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몸을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적절한 환경이라면 가볍에 다리를 바닥에서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눈을 감으면서 지금 바로 직면한 작은 과업의 해결 방안 자체를 생각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거북이는 꾸준하게 이동할 수 있는 편한 자세로 움직였지 경직되어 얼마 못가 퍼질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5. 요약
(1) 뼈대와 최소한의 살 붙이기라는 최소 과업을 향한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그 지름길로 잘 가고 있는지 중간중간 명시적으로 점검한다.
(2) 메모하면서 게임하듯이 진행한다.
(3) 눈을 감으면서 중간 휴식도 하고 눈 감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중간 중간 눈을 감고서 한다.
(4) 중간중간 적절하게 몸을 움직여 가며 편한 자세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해준다.
이 네 가지 요령으로 거북이처럼 꾸준히 과정의 리듬을 즐기면서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