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번역] 포퓰리스트의 잘 속아넘어감
논문에 대한 설명:
이 논문에서 '포퓰리스트'라는 단어는 좌파나 우파 같은 특정 이념을 가리키지 않는다. 저자들이 정의하는 포퓰리즘은 사회를 "부패한 엘리트"와 "고결한 인민" 사이의 끝없는 싸움으로 바라보는 정치적 태도, 혹은 일종의 세계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퓰리즘은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사회주의처럼 체계적인 이념이라기보다는 정치 스펙트럼 어디에도 붙을 수 있는 "얇은 층의 이념"에 가깝다. 좌파 포퓰리즘도, 우파 포퓰리즘도 존재할 수 있으며, 포퓰리즘의 본질은 특정 정책이 아니라 반엘리트주의와 인민 중심주의에 있다. 저자들은 이런 포퓰리스트 태도가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을 믿는 경향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파고든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이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은 단순히 음모론을 더 잘 믿는 게 아니라, 근거가 약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 전반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석적 사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직관을 지나치게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포퓰리즘과 음모론의 연관성은 기존 연구에서도 자주 다뤄진 주제다. 그런데 저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포퓰리스트들이 음모론을 믿는 건, 음모론의 내용이 포퓰리즘의 세계관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애초에 근거가 부족한 주장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들이 꺼낸 개념이 바로 '포퓰리스트의 잘 속아 넘어감(populist gullibility)'이다.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충분한 근거 없이도 어떤 주장을 쉽게 참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포퓰리즘이 세상을 선한 인민 대 악한 엘리트의 구도로 단순화하는 마니교적 세계관에 기댄다고 본다. 이 세계관은 복잡한 현실을 흑백으로 나누어버리고, 그 결과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과 직관에 대한 신뢰를 키운다. 저자들의 가설은, 바로 이 직관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포퓰리스트들을 더 쉽게 속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포퓰리스트 태도 → 직관 신뢰 증가 → 음모론·가짜뉴스·초자연적 믿음에 대한 수용성 확대, 이런 경로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 1은 유럽연합 13개국, 총 70,88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포퓰리스트 태도와 음모론적 심성을 함께 측정한 결과, 모든 국가에서 포퓰리스트 태도가 강할수록 음모론적 심성도 높았다. 효과의 크기는 나라마다 달랐지만, 루마니아에서 스웨덴까지 예외 없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확인됐다. 포퓰리즘과 음모론의 연관성이 특정 나라나 문화에 국한된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음모론 자체가 이미 포퓰리즘의 세계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결과만으로는 더 넓은 의미의 '잘 속아 넘어감' 가설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 2에서는 미국 표본을 대상으로 범위를 크게 넓혔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뉴스 기사에 대한 신빙성 평가, 음모론적 심성, 구체적인 음모론에 대한 믿음, 개소리 수용성, 초자연적 믿음을 모두 측정했다.
뉴스 신빙성 실험에서는 동일한 기사에 CNN·CBS 같은 주류 언론 배너를 붙인 조건과 연구자가 만든 가상의 대안 매체 배너를 붙인 조건을 비교했다. 당초 연구자들은 포퓰리스트들이 주류 언론을 덜 믿고 대안 매체를 더 믿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출처가 주류든 대안이든 상관없이 기사 자체를 더 쉽게 믿었다. 특정 매체에 대한 편향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정보 자체를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음모론 쪽 결과도 연구 1과 일치했다. 달 착륙 조작설이나 9·11 사전 인지설 같은 구체적인 음모론에 대한 믿음도 포퓰리스트 태도와 함께 높아졌다.
연구 2에서 특히 흥미로운 측정 항목 중 하나가 개소리 수용성이었다.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는 문장을 심오한 말처럼 느끼는 경향을 측정한 것인데, 이를테면 "전체성은 무한한 현상들을 잠재운다" 같은 문장이 얼마나 깊은 뜻을 담은 것처럼 느껴지는지를 물었다.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말을 더 심오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환생, 점성술, 초능력 같은 초자연적 믿음도 마찬가지였다. 포퓰리스트 태도는 음모론을 넘어, 근거 없는 주장 전반에 대한 수용성과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연구자들은 처음에 분석적 사고력 부족을 원인으로 의심했고, 인지반성검사(Cognitive Reflection Test)를 통해 이를 검증했다. 그런데 분석 결과, 분석적 사고력은 이 관계를 설명하지 못했다. 포퓰리스트들이 여러 주장을 더 쉽게 믿는 현상을 단순히 생각을 덜 해서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구 3은 다른 설명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인지 욕구와 직관에 대한 신뢰를 따로 측정했다. 인지 욕구는 별다른 설명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직관에 대한 신뢰는 달랐다. 음모론적 심성, 음모론적 믿음, 개소리 수용성, 초자연적 믿음에 대한 효과를 모두 유의하게 매개했다.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할수록 자기 직감을 강하게 믿었고, 그 직관 신뢰가 다시 근거 없는 주장들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구조였다.
정리하면 저자들의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포퓰리스트 태도는 음모론적 믿음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째, 그 연결은 음모론에만 국한되지 않고, 뉴스 신빙성 판단, 개소리 수용성, 초자연적 믿음 등 더 넓은 형태의 믿기 쉬움으로 이어진다. 셋째, 그 핵심 심리적 메커니즘은 분석력 부족이 아니라 직관에 대한 과도한 신뢰다.
저자들은 여기서 포퓰리즘에 관한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한다. 포퓰리즘은 기존 엘리트와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다양한 주장들에 대해 오히려 덜 비판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를 향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근거 없는 주장 앞에서는 더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셈이다.
저자들은 연구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세 연구 모두 횡단면 연구였기 때문에, 포퓰리스트 태도가 잘 속아 넘어감을 만들어내는 건지, 아니면 반대로 쉽게 믿는 성향이 포퓰리스트 태도를 강화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강한 상관관계다. 저자들은 두 가지가 서로를 강화하는 양방향 관계일 가능성도 열어두면서, 이를 확인하기 위한 종단연구가 필요하다고 시사한다. (역자는, 어떤 사고방식이 믿음의 네트워크를 낳고, 그 믿음의 네트워크가 다시 사고방식을 낳는 메커니즘을 고려한다면, 양방향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쪽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