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번역] 해리 프랭크푸르트 "로버트 폴 울프의 무정부주의"
논문 내용에 대한 역자의 소개: 프랭크프루트의 「The Anarchism of Robert Paul Wolff」는 단순히 울프의 무정부주의 결론에 반대하는 논문이 아니다. 그의 핵심 목표는 울프가 스스로 제시한 전제들과 논증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무정부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전체가 개념적으로 혼란스럽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프랭크프루트의 비판은 크게 여섯 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프랭크프루트는 울프가 정당성 있는 정치적 권위의 가능성을 동시에 부정하면서도 긍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울프는 한편으로 법적 정당성(de jure legitimacy)을 가진 정치적 권위는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시민들의 약속과 동의에 기초한 국가는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시민들의 동의와 약속에 기초한 국가가 정당할 수 있다면 정당성 있는 정치적 권위는 적어도 가능한 것이 된다. 따라서 울프는 정당서 있는 정치적 권위는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권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프랭크프루트는 이것이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 명백한 모순이라고 본다.
프랭크프루트는 이러한 모순의 원인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울프의 혼동에서 찾는다. 첫 번째 질문은 정당성 있는 정치적 권위가 개념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며, 두 번째 질문은 정당성 있는 정치적 권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프랭크프루트에 따르면 울프는 실제로는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즉 그는 개인의 자율성을 희생하면서 권위를 정당성 있게 만드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 결론을 정당성 있는 권위는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잘못 전환한다. 따라서 울프는 “정당성 있는 권위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정당성 있는 권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혼동하고 있으며, 프랭크프루트는 이를 논증의 첫 번째 근본적 오류로 간주한다.
다음으로 프랭크프루트는 울프가 자율성 개념의 적용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울프는 자율적 인간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핵정책과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독립적 판단을 형성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랭크프루트는 정치적 의사결정과 개인적 행위결정을 구분한다. 정부가 핵정책을 결정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 정책을 직접 수행하거나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핵정책에 관한 의견을 스스로 형성해야 한다는 의무가 곧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율성의 의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프랭크프루트가 보기에 울프는 정치에 관한 판단과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판단을 혼동하고 있으며, 자율성 개념을 정치 영역 전체에 무분별하게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프루트의 가장 중요한 비판은 자율성 개념 자체에 대한 것이다. 그는 울프가 논의 전반에서 자율성을 서로 다른 두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의미에서 자율성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타인의 명령은 결코 자신의 행위를 위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것이 자율성이라면 정치적 권위는 자율성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울프가 제시하는 침몰선 사례에서는 전혀 다른 개념이 사용된다. 그 사례 속 인물은 선장의 명령에 따르지만 단순히 선장이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독자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행동한다. 그는 명령을 따르지만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 프랭크프루트는 이것이 실제로 울프가 사용하는 자율성 개념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자율성이 요구하는 것은 타인의 명령을 절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명령을 비판 없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서 프랭크프루트는 결정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헌정국가의 시민 역시 공무원이 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그는 헌법이 정한 절차와 한계 안에서만 권위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 시민은 권위를 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정당성의 조건들이 충족되었는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한다. 이러한 구조는 침몰선 사례에서 선장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 보여주는 구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울프 자신의 자율성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헌정국가는 자율성과 양립 가능하다. 결국 자율성으로부터 무정부주의가 도출된다는 울프의 핵심 추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프랭크프루트는 울프가 인정하는 유일한 예외인 만장일치 직접민주주의 논의를 검토한다. 울프는 만장일치 직접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이 절차에 동의하고 그 절차에 따라 도출된 결정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권위와 자율성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랭크프루트는 이것이 사실상 헌정주의의 전형적인 정당화 논리라고 지적한다. 시민들은 모든 결정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산출하는 절차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절차의 결과에 자신을 구속한다. 이것은 현대 헌정국가의 정당화 논리와 동일하다. 따라서 울프가 만장일치 직접민주주의를 승인하는 순간 그는 개인이 절차에 대한 동의를 통해 미래의 자신을 구속할 수 있다는 원리를 승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치적 권위는 원칙적으로 가능해진다. 결국 울프가 인정하는 유일한 예외는 그의 무정부주의 전체를 붕괴시키는 예외가 된다.
요컨대 프랭크프루트는 울프의 무정부주의가 정치적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반박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울프는 정당한 권위의 가능성과 도덕적 정당성을 혼동하고, 자율성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며, 자율성을 절대적 의미와 조건적 의미 사이에서 비일관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그가 스스로 인정하는 만장일치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는 헌정적 정치 권위의 정당화 논리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자율성은 정치적 권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울프의 핵심 논제는 성립하지 않으며, 그의 무정부주의는 자율성 개념의 비일관적 사용에 의존하는 논증 실패에 불과하다는 것이 프랭크프루트의 결론이다.
역자의 논평:
프랭크프루트의 울프 비판은 울프의 무정부주의 논증이 자율성 개념을 비일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비판은 정치적 권위의 본질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않는다. 그 핵심 질문은 입헌민주주의 국가가 그 자체로 어떤 전반적인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총체적으로 정당성 있는 권위를 가지며, 따라서 국가의 명령이 원칙적으로 복종 의무의 대상이 되는가, 아니면 입헌민주주의 국가는 그러한 총체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고 단지 구성원들에게 규범적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기준점(benchmark)으로서의 지시를 형성할 정당성만 가지며, 실제 개별 국가행위의 정당성은 절차적 조건뿐만 아니라 내용적 도덕 요건까지 충족할 때에만 복종 의무의 대상이 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 구분에서 울프는 명백히 후자의 입장에 선다. 울프의 철학적 무정부주의는 정치적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그는 국가의 폐지나 정부의 부존재를 곧바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국가도 그 자체로 복종 의무를 발생시키는 정당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유용할 수 있고, 질서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이 실제로 옳은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은 철학적 무정부주의와 양립 가능하다. 철학적 무정부주의가 부정하는 것은 “국가가 명령했다는 그 이유 자체만으로―내용 독립적으로―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명제이다. 국가가 명령한 것은 그것이 여건상 그리고 내용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일 때에만 비로소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사람은 울프의 기본 입장, 국가가 어떤 것을 명령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독립적인 복종 의무를 발생시키는 권위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울프의 기본 입장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랭크프루트가 실제로 어느 입장에 서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울프를 반박하면서 정치적 권위가 개념적으로 가능하며 자율성과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보이려 한다. 그러나 그는 입헌민주주의 국가가 총체적 정당성을 가지며, 그 명령이 원칙적으로 복종 의무를 발생시킨다는 명제를 직접 논증하지 않는다. 프랭크프루트가 논증하는 것은 시민이 절차에 동의할 수 있고, 조건적으로 권위를 수용할 수 있으며, 그러한 조건적 수용이 자율성과 양립 가능하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가 전체가 총체적 정당 권위를 가진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시민이 헌법질서에 참여하고, 절차를 존중하며, 법을 중요한 규범적 이유로 취급하더라도, 개별 법률이나 국가행위가 내용적으로 부정당하다면 복종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랭크프루트의 논문은 울프의 특정한 자율성 논증을 약화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철학적 무정부주의 자체를 논박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가 실제로 반박한 것은 자율성과 정치적 권위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철학적 무정부주의자는 자율성과 정치적 권위가 일정한 의미에서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국가의 명령이 그 자체로 복종 의무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는 조정 장치, 규범적 기준점, 또는 실천적 이유를 제공하는 제도일 수는 있지만, 개별 시민의 최종적 도덕 판단을 대체하는 권위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프랭크프루트가 후자의 입장, 곧 국가가 총체적 정당 권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입장에 동의한다면, 그는 실질적으로 철학적 무정부주의에 동의하는 셈이 된다.
다만 이 문제는 울프 자신의 논증 방식에도 책임이 있다. 울프는 정치적 권위의 문제를 자율성의 문제로 정식화한다. 그러나 자율성은 행위자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울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실제로 요구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판단하는가이다. 이 때문에 그의 논증은 “사람은 스스로 검토한 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명제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러나 이 명제는 도덕의 가장 기초적인 진리가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검토한 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해야 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할 수 있고, 편향되어 있을 수 있으며, 추론 능력이 부족할 수 있고, 사실관계를 오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사실과 “실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출발점은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반드시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지 않아야 한다”는 동어반복적 진리이다. 이 명제는 행위자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 규범의 요구를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여기에서 말하는 규범은 좋은 삶과 나쁜 삶에 관한 포괄적 선관의 문제가 아니라, 엄격한 권리와 의무에 관한 객관적 도덕규범이다. 만약 그러한 객관적 도덕규범이 존재한다면, 정치적 권위의 핵심 문제는 시민이 스스로 판단했는가가 아니라 국가의 명령이 실제로 그러한 객관적 도덕규범, 특히 엄격한 권리와 의무 규범에 부합하는가가 된다.
이 관점에서는 철학적 무정부주의가 자율성 개념을 경유하지 않고도 논증될 수 있다. 사람은 객관적 도덕규범에 따라야 하며, 국가의 명령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덕적 의무를 창출하지 못한다. 국가 명령의 정당성은 그 명령이 객관적 도덕규범, 특히 권리와 의무의 엄격한 요건에 부합하는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규범적 기대를 형성하고 행위를 조정하는 기준점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개별 국가행위의 내용적 정당성을 대체하는 총체적 권위를 획득하지는 못한다. 시민이 따라야 하는 것은 국가가 명령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명령이 실제로 따라야 할 것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살인, 절도, 사기를 금지하는 법이 있다면, 그러한 법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국가가 그것을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살인, 절도, 사기가 원래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객관적 도덕규범을 제도적으로 식별하고 공표하며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국가가 도로에서의 좌측 통행을 지시하는 법을 제정했다면, 그러한 법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법을 기준으로 삼아 행위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도 그 법을 기준으로 삼아 행위를 조정할 것이라는 규범적 기대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국가의 명령 자체가 독립적인 복종 의무를 발생시킨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국가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국가가 옳은 규범을 말하고 있는가이다.
이렇게 보면 프랭크프루트와 울프의 논쟁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가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율성과 권위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논쟁하지만, 정치적 권위의 더 근본적인 쟁점은 객관적 도덕규범과 국가 명령의 관계에 있다. 울프의 오류는 정치적 권위의 문제를 자율성의 문제로 환원한 데 있으며, 프랭크프루트의 한계는 그 환원된 논증의 내부적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데 머문다는 데 있다. 객관적 권리와 의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철학적 무정부주의는 자율성이라는 주관적 검토 의무를 경유하지 않고도 논증될 수 있다. 그 결론은 국가는 권리와 의무를 식별하고 조정하며 제도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독립된 총체적 정당 권위를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