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번역] 해리 프랭크푸르트,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평등"
이 논문, 프랭크푸르트의 「도덕적 이상으로서 평등」의 핵심 논지는, 경제적 평등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도덕적 이상이라는 통념을 비판하고, 분배 정의의 진정한 도덕적 기준은 평등이 아니라 충분성(sufficiency)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양의 경제적 자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충분한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런 도덕적 의의를 갖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고 가치 있게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준에 미달하는가 여부이다. 따라서 평등주의가 문제 삼는 불평등은 실제로는 대개 빈곤이나 결핍의 문제를 잘못 기술한 것에 불과하며, 사람들이 불평등에 대해 느끼는 도덕적 불편감 역시 실상은 누군가가 너무 적게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이지 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 적게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프랭크푸르트는 이러한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평등주의의 대표적 논증들을 비판한다. 그는 평등분배가 총효용을 극대화한다는 한계효용 체감 논증이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의 효용함수는 서로 동일하지 않으며, 돈의 효용 역시 반드시 체감하지 않는다. 특히 저축과 축적을 통하여 일정한 효용 문턱값을 넘을 수 있는 경우에는 후속적인 자원이 선행 자원보다 더 큰 효용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평등분배가 총효용을 극대화한다는 결론은 정당하게 도출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는 희소한 자원을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생존이나 복지의 문턱값 아래에 머물게 하여 총효용을 감소시키는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것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문의 가장 기저에 있는 통찰은, 평등주의의 핵심적 오류가 인간의 삶의 번영과 성공을 본질적으로 비교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 점이다. 평등주의는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한가, 나의 삶이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중심적인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그 결과 평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실제 필요와 관심,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조건들을 탐구하기보다 타인의 경제적 위치를 지속적으로 주시하도록 만든다. 평등주의가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것은, 나의 삶의 성공 여부가 타인의 성공 여부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프랭크푸르트에 따르면 이러한 전제는 결코 논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거의 항상 거짓이다. 어떤 사람이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그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다는 사실은 그의 삶의 질에 아무런 내재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프랭크푸르트는 평등주의를 단순한 이론적 오류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해로운 사고방식으로 간주한다. 평등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의 필요와 목적에 비추어 평가하는 대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평가하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만족시키는지에 대한 성찰로부터 멀어지고, 타인의 성취와 부를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게 된다. 프랭크푸르트는 이를 일종의 소외(alienation)라고 본다. 평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타인의 삶을 의식하게 만들며, 자신의 번영을 독립적인 가치로 경험하기보다 상대적 위치의 문제로 경험하게 만든다. 따라서 평등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약화시키며,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경쟁심·시기심·원망을 조장할 위험을 내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평등주의가 추구하는 사회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보다 타인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묻게 만드는 사회일 수 있다. 그리고 평등주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살도록 하기보다는 타인과의 비교 하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도록 만드는 주의일 수 있다. 프랭크푸르트가 보기에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은 사람들이 서로 동일한 양을 소유하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만족스럽게 영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을 확보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분배 정의의 핵심 문제는 “누가 누구보다 얼마나 더 많이 가지는가”가 아니라 “각자가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는가”이며, 인간의 삶에 대한 올바른 도덕적 관심 역시 상대적 위치가 아니라 삶의 실질적 질에 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