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번역] 카우프만 "정형 원칙이라는 미신"
이 논문은, 롤즈에 대한 노직의 비판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는, 롤즈의 정의 원칙과 추론 방식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제기되는 공격이 사실 노직이 대부분 제기한 것의 반복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이 지적하는 노직 논리의 구멍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직은 롤즈의 이론이 '정형 이론', 그러니까 무슨 분배 패턴에 맞춰서 분배를 할 뿐이지, 그 재화들을 갖게 된 경위(예를 들어 시장에서 수요가 있는 서비스와 재화를 공급하여 그 대가로 받았다거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증여받았다/또는 훔쳤거나 강탈했다)는 고려하지 않는 비역사적인 패턴에 기반하여 간섭하는 이론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첫째, 노직 자신이 제시한 정형 이론(patterned theory)의 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롤즈의 이론은 정형이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노직 자신이 제시한 기준에 의하면, 정형이론이란 (i) 특정한 자연적 차원의 변수에 따라 분배를 일치시키며 (ii) 특정한 선들(goods-사회적 가치들, 재화들 등등)의 특정한 분포 (예를 들어 A에게는 100, B에게는 200을 갖게 하라)에 일치시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롤즈 차등 원칙은 (i), (ii)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롤즈의 정의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회질서가 장려하는 어떤 일들을 하기로 선택하거나 실제로 하기 이전에(즉 역사과정이 전개되기 전에는) 어떠한 구체적인 분배 상태도 예측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특정한 분배 상태를 위하여 그런 원칙이 고안된 것도 아닙니다. 노직 자신의 이론이 한계생산성이라는 자연적 차원에 연결시킨 응분에 따라 보상을 연결시키는 정형 이론이 아니듯이, 롤즈의 이론도 무슨 더 나은 처지와 더 못한 처지에 따라 특정한 양의 보상을 연결시키는 정형 이론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노직은 롤즈의 이론이 (i) 자격에 관한 유관한 역사과정적 정보를 무시하고 (ii) 사람들의 삶에 강제적으로 간섭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형 이론에 전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험을 친 학생들의 등급을, 그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고 치루어냈는가라는 역사과정적 정보를 무시하고,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매긴다고 가정해보라고 가상적 사고실험을 제시합니다. 이 사례 유비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a) 정의론은 어떤 특수 맥락 내의 규범이 아니라, 항구적인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정당화하는 정의 원칙임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b) 수행의 탁월성의 고려가 특별히 비중이 큰 사안을 의도적으로 고른 것입니다.
롤즈 정의 원칙에서, 사람들은 제도질서가 장려한 일을 함으로써 그 질서 내에서 합법적인 권리주장(합법적 기대치)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어 시험을 잘 본 사람은 영어가 많이 쓰이는 직업에 가서 돈을 좀 더 벌 수 있게 된다는 기대치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적 정보는 응당하게 고려됩니다. 게다가, 삶에 강제적으로 간섭한다고 주장하려면, '삶'의 경계를 먼저 획정해야 합니다. 즉, 시장교환에 의해 주어진 재산을 내 것이라고 미리 전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논의가 이루어지는 맥락에서는 시장교환에 의해 주어진 재산이 온전히 내 것인지 여부가 다툼의 주제가 됩니다. 따라서 내 것임이 논증된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고려사항에 의해 시장교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유하게 된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은 삶에의 강압적 간섭이라는 논증이 확립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