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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학] 탐구하는 사람의 생활전략: 작독운향

by 시민교육 2022. 4. 3.

[일러두기: 이 글은 <인생을 바꾸는 탐구습관>을 읽은 독자들을 위한 보충글이다.] 

 

탐구는 복합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장거리 경주다. 왜냐하면 탐구가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기본을 탄탄히 보충해 가면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를 포착해서 충분한 자료 조사와 독창적인 사고를 더한 풀이 이후에 이 해법을 어떤 형식으로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 장거리 경주는 잠깐 길을 잃으면 아차 하는 사이에 세월이 지나치게 빨리 지나가버린다. 사실 탐구가 특히 그렇게 길을 잃기 쉬운 종류의 활동이다그러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소년이 아차 하는 사이에 노인이 되어버리고 학문적 성취는 별반 하지도 못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탐구에 몸 담고 있는 생활을 해야지 마음 먹더라도 빠지기 쉬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함정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과정이 아니라 성취에 의식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성취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원하는 대로 일이 진척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손을 놓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만 조급해져 보통은 한숨만 푹푹 쉬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둘째, 탐구를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 통째로 주어지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거나 염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자꾸 자투리 시간만 나고 다른 일로 정신이 번잡한 시기이기 때문에 탐구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탐구만 하라고 통째로 주어지는 시기는 오지 않는다. 사실 탐구를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하는 직업인 교수직도 탐구 이외에 정신을 번잡스럽게 하는 일들이 많다. 

충분히 탐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기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탐구의 길과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그 개인을 위해서나 나머지 구성원들을 위해서나 그다지 좋지 못하다우선 개인적으로 보자면 삶의 질을 고양시켜주었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었던 삶의 선을 누리지 못하는 결과가 생긴다. 탐구의 능력과 기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경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상당한 지루함을 가져다준다. 이런 이들에게는 인간의 더 고차적인 지적 능력을 유의미하게 발휘할 기회가 계속해서 제시되는 삶을 사는 것이 복지에 상당히 중차대하다. 탐구의 능력과 기질을 가진 사람도 사실 젊음의 활기가 유지되는 시기까지는, 그런 기질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과 똑같이 일상을 보내도 그다지 차이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기가 넘어가게 되면 이전에는 재밌었던 경험들은 반복으로 닳아 재미를 상당히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물론 이따금씩 누리는 여가 활동이 약간의 마디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이것은 일상에서 늘 누리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탐구의 길을 꾸준히 갔다면 언제나 할 활동이 있을 것이고 적어도 방향을 잃고 지루해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탐구가 생산적으로 진행될 때 그것은 사회에 상당한 선을 안겨준다. 그런 선은 사람들의 노동을 절약해주고 안전을 도모해주는 기술 발전으로 생기는 직접적인 이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쇄신하여 산출되는 진리의 배경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가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선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장거리 게임에서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보증되는 구조화된 탐구생활기법이, 탐구의 길과 멀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한 해법이 될 것이다.

 

탐구생활기법은 꾸준함과 최소수준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최소수준이 꾸준함과 합쳐질 때, 성취에 초점을 두는 조급함이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최소수준과 꾸준함은 서로 보완하는 요소이다. 최소수준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할 수 있고, 꾸준하게 하기 때문에 최소수준이어도 된다.

 

그러면 활동의 최소수준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규범학을 탐구하는 사람으로 다음과 같은 일응의 기준을 생각해보겠다. 자신이 탐구하는 주제의 특성에 따라 이를 변형하여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음 각 유형별로 1단위의 일을 하는 것이다. 작 1단위, 독 1단위, 운[수식] 1단위, 향 1단위. 

 

작독운향

 

: (블로그 글이나 일기가 아니라) 정식으로 논문이나 책으로 발표할 글, 또는 그러한 글에 들어가게 될 쪽 글(조립물)을 하루에 2문단, A4 10point로 반 페이지를 매일 꾸준히 쓴다. (2문단이 1단위[200자원고지 5매 정도]. 목차의 작성은 2단위, 목차 수정은 1단위. 최소시간으로 30분 할애.)

 

: 지금 쓰고 있는 바로 그 주제, 또는 바로 다음에 쓸 주제에 관한 자료 및 선학자의 문헌을 읽는다. (책으로는 1챕터가 1단위, 논문은 1편이 1단위)

 

: 30분의 운동 (30분의 운동이 1단위)

 

: 향후 탐구에 도움이 될 기술의 습득과 훈련(30분이 1단위), 향후 쓸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자료 및 문헌 읽기 (1챕터 및 1편이 1단위), 향후 쓸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아이디어 및 주요 논증노선 정리, 문헌조사 및 다운로드 받기, 쪽글쓰기, 번역하기, 정리하기 등등 향후 도움이 될 모든 활동.

 

먼저 작을 살펴보도록 하자.

보통은 공부하는 이의 탐구는 쓰는 것으로 완결된다. 그러므로 쓰는 것이 맨 앞에 오며, 하루 전체를 살펴보았을 때 시간적으로도 맨 앞에 오는 것이 좋으나 사람의 기질과 사이클에 따라 이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 전체로 보았을 때 중간 정도의 시간은 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루에 2문단(원고지 5매, A4 10point로 0.5매)을 쓰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글의 내용 자체를 고치는 퇴고도 동일하게 취급한다.

조립물(쪽 글)이란 하나의 쟁점에 대하여 작은 완결된 논증을 하는 글이다. 이런 글들을 평소에 잘 써놓으면, 그 쟁점을 다루어야 하는 복합 쟁점에 관한 글을 빠르게 써나갈 수 있다. 

 

다음으로 독을 살펴보자.

어떤 글에 대하여 쓰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주제에 관한 모든 것을 이미 다 읽은 것은 아니다. 쓰다가 추가적인 문헌 이해가 필요하다 그 문헌을 빨리 확보하여 곧장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음 순서로 발표할 글도 이미 어느 정도 쓰는 상태이므로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기 전에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다 읽는다는 이미지를 갖기 쉽다. 그래서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에 관련된 문헌 조사를 게을리 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글을 쓰면서 촉발된 사고를 더 정교하고 깊이 있게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를 하나의 독립된 일의 범주로 잡아놓는 것이 좋다. 

다만 글쓰기가 초반을 넘어서서 소쟁점 모두에 대하여 결론을 도출해놓게 되면, 해당 주제에 관한 읽기는 더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는 바로 다음 글을 쓸 주제에 대해서 1단위씩 읽는 것으로 대체한다. 

 

다음으로 운[수식]을 살펴보자. 운동은 꾸준한 탐구를 위해서는 필수이다. 근력운동과 심폐운동을 같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수영이나 테니스 같이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이 없다면 헬스장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헬스장에서 쉬지 않고 운동 종류를 바꿔가며 30분만 딱 열심히 하고 나서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다시 신선해진다. 그래서 오히려 하루 중 다시 한 번 시작한다는 느낌이 드는 부스터가 된다. 게다가 헬스를 적어도 평일 매일 하면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육체적, 정신적 컨디션 수준이 상향된다. 

작독운향에서는 동만 적어놓았지만 여기에는 실은 3가지 일[운수식]이 모두 포함된다. 하루 30분의 자기 능력의 70%를 활용하는 운동, 최소 7시간 20분 이상의 '수'면, 건강하고 적정한 '식'사. 건강하고 적정한 식사는 하루 2끼는 학교 급식과 같이 영양소가 골고루 있는 것을 적정 분량으로 먹는 것을 뜻한다.

장기전에서는 이 세 가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머지를 할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특히 탐구에서는 창조적 기여가 중요한데 이 세가지를 하지 않으면 창조적 기여는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잠을 4시간 자고서도 책을 타이핑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쉬운 책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논증을 전개하는 글을 쓰라고 한다면 아주 힘들다. 어려운 책도 읽기 힘들다. 또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머리를 쓰기 힘들다. 그래서 '운수식'은 꼭 하루의 할 일로 들어간다. 다만 잠과 식사는 습관만 잘 형성해놓으면 수동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을 정해놓고 할 일은 아니므로 굳이 명시적인 두문자로 포함하지 아니했을 뿐이다. 완전히 전개된 두문자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작 독 운[수식] 향

 

마지막으로, 향을 살펴보자.

향후 탐구에 기여하는 활동은 탐구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향'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탐구를 하게 된다. 글을 어떤 요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풀려면 아주 많은 학습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 학습을 하지 않고 그 글을 마무리짓는다면, 그 글은 아마도 용두사미 아니면 겉만 번드르르한 글이 될 것이다. 양적인데 치중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

예를 들어 새로운 통계기법을 활용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다음에 다룰 것인데, 그 통계기법은 일이주 사이에 익힐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 법학의 어떤 주제는 관련된 철학을 공부해야 풀 수 있는데, 그것도 일이주 사이에 공부해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 분야의 주제 자체가 매우 긴 기간의 공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향후 다룰 문제에 필요한 해결도구들을 꾸준히 갖추고 또 새로운 문제들을 탐색하기 위해서, 지금 직접 쓰고 있는 글이나 바로 다음에 쓸 글이 아닌 주제와 관련해서도 꾸준히 읽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도 아무런 범주를 부여하지 않으면 마냥 손놓고 있게 되고 그래서 발전이 없게 되므로 분명하게 단위를 부여해서 하루에 1단위 이상은 확보해야 한다. 

 

작문, 독서, 향후 준비의 1단위는 어떤 분야를 평일 6시간 이상씩(그 분야애 관하여 강의를 듣는 시간과 혼자 공부하고 훈련하고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6년 이상 공부한[대략적으로 추산한다면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각각을 1단위씩만 한다고 했을 때 보통 최대 1시간 정도가 걸리므로, 최대 4시간 정도면 다 마칠 수 있다

한 분야를 6년 이상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예를 들어 그 분야의 전문적인 책의 한 챕터나 논문 한편을 1시간 내에 읽는 것은 다소 버거울 수도 있겠다. 그러면 자신이 1시간 걸리는 데 적합한 목표를 설정하여 1단위를 정하면 된다. 이를테면 독서의 1단위를 논문 반편, 반 챕터, 작문의 1단위를 1문단으로 설정하면 되겠다.

그러나 6년 이상 공부한 사람이라 하여도 이 단위를 더 늘리지는 않는 것이 좋다. 최소수준의 전략은, 그 최소수준을 넘는 것을 전혀 금하지 않는다. 그러면 최소수준을 넘었다는 여유로운 기분을 만끽해야지, 최소수준을 높게 잡아서 조급함을 초래하면 좋지 않다.

이 최소수준 전략은 전업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과 부업으로 연구하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탐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총 4단위의 최소기준을 바꿀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전업이라면 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여하여 과잉성취함으로써 발전적 연구를 더 많이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부업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평일에 매일 4단위를 다 해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주말 중 하루 정도를 평일에 모자란 시간을 메우는 용도로 사용하면 좋다. 이렇게 꾸준이 할 일의 범주를 정해두었을 때와 정해두지 않았을 때는 생활이 내실 있게 조직되는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낳는다. 전업으로 연구를 하는 직업이라 할지라도 강의, 채점, 학교와 학회의 행정, 외부 위원회 일 등을 하다가 일주일 정도가 탐구 본연의 과업에는 바쳐지지 않은 채 깜빡 날아갈 수 있다. 부업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은 그럴 위험이 더욱 크다. 작독운향은 필자가 그런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변호사를 하면서 학위과정을 밟고 논문을 쓰면서 개발한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 요령을 더하고자 한다.

 

첫째는 을 이행하는 방법은 투 트랙이라는 것이다. 2문단을 써도 되지만 30분을 보내도 된다.

어떤 날은 1문단도 제대로 못 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전에 쓴 부분이 틀렸다고 생각되어 크게 수정하거나 지웠을 때는 그런 기분이 더 든다. 그러면 그 지점에서 딱 막혀서 글쓰기가 중단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작독운향의 의 경우에는 과업 1단위 외에도 시간 1단위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 작문의 시간 1단위는 30분이다. 즉 작문 시간 30분을 최소한 연속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30분 동안은 다른 어떠한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평소에 재중하지 않는 공간(회사나 집 이외의 공간)으로 딱 1시간 이내에만 있겠다 하고 가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열고 그 이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하지 않고 30분은 그 프로그램 앞에 (잠을 자지 않고) 있기만 하면, 1단위를 실행했다고 간주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작문 프로그램을 열어 놓고 커서만 바라보다가 명상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도 을 한 것으로 친다. 이것을 하지 않은 것으로 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작문을 하면서 연속으로 30분을 보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중간에 논증 흐름이 막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사고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장애를 돌파하는 전략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눈을 감고 생각하고 써보는 것이다. 생각이 막힐 때에는 일단 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 다른 곳에 가거나 다른 것을 보거나 다른 것을 듣거나 하지 않는다. 또한 눈을 감고 키보드 위에서 손을 계속 놀리는 것도 좋다. 글이 화면에 써지는 모습을 보지 않고 오로지 나의 머릿속에 만들어내는 문장에 집중하면서 일단 써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문장의 완성도는 떨어지겠지만 일단 사고를 외부로 표현하게 된다. 고치는 것은 나중이다. 쓰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고치려고 하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게 된다. 고치는 시간을 따로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 때로는 눈을 감는 대신 눈동자를 오른쪽 위를 향하고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하면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무런 추가 정보를 주지 않는 천장이 되고, 게다가 좌뇌가 활성화된다.

두 번째는 연습장에 다음 논증 흐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논증 전략을 세부적으로 세워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고가 활성화되어서 막힌 부분을 뚫기 쉬워진다. 특히 논증 흐름이 막힌 부분은 실제로 정교한 논증이 아직 나의 머릿속에서 완성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논증을 구성하는 일과 표현하는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하니 막히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이 결합된 채로 잘 풀려나갈 때도 많다. 그러나 막힐 때에는 인위적으로 이 작업을 분리하여서, 연습장에 직접 손으로 글을 써보면 좋다. 이렇게 그때그때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구조도를 표현하고 논증 흐름 나뭇가지를 그리려면 책상이 넓은 것이 좋다. 그래야 키보드나 노트북을 치우고 바로바로 연습장을 쓰고, 그 다음에 연습장을 독서대에 세운다음 그것을 보면서 다음 부분을 바로바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떨 때는 써야 할 내용이 지나치게 한꺼번에 생각나서 정신이 번잡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때에도 써야 할 사항들은 공책에 정리해두고 나면 한 번에 하나만 기계적으로 써나가면 되기 때문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게 된다. 연습장에 적어둔 것들은 좀 더 명확한 목표를 제공해준다. 저것만 다 쓰면 할 일이 끝나게 되니까 말이다.

세 번째는 강의를 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글로 논증하려고 하는 내용을, 청중을 눈앞에 두고 말로 설명한다고 상상해보면, 강사로 칠판 앞에 선 자신이 만들어내는 문장들을 받아쓴다는 식으로 글이 좀 더 잘 나가게 된다.

어쨌든 30분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쓰는 데만 투자하는 루틴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1단위가 1시간이 아니라 30분인 이유도 있다. 리듬이 좋을 때 30분이면 2문단을 쓴다. 특히 퇴고를 나중에 미루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래서 최고 리듬이라고 일단 간주를 하고 30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작독운향 중에 부분을 빨리 완성하고 다른 일을 하자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좋다. ‘부분이 계속 늘어지게 되면 다른 일들도 능률적으로 하지 못하니 말이다.

 

두 번째 권고사항은 퇴고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블로그에 쓰는 글들 같은 것은 부러 퇴고하지 않는다. 문맥을 완전히 오해하게 하는 오기 정도만 바로잡으면 된다. 공식적으로 출간할 글만 정식으로 퇴고한다. 정식 퇴고는 1, 2, 3차 퇴고로 나뉜다.

1차 퇴고에 관하여: 일단 초고가 완성되면 완성된 글을 주욱 읽어본다. 그러면 글의 순서, 배치, 목차 내용간 균형과 같은 형식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 논증 전략의 개선되거나 보충될 굵직굵직한 점이 눈에 띌 것이다. 그러면 그 굵질굵직한 개선점을 따로 연습장에 메모를 해둔다. 출력한 글에 그런 개선점을 적으면 오히려 정신이 번잡해진다. 개선점이 어느 부분에 관한 것인지를 연습장에 같이 적으면 된다. 글의 출력은 오로지 글의 흐름을 정확하게 조망하여 굵직한 개선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한 것이다. 그렇게 연습장에 메모를 해둔 개선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한다. 이것이 1차 퇴고의 끝이다.

2차 퇴고에 관하여: 2차 퇴고는 글의 표현 방식이다. 더 정확하게, 더 매끄럽게, 더 단문으로, 더 쉽게, 설명이 건너뛰거나 생략되지 않게 글을 고친다. 출력 없이 한문장 한문장을 검토하면서 바로바로 문서작성 프로그램 위에서 고친다. 오기나 문법상의 오류도 눈에 띄는 대로 바로바로 고친다.

3차 퇴고에 관하여: 3차 퇴고는 2차퇴고에서 바로잡지 못한 오기와 문법상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문서작성 프로그램 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출력해서 연필이나 샤프로 줄을 그어가며 읽으면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3차 퇴고까지 하고 나서 기고에 들어가면 된다.

퇴고를 이렇게 삼 단계로 나누지 않으면 퇴고 작업이 매우 고된 일이 된다. 심지어 초고를 작성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퇴고가 이렇게 세 단계로 나뉘어 예정되어 있으므로, 처음 글을 쓸 때 퇴고를 같이 하면서 글 쓰는 속도를 느리게 할 필요는 없다. 글을 작성해나갈 때는 논의의 줄기를 제대로 잡고 그 줄기를 따라 먼저 죽죽 쓰는 것이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에 대한 권고. 향후 탐구에 기여하는 활동을 가장 잘 매듭 짓는 방법은 쪽글(조립물)을 쓰는 것이다.

쪽글이란 2문단-4문단 내외의 핵심 논증 정리 글이다. 쪽글을 쓰다가 글이 길어질 수도 있으나 이것은 자연스럽게 리듬에 따라서 이어가면 되는 일이고, 일단 목표는 쪽글을 쓰는 것이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식으로 카드에 쪽글을 쓰고, 그 카드들을 늘어놓은 다음 순서대로 배열해서 타이프라이터로 썼다고 한다.

쪽 글을 기록하기에 좋은 공간은 블로그다. 물론 공개할 필요도 없다. 향후 탐구에 기여하는 활동, 이를테면 독서나 추론의 전개 같은 것을 하고 나서 그때그때 매듭을 지어 놓지 않으면 알코올처럼 휘발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가 완성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쪽글로 써두면 좋다. 특히 아이디어가 다른 선학자의 문헌을 읽거나 아니면 뉴스나 통계, 판례 같은 관련 자료를 보면서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바로 그 자료와 함께 아이디어를 써두면 좋다. 이렇게 향후 탐구에 기여하는 쪽글을 많이 많이 써두게 되면, 언제나 주제 풍년 속에 살게 된다. 써야 할 주제를 찾지 못하는 기근 상태는 거의 겪지 않게 된다.

쪽글을 쓸 때에는 주제어를 같이 써두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검색어로 정렬을 해서 그 쪽글들을 참조한 뒤에 목차를 작성하고 목차 안에다 쪽글을 일단 복사하여 붙이기로 배치하면 글을 쓰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물론 쪽글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에는 쪽글들의 제목들만 한 번에 출력하여 쟁점의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복합 쟁점을 다루는 향후 글의 구조가 부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독운향을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당장 다이어리, 연습장, 달력에 작독운향을 표시하도록 하자. 그리고 작독운향을 실행했다는 표시가 평일에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해보자. 탐구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의 선은 그것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만족해도 괜찮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