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Rainer Forst, “The Basic Right to Justification: Toward a Constructivist Conception of Human Rights”, Constellations, Vol. 6, No. 1, 1999, pp. 35-60.의 번역으로, 서요련 선생님이 번역하여 시민교육센터에 공유하여 주셨습니다.
아래는 서요련 선생님의 본 논문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아 래--
제가 이해하기로, 이 논문에서 배울 점은 크게 보았을 때 한 세 가지쯤 되는 듯합니다.
이론 작업의 측면에서, 포르스트는 롤스와 스캔런을 위시한 미국의 자유주의-의무론 진영과 하버마스를 비롯한 독일의 논증대화이론 진영을 통합적으로 고려 및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이는 포르스트가 원용하는 핵심 개념과 논증 구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포르스트는 인권 요구가 제기되는 맥락을 분석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권 요구는 “사람들이 이유[근거](reasons)를 묻고 어떤 규칙, 법, 제도의 정당화(justification)를 요구할 때, 그리고 제시된 이유[근거]가 더는 충분치 않을 때”(40) 싹틉니다. 이때 사람들이 이유를 묻고 정당화를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개인이나 국가도 거부할 수 없는 모든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요구인, 정당화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justification)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당화에 대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수신자(수범자)로 삼는 법, 제도, 행위를 정당화하는,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이유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스캔런에게서 가져온 이 설명 방식을, 포르스트는 조금 더 발전시킵니다. 그에 따르면 합당한 거부의 이념은 호혜적·일반적 거부의 이념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어떤 규범 주장을 호혜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그 규범 주장의 수신자를 부인하는 어떠한 권리나 특권도 요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어떤 규범 주장이 호혜성의 규준을 충족하는지 여부 자체도 호혜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규범 주장을 일반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정당화를 수행하는 ‘정당화 공동체’를 자의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행위나 규범에 영향 받는 모든 이를 포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44). 기본권 제한 심사를 수행할 때 어떤 기본권 논증이, 특정한 포괄적 신조(“나 자신이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이 좋은 삶이다” 등)를 가진 기본권 주체를 부인하는 특권을 인정한다면, 호혜성의 규준을 위반한 것입니다. 한편 기본권 논증으로 영향 받는 일부 기본권 주체를, 아예 정당화하는 이유를 수신할 자격조차 없는 것으로 배제하는 것은 일반성의 규준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당화에 대한 권리, 그리고 호혜성과 일반성의 규준을 기초로 하면 이른바 구성주의적 인권관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인권관을 구성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이유가 있는데, 인권을 구성물(constructions)로 봄으로써 인권의 토대를 형이상학이나 인류학에 두는 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널리 사용되는 레토릭인 “천부인권”으로서의 인권이 내포한 것 같은 철학적 난점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포르스트는 하버마스 식의 ‘논증대화적 구성주의’(discursive constructivism)의 두 수준에 롤스의 도덕적 구성주의 및 정치적 구성주의를 배치합니다. 여기서 포르스트는 이미 1990년대 초에 진행된 바 있는 하버마스-롤스 논쟁을 나름대로 소화해냅니다. 포르스트가 하버마스에 동의하는 지점은, 법적 구속력 있는 인권의 구체적 해석과 제도화가 민주적 법치국가를 배경으로 하여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한편 포르스트가 하버마스와 갈라지는 지점은, 법적 권리로서의 인권 차원을 과도하게 부각한 나머지, 도덕적 권리로서의 인권 차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포르스트가 롤스의 도덕적 구성주의에서 개진된 실질적 관념들, 가령 합리성과 합당성의 능력이 있는 도덕적 인격관을 적극적으로 원용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한편 포르스트가 롤스와 갈라지는 지점은, 롤스가 《정치적 자유주의》 이후 도덕적 구성주의 대신 정치적 구성주의를 취한 데 반하여, 포르스트는 두 구성주의를 모두 포섭하되 상이한 이론 단계에 배치하였다는 점입니다.
이한 선생님께서도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익 형량》에서 헌법적 논증대화 이론의 상이한 이론 단계에 하버마스, 롤스, 스캔런의 작업을 유기적으로 활용한 바 있는데, 포르스트 역시 인권이론에서 그와 같은 작업을 수행한 것이 아닌가 하여 매우 흥미롭습니다. 물론 저로서는 이 논문 하나만 갖고는 포르스트의 심화된 이론 구성이 실제 문제해결에서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포르스트가 고안한 정당화에 대한 권리 개념 또는 정당화에 대한 기본권 개념은 규범을 2인칭적으로 정당화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는 의무론적 도덕, 정치, 법철학을 기술하는 데 꽤나 쓸 만한 어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범을 2인칭 인격을 상대로 정당화해야 한다는 점이 옳다면, 반대 측면에서 그 2인칭 인격은 규범의 정당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당화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기본권 규범의 정당화 역시 정당화를 수행하는 논증대화의 수신자인 기본권 주체가 정당화에 대한 기본권을 갖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아직은 여물지 않은 스케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본다면, 정당화에 대한 기본권이 정말로 헌법적 기본권인지, 헌법적 기본권이라면 헌법조문에 직접 규정된 기본권규범인지 아니면 편입된 기본권규범인지 등 까다로운 문제를 더 깊이 궁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어휘상의 풍성함을 넘어 문제해결에 긴요한 개념이 될 수 있는지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