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네 편의 논문은 개인의 선, 즉 무엇이 그 개인의 삶을 잘 되어가게 하는가에 관한 여러 입장들을 취한 것입니다.
1. 먼저 첫 번째 논문인 데렉 파피트의 논문은, 한 사람의 복지 또는 사리에 관한 이론으로서 욕구 충족 이론, 쾌락주의 이론, 객관적 목록 이론을 다루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보는 에세이입니다. 말미에서 파피트는 이 셋의 장점만을 결합한 복합이론을 제시하는데 그 요지인즉슨 좋은 것이란 어떤 성질을 가진 대상이나 경험을 누리면서 그 누리는 경험에서 쾌락을 느끼면서 그런 것을 강하게 바라는 복합적인 것이야말로 선의 요체라는 주장입니다.
2. 다음으로 리처드 크라우트의 논문은 (i) 인간 선(human good)에 대한 여러 이론 중 욕구 이론(desire theory)에 대한 비판을 전개함과 동시에 (ii) 저자의 인간 선 이론을 전개하는 논문입니다. 이 중 (i)의 부분은 대부분 적실하나 (ii)의 부분은 비완결적이며 오류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ii)의 부분 역시 인간 선 이론에 관한 어떤 해명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특정 전략의 전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씁니다.
오류가 있는 부분은 저자가 본유적 가치 내지는 내재적 가치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것이 선으로 인정되려면 그것이 다른 선에 기여하는 점을 언급해야만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저자는 고통도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며 쾌락도 그 자체로는 선이 아니라고까지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모든 선이 삶 전체에 대해서 도구적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다는 보증되지 않은 전제에 기대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여러 사례를 들어 욕구 이론들의 불비한 점들을 밝혀내는 전반부는 논의가 잘 정리되어 있어 일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3. 세 번째 논문인 토머스 칼슨의 논문은 숙지된 욕구 이론 내지는 정보를 잘 갖춘 욕구 이론이라고 불리는 판본의 개인 복지에 관한 이론을 전개한 것입니다. 칼슨의 논의는 욕구 이론에 대하여 제기되는 내적 문제와 외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문을 찬찬히 읽으면 알아챌 수 있듯이, 문제를 해결해서 처리했다기보다 보이지 않게 덮었거나 임의로 제거해버린 부분들이 많습니다.
4. 네 번째 논문은 쾌락주의의 상당히 많이 변형된 판본을 주장하는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태도 쾌락주의는 객관적 목록 이론에 상당히 근접해 있으면서도 꼭 같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주창하는 태도 쾌락주의는 상당히 많은 면에서 우리의 직관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직관에 부합하게 만들기 위해서 임기응변식으로 많은 제약들을 집어 넣었으며 그렇게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는 결국 기이한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5. 다섯 번째 논문은 직관주의적 의무론자로 유명한 W. D. Ross의 것입니다. Ross는 자신의 잠정적 의무(또는 일응의 의무) 이론과 유사하게 잠정적 좋음 이론(또는 일응의 좋음 이론)을 전개합니다. 즉 그 자체로 단적으로 확정적으로 좋음이란 없으며, 다른 잠정적인 좋음까지 고려한 후에야 어떤 것이 좋다고 종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유한 사고실험을 진행하는데, 이를테면 쾌락과 고통의 총량이 똑같은 두 우주인데 한 우주에는 덕스러운 사람들만 살고 다른 한 우주에는 사악한 사람들만 사는 우주라면 전자의 우주가 후자의 우주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식의 두 우주 비교 방식이 주된 방법론입니다. 그러한 사고실험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논증을 전개한 결론은, 좋음은 미덕, 쾌락, 그리고 앎, 또는 이 세가지 요소 중 둘 이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마음 상태라는 것입니다.
종합적 논평:
이러한 여러 학자들의 논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잠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i) (숙지된 내지 정보를 잘 갖춘) 욕구 충족 이론, (ii) 쾌락주의 이론 (iii) 객관적 목록 이론은 크게는 세 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 백가쟁명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판본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그렇다면 사리 또는 개인 복지에 대한 타당한 해명을 먼저 특정하고 그것을 기초 내지는 구성부분으로 해서 그 개인복지들을 결합한 함수로서 헌법에서 말하는 공공복리에 대한 성공적 해명을 제시할 전망은 매우 낮다. 그 이유는 (i) 개인 복지에 대한 경쟁하는 해명들 중 어느 것이 타당한가를 가려줄 결정적 논증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i) 각 이론들의 강점들이 있는데 그 강점들을 양립가능하게 조화시킬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iii) 무엇이 각 이론의 강점인가에 관한 직관도 심하게 논자마다 달라진다. 존 롤즈가 인간 선에 대한 포괄적 이론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을 정치적 정의관에서는 피해야 한다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여기에 있다.
(3) 개인 복지에 대한 완결된 해명이 마련되지 아니하여도 공공 복리에 대한 해명은 비완결적 개인 복지 해명을 통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논의의 불연속성이 시민들의 지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시민은 자신의 삶을 잘 되어가게 하는 것에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에 의해 삶을 살아나갈 권리가 있다.
(4) 그렇다고 하여 정치적 정의관과 그러한 정의관에 기초한 헌법논증이 공공복리를 언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개인 복지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는 것이 쓸모없는 일도 아니다. 개인 복지에 대한 여러 해명들이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 부분들을 가려내는 소극적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어느 이론을 취하더라도 평등하고 자유로운 구성원의 지위를 전제하면 실천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공공복리에 관한 해명을 제시할 수 있다.
(5) 공공 복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비완결적 개인 복지 해명은 다음과 같은 경로 중 하나를 거친다.
(i) 어떤 것을 본유적 가치로서 추구하는 행위가 비합리적이지 않음을 심사하는 소극적 기준
(ii) 어떤 것이 도구적 가치로서 위 (i)의 테스트를 통과한 본유적 가치 중 어느 하나에 기여하는 것임을 심사하는 기준
이 두 테스트 중 하나를 통과한 대상은 합리적인 개인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정되며,
이와 같이 인정된 것 중에서
(ㄱ) 위헌적 가치가 아닐 것
(ㄴ) 구성원의 가치와 단절된 가치가 아닐 것
(ㄷ) 구성원의 일부를 편드는 가치가 아닐 것
그리고 (ㄹ) 보편적 보장형식을 갖출 것
네 가지 요건을 만족시킨 것은
'공공복리'로서 필요한 만큼 철학적 해명이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6) 헌법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인간 복지(well-being)에 관한 이론이 이와 같이 심층적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잘 이해하고, 그 중 어느 이론에 완전히 기대는 논지 위에 자신의 헌법 논증을 기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욕구 충족 이론은 헌법에서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오해와 크게 결합되어 있어서 이 결함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들을 잘 숙지하고, 자신이 펼치는 논증에서 기대는 전제 명제들을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