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된 글은 마사 누스바움이 주디스 자르비스 톰슨이 <좋음과 조언>에서 개진한 좋음과 당위에 관하여 개진한 이론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 마사 누스바움은 이류 학자로서 자신의 명민함을 십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류 학자로서의 명민함이란, 의미 있는 논지 몇 가지를 잘 짚어내고 일견 조리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기는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부분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봉합하고는 거기에 만족하고 마는 성향입니다. 제 견해로는 해당 논평에 실린 톰슨에 대한 누스바움의 비판 중 70%는 틀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누스바움이 결과주의와 의무론의 구분에만 집중함으로써, 목적론과 의무론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누스바움은 결과주의에서 고려하는 결과에 각종 통약불가능한 가치와 함께 규범까지 다 집어넣음으로써 잡탕의 이론을 그럴듯하게 구성하기만 하면 그것이 삶의 복잡성에 제대로 대응하는 이론이라고 착각한 전제에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이 (설사 그것이 차원과 속성을 무지하고서 잡탕으로 열거된 것이라 할지라도) 목적들의 종합적 추구에 관한 것이라는 주장은, 도덕이란 무엇인가(What Morality is About)라는 주제(subject matter)에 관하여 이미 그것은 모종의 좋음을 조화롭게 또는 균형 있게 추구하는 것이라는 답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 조화와 균형의 상태가 단 하나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목적론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누스바움은 톰슨의 이론이 비극의 문제를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고 하는데, 누스바움이 비극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도 광범위하여, 누스바움의 이론에 의하면 사적 삶과 공적 삶의 아주 많은 영역이 어느 것을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영역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게다가 톰슨은 진지한 권리 충돌 상황에서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게 되었을 때 그 권리 제한이 정당하더라도 보상 내지 배상 등 복구 책임이 남게 된다고 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권리 조정 상황과의 구분을 긋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류 학자들은 일류 학자들의 이론을 자신이 이미 가진 범속한 스키마에 의해 다시 고쳐서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누스바움이 톰슨의 이론을 이렇게 잘못 비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스바움의 글 또한 배울 것이 많으며, 이에 대하여 톰슨이 답한 내용까지 이어지는 공방도 흥미롭습니다. 톰슨은 누스바움의 비판에 대한 응답까지 해당 책에서 수록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