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holas J. J. Smith, Vagueness and Degrees of Truth, Oxford University Press, 2008의 서론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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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람이 아니라 술어에 적용될 때 ‘모호한’(vague)은 다음 세 용법 중 하나를 갖는다.
경계선 사례(Bordeline cases) : ‘-는 키카 크다’(is tall)이라는 술어가 명확하게 적용되는 사람들(예를 들어 대부분의 프로 농구 선수들)이 있고 또 명확하게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예를 들어 대부분의 프로 경마 기수들)이 있다. 그러나 그 술어가 적용되는지 안 되는지가 불명확한 사람들도 있다.(독자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사람이 키카 큰지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일종의 조건을 달아 얼버무리는 대답(hedging response)을 하여 반응한다. “어느 정도 그런 편”(sort)이지라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고는 눈에 힘을 주거나 숨을 내뱉는다거나 먼 데를 바라보는 눈빛을 하는 것이다. 다른 술어들-예를 들어 ‘-는 소수다’라는 술어는- 경계선 사례를 갖지 않는다. 율리우스 시저는 소수가 아니고, 7은 소수며, 8은 소수가 아니고 드등. 어떤 것이 소수인지 여부가 불명확하게 되는 대상이란 전혀 없다. 모호한 술어와 모호하지 않은 술어 (또는 엄밀한 술어) 사이에 구분을 긋는 하나의 표준적인 방법은 그 모호한 술어가 엄밀한 술어는 갖고 있지 않은 경계선 사례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흐릿한 경계(Blurred boundaries). 특정한 술어가 적용되는 모든 것들의 주위로 그어진 선을 상상해보라. 모호한 술어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2) 흐릿한, 잘 정의되지 않은 선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는 무겁다’가 적용되는 것들과 적용되지 않는 것들 사이에 아무런 선명한 경계(no sharp boundary)도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엄밀한 술어에 대해서는 선명한 선, 즉 그 술어가 적용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를 깔끔하게 분리해주는 선을 갖는다.(For a precise predicate, by contrast, we get a sharp line, cleanly separating the things to which the predicate applies from the rest)
연쇄 논법 역설(Sorites paradoxes). 어떤 머리털이 풍성한 사람(a hirsute perosn)을 생각해보자. 그는 대머리가 아니다. 그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제거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대머리가 아니다. 다른 한 가닥을 제거하고, 또 다른 한 가닥을 제거하는 식으로 계속해도 그는 대머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 한 가닥(one hair)은 대머리임과 대머리 아님 사이에 결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Were we to remove a single one of his hairs, he still would not be bald. So too if we removed another, and so on—because one hair cannot ever make the difference between baldness and lack thereof.) 그러나 그 사람은 오직 유한한 수의 머리털만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는 머리털이 한 가닥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의 추론에 의하면 그는 여전히 대머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물론 머리털이 한 가닥도 머리에 남지 않은 사람은 대머리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어디선가 잘못되었다. 이것이 연쇄 논법 역설의 한 예다. 모든 술어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라. ‘-는 대머리이다’ 대신에 ‘-는 그의 머리에 10가닥 이상의 머리털을 갖고 있다’(‘has ten or more hairs on his head)라는 술어를 생각해보라. 머리컬이 풍성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그의 머리에 10가닥 이상의 머리털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의 머리털 중 한 가닥을 제거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열 가닥 이상의 머리털이 머리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머리털, 또 다른 머리털을 제거한다고 해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계속 제거해도’(and so on and on)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머리털 한 가닥이 10가닥 이상의 머리털을 갖는지 아니면 9가닥 이하의 머리털만 갖는지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서 우리는 아무런 역설을 갖지 않는다. 모호한 술어와 엄밀한 술어 사이에 구분을 긋는 한 가지 표준적인 방법은 모호한 술어는 연쇄 논법 역설을 낳지만, 엄밀한 술어는 그런 역설을 낳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는 P이다’라는 술어가 모호한 경우, 전형적으로 우리는 명확히 P인 대상으로부터 명확히 P가 아닌 대상까지 포함하는 범위의 대상들의 소위 연쇄 계열(so-called Sorites series of objects)을 갖지만, 우리는 또한 그 계열들 중 임의의 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P라면 그 인접한 대상도 역시 P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게 된다.
[왜 그런 모호한 경우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가?] 첫째, 모호함은 어디에나 있다.(ubiquitous) 우리 언어의 술어들 대부분은 모호하다. 조금도 모호하지 않은 술어를 생각하기란 매우 어렵다. 일부 술어들은 다른 술어들보다 더 폭넓은 경계선 사례 집합을 갖지만, 수학과 자연과학의 바깥에서 쓰이는 술어들 중에서 경계선 사안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술어를 생각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지금 시도해보라!) 그러므로 모호함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모호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째, 모호함에 관하여 이해가 진보함에 따라 크게 진보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잠재성이 있는 많은 [역자- 수학과 자연과학 이외의] 다른 연구 프로그램들이 있다. 어떤 분야의 핵심 개념이 모호할 때-그리고 모호함의 편재성 때문에 많은 분야들의 핵심 개념들은 실제로 모호하다- 그 모호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차대한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발전한 근대 논리학과 모델 이론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넓혔지만, 이 발달의 선구자들-특히 고틀로프 프레게와 알프레드 타르스키-은 수학적 언어에만 주로 관심을 가졌으며 모호함은 무시하였다.] 프레게는 특히 모호함을 탐구하여 처리할 가치 없는 것으로-또는 탐구하여 처리할 수도 없는 것으로(or not susceptible)- 제쳐놓았다. 그는 모호함을 자연 언어의 결함으로 여겼으며, 그래서 논리적으로 완전한 과학 언어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이 태도의 문제는 수학 언어가 특수한 경우라는 사실이다. 수학은 완전히 엄밀하다.(completely precise) 수학 바깥에는 우리의 언어 거의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to a greater or lesser extent) 모호하다. [이후 이 문제점을 깨달아 비고전 논리학이 많이 발전되었다. 그러나 모호한 술어가 해당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을 아직 얻는데는 가까이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해명들이 많은 데 그 중 하나를 타당한correct 것으로 택할 아무런 방도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부: 토대
(...) [이후의 내용에서는, 고전 이론을 수정하여 모호성에 대응하고자 했던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고, 이 이론들이 수정한 핵심 요소가 어느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수정하였는지를 분석하겠다.]
바로 이 장에서 이 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하나의 구분이 등장한다. 즉 세계의 모호성과 의미론적 불확정성 사이의 구분 말이다.(the distinction between worldly vagueness and semantic indeterminacy) (...) 모델 이론은 두 측면을 갖는다: 한 부분은 언어를 나타내는 측면이고 다른 한 부분은-모델은- 세계를 나타낸다. 언어의 항목이 의미를 얻게 되는 과정은 언어를 모델과 짝짓는 것에 의해 나타내진다. 이것이 언어에 해석(interpretation)을 부여한다고 칭해지는 것이다. 그 저변에 깔린 생각은 우리의 낱말들이 우리가 세계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때 의미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용도가 다양하며 낱말들은 많은 것들을 의미할 수 있다. ‘The house is on the hill’이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house’라는 상징은, 상징 ‘cat’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상징 ‘hill’은 상징 ‘mat’(매트)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문장이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하나의 해석이 있는 셈이다. (5) 그러나 그 문장이 집이 언덕 위에 있다를 의미한다고 하는 해석은 특권화돠어 있다. 그 해석은 그 문장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에 대응한다. 그런 해석이 의도된 해석(intended interpretation)이라고 칭해진다. 엄밀 언어를 위한 고전 모델 이론의 핵심 요소를 분리하면서, 나는 고전 모델의 내적 성격과 고전 모델 이야기의 외적 부분 사이에 대략적인 구분을 지었다. 이 구분에 따르면 각각의 담화는 유일무이한 의도된 해석을 갖는다. 고전적 그림은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세계가 이러이러한 종류의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는 고전 모델에 의해 나타내질 수 있는 구조를 가지며, 고전 모델은 이러이러한 내적 특성들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고전적 그림은, 우리가 말하는 것들은 어느 것이나 그 의미가 단일한 그런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타당하게 특정된다고 말한다. 그 구분은 모호성 이론이 고전 견해와 달라질 수 있는 두 폭넓은 길을 낳는다: 모호성 이론은 고전 모델을, 상이한 내적 특성을 가진 비고전 모델들로 대체할 수 있다. 또는 모호성 이론은 외적 이야기를 변경시켜 그렇게 변경된 이야기에 따르면 오직 한 모델만이 어떤 언명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기술할 때 역할을 하게 되도록 만들 수 있다. 고전 모델 이론에서 이탈하는 이 두 방식 사이의 이 구분이 세계의 모호성과 의미론적 불확정성 사이의 구분의 저변에 깔려 있다. 모호성과 불확정성은 고전적 그림에서는 두 자리에서 배제된다. 첫째, 세계에는 아무런 모호성이 없다. 고전 모델들은 전적으로 엄밀하다: 그 모델들은 참과 거짓이 명확히 가려지는 대상들 및 속성들의 고전 집합으로 세계를 나타난다. 각 속성과 각 대상에 있어서, 그 대상은 그 속성을 확정적으로 보유하거나 확정적으로 비보유한다.(Classical models are entirely precise: they represent the world as a crisp set of objects and properties such that for each property and each object, the object either definitely possesses the
property, or definitely does not possess it.) 둘째, 의미론적 불확정성이란 없다.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에는 아무런 모호성이 없다. 각 문장은 유일무이한(unique) 의도된 모델을 갖는다. 그러므로 그 어떤 문장이라도 그 문장이 의미하는 것에 관하여 아무런 모호성도 없다. 고전적 그림과 내적인 방식으로 다른 견해(즉 고전 모델들을 상이한 내적 특성들을 가진 비고전 모델들로 대체하는 견해)는 세계의 모호성(worldly vagueness)의 가능성을 연다. 반면에 외적인 방식으로 고전적 견해와 다른 견해(즉 어떤 언명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기술할 때 오직 한 모델만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을 부인하는 견해)는 의미론적 불확정성(semantic indeterminacy)의 가능성을 연다. 예를 들어 퍼지 집합 이론(fuzzy set theory)(§2.2.2을 보라)에 내장된 모호성에 대한 견해는 세계적 모호성을 지지한다. 그것은 우리가 모호한 술어를 발언할 때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속성을 고른다고 말한다. 즉 우리의 언명에 대한 유일무이한 의도된 해석에 의거하여 정해지는 우리의 술어의 외연을 고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속성은 본래적으로(inherently) 모호하다고 한다. 여기서 이 속성이 모호하다는 것은, 어떤 대상들은 그 속성을 보유하고, 어떤 대상들은 그 속성을 보유하지 않으며, 또 어떤 다른 대상들은 다양한 중간 정도로 그 속성을 보유한다는 의미이다.(It tells us that when we utter a vague predicate, we pick out a unique property in the world—the extension of our predicate on the unique intended interpretation of our utterance—but this property is inherently vague, in the sense that some objects possess it, some do not possess it, and others possess it to various intermediate degrees) (6) (이 견해에 의하면) 이것은 대상들이 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즉 그것은 언어와 세계 간의 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의미론적 불확정성은, 언명이 유일무이한 의도된 해석을 갖는다는 점을 부인하는 견해를 취할 때 들어온다. 이 종류의 견해에 의하면, 우리가 모호한 술어를 발언할 때 우리가 고르는 여러 가지 속성들이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의 동등하게 의도된 (또는 동등하게 의도되지 않은) 해석들에 의해 정해지는, 이 술어의 외연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가 의미하는 것에 관한 사실의 문제란 없다. 이 경우 우리는 언어와 세계 간의 관계에서의 불확정성을 갖게 된다.(주석 6) (On this sort of view, when we utter a vague predicate, there are several properties we might be picking out—the extensions of this predicate on the various equally intended (or equally not-unintended) interpretations—and there is no fact of the matter as to which, in particular, we mean. Here we have indeterminac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language and the world.) (...) 나는 이 두 각각의 견해를 ‘초평가주의’(supervaluationism)과 ‘복가치평가주의’(plurivaluationism)이라고 칭하겠다. 이 구분은 특히 중요하다. (...)
II부: 모호성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하나는 여러 모호성 이론 중에 어느 하나를 근거를 가지고서 고르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경계선 사례/흐린 경계/연쇄 논법 역설이라는 각 특징짓기가 어떻게 상호 연관되며 이를 모두 포괄하는 모호성에 대한 적절한 정의가 무엇인가(즉 모호성의 정수가 무엇인가) 해명하는 문제이다. 나는 이 두 문제를 연결시켜 풀겠다. 내가 제시할 모호성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술어 F는 임의의 대상 a와 b에 대하여, 만일 a와 b가 F의 적용과 유관한 면들에서 매우 유사하다면, Fa와 Fb라는 문장들은 참의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이 키카 크다’라는 술어는, 임의의 사람 a와 b에 대하여, 만일 a와 b가 키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다면, ‘a는 키카 크다’와 ‘b는 키카 크다’라는 문장들은 참의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이 정의의 함의는 모호한 술어가 용인성이 있다는 주장과 비교하면 잘 파악된다. 술어 F는 Φ의 면에서 대상이 겪을 수 있는 어떤 양의 정도의 변화가 있는데 그 변화로는 “F가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되는 일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부족하다”(Wright 1975, 334)면 Φ에 관하여 용인성이 있다. 그러므로 ‘-는 키가 크다’는 임의의 사람 a와 b에 대하여, 만일 a와 b가 키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면 술어 ‘-는 키가 크다’의 a와 b에의 적용가능성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즉 문장 ‘a는 키카 크다’와 ‘b는 키카 크다’가 참의 면에서 정확히 같을 때, 키에 관하여 용인성이 있다. (8) 임의의 술어 F가 용인성이 있다는 주장의 큰 문제는, 술어 F에 대하여 연쇄 논법의 계열을 구성하여 그 주장과 결합하면 모순이 되는 주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쇄 논법의 계열에서 각각의 대상이 F이고 F가 아니라는 모순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모호성에 대한 나의 정의는 모호한 술어가 용인성이 있다는 주장을 약화시킨 것이다. 만일 a와 b가 키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면, 술어 ‘-는 크다’를 a와 b에의 적용가능성에 아무런 차이가 꼭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문장 ‘a는 키가 크다’와 ‘b는 키가 크다’는 참의 측면에서 꼭 정확히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a와 b에 ‘-는 키가 크다’라는 술어의 적용가능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a는 키가 크다’와 ‘b는 키가 크다’는 진리의 측면에서 매우 유사해야만 한다. 3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는 f이 정의를 확장하여 속성, 관계, 대상의 다변항 술어(many-place predicates)의 모호성을 포괄할 수 있는지의 질문을 논의하겠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 정의의 우위점을 탐구할 것이다. 그 우위점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 일부는 모호한 술어가 용인성이 있다는 사고를 추동시킨 직관들을 모순에 이르지 않고서도 포착하며, 연쇄 논법 역설이 적용됨, 흐릿한 경계, 그리고 경계선 사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산출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