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소개
라이너 포르스트는 1964년 8월 15일에 태어나 왕성한 확문활동을 하고 있는 독일의 정치철학자다. 그는 2012년에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 상을 수상하였으며, 수상 당시 “그의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로 불렸다. 포르스트는 위르겐 하버마스를 지도교수로 두고 수학하여 199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르스트의 연구는 자신의 스승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을 비롯한 독일 비판이론의 전통을 철저하게 소화한 바탕 위에서도 롤스를 비롯한 영미철학자들의 논의를 풍부하게 활용하여 칸트적으로 재구성된 정치적 자유주의 이론을 더 체계적으로 계승‧발전시킨다는 특색이 있다. 그는 관용과 사회정의를 주된 연구분야로 하고 있으며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연구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의 주저에는 <정의의 맥락>, <정당화에 대한 권리>, 그리고 <갈등 속의 관용>, 그리고 <정당화와 비판: 정치 비판이론을 향하여>, <규범성과 권력> 등이 있다. 포르스트 그 자신이 독일 학계의 정치이론과 영미학계의 정치이론을 통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주저들은 대부분 영어로 번역이 되었고 또한 영어권 학술지에도 활발히 논문을 게재하고 있다. 현재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에 있는 괴테 대학교 사회과학부에서 정치이론 교수로 재직 중이다.
(2) 해당 저서 소개
어떤 신조를 진심으로 신실하게 믿고 있으며 그 신조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타당하거나 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그 신조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이 있을 때 관철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실적인 정치적 힘 그 자체가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정당화의 힘을 규범적으로 갖지 못하는 이상, 그러한 관철의 한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관용은 다원주의 사회의 틀을 정립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즉 그 사회에서 통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집단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가, 그런 정책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권리의 범위는 어떻게 되는가의 쟁점이 문제될 때마다 관용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그런데 관용은 그 자체의 내용과 그에 대한 평가가 심대하게 다투어지는 대상이다. 그래서 경쟁하는 관용관들은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다양하며 때로 상충하는 신조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그 신조에 반하여 강제할 것인지 여부를 단지 자의에 맡기는 결과에 이른다. 라이너 포르스트의 이 책은 그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고대 스토아주의에서 시작하여 초기 기독교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관용 담론사를 재구성함으로써 관용관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중 한 관용관을 계승·발전시키는 자신의 관용 이론을 제시한다.
이 책은 관용에 관하여 범위가 폭넓을 뿐만 아니라 깊이도 철저한 책이다. 책의 3분의 2 정도는 고대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구 관용 사상의 역사와 그 관행을 다루지만 그저 기계적으로 사상사를 정리하고 있지 않다. 포르스트는 뒤에 전개되는 자신의 관용이론에 비추어 이전의 관용 담론사를 명확하게 구조화해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독창적인 것은 관용 논증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안에 내재된 네 가지 주된 관용관을 규명한 부분이다. 허용 관념(permission conception), 공존 관념(coexistence conception), 형식적 평등과 질적 평등의 두 형태를 갖는 존중 관념(respect conception), 호의적 평가 관념(esteem conception)이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 허용 관용관은 관용 이론과 관용 관행의 대부분의 역사에서 지배적인 형태였으며 오늘날에도 관용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갖고 있는 관념이 바로 이 관념이다. 허용 관념은 당국 또는 다수와 지배적인 가치체계를 믿지 않는 소수(또는 복수의 소수)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 허용 관용관은 당국 또는 다수가 소수에게, 소수의 확신이 당국이나 다수의 권위와 지배성에 도전하거나 지배성을 의문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키는 한 자기 확신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공존 관념은 허용 관념이 적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더 이상 단일한 지배적인 집단이 있지 않고 “비슷하게 동등한 힘을 갖고 있는 집단들이 있어서, 사회 평화와 자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관용을 실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p. 28)하게 되는 여건에서 허용 관념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되고, 자기 이익을 위해 공존 관념, 즉 롤스가 이야기하는 ’잠정 협약‘(modus vivendi)로 진화하게 된다. 이 관념에서는 관용 관계가 허용 관념에서처럼 수직적인 관계로 더 이상 이해되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로 이해된다. 즉 공존 관념 하에서는 관용을 행사하는 사람이 또한 동시에 관용되기도 하는 관계에 서게 된다.
그러나 허용 관념이나 공존 관념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단순한 묵인에 그친다. 이를 훨씬 넘어서 더 멀리 함의와 효력을 갖는 고려사항들에 대한 상호 인정의 형태에 이르는 일을 해내는 것은 바로 존중 관념이다. 존중 관념은 “관용을 행사하는 개인들이나 집단들의 상호 존중의 형태에 도덕적으로 근거를 두고 진행해나간다. 관용하는 당사자들은 서로를 자율적인 인격체 또는 법의 지배 하에 구성되는 정치 공동체의 동등한 자격을 가진 구성원으로 존중한다.”(p. 29) 궁극적으로 존중 관념은 “정당화에 대한 권리”의 수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당화에 대한 권리는 집단적 규범이 호혜적이며 일반적으로 타당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관용관이 포르스트가 가장 근본적인 것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는 부분에서 계승·발전시키는 관용관이다. (존중 관용관은 두 형태, 즉 형식적 평등과 질적 평등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형식적 평등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엄밀한 분리를 가정한다. 이러한 분리에 따르면 시민들 사이의 윤리적 차이들은 사적 영역에만 국한되어야 하고 공적 정치적 영역으로 나와 갈등을 낳아서는 안 된다. 이와 달리 질적 평등은 윤리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의 공적인 정치적 표현을 더 수용하는 것이며 자신들의 윤리적-문화적 정체성을 호혜적으로 요구될 수 없는 방식으로 포기해야만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주장에 정치 공동체 내의 온전한 구성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을 함의한다.)
네 번째 관용관은 호의적 평가관이다. 호의적 평가관은 존중 관념보다 상호 존중의 더 부담이 되는 형태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 관용관에 따르면 관용은 다른 문화적 종교적 공동체를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다른 사람들의 확신과 관행을 윤리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까지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치 다원주의와 연관되는 관념이기는 하지만, 부담이 너무 큰 요구를 제기하므로, 그런 부담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결국 오히려 부담에 맞춰 관용될 수 있는 확신들의 범위를 좁히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 네 관념, 특히 허용 관념과 존중 관념이, 관용에 곤한 복잡한 담론 출현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 이 서로 다른 관용관들은 자주 불편한 긴장 관계를 이루면서 공존해왔으며, 여건과 다른 정치문화적 토양에 따라 어느 관용관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두드러졌음을 포르스트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관용은 다른 고차적인 규범적 원리들에 토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상이한 관념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불확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 다른 고차적 규범의 핵심은 바로 정당화에 대한 권리이다. 이는 모든 도덕적 인격체가 도덕적 인격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에 대해 갖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이다. 그리고 이 권리의 존중은 집단적으로 관철되는 규범은 서로에게 호혜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만족시키는 논거로 뒷받침되는 규범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용의 한계라 함은 어떤 행위가 관용을 실천하는 정치공동체에서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 한계는 어떤 관용관을 취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그어진다. 포르스트의 이론에 의하면 관용은 보편적 의무가 문제가 되는 경우 주체가 주체 자신의 윤리적 확신을 이러한 일반성과 호혜성이라는 문턱 기준을 충족하는 적합한 정당화 없이는 부과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면서도 이 문턱 아래에 남아 있는 주체의 확신은 여전히 주체가 신실하게 참이며 옳다고 계속 견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정당화에 대한 기본적 권리가 일반적으로 부인 당할 때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권리가 구체적인 사안에서 무시될 때가 바로 관용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에 해당하게 된다. 물론 이 관용에 대한 규범적 토대는 인식론적 논증으로 보충되어야 구체적인 사안에서 호혜성과 일반성을 위반하는 주장이 어떤 것인지 식별할 수 있다. 이 논증의 보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인격체로서의 지위에 필수적인 권리들을 일방적으로 제한하게 되는 윤리적 가치의 관철과, 도덕적 인격체의 평화로운 공존과 공정한 협동을 위해 필요한 권리의 조정을 위한 정치-도덕적 규범의 실행이 구분된다. 이 과정에서 포르스트는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던 구분들을 하버마스의 가치-규범의 구분을 도입해서 명확하게 하며, 관용이 도덕적 규범이면서도 정치적 규범일 수 있는 체계적 이유를 해명한다.
(3) <갈등 속의 관용>의 의의
서로 다른 신조를 지닌 집단들의 갈등이 지속되며 때로 증폭되기도 하는 근래 한국 사회의 현실은, 상충하는 신조들의 갈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진정시키는 어떤 정합적인 규범을 몹시 필요로 한다. 원래는 헌법이 그런 규범의 역할을 하게 되지만, 개방구조적 형식으로 되어 있는 헌법문언들-인간 존엄성과 가치, 행복추구권,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많은 헌법규정-의 해석은 어떤 관용관을 채택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만일 그른 방식으로 갈등을 처리하는 관용관을 채택할 경우에는 소수가 억압당하면서도 이를 전혀 식별하지 못하거나 여러 집단들이 서로의 신조와 목소리를 힘만 있다면 지우고자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앞으로 출산율의 저하로 인해 부족해진 노동인구가 해외에서 유입될 가능성도 크며,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환경 난민을 공정한 분담 부분만큼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될 때 미리 갈등을 처리하는 근본 규범에 대한 타당한 합의가 없다면 사회는 돌이킬 수 없이 분열되고 강제와 억압이 동원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도서는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헌법규범 해석 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미래의 심각한 규범적 쟁점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 할 것이다. 즉 해당 도서는 우선은 정치철학, 헌법, 법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긴요하고 절실한 문제인 관용의 문제에 이해를 높이는 연구 자료가 될 것이다.
(4) 번역된 부분은 해당 책 내용 중 이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논지가 담겨 있는 제9장이다. 이 장에는 어떤 도덕적 쟁점에 대해서 A가 옳다는 신념에 진지하게 헌신하면서도 A가 틀리고 B가 옳다는 신념의 견지와 전파를 허용하는 관용이라는 이념이 왜 그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도덕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핵심적 논증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