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약불가능성 논의의 선도적인 논문(leading article) 중 하나인 캐스 선스틴의 논문의 완역본입니다.
정확한 영어 논문 읽기 학습에 도움이 되도록 원문을 병기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글을 읽고 그 문단을 영어로 다시 읽어보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영어 부분을 먼저 읽고 한글을 읽는 식으로 학습하면 되겠습니다.
해당 논문은 통약불가능성 논의의 패러다임이 된 것으로서, 크게 두 가지 논지를 확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삶에서 향유하는 가치가 서로 환원불가능한 다기한 종류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논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법에서의 여러 논쟁을, 어떤 것이 그 분야에 대한 가치평가의 적합한 종류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는 논지입니다.
이 논문이 매우 저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저는 이 논문에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가치의 통약불가능성과 비교불가능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 없이 그저 사례만 나열하고는, 통약불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비교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별다른 논증 없이 삽입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법익들이 서로 통약불가능한 것을 한참 논의를 해놓고도 결국 비교는 가능하니까 비교해서 법적 판단을 내려버리니, 결국에는 직관의 사적 저울을 다시 불러들이게 됩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가치와 규범의 구별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논의를 가치 논의로 환원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럼으로써 법에서 허용되는 가치주장과 그렇지 않은 가치주장 사이의 엄밀한 구별을 포기해버리고, 가치평가의 적합한 종류대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완전주의적인 고집을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정당한 법적 주장으로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 중 다수나 정치적으로 파워가 있는 쪽이 고수하는 가치평가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강제로 관철하도록 만드는 입법들을 정당성 있는 입법으로 여기게끔 하는 광대한 문을 열어버리게 됩니다. 선스틴이 논의한 사례들 중 많은 사안은 정당한 규범 때문에 주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 특정 종류의 가치평가가 관철되기 위해서 주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 사안입니다. 그리고 선스틴이 논의한 사례들 중 또 다른 많은 사안은, 정말로 선스틴이 이야기한 대로 특정 종류의 가치평가의 관철을 주창하는 것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당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을 비롯하여 통약불가능성이 법적 논의에서 어떤 함의를 갖는지에 관하여 자신의 논지를 확립하려면 결국 이 논문은 기본 배경지식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 배경지식에서 출발하여 법규범학에서 확립되어야 하는 가치의 일반이론을 구성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