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롤즈가 <정의론>을 쓰고 나서 그에 대하여 제기되 비판들에 답하면서, 정의론의 명제들의 의미를 다시금 풍부하게 해명하고, 약간 수정한 책인 <Justice as Fairness : A Restatment>의 중요한 절들을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이 주옥같은 책들의 모든 절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나, 여기에 수록된 절들은, "그냥 최소 소득만 보장해주고 자유롭게 자본주의 해서 정글 경쟁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차등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네가 사람들의 개별성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아니면, 너는 극도의 위험기피적인risk-aversion 인간관을 가지고 그것을 함부로 끼워넣고 있다."는 노직Nozick류의 비판이나, 하사니Harsayni류의 왜곡된 비판에 적절히 답하면서 롤즈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내용입니다.
특히 롤즈가 차등의 원칙을 도출한 것이 극도로 위험기피적인 비합리적인 인간관을 가정한 것이 아니냐에 대해서는 '준석' 님께서 2011. 7. 18. 시민교육센터 자유게시판을 통하여 질문해주신 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 글에서는 충분히 해명이 되어 있으니, 하사니의 논문과 직접 비교하며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로머도 완전히 동일한 오해에 빠져 있으므로 하사니에 더하여 추가적인 설명은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준석님의 질문에대해서는 이 글을 올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질문하신지가 오래되었는데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후에 좀 더 정제되고 쉬운 형태로 답변을 정리하여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롤즈는, 공지성, 호혜성, 안정성의 원칙 등 다른 기본구조들에 비해 하나의 기본구조를 찬성하게끔 하는 논거들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차등의 원칙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제1원칙을 먼저 논증합니다)
사람들은 제2원칙만 따로 떼어내서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롤즈의 차등 원칙(제2원칙의 제a원칙)은 제1원칙과 제2원칙의 제b원칙(공정한 기회 평등의 원칙)이 우선적으로 충족된 이후에 충족되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대단히 오해하기 쉬운 것입니다.
위험기피적인 논증이라는 이유로 롤즈를 곡해하면서 평균 공리주의를 옹호하는 하사니와 같은 논자들은 도대체 왜 자유의 원칙이 제1원칙으로 구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적절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게 됩니다. (노예가 될지 노예주가 될지 모르니 자유의 원칙 같은 거은 쓸모가 없고, 그냥 평균 공리의 원칙만 있으면 될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1원칙도 위험회피적인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고 더 나아가 곡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왜곡을 분쇄하면서 롤즈의 정의 원칙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특히 자유의 원칙과 호혜성의 원칙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돈도 적게 받으면서 고용도 불안정하며 자녀교육도 제대로 시키기 힘들어지는 우리 사회의 저숙련 비정규직들에 대해서 사회는 '호혜성의 원칙'을 명백히 어기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된 평균 공리의 원칙'은 이런 호혜성 원칙의 결여를 포착하지 못하며, 단순히 '양극화가 너무 심하면 사회 갈등이 일어나서 안되지' 정도로 흐리멍텅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롤즈가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사람들이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단념하고 살아간다고 해서 그 체제가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 저항을 막기 위한 수준에서만 양극화를 방지하자는 이야기는 '가진 자들의 현명함'은 될지 몰라도 정의 원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규명은 아닌 것입니다.
(2017.1.17.수정)
다음으로, 아래 48절은 롤즈가 '재능의 공유제'를 주장한다는 노직이나 샌델의 곡해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48절에서 롤즈는 '재능에 대한 차등적 인두세Head Tax'를 실시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논의하면서, 자유 원칙의 우선성(Priority of Principle of Liberty) 때문에 재능 공유제는 성립될 수 없고, 차등의 원칙은 재능 공유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재능은 각 개인에게 속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논의된 원칙임을 보여줍니다. 이 점은 <이한의 횡설수설>의 '탁구고백법'이라는 만화를 논하면서 뛰어난 신체적 매력이라는 재능의 공유제가 자유의 우선성을 어떻게 침해하는지를 논하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같은 논의가 이미 게시된 Samuel Freeman 의 <운평등주의>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하니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3.
아래 50절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합니다. 첫째는 샌델과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이 롤즈의 '정치적' 정의의 원칙들이 마치 기본구조 내의 모든 제도들-교회, 대학, 가족-에 그대로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인 것처럼 왜곡한 후에, 그것이 말이 안된다고 비판하는 엉터리 비판을 불식한다는 점에서 입니다. 롤즈는 언제나처럼 엉터리 학자인 샌델을 가볍게 각주로 처리하고 있는데, 샌델은 롤즈의 차등 원칙 등이 가정에 적용되면 가정의 중요한 애착이 사라질 것이라는 괴이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롤즈가 문헌을 통해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진화심리학에 소양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인간 사회는 재생산을 필수 요소로 하는데, 그 재생산은 여하한 형태의 가족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정의의 원칙이 고려해야 하는 고려사항이자 제약사항이죠. 그래서 기회 균등의 원칙도 완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롤즈는 차등 원칙이 이러한 결함을 어느 정도 보충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째는, "정치적 정의의 원칙"이 기본제도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롤즈의 말을 또 꼬투리 잡아서, 롤즈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하고 공적 영역에만 정의가 적용된다고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자유주의자들은 가정은 사적 영역이라고 하고 부부 사이의 강간도 인정하지 않는 무식하고 변변찮은 놈들이다"라고 비판합니다. 이것도 거의 샌델 수준의 왜곡입니다. 사회의 기본구조는 '배경적 자유'를 규율하며, 이 배경적 자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영역'이라는 용어는 원칙의 적용 결과 생기는 구분일 뿐이지, 결코 어떤 분리된 물리적 공간이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아이를 학대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공적인 문제'입니다. 롤즈는 정의의 원칙이 '간접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배경적 자유와 필수적 제한을 이야기하면서, 정의의 원칙이 가정 내 남녀평등의 진작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씁니다.
마지막으로 "안정성"에 관한 롤즈의 중요한 설명이 54절 이후부터 끝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의 안정성에 관한 설명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체계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중첩적 합의"를 마이클 샌델처럼 엉터리로 읽습니다. 즉, 그것을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신조들이 실제로(actually) 중첩해서 겹치는 최소 부분만 뽑아내서 입헌주의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개떡같은 이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엉터리로 해석해 놓고는 샌델처럼 '최소주의자'라고 조롱하거나, 아니면 로티처럼 '어떠한 정치철학적 주장도 결국 우리 공동체의 가치를 우기는 것 뿐이다. 롤즈도 나와 견해가 같다'라고 오독하면서 아군으로 삼거나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러한 오독은, 롤즈가 매우 심혈을 기울여 주의깊게 강조했던 타협으로서의 잠정적 협약(modus vivendi)와 올바른 형식의 안정성(stability in right ways) 사이의 구별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입니다. 잠정적 협약은 힘의 대략적 대등을 기초로 하며, 한 쪽이 지배적으로 우세해질 때 그 협약은 깨어집니다. 반면에 올바른 형식의 안정성은, 바로 그 입헌적 체제 자체에 대한 헌신을 구성원 개개인의 정의감에 뿌리박게 되며, 그러한 과정이 세뇌나 강압이나 교조가 아니라 공존과 협동이라는 입헌 사회 내의 경험과 성장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기본권에 대한 속류적 설명(헌법에 대한 대중교양서 등에 제시되는 설명)은 공리주의에 의한 설명, 잠정적 협약으로서의 설명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권에 대한 허약한 기초일 수 밖에 없는데, 공리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본권의 범위를 제약할 수 있고, 협약의 조건이 깨어지면 언제든지 기본권 질서도 깰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의 54절 이하를 읽으면, 훨씬 더 풍부한 논거들을 발굴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JusticeasFairness_Stability_54secff.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