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롤즈의 제자로서 '소수문화집단의 문화적 성원권에 대한 권리minority rights to cultural membership'의 전문가인 윌 킴리카의 <자유주의, 공동체, 그리고 문화>의 제5장을 요약 번역한 것입니다.
앞서 학습자료/외국문헌 게시판에 게시하였던 제4장에 이어 이 글은 공동체주의의 개념적 주장과 경험적 주장이 모두 혼란과 빈약한 논거 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테일러의 '사회적 입론'Social Thesis 이란
1) 개념적 입론 - 자유주의가 공동선의 정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비정합적이다. 즉, 자유주의는 교리 그 자체가 사회의 해체를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2) 경험적 입론 - 설사 자유주의 교리가 꼭 이론적으로 사회의 해체와 붕괴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여도, 자유주의 정치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다 정치에 참여할 아무런 동기를 가지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중앙집권화된 관료들이 일을 다 처리하게 되어 공화국은 망조가 든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1)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각자 하고 취향을 추구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므로, 좋은 삶이 무엇인가 공동으로 논의하고 추구하는 것이 없어, 유지가 안된다.
2) 기독교 근본주의처럼 이것이 좋은 객관적으로 좋은 삶이다, 그러니 다 같이 이런 삶을 살자, 이런 열정과 마음이 들어야지 정치를 할 맛이 나지, 자유주의의 제약을 지키느라 다른 사람이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간섭도 못한다면 이건 삶의 정체성을 추구할 맛이 안난다. 그러니 '공동의 삶의 방식'을 논의하고 강제할 수 있는 정치를 해야 공화국이 살아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킴리카는 1) 개념적 입론에 대해서는, 자유주의가 자유주의 헌법 질서 자체를 공공선으로 보고 그것을 강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에는 아무런 비정합성도 없다.
2) 경험적 입론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근거가 없을 뿐더러, 도대체 왜 망조가 안들기 위해서 꼭 공동체주의 정치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삶의 방식a way of life'라는 것은 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배제와 메스로 자르듯이 샥 베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배제적인 삶의 방식을 강조해보았자 배제된 집단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끔 하기는 커녕 더 엿같다고 해서 물러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배제된 집단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추구하며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지위와 자원을 확보시켜주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가 하는 일이다.
아울러, 킴리카는 자본주의 복지국가, 남성이 가장인 이성애 가족, 성별 노동분업라는 '자유주의와 결부되어 있는 현재 시점의 제도'가 정치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필연적 귀결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사회의 통합을 추구할 수 있는 이론이지만, 현실에서 붙박혀 있는 이러한 전통적인 제도가 소수자를 배제하게끔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킴리카는 자유주의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이 소수에게 독점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이 필연적일 수 있으며(롤즈의 재산소유 민주주의) 또한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정치제도의 변화도 필연적일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만, 킴리카가 자유주의의 실천적 귀결로 래디컬 페미니즘을 제시한 것은 논증이 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킴리카는 페미니스트들의 소수자 통합적인 논법과 공동체주의자들의 소수자 배제적인 논법을 대조시키고 있으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논법이 공동체주의자들의 논볍과 구별되는 것은 분명하나, '자유주의의 논법'과 상통하는 논법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이에 관하여는 학습자료 게시판의 드워킨의 글들을 참조.)
4장에 이어 한 번 읽어볼 만한 글이라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