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드워킨의 <법복을 입은 정의Justice on Robes>의 제5장 원본주의와 충실(Originalism and Fidelity)를 주석을 제외하고 완역한 것입니다.
JusticeonRobes_OriginalismandFidelity.hwp
이 글은 원본주의가 헌법 해석에 대한 타당한 이론이 될 수 없음을 밝히는 간명하고 설득력 있는 글이어서, 따로 요약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본주의는 구체적인 기대나 희망이 아니라 추상적인 원리를 규정을 진술한 헌법제정자들이 말하고자 한 바에 대한 타당한 해석이 아니다. (최선의 후보를 임명하라는 기업 회장의 경영자에 대한 명령의 예) 원본주의 대표주자 스칼리아는 이 점에 대해 제대로 답한 바가 없으며 스스로의 짧은 글에서도 명백한 모순을 범하고 있다.
(2) 원본주의는 실제로 헌법사적으로 중요한 판결들과 양립가능하지 않다.
(3) 원본주의자들은 실제로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며, 오히려 훨씬 더 쉽게 그런다.
(4) 원본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수결 관념에 기대고 있으며, 그 관념은 정당화될 수 없다. 원본주의의 다수결관은 사실상 노골적인 순환의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거나, 아니면 몇 가지 매우 불분명하고 논쟁적인 고려사항을 언급함으로써 곧바로 거대한 결론으로 달려가는 단순한 논리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5) 다수결이 정당화효력을 가지는 것은 그 정당화를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 성립되었을 때 뿐이며, 헌법은 그러한 전제조건-국민의 헌법상 권리 즉 기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6) 낙태에 대한 권리가 헌법에 없는 권리를 창설했다는 원본주의자들의 주장은, 개념의 추상 수준을 함부로 섞음으로써 사이비 문제 설정을 시도한 것이다. 만일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판사 임용에 대한 권리"나 "미결구금일수를 산입받을 권리"와 같이 헌법에 언급되지 아니한 권리를 창설했다고 비난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가장 구체적인 사건에서 쟁점이 된 것 옆에 "-의 권리"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곧바로 그 권리가 헌법 문언에 적시되어 있지 않다고 비난하는 초보적인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구체적인 권리가 헌법에서 정한 추상적인 권리에 "속하느냐"(belongs to, falls in)는 것이며,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로서 그 타당성을 논증함으로써 헌법에의 충실을 입증하게 된다.
(7) 실용주의는 규범적으로 타당한 목적이 있어야 그 수단의 효과성을 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를 망각한 것이며, 점진적인 유비에 의해서 다 판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든 유비는 '원리'를 전제로 해야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실제로 법 실무를 하다 보면 X사건에서 A사건의 판례를 인용하면, 상대방이 A사건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A사건과 다른 사실관계 모두를 열거하는 변호사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예를 들어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의 수가 다르다 등등-, 만약 유비에 의해서만 판단한다면 무엇이 법리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다른 점이고 같은 점인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원본주의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단어나 말에 "자연적이고 명백한 의미"가 있다는 잘못된 언어적 가정-일종의 의미론적 환상-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언어적 가정은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에 의해 이미 논파된 바 있는 것입니다. 단어나 말은 사용의 "맥락"과 "목적"을 확정치 아니하면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는 것이며, (예를 들어 '벽돌'이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는 '벽돌' 한개의 모습을 관념에 표상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저기 있는 벽돌을 가져오라!"라는 의미가 될 수 있으며, '정치'라는 행위는 통상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지만, 법 문언의 '정치'라는 말은 그 법률의 구조와 목적, 체계, 원리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의 의미는 다른 언어의 그물망 속에서 번역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 자연적으로 표상에 의해 "보게" 되는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8) 결국 원본주의자들이 "법에 충실"하고 통합성으로서의 법 해석자들은 "법을 넘어선다"고 하는 비난은 모두 그 의미가 불분명한 환상에 기초하고 있는 사이비 문제 설정 내에서의 비난이며, 동반자로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문서인 헌법에 충실한 해석은 통합성으로서의 법 해석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