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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학] 삶의 구체적 과정을 이끌어나가는 지침으로서 쾌락 원리

by 시민교육 2021. 1. 25.

1. 개념의 한정

 

쾌락 원리는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이념을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구체적 과정을 이끌어나가는 지침으로서 쾌락 원리다. 

 

2. 정의

그런 지침으로서 쾌락 원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양면을 갖는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받아들인 가치 있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 가장 쾌락적인 행위 경로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받아들인 가치 있는 목적에 부합하는 경로로 거칠 수밖에 없는 경로를 가장 쾌락적으로 경험하도록 정신과 육체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원리이다. 

 

3. 주의 : 가치 자체에 대한 원리가 아님 

즉 이런 제한된 의미에서의 쾌락 원리는 무엇이 가치 있는가 자체를 근원에서 결정하는 원리가 아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삶은 왜 의미 있는가>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열린 구조의 객관적 목록 이론과 비슷한 것에 의해 판정된다. 그 책에서 제시된 이론이 '객관적 목록'(objective list)라고 칭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책에서 제시된 이론은 예를 들어 진리의 가치는 쾌락의 가치로 환원할 수 없고, 그것이 산출하는 쾌락과는 별도로 진리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문제에 관하여 거짓을 피하고 참을 추구하는 것이, 설사 쾌락을 추가로 산출하지 않거나 심지어 쾌락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거짓을 피하고 참을 추구할 독립적인 행위의 이유가 있다.  그 책에서 제시된 이론이 '열린 구조'(open ended)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용적 가치로서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감소, 진리의 추구와 음미, 아름다움의 창조와 음미, 우정을 비롯한 애착과 유대의 형성을, 그리고 엄격한 배경적 가치로서 엄밀한 도덕적 의무의 준수 그리고 덜 엄격한 배경적 가치로서 정치적 책임의 이행과 같은 것을 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목록은 소진적이고 배제적인 것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또한 구체적 삶에서 어떻게 조합하여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개인의 기질과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에서 한 장을 할애해서 다루었던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교훈을 녹여내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 그 책에서 필자는 스토아 학파의 논의는 삶의 구조와 방향을 잡는 지침으로, 에피쿠로스 학파의 논의는 구체적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지침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스토아 학파의 지침을 구현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여러 글에서 이미 논한 바 있으니, 이 글에서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지침을 녹여내는 방법에 대해 좀 더 부연하도록 하겠다. 

 

4. 쾌락 원리의 위치와 중요성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의 중심에 진리 추구와 음미를 놓고 그밖의 다른 가치들도 추구하고 향유하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해보자. 이 경우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는 과연 그러한 가치를 매일매일의 삶에서 어떤 식으로 추구할 것인가이다. 바로 이렇게 자기 삶이 지향할 것으로 파악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구체적 과정을 지도하는 원리가 이 글에서 말하는 제한된 의미에서의 쾌락 원리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쾌락 원리는 다른 도덕적 원리와 윤리적 원리가 모두 다 제 역할을 하고 나서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원리다. 그러나 우선성은 밀착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일인칭 관점에서 배경적 가치 및 내용적 가치와 직접, 심층적으로 관련된 것이 분명히 우리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우리의 목적을 설정하는 데 우선한다. 그러나 일단 방향과 목적이 설정되고 나면 실제 일상의 삶에서는 이 쾌락 원리야말로 가장 밀착되어 있어 구체적 순간들을 지도하는 원리가 된다. 

 

쾌락 원리의 위치가 이렇게 가장 나중에 작동하는 원리로 설정된 이상, 쾌락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진리 추구에 비슷하게 적합하고 효과적인 여러가지 방식 중에 덜 쾌락적인 방식과 더 쾌락적인 방식이 있다면  더 쾌락적인 방식을 취하고 그 방식이 가능한 한 더욱 쾌락적으로 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쾌락 그 자체가 내용적 가치의 중대한 일부를 이룬다.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쾌락을 더 많이 누릴수록 좋다. 둘째, 어떤 가치 있는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향유하는 쾌락은 그 추구 과정을 꾸준히 지속케 하는 동력을 낳으므로, 그 가치 있는 활동을 장기적으로 더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즉 이렇게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위치에 있는 쾌락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 이유도 없이 부인할 수 없는 가치를 더 적게 누리려는 것이자,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오만하거나 순진한 관념을 가짐으로써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포기하는 것이다. 

 

5. 통찰의 토대: 비쾌락적인 삶

 

쾌락 원리는 그 명칭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강도 높은 쾌락을 누리는 순간을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은 오히려 분별이 없는 것 내지는 타산적이지 못한 것(imprudent)이다. 첫째로 그런 쾌락은 삶의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삶을 구체적으로 끌어나가는 힘이 되지 못한다. 둘째로,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그런 순간을 많이 누리려고 할 때에는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국 강도 높은 쾌락을 감수할 수 있는 범위의 부작용만을 수반하면서 누리는 순간이 올 수 있다면 그 순간에 몰입하면 되는 일이지, 그것 자체를 인생 전체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은 혀명치 못하며,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쾌락 원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쾌락 원리의 핵심 내용을 구성하게 되는 통찰은 일상적으로 비쾌락적인 삶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온다고 할 것이다.

비쾌락적인 삶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것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쾌락을 지속가능한 선을 넘어서 한계까지 추구하지 않음에서 오는 경우가 없다. 오히려 비쾌락적인 삶은 짜증, 불필요하게 늘상 민감함, 산만함, 그리고 주도권의 상실에서 온다. 어떤 사람이 하루종일 짜증나 있거나 인간 조건에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괴로움들에 불필요하게 늘상 민감하거나, 어떤 활동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생각이 부유하고 자극에 이끌려다니거나, 일상을 주도권을 가지고서 끌어나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하루가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짜증도 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관련 없는 자극에는 둔감하고, 집중하고 몰입하며, 주도권을 가지고 시간을 쓴다면 그 사람의 일상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6. 쾌락의 전략 

 

그렇다면 일상의 쾌락적인 삶은 비쾌락적인 삶을 유도하는 요소들을 그 반대의 요소로 바꾸는 전략에 의해 가능한 정도까지는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현에 적합한 요소는, (1) 육체의 활력 및 편안함과 함께 (2) 정신의 단순함, 정연함, 몰입, 주도성, 긍정적 사항에 초점을 둔 수용성

 

가능한 한 육체가 편안하고 정신이 일상적 쾌락을 누리기 쉽도록 형성되어 있을 때, 쾌락의 실은 상당한 정도로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며, 끊어졌다 하더라도 곧바로 다시 재개되어 이어나갈 수 있다. 

 

7. 육체의 활력과 편안함

 

(1) 활력

육체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준칙과 요령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 중 골자가 되는 것들만 들면 다음과 같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님으로써 매일 1시간은 자동적으로 걷게끔 생활을 조직하고, 추가로 적당한 시간대에 30분을 산책한다. 꼭 더욱 더 무거운 것이나 더욱 더 많은 횟수를 할 필요는 없으니 언제나 하루 15분은 중간에 쉬지 않고 종류만 바꾸는 근력운동을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업 도중이라도 주의 깊은 스트레칭을 한다. 일하는 자세를 자주 미묘하게 바꾸며, 되도록 곧게 한다. 다리를 꼬고 않지 않으며 턱을 괴고 옆으로 눕지 않으며 허리를 틀어 무언가를 줍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식사는 배가 부를 정도로는 먹지 않으며, 하루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무엇을 먹고 나서 최소 2시간이 지나기 전에 누워 자지 않는다. 낮잠이 필요하다면 앉은 채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거나 20-30분 내로 잔다.

단 음료 대신 물을 마신다. 물은 심심할 때마다, 기분 전환을 할 때마다 마신다.

오후 3시 이후에는 카페인이 든 음료는 삼가고 커피에 대한 욕구는 따뜻하거나 차가운 물로 대체한다.

붉은 고기류와 인스턴트 음식은 가끔의 즐거움을 위하여 먹더라도 일주일에 세 끼 정도로 제한한다.

집에 들어오면 샤워를 하거나 옷을 갈아입기 전에 먼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음악감상을 하면서  청소를 15분 정도 집중적으로 하여 최소한의 정돈에 별 노고가 들지 않도록 한다.

잠 자는 것을 즐기고, 잠이 들기 직전의 그 기분 좋음을 한껏 누린다. 이 때 기분 좋음은 내부에서 즐거운 상상을 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즐거운 상상은 되도록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상상이 좋다.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의 희망 등 현실 세계에 관한 것은 잠자기 좋은 상태에 적합하지 않는 반추의 곁길로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현실과 단절된 가상의 세계를 매일 조금씩 이어서 상상하여도 좋다. 

하루 7시간-8시간을 잔다. 

엎드리거나 옆으로 턱을 괴고 무엇인가를 보지 않으며 침대에서는 누워서 잠을 청하기만 한다. 잠이 오지 않으면 따뜻한 물을 마시고 몸이 자연스럽게 피로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정신에 그리 자극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한다. 피로함이 오는 순간 곧바로 누워서 잠을 청한다. 

 

(2) 편안한 육체

 

편안한 육체는 나태한 육체와는 다르다. 나태함은 편안함과 혼동되기 쉬우나, 실상 이 두 가지는 크게 다른 것이다. 편안한 자세는 신체 건강에 아무런 무리를 주지 않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가능케 하거나 오로지 휴식만을 가져다주는 자세이다. 이를테면 좋은 의자와 높이가 맞는 책상 덕택에 긴장을 푼 앉은 자세는 지속적인 활동을 가능케 하므로, 그리고 정자세로 누운 자세는 오로지 휴식만을 가져다주므로, 편안한 자세이다. 반면에 다리를 꼬는 자세는 나태한 자세다. 취하기 쉬우며 일단 취하고 나면 바꾸기 힘든 자세이며 신체 건강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엎드리거나 턱을 괴는 자세, 의자에 허리를 숙이고 어깨는 올린 자세도 마찬가지다.

이런 자세들은 일종의 저준위의 자세다. 저준위의 자세는 빠져들기 쉽고 일단 빠져들면 거기서 다시 벗어나기 힘든 자세에 불과하다. 1-2분 잠깐 편하다는 느낌을 줄수는 있겠지만 일단 5분이 넘어가게 되면 불편함이 뚜렷해진다. 불편한데도 그저 게으르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일부러 계속 겪으면 결국 관절이나 근육의 건강에도 무리가 오게 된다. 게으름은 의지로 극복하기보다는 생활에 일정한 조건문의 결절점을 잘 구축해 넣음으로써 극복하여야 한다. 불편한 자세를 자기도 모르게 취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좋은 결절점이 되는 것은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잠시의 근력운동이다.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근력운동을 잠시 하고 나서 편한 자세로 전환하는 조건문을 반복해서 실행해본다.

 

8. 정신의 단순함, 몰입됨, 통제력 있음 

 

(1) 정신의 단순함 

정신의 단순함은 외부 자극 및 관계를 가능한 한 오롯이 쾌락적인 것만 남기고 철저히 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업무상 그리고 도의상 꼭 필요한 관계 이외에는 정말 만나서 즐거운 사람, 두려움 없이 인격을 내보이고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실험적 공간을 제시하는 이들과만 만나면 정신이 단순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어뜨려지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보는 것과 듣는 것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기여하는 것들로만 제한할 때 정신의 단순함이 생긴다. 뉴스는 법을 준수하고 자신의 정치적 책임이나 진리 추구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만 본다. 그 이외에 시시콜콜한 정보들이나 주장들은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좋다. 소셜 미디어는 좋은 책과 논문, 강연, 학회, 생활상의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접하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즉 그런 유용한 정보만을 주로 제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게시하는 글은 보지 않도록 계정을 설정한다. 

즉 인터넷 상의 글은 자신이 모르던 책과 논문을 발견하게 되고 학습을 이끌게 되는 계기로만 활용하고, 그 이상의 탐색이나 읽기는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상으로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주로 버스를 기다릴 때, 지하철에서 서서 갈 때 등으로 생활상의 특정한 루틴으로 한정한다. 안전하게 화면을 볼 수 있으며 다른 할 일을 할 수도 없는 이런 시간만 활용하여도, 자신이 휴식이나 정보취득을 위해 보고자 하는 시간은 모두 채울 수 있다. 

메신저로는 복잡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복잡한 이야기를 꼭 해야 된다면 전화로 하는 것이 좋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에 불필요한 복잡한 자극을 넣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결절점이 되는 전환 행동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공책에 써도 좋고 일기 파일에 타이핑해도 좋다.

 

(2) 정신의 정연함

 

정신의 정연함은 두 가지 전략으로 구현된다. 첫 번째 전략은 업무상 도의상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외부의 마감이 설정되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같은 일도 외부의 마감의 압박이 심할 때는 즐겁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외부의 마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코앞에 닥쳤을 때 우리의 의식의 초점은 행위의 질이 아니라 결과의 산출에만 놓이게 되며, 그래서 수행의 쾌락성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외부의 마감이 설정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해서 유익한 일들을 덜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유익한 일을 자기 계획에 따라 상당 부분 먼저 해 놓고 그제서야 외부의 협동과 연계시키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이 일은 맡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를 묻고, 만일 선택이 가능한 일이라면 "이 일을 맡으면 과정지향적이지 않고 결과지향적으로 내 삶을 변질시키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외부 마감을 무리하게 설정하지 않고 나의 주도로 유익한 일을 해나가는 방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전략은 최소주의이다. 최소주의는 어떤 일을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먼저 달성하고,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더 개선하는 일은 그 달성 이후로 미루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감을 어기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 최소한의 기준을 달성한 일의 결과를 주는 사람이, 앞의 5분의 1을 완벽하게 만들어냈지만 뒤의 5분의 4가 전혀 진척이 없어 일의 결과를 아예 줄 수 없는 사람보다 훨씬 신용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먼저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완성하고 나서, 그 다음 질을 개선하는 방식을 익히도록 하면 된다. 이 때에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면서 일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을까?'를 늘 염두에 두고 방법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 번째 전략은 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삶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게임으로 보고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전략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이 감각에 도움이 되는 접근방법은 상당히 간단한데, 성취해야 할 것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수행할 행위를 분해하며 구조도를 그리며, 그 행위별로 점수 같은 것을 적어놓는 그림을 공책에 그리는 것이다. 그 점수는 자신에게 주는 실제의 보상과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의 보상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저 점수를 획득하고 합산해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이 게임은 의외로 일상용어에서 말하는 실제 게임보다 더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 실제 게임의 쾌락은 불순하다. 왜냐하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많은 짜증과 좌절감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 게임의 룰을 어느 정도 이해해서 어느 정도 게임 내에서 성취를 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좌절을 겪어야 하고 특히 대결형태의 게임일 때에는 상대의 실력과의 격차에 따라 또 좌절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짜증과 좌절에다가, 게임을 하느라 일상에서 미룬 일로 인해 결국 게임 외적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까지 합쳐 순쾌락(net pleasure)를 계산해보면 그리 많지 않다. 반면에 일상의 과제 해결은 게임 개발자가 설정한 난이도나 경쟁형 게임에 참가하는 다른 참가자의 실력 수준에 따라 좌절을 겪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과제를 좀 더 쪼개어 난이도를 설정할 수 있고, 어떻게 풀어갈지 접근방법을 생각해보고 시행착오하는 과정을 자신에게 맞춰 조절할 수 있다. 물론 마감이 촉박한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생기면 좌절할 수도 있지만, 첫 번째 전략을 잘 시행했다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좌절할 상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네 번째 전략은 음악 등을 활용하여 일을 하면서 감각을 편안하거나 즐겁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하는 활동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 

 

위와 같은 정신의 정연함을 위한 네 가지 전략을 쓴다면 1년 전체를 통틀어서보면 심각한 좌절을 겪는 경우는 단기적이거나 예외적이다. 만일 두 전략을 썼으며 자주 하는 업무에 이미 익숙해졌는데도 여기서 말한 예외적 상황이 오히려 항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삶의 여건 자체를 바꿀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금 더 숙련될 것이기 때문에 7-9 개월 뒤에는 충분히 일상의 정연함을 누릴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면 상관 없겠지만, 3년이 넘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과업의 수행 방식이나 과업의 양을 최대한 조정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전직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평생 동안 정연함을 해치는 업무는 자신의 기질에 맞지 않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3) 몰입 

몰입은 어떤 문제를 적절한 접근 방식으로 순조롭게 풀고 있다는 감각에서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감각을 드물게만 느낀다. 그러나 정신의 단순함과 정연함을 갖추게 하는 전략을 실행하면 이 감각은 좀 더 자주 올 수 있다.

거기다가 약간의 요령을 더 얹으면 한층 더 자주 몰입 상태에 진입할 수 있다. 첫째 단계로, 지금 대면하고 있는 문제를 아주 세부적으로 특정한다. 둘째 단계로, 그 문제를 풀이하는 수행의 문법을 명확히 심상화하거나 정리한다. 셋째, 그 문법대로 정신과 몸을 움직인다. 물론 이 세 단계는 시행착오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변모할 것이다.

문제의 더 뚜렷이 세밀하게 보이고 접근 전략이 더 자물쇠에 들어맞는 열쇠인 것이 확인될 때, 리듬감이 생긴다. 문제가 세부적으로 특정되지 않았을 때 정신은 번망하게 되며 번망한 정신에는 몰입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몰입을 경험한지 오래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시 몰입과 친해지는 생활을 위해 쓸모가 있을 수 있는 보조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가능한 한 환경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만든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을 15분-20분 단위로 정한다. 그 시간 동안 정신과 몸이 따라야 할 문법을 공책에 정확하게 심상화해서 적어둔다. 그 시간 동안은 그 문법에 따라서 정신과 몸을 움직이는 일에만 집중한다. 집중에 성공하여 하고자 하는 과제를 해냈다면 기록해둔다. 문법에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기록해둔다. 그런 성취 경험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좀 더 긴 시간 몰입할 수 있는 준비상태에 이를 수 있다. 

 

(4) 주도성

주도성은 외부 자극에서부터 시작된 우연한 신체적 정신적 연쇄가 자신을 끌고다니는 것이 아니라, 고차적 자아의 합리적이고 실행가능한 계획이 자기 일상의 길을 터주고 그 길을 자기 자신이 걸어간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성격을 말한다. 

주도성을 위해서는 걷거나 눈을 감거나 물을 마시는 휴식 상태를 1시간에 한 번 정도씩 가지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 일은 가치 면에서 이득이 되는가를, 그 날 하기로 한 과업들의 목록을 쳐다보면서, 반성해보는 일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물론 이때에도 살펴서 깨달은 것을 공책이나 파일의 일기에 적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도성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장 저항이 적은 문법인지 알아내고 그 문법을 일정 시간 동안 따르기로 하는 태도에서 잘 유도된다. 

 

(5) 긍정적 사항에 초점을 둔 수용성

세계에는 긍정적 심리 상태를 낳는 것들이 있고 부정적 심리 상태를 낳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외부적 사건의 발생과 부정적 심리 상태의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immediate and direct) 것도 있지만 멀리 있고 간접적인(remote and indirect)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방금 문턱에 발가락을 찧었다면 고통이라는 부정적 심리 상태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생한다. 반면에 과거에 자신이 문턱에 발가락을 찧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연상하거나 다른 사람이 문턱에 발가락을 찧은 상황을 지속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부정적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마음 상태를 형성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에게 누군가 친절하게 해준 일을 떠올리며 고마워하거나 오늘 읽었던 책의 탁월한 문제 풀이 솜씨를 상기하는 것은 긍정적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마음 상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적 사항과 긍정적 사항이 모두 있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정적 사항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적합한 태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용하게 그것을 곱씹는 것은 현명치 못한 태도이다. 긍정적 마음 상태를 낳는 사항들과 선택적으로 연계하는 일은 몇 가지 간단한 작업을 통해 유도할 수 있다. 즉 틈날 때마다 긍정적 사건과 긍정적인 심상들을 떠올리고 음미하고, 그런 것들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부정적 사항은 오로지 미래 행위의 변경을 위한 자료로서만 취급한다. 통제할 수 있어서 바꾸는 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면, 그저 인간 조건의 한 부분으로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되고 나의 현재의 행위, 그리고 그런 행위로 구성되는 일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두는 것이다. 

 

9. 쾌락 원리의 실천 주기와 실천 사항: 짧고 좁게 시작해서 확장해나가기

 

처음에는 쾌락 원리의 실천이 만족스러울 만큼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쾌락 원리의 실천 주기를 먼저 짧게 잡고, 실천의 면모 중 하나의 면에 먼저 집중하여 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앞으로 30분 동안 단순성의 원리를 실천하기 등등으로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최대 확장했을 때에는 습관화를 통해 여러 실천 전략을 하루 단위에서 어느 정도 전반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며, 그 뒤부터는 계속해서 건강하게 유지하고 조금씩 개선하거나 수정하는 식으로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