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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립물] 자연주의 오류는 오류가 아니라고 하는 존 설의 논증과 실패

by 시민교육 2022. 3. 21.

설은 존스가 하기로 약속했다는 제도적 사실로부터 존스가 해야 한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한다는 제도적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 약속한 바를 하기로 하는 의무를 약속자가 지게 만든다고 한다.(Searle, John R. (1964). "How to Derive 'Ought' From 'Is'". Philosophical Review. 73 (1): 43–58)

그러나 첫째로, 정말로 약속에 관한 사실로부터 약속이 있던 경우 약속자의 행위에 대한 당위가 모두 도출된다고 본다면, ‘약속을 어겨야지만 낯선 아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경우에는 존스가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약속을 어겨야지만 낯선 아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경우에는 존스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를 전혀 해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당위에 관한 명제들은 약속했다는 사실로부터 전혀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로, 설은 자신이 제시한 일련의 단계가 약속자는 약속한 바를 지켜야 한다라는 규범 명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응하여, ‘제도적 사실’(institutional fact)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1000원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돈이고 어떤 빌딩이 은행이라는 것이 규범이 아니라 제도적 사실이라고 한다. 이것은 그 제도(사회적 사실)의 존재와 그 가치를 인정하면 성립하는 사실이다. 약속자가 약속한 바를 하기로 하는 책무를 짊어진다는 것도 그와 같은 제도적 사실이다.(Searle, John R. (1995).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New York: Free Press.)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약속하기에서 나오는 책무가 순수 제도적 사실일 때에만 성공한다. 톰슨이 The Realm of Rights, 12장, 그리고 토머스 스캔론이 <관용의 어려움> 제13장에서 설명하듯이 약속은 언질주기의 한 종이며, 언질주기는 약속 관행이라는 제도적 사실이 없을 때조차, 자신의 단호한 주장에 언질 받는 사람이 의지하도록 초청한 점에서 언질 한 바를 참이 되도록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즉 약속하기 관행이 전혀 없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최초로 언질을 주거나 약속을 한다 해도 자신이 한 말에 의지할 것을 초청한 사람은 자신이 단호하게 주장한 바가 성립하도록 할 책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셋째로, 제도적 사실만을 전제로 도출되는 해야 한다는 행위자가 가진 규범적 이유에 의해 파기될 수 있는 얕은 표지에 불과하다. 법은 대표적인 제도적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도록 그 소재를 신고해야 하며,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라는 내용의 법이 그 사회의 법적 승인의 규칙에 맞게 주권자(왕이나 의회)에 의해 절차에 맞게 제정되고 또 그 사회의 법 공무원들 대부분이 규칙적으로 집행한다 할지라도, 그 법의 수범자인 국민은 과연 그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재를 신고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요라면 법이라는 제도적 사실의 내용이 어떠하건 그 소재를 신고해서는 안 된다. ‘특정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도록 그 소재를 신고해야 하며, 신고하지 않으면 집단 다수에 의해 린치당한다라는 내용의 관행이 그 사회의 압도적 다수에 의해 그 존재와 가치가 승인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명제와 명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며, 옳고 그름은 제도적 사실을 성립시킬 만한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와는 독립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이 이다에 관한 진술들만을 전제로 삼아 해야 한다가 도출될 수 있다고 한 논증은 성공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