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의 좌파 자유지상주의에서는 자원의 가치에 대한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를 사람들이 타고 납니다. 그런데 새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길러야 하는 비용과, 그 아이 때문에 기존 평등한 몫이 줄어드는 비용이 생겨나는데,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슈타이너가 자유지상주의자이므로 (사실은 이것은 자유주의자에게도 공통된 헌신이지만) 책임 원칙에 대하여 헌신합니다. 그래서 책임원칙에 대한 헌신이 아이 비용을 비부모에게까지 공유케 하는 것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가 이 논문의 주된 주제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의 주제 자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흥미가 없겠지만(왜냐하면 다른 실용적 근거를 슈타이너와는 달리 보통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슈타이너처럼 자원의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소득제도 같은 것이 현실에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은 대단히 중요한 논지 하나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임이론에서 책임귀속의 판정과 책임몫의 판정은 별개의 문제이고, 따라서 각각 그에 적합한 논증도구로 답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논문은 포괄적인 구상을 내어놓지는 못하지만, 책임몫의 판정 문제라는 별도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아주 강력하게 납득시킨 점만으로도 훌륭한 논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하는 논문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하--
아이는 두 가지 비용을 발생시킨다.
① 보살핌의 비용: 새로운 사람들의 창조는 상당한 비용을 치른다. 아이들을 기르는 데는 그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는 데 요구되는 노동시간 면에서도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자원 면에서도 비용이―일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든다.
② 추가된 구성원의 비용: 그들이 일단 성년이 되면, 새로운 사람들이 정의로운 몫의 권리자격을 가진 동료 구성원의 기존 집단에 합류하고 그래서 그 몫의 크기를 아마도 감소시킨다.
정의에 따르면 이 두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가?
슈타이너는 이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이 논문의 저자는 대신에 정의로운 세금에 대한 그의 견해와 책임에 관한 그의 견해에서 슈타이너의 이 문제에 대한 일응의 견해를 추출한다.
전제가 되는 견해: 슈타이너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오직 두 가지의 시원적 권리, 즉 (i) 자기소유권 그리고 (ii) 자연자원에 대한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만을 가진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선대의 사람들이 완전히 전유한 세계에 오기 때문에 자연자원의 가치에 대한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다. 그리고 이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자원 소유자에게 경쟁가에 비례하여 과세하고 보편적 기본소득기금을 조성한다.
(슈타이너가 명시적으로 표명한 시원적 권리 및 정의로운 세금에 관한 견해로부터) 저자가 추출한 (아이 비용 부담에 대하여 슈타이너가 지지하게끔 되어 있는) 입장: (1) 부모는 비부모와 같은 금액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넘어 자원을 받을 추가적인 권리를 조금도 갖지 못하며, 그래서 보살핌 비용에 대한 보조를 받을 권리를 갖지 않는다. (① 보살핌 비용은 모두 부모가 책임져야 함)
(2) 자연자원의 전유에 대한 과세 면에서 보자면 비부모와 부모는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기금의 동등한 기여자이자 수혜자이기 때문에, 부모는 비부모에게 추가된 구성원 비용을 나누어지게 할 자격은 갖는다. (② 추가된 구성원 비용은 공유됨)
그러나 누가 아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슈타이너 입장의 두 번째 부분((2) 부분)은, 책임에 관한 슈타이너 자신의 입장과 차이가 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슈타이너는 누군가 구제받을 처지에 빠졌을 때 그 구제비용(보상)을 누가 대야 하는가의 질문을 세 가지 경우를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고 본다.
세계1: 불이익의 유일한 원천이 자연인 세계 (사람들은 자비롭고 타산적으로 합리적)
세계2: 불이익의 유일한 원천이 다른 사람들의 자비롭지 않고 해로운 행동인 세계 (사람들은 타산적으로 합리적이며 자연은 친절)
세계3: 이익의 유일한 원천이 타산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것인 세계 즉,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기 때문에만 불이익을 겪는 세계(다른 사람들은 자비롭고 자연은 친절)
슈타이너의 대응은 다음과 같다.
세계1: 불이익은 누구에게나 운의 문제이며 누구나 그 불이익을 제거하거나 줄이는 비용을 공유해야 한다.
세계2: 불이익을 겪는 사람에게는 운의 문제이지만 자신의 자비롭지 않은 행동을 통해 그 불이익을 야기한 사람에게는 운의 문제가 아니다. 불이익을 야기한 사람은 불이익을 제거하고 줄이는 비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계3: 불이익은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운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 불이익을 발생시켰으며, 그래서 정의가 관련된 한에는 그들이 그 불이익을 겪도록 내버려두어도 된다.
하나의 표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불이익의 유일한 원천
불이익 비용 부담
세계1
자연
모든 사람
세계2
다른 사람의 자비롭지 않고 해로운 행위
불이익을 야기한 사람
세계3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
자기 자신
그런데 출생으로 인한 불이익은 출산이라는 부모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세계2에서 발생하는 불이익 비용 부담에 관한 슈타이너의 논지는, 부모가 아이의 비용 모두를 내부화할 것을 요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라코우스키의 견해이지 슈타이너의 견해는 아니다. 라코우스키의 견해는, 아이를 출산하는 행위로 (추가된 구성원만큼 기존 자원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몫을 일방적으로 줄어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슈타이너의 실제 견해는 이와 다르다. 아이와 그 능력 수준이 주로 운의 결과가 아니기라 부모의 노동 그리고 (유전정보 풀을 포함한) 자연자원의 사용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연자원의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는 부모가 전유한 유전정보의 가치에 따라, 보상을 해야 할 수도 보상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함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전유한 유전정보의 가치가 낮으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입론(슈타이너가 실제로 주장한 입론)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비용을 부담을 해야 한다는 입론(슈타이너가 실제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슈타이너의 책임에 관한 견해에 의해 함의되는 입론)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이러한 긴장을 직설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직설적이라 함은, 긴장관계에 있는 어느 한 쪽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1안: 책임 원칙에 대한 헌신을 버리고 정의로운 세금에 대한 견해를 고수한다. 그래서 아이가 초래하는 모든 비용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2안: 책임 원칙을 고수하면서 정의로운 세금에 대한 그의 견해를 수정한다. 아이 비용 전부를 부모가 지불할 의무가 있도록 하고, 그 결과 부모는 자신의 기본소득을 포기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1안에 대한 비판: 책임 원칙에 대한 헌신을 버리는 것은 정의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2안에 대한 비판: 귀류법적 논박을 받는다. 이는 부모가 되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조차 자신의 부모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원을 받을 정의의 권리자격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기본소득기금의 폐지를 의미한다.
저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1안과 2안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 저자의 입장은 슈타이너 입장 안의 긴장이 외관상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책임 원칙을 지지하면서도 실제로 아이 비용 중 일부를 공유하는 것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조화 논제).
저자는 조화 논제를 두 단계의 논증으로 확립하고 자한다.
1단계(소극적 단계): 책임 원칙의 채택은 그 자체만으로는 부모가 아이 비용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을 필연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2단계(적극적 단계): 추가된 구성원 비용이 실제로 공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슈타이너가 활용가능한 논증노선이 있다.
먼저 1단계의 소극적 논제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a) 책임귀속 여부 판정과 (b) 선택으로 인해 책임지는 몫 또는 선택의 결과가 어떠해야 하는지 판정이 별개의 상이한 판정이다. 설사 어떤 것에 대하여 책임 있다고 하여도(a 판정), 그 결과인 비용 전부가 책임지는 몫인 것은 아니다(별도의 b 판정)
(a) 판정이 ‘예’라고 하여도 (b) 판정이 ‘전부는 아님’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분별 없는 행동으로 인한 매우 나쁜 처지에 빠진 개인(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스스로 넘어져 크게 다치고 도로 위 방치된 사람)에게 비용 전부(도로에 방치되어 죽음, 또는 장애인이 되어서 노동능력을 잃어서 굶어 죽음)를 부담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제 2단계의 적극적 논제의 근거로는 제시될 수 있는 것을 차례로 살펴본다.
① 먼저 슈타이너가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건그덜을 살펴보자. (i) 고령화로 인한 경제와 복지정책 유지를 위해 높은 출산율을 유지한다는 인센티브 고려사항이 그 하나다. (ii) 아이 기르기를 한 쪽 성이 전담하여 부담하여 경제적인 면에서나 인정의 면에서나 취약하게 되어서는 안 되므로 사회가 공동부담해야 한다는 성평등 고려사항이 또 하나다. (iii) 아이는 미래의 연금이나 건강보험료를 지불할 공공재라는 고려사항이 또 하나다.
그런데 슈타이너의 견해에 의하면 (i) 인센티브 고려사항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제로 축소시키는 강제집행할 수 있는 의무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ii)의 성평등 고려사항은 비부모에게서 부모로의 이전을 필연적으로 요하는 논증이 아니며, 보살피는 자가 보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비이상 정의의 요구인 지점까지만 이전을 요하는 것이다. (iii) 공공재 고려사항도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논증은 공공재성을 지닌 어떤 선택을 다른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강제집행가능한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결론을 낳아 슈타이너의 견해와 어긋난다.
②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저자는 슈타이너가 지지하는 책임 원칙이 제한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함으로써 조화 논제를 확립할 수 있다고 본다.
제한된 책임 원칙: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은 해로운 간섭뿐이다. (여기서 해로운 간섭이란 권리를 침해하는 간섭이다.)
제한된 책임 원칙의 함의: 아이를 가지기로 하는 부모의 선택과 추가된 구성원 비용을 외부화하는 것이 권리 침해가 아니다.
왜 이런 함의가 나오는가? 부모는 비부모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하는 해악을 가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없다. 아이를 갖기로 하는 부모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몫을 감소시킴으로써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미칠 수 있다)는 것은 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권리 침해와는 다르다.(해악을 권리에 기반하여 정의) 자신들의 권리 내에서 행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것만으로는 유관한 의미에서―즉 그 비용을 외부화할 것을 요구하거나 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 의미에서―해악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추가된 구성원 비용의 외부화에 의해 비부모의 권리가 새 사람들의 권리가 충족되도록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에 의해 침해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론의 전제가 되는 원칙―자연자원의 몫에 대한 우리의 권리가 우리가 처분할 수 있는 자연자원 몫이 다른 사람이 탄생에 책임이 있는 새로운 구성원의 추가로 감소될 때마다 침해된다는 원칙―을 적용한다면, 자연자원에 대한 비부모의 권리는 동일연령집단이 아이를 낳아 자원을 공유해야 할 때뿐만 아니라 동일연령집단과 자원을 공유해야 할 때에도 침해된다. 왜냐하면 동일연령집단도 그 부모의 책임으로 존재하게 된 탓에 자원을 공유할 추가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리는 동일연령집단을 낳은 부모와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에 의해서도 침해될 것이다. 그들 역시 조부모 연령집단의 책임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누군가의 아이이므로, 문제의 견해에 의하면 자원의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주장이 권리 침해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도, 슈타이너의 이론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동시공존불가능한 권리 세트 또는 상호 일관되지 못한 권리 집합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자연자원의 평등한 몫에 대한 권리의 그럴 법한 해석은, 자기 세대뿐만 아니라 이전과 이후 세대에 정당한 몫에 대한 마찬가지의 권리주장자로서 존재하는가에 따라 모든 각인이 소유권리를 가진 자연자원의 몫이 달라지는 권리라고 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슈타이너는 조화 논제를 지지할 수 있다. 즉 부모가 그들의 아이 보살핌 비용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정당한 반면에, 그들이 탄생시킨 추가된 구성원 비용은 외부화해도 된다.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책임 원칙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