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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외국문헌소개

[일부번역] 사무엘 프리먼 <공적 이성과 정치적 정당화>

by 시민교육 2012. 1. 12.



이 글은, 사무엘 프리먼의 <정의와 사회계약 Justice and the Social Contract>의 제7장 공적 이성과 정치적 정당화Public Reason and Political Justification을 문단 18부터 끝까지 번역한 것입니다.

공적 이성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인데도, 롤즈의 책이 난해한 까닭에 잘 이해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공적 이성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한국 사회의 헌법 논쟁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잉금지 원칙의 '목적의 정당성' 부분의 심사 기준으로, 그리고 형량balancing 대상 식별의 기준으로)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롤즈의 '공적 이성'은 좀 더 적합한 형태로 다듬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롤즈의 공적 이성은 자유주의의 핵심 신조를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잘못 배제한다는 점에서 범위가 너무 좁게 잡혀져 있고, 그 결과 롤즈 자신의 공언과는 달리 완결성(completeness)을 갖추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이 글에서 드워킨의 부분적 낙태 허용 찬성론에 대한 프리먼의 논의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저는 드워킨의 논변이 자유주의 정치의 공적 이성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 판단하며, 그런 논의(헌법의 '인간성')조차도 막아버리면 공적 이성은 대단히 불완전하게 된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이러한 공적 이성의 정교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롤즈의 공적 이성 자체를 잘 이해하고 그 약점을 그대로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롤즈는 충실하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의 달인인 사무엘 프리먼의 이 글은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래는 이 번역글에 기초하여 몇 가지 질문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Q) 공적 이성은 왜 필요한가?
A) 시민들의 합당한 포괄적 견해가 서로 상충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기독교,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 경쟁이 인생에서 최고라고 믿는 사람, 인생에서 경쟁은 줄어들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연대가 최고라고 믿는 사람, 개인주의적인 사람, 공동체에 묻혀 들어가 살길 바라며 그것이 인간에게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 등등 엄청 많다. 이들이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고 공적 제도에 합의하고 그것을 운용하려면 하나의 포괄적 교설에 의해서는 합당한 사회가 되지 못한다.

Q) 공적 이성의 기능은 무엇인가?
A) 공적 이성은 헌법의 핵심사항과 기본적 정의의 문제에 관하여, 이런저런(one or another) 견해에 특유한 이유들을 배제한다. (자율성, 총효용, 신의 의지와 자연법 등등) 그래서 판사는 어제 신이 꿈에 나타나서 피고인이 유죄라고 말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때릴 수가 없다. 그 꿈이 얼마나 생생하건 말이다. 다른 한편,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의 실시를 기독교가 진리라는 이유로 정당화할 수 없다. 또한,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증대하면서 GDP 증대가 모든 이들의 삶에 최선이라는 이유로 그런 법을 통과시킬 수도 없다. 한 마디로 "믿는 사람에게만 타당한 이유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Q) 공적 이성은 그럼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견해인가?
A) 아니다. 공적 이성은 단순히 합당한 포괄적 견해들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이유들과 판단의 규준 이상의 무언가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 100%인 국가에서 이슬람교의 포괄적 교설이 모두 공통되더라도 그것은 공적 이성이 아니다.

Q) 그렇다면 공적 이성의 성격(nature)과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롤즈에게 공적 이성은 “시민의 이성 그 자체”다. 이것은 '시민'의 자격이 아닌 다른 개인, 공동체의 멤버십을 갖고 있는 개인의 비공적 이성이 아닌 것이다. 즉, 투표할 때, 배심원으로 일할 때, 행정청의 결정에 반대할 때, 모든 시민들에 대하여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하고, 공적 정치적 결정을 정당화할 때 사용하게 되는 이성이다. 그러므로 이 이성은 롤즈가 말하는 '고차적 이해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관을 전제로 하게 된다.

둘째로, 공적 이성의 주제는 세상 모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선과 근본적인 정의의 문제들"이다.이주제들은 민주적 시민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이해관심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 민주적 시민들은 특정한 근본적 이해관심을 갖고 있다. 이 이해관심들은 그들에게 고차적 시민으로서의 이유를 제공하며, 결과적으로(in turn) 공적 이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롤즈의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적 인간관에 의하면 민주적 시민들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을 확립하고자 하는 이해관심 뿐만 아니라, 협동하고 사회적 삶에 참여하며 그들의 선관을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도덕적 능력(PL, 74, 19)을 행사하고 발달시키고자 하는 고차적인 이해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에서 신부가 여성도 될 수 있느냐, 그리고 지역의 독서 소모임에서 읽을 책을 꼭 다수결로 결정해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는 공적 이성의 주제가 아니다.

셋째, 공적 이성은 호혜성의 기준에 의해 인도된다. (ciriterion of reciprocity) “호혜성의 기준은 공적 이성과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본질적인 요소다” (CP, 609) 공적 이유를 제시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유와 평등의 조건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의 근본적 이해관심에 비추어" 다른 이들이 민주적 시민으로서 합당하게 받아들이리라고 우리가 합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시민관, 인간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근본적 이해관심과 무관하게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인간들이 다들 받아들일거야,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하는 기준이 아닌 것이다. 결국 공적 이성은 자유주의의 핵심 신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넷째, 공적 이성의 내용은 “사회의 정치적 정의관에 의하여 표명된 이상과 원칙에 의해 주어진다”고 롤즈는 말한다.(PL, 213) 또는 롤즈가 이후의 토론에서 이야기하듯이, “공적 이성의 내용은, 일군의 정치적 정의관(a family of political conception of justice)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지 단일한 정치적 정의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CP, 581) 공적 이성을 온전히 활용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정치적 질문들을 토론할 때, 각각이 호혜성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정치관의 틀 내에서 숙고함을 의미한다.

다섯째, 공적 이성이 그 자신을, 합당한 시민들이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그들의 능력으로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고려사항들에 제한하기 때문에 공적 이성은, 형이상학적 도덕 또는 궁극적 가치에 대하여 “전체 진리(whole truth)”를 진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Q) 공적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공적 이성이라는 이상이 공적인 정치적 심의를 포함하기 때문에 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심의민주주의는 공적 추론이 일어나는 주된 포럼이다. 민주주의 내의 시민들은 다음과 같이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공적 추론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 (1) 만일 그들이나 그들의 구성원들 중 일부의 기본적 필요가, 그들의 기본적 자유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적절하게 충족되지 않는다면 (2) 정치적 포럼과, 공적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금전적 이해관계나 권력의 집중 등에 의해 부패하게 될 경우 그리고 (3) 교육, 직업 훈련, 공적 삶에의 참여에 대한 광범위한 공정한 기회가 없을 경우.”.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모든 부분이, 공적 이성의 토론에 참여하거나 사회․ 경제적 정책에 기여할 수 없다.”

Q) 공적 이성은 어떤 측면으로 구분이 되나?
A) 공적 이성의 세 측면은 구분될 수 있다: (1) 판단, 증거, 참조, 그리고 추론의 규준 (2) 경험적 판단, 즉 사실, 통계적 규칙성, 그리고 논란이 없는(uncontested) 과학 법칙이나 일반화 (3) 공적 이성에 내용을 부여하는 민주적 정의의 정치적 가치와 공적 정의관.

Q) 공적 이성에 어긋난 정치적 결정의 예는 무엇인가?
A) 흑백분리의 학교를 유지하는 것. 흑백 커플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 국교를 설립하교 유지하거나 특정 종교와 국가가 밀접하게 연루되는 것. 공무원들의 정치적 표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의 선호에 따라 그들을 침묵시키는 것. 이러한 공적 이성에 어긋난 정치적 결정은 개념의 장난에 의해 마치 공적 이성에 따른 정치적 결정인척 할 수도 있다.

<일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