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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외국문헌소개

[요약번역] 카우프만 "정형 원칙이라는 미신"

by 시민교육 2013. 6. 11.

 

TheMythofPatternedPrinciple_AlexanderKaufman.hwp

 

TheMythofPatternedPrinciple_AlexanderKaufman.pdf

 

이 논문은, 롤즈에 대한 엉터리 같은 노직의 비판의 논리의 허술한 토대를 철저히 까발리는 내용입니다.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는, 롤즈의 정의 원칙과 추론 방식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제기되는 엉터리 공격이란, 사실 노직이 대부분 제기한 것의 속류적 재탕에 불과한 상황이 많은데, 애초에 그런 속류적 재탕의 가장 정교한 형태인 노직의 비판이 토대가 허술하고 흐물허물한 것이라는 점을 잘 알아두면, 아주 간단하게 그런 엉터리 주장의 맹점을 예리하게 쑤셔 파고 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직의 자유지상주의는 그 논변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논변의 부분 부분이, '일상의 자유지상주의'적 신념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스니다. 이 일상적 자유지상주의 신념을 어떻게든 유의미하게 변경시키지 못하면 정치가 달성할 수 있는 지평의 한계는 매우 좁습니다.

 

이 논문이 쑤시고 후벼파는 노직 논리의 구멍을 간단히 요약하면,

 

노직은 롤즈의 이론이 '정형 이론', 그러니까 무슨 분배 패턴에 맞춰서 분배를 할 뿐이지, 그 재화들을 갖게 된 경위(예를 들어 열심히 일해서 시장에서 인정받아 돈을 벌었다! 아니면 내가 성정이 착해서 나를 예뻐한 사람이 나한테 선물로 줬다!)는 고려하지 않는 무식하고 간섭적인 원칙을 옹호하는 이론이라고 데마고그를 퍼뜨립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첫째, 노직 자신이 제시한 정형 이론(patterned theory)의 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도무지 롤즈의 이론은 정형이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 기준이란 (i) 특정한 자연적 차원의 변수에 따라 분배를 일치시키며 (ii) 특정한 선들(goods-사회적 가치들, 재화들 등등)의 특정한 분포 (예를 들어 A에게는 100, B에게는 200을 갖게 하라)에 일치시키면 정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롤즈 차등 원칙은 (i), (ii)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롤즈의 정의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회질서가 장려하는 어떤 일들을 하기로 선택하거나 실제로 하기 이전에 어떠한 구체적인 분배 상태도 예측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특정한 분배 상태를 위하여 그런 원칙이 고안된 것도 아닙니다. 노직 자신의 이론이 한계생산성이라는 자연적 차원에 따라 보상을 연결시키는 정형 이론이 아니듯이, 롤즈의 이론도 무슨 더 나은 처지와 더 못한 처지에 따라 특정한 양의 보상을 연결시키는 정형 이론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노직은 롤즈의 이론이 (i) 자격에 관한 유관한 역사과정적 정보를 무시하고 (ii) 사람들의 삶에 강제적으로 간섭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형 이론에 전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험을 친 학생들의 등급을, 그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고 치루어냈는가라는 역사과정적 정보를 무시하고,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매긴다고 가정해보라고 가상적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이 사례 유비는 참으로 웃긴 것이다. 이것은 (a) 정의론은 어떤 특수 맥락 내의 규범이 아니라, 항구적인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정당화하는 정의 원칙임을 보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b) 수행의 탁월성의 고려가 특별히 비중이 큰 사안을 의도적으로 고른 것이며 (c) 실제로 차등 원칙에 의해 설명되는 정보 투명성 요청의 사례임을 보지 못한 (마지막 c는 요약번역자가 덧붙인 것) 사례다. 이 사례 제시는 노직의 식견이 매우 좁고, 정의론의 체계적 지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롤즈 정의 원칙에서, 사람들은 제도질서가 장려한 일을 함으로써 그 질서 내에서 합법적인 권리주장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영어 시험을 잘 본 사람은 영어가 많이 쓰이는 직업에 가서 돈을 좀 더 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적 정보는 그대로 고려된다.

  게다가, 삶에 강제적으로 간섭한다고 주장하려면, '삶'의 경계를 먼저 획정해야 한다. 즉, 시장교환에 의해 주어진 재산을 절대적으로 내 것이라고 미리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절대적 재산권은 전혀 논증된 바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토대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다른 고려사항에 의해 시장교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유하게 된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은 삶에의 강압적 간섭이 아니다.

 

셋째로, 노직은 배경 전통의 규범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그것을 음미하지 못한다. 그는 절대적 재산권을 인정하는 어떤 규범들을 뽑아내어서 거기서부터 모든 논의를 쌓아올린다. 그러한 그의 논의는 반성적평형과는 무관한, 논증되지 않은 토대에서 논의를 쌓아올리는 정초주의다.

 

이 논문은, 저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제3, 4장에 대한 보충으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제 책 3, 4장은 노직의 자유시장주의, 정확히 말해서 소유권리론에 대해 제기된 비판들을 모두 정리하고 쟁기인과 파종인, 그리고 외계행성에 도착한 럭키 세븐조의 사례를 통하여 훨씬 더 와닿고 이해가 쉽도록 '재산권의 근본적 정당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논문 요약번역 안에는 괄호를 통하여 보충 설명을 달았으며, 추천 논문과 저서도 소개해놓았으므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