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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립물] 가짜뉴스 전반을 처벌하겠다는 식의 공언이 전제하는 것

by 시민교육 2020. 2. 1.

1. 감염병의 확산과 가짜 뉴스 처벌에 대한 엄포에 관하여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2% 미만이라는 것이 현재(2020년 2월) 질본의 공식발표이다.

그러나 이 공식발표와 어긋나는 치사율에 관한 사실의 주장이나 시사를 허위정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치사율'이라는 단어를 임의로 정의하여, 현 시점에서 그 질병으로 확진된 사람을 분모로, 현 시점에서 그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을 분자로 놓으면 그런 치사율의 값을 도출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 하는 치사율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 질병에 걸렸을 때 결국 그 병으로 인하여 사망할 확률에 관하여 정보를 알려주는, 그 질병에 걸린 사람 중 그 질병으로 인하여 죽는 비율을 알고 싶어한다. 또한 그 질병이 대규모로 퍼졌을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였을 때 죽음에 이르는 위험비율 또한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의미로 정의된 치사율 개념에 의하면, 전염이 엄청나게 확산되어 분모가 빠르게 커지면 커질수록 치사율은 0%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물론 이 개념에 의해서도 해당 감염병이 다 통제되고 난 이후에 최종 계산을 하면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치사율을 알려주게 되기는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치사율을 알고 싶어하는 이유는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얼마나 조심해야 하며, 행사는 취소할 것이며, 외출은 얼마나 자제할 것이며, 위생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쓸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결정의 기초로 삼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과정이 다 끝난 이후에야 관심 있어 하는 정보를 줄 수 있는 개념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사용될 수 있는 합리적 결정의 기초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초래하는 왜곡된 기초일 것이다. 게다가 바이러스 감염되었을 때 집중적인 최선의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의 치사율은, 해당 바이러스가 대유행하였을 경우에 벌어질 일에 관하여 좋은 지표가 되지 못한다. 이를테면 폐렴이 진행되었을 때 적시에 항바이러스제와 항진균제 항생제 등의 처방을 받으며 대증치료를 하지 못하였을 때의 치사율은, 감염자가 소수로 유지되고 있어 몇백 안되는 음압병동에서 충분히 기간을 두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때의 치사율과 다를 것이다. 그런데 최선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의 치사율도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그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통제를 잃을 경우 실제로 벌어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예측에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몇몇 도시에서는 대유행이 일어났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자 치사율은 폭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감염된 후 병이 진행되는 경과가 1-2주 이므로, 특정 시점에 감염된 집단을 표본으로 하여 그 표본 내에서 사망 비율을 알아보는 것은, 사태가 진행되는 경과 도중에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치사율을 알려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이에 관해서 초기에 나온 의학적 정보의 예로는 "Epidemiological and clinical characteristics of 99 cases of 2019 novel coronavirus pneumonia in Wuhan, China: a descriptive study.", The Lancet (January 30), 2020 이 있다.  해당 논문에 따라 치사율 관련 내용만 보자면 99명 중 11명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하여 11%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99명은 자각증세가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이므로, 분모에 들어갈 바이러스 감염자보다는 좁은 범위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정책적으로나 얼마나 조심하는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관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의 기초로 삼아야 할 치사율로서 위와 같은 경우의 11% 역시 하나의 참작하고 고려할 정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치사율에 관한 정보를 허위정보로 단정하는 것은 허위와 사실에 관한 구분에 대하여 매우 순진한 견해를 취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정보의 공유를 막는 것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국민의 권리와 의무) ② "국민은 감염병 발생 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에도 어긋나는 조치이다.

 

치사율은 감염병 확산의 초기 단계에 있는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일정기간에 감염되고 완치자 또는 사망자 양쪽으로 상황이 종료된 편향이 없는 표본을 대상으로 낸 통계에 의해서 확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확인을 신뢰할 수 있는 과정에 의해 국가가 촉진하는 것이 임무이지, 그때까지의 행위의 조정을 위한 정보의 기초자료를 박탈하는 것은 국가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보다 더 심각성이 있다는 주장들에 대해서 공포심을 조장하는 가짜 뉴스 배포라고 해서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식의 정부의 발표는 법적 강제의 위협에 의해 국민의 의사결정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심각하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되면 어떤 정부든 '유언비어', '가짜뉴스'와 같은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공식 발표와 다른 사실 표명이나 의혹의 제기를 처벌하려는 위협을 보이는데 이는 예전의 메르스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처벌되는 허위사실의 적시는, 의료종사자의 비밀누설,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구체적인 개별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 한정된다. 그렇지 아니한 허위사실 적시를 처벌하는 전기통신기본법의 규정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결정되어 무효화되었다.

 

2. 가짜뉴스 전반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허위사실이다.

 

메르스 유행 당시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관련 괴담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며, 그 괴담 유포자들을 수사의뢰, 처벌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경찰 역시 메르스 관련 괴담을 수사해서 처벌하겠다고 하였다.

 

현 정부 역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에 관하여 포괄적으로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써서 경찰이 단속에 나서겠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정부기관들이 의도적으로 '괴담' 또는 '허위사실 유포', '유언비어',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를 쓰면서 처벌하겠다는 화행은 다음 명제들을 전제한다.

 

전제명제: 괴담 전반, 그리고 허위사실 유포 전반, 유언비어, 가짜뉴스 전반을 처벌하는 그러한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법률은 없다.

 

예전에는 그러한 법률이 있었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그것이었다.

 

[참고:  전기통신기본법(1996. 12. 30. 법률 제5219호로 개정된 것) 제47조 (벌칙) ①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이 전기통신기본법은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2010년도 말에 위헌 결정이 났다.

 

[참고: 헌재 2010. 12. 28. 2008헌바157 등, 판례집 22-2하, 684 [위헌]
이 사건 법률조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입법이며, 동시에 형벌조항에 해당하므로, 엄격한 의미의 명확성원칙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의 통신을 금지하는바, 여기서의 “공익”은 형벌조항의 구성요건으로서 구체적인 표지를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 또는 헌법상 언론ㆍ출판의 자유의 한계를 그대로 법률에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할 정도로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 따라서 어떠한 표현행위가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판단주체가 법전문가라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하여 그 의미내용이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현재의 다원적이고 가치상대적인 사회구조 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상황이 문제되었을 때에 문제되는 공익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바,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익간 형량의 결과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범자인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하여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따라서 허위의 통신이 전반적으로 금지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가짜뉴스나 괴담을 처벌하는 법률이 있다는 식으로 복지부와 경찰이 유포를 하는 것 자체가 괴담이다. 

 

처벌되는 것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다. 

 

메르스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망률, 무증상 감염 여부 등에 대해서는 그것이 허위로 밝혀진다고 하여도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괴담'이라는 말로 엄포를 놓는 의도는 여기에 대한 공중의 의사소통 자체를 위축시켜서 개별적인 합리적 의사결정이나 정책 비판으로 연결되게 하지 않게 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의 방역 정책이나 대응에 대한 비판 자체도 그것이 틀린 구석을 담고 있으면 '괴담'이나 '유언비어', '가짜 뉴스'라는 단어에는 들어가겠지만 그것만으로 명예훼손이 되기는 어렵다.

 

이 분야에서 판례는 정부기관의 정책결정에 대한 비판은, 그 정책결정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고 심히 경솔한 공격이 아닌 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참조: 대법원 2011.09.02. 선고 2010도17237 판결[명예훼손·업무방해]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 문제되는 경우에 그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보도가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보도가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하는데,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하여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1999. 6. 24. 선고 97헌마265 전원재판부 결정,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37531 판결 등 참조).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에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며,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다62494 판결, 대법원 2006. 5. 12. 선고 2004다35199 판결 등 참조).]

 

한편, 병원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는, 그것이 허위의 사실이어야 한다.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사안의 특성상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되며, 형법 제314조 제1항의 업무방해죄의 경우에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해야 성립하는 것이지, 사실을 적시는 구성요건해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제74조(비밀누설의 금지)에서 "이 법에 따라 건강진단, 입원치료, 진단 등 감염병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는 그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금지된 비밀누설에 의해 지득된 특정인에 대한 개인정보를 말하는 것은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것이다.

 

이와 같이 각각의 특정된 범주의 허위사실이나 사실 적시를 처벌하는 법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수사기관은 정확하게 현행법에 의해서 처벌되는 범주의 허위표현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왜 법률개념도 아닌 일반적인 괴담 전반이나 허위사실 유포 전반을 처벌하겠다는 표현을 써서 발표를 할까?

 

이는 국민들이 법에 관하여 무지한 상태를 이용하여,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는 행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위축 효과를 의도적으로 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법치국가를 운영하도록 위임을 받은 자로 스스로를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공론장을 축소시킬 특권을 가진 존재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발표를 하면서 정확히 무슨 법률의 몇조에 근거 어떤 행위를 문제삼겠다고 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만연히 '괴담', '허위정보', '가짜뉴스'를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으름장을 놓으면 위축되어 처벌되지 않는 행위조차 정부를 비판하는 것 같으면 되도록 하지 않도록 만드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코로나나 메르스 사건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명제들의 참 거짓을 가려내어 참인 명제만이 외부에 표출되도록 하겠다는 검열관 역할은 정부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책적 문제나 사회 일반의 문제에 관한 참 거짓은 서로 상이한 명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고 나서 밝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종 그러한 참, 거짓의 문제는 항상적으로 치열하게 다투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정책 문제에 관하여 발화하는 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명제가 참이라는 근거를 갖고 있다고 국가가 인정해주는 한에서만 그 발화를 할 수 있다면, 사실상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붕괴된다. 미묘한 문제에 있어 국가가 참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통용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척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당성에 위협이 되는 여론의 흐름이 보이면, 으름장을 놓아서 이것을 돌려놓으려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으름장이 정부 기능의 원활한 작동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부에 대한 적시의 비판, 다소 신중하지는 못하지만 그때그때 신속한 정보들을 취합하여 이루어지는 적시의 비판을 제거함으로써, 안이한 대응과 행정의 밀행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지성은 정부 관료들 개인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비판과 그에 대한 반응성 있는 대응에 의해 시스템적으로 산출되는 것이다.

 

결국 언제나 정부가 비판의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유언비어나 괴담을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시민들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며, 민주주의 통치 기능의 중요한 부분을 붕괴시킨다.

 

중국 정부는 처음에는 감염병의 발발 자체에 대해서 언론통제를 했고, 그 다음에는 사람간 감염이 가짜뉴스라면서 강력하게 단속했고, 지금도 신종 코로나 관련한 중국인들의 표현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무증상 감염과 관련하여 현재로선 근거 없는 가짜 뉴스에 가까운 소리로 치부하였지만, 결국 미국 연구소에서 무증상 감염이 근거가 확고하다는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즉 가짜/진짜의 경계가 수시로 바뀌며 그 과정에서도 정부는 결코 가짜뉴스 배포의 잘못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선언이 반복된다. 

 

이 점은 '가짜뉴스'라는 흐리멍덩한 개념에 의거해 표현을 규제하고자 봇물처럼 쏟아지는 여러 입법안들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준다. 구체적 권리 침해와 연결되지 않는 허위사실 표현을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유형의 법률들은, 참과 거짓의 판정을 국가에 맡기며 따라서 국가기관의 권좌에 있는 사람들이 국가기관을 통해 허위를 말했을 때에는 처벌받지 않는 반면에 국민이 국가가 규정한 진실과 다른 것을 말했을 때는 처벌받도록 하는 비대칭성을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이와 같이 있는 법과 없는 법의 경계를 흐리며,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통치를 왜곡시키고자 하는 입법안에 유리한 국민의식을 조성하고자 할 때, 이것을 고쳐야 할 일차적 책무는 언론에 있다.

 

복지부와 경찰, 정부, 여당이 '괴담', '유언비어', '가짜뉴스'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더라도 곧바로 이렇게 덧붙여 기사를 작성하여야 한다.

"그러나 괴담이나 유언비어 처벌조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새로 도입하더라도 위헌이다. 공직자 개인을 허위사실로 악의적이거나 경솔하게 공격하거나, 허위사실로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병원, 영업장의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

이러한 서술은 드라이한 사실 서술이며, 괴담이나 유언비어, 가짜뉴스 처벌 운운하는 으름장 놓는 자들의 말을 베껴쓰는 것보다 훨씬 더 저널리즘의 정신에 가까운 일이다.

 

'괴담', '유언비어', '가짜뉴스' 운운하는 말로 국민들에 대하여 발화하는 공직자는 공직자의 자격이 없으며 그러한 공직자의 발화를 그대로 카피를 따서 제목으로 삼으면서, 그러한 으름장이 괴담의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언론은, 스스로 공론장을 축소시키려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며 언론의 자격이 없다.

 

정치가든, 관료든, 언론인이든, 보통의 시민이건 입헌질서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구체적인 개념 또는 죄목이 등장해야 할 곳에 만연히 '가짜 뉴스'라고 쓰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잘못된 개념은 그것의 고유한 생명력과 파장을 가지며, 그러한 생명력과 파장은 입헌질서 내에서 보장되는 권리를 심각하게 침식하면서도 그 침식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할 수 있다.

 

3. '가짜 뉴스'라는 오개념에 관하여 

 

최근 허위사실은 ‘가짜 뉴스’(fake news)로도 칭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개념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우선 ‘가짜’라는 말은 ‘진짜’ 즉 진정하게 성립된 원본(原本; orignial)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직접 쓴 편지로 알려진 것이 가짜였다 함은, 그 편지의 내용이 허위라는 뜻이 아니다. 마치 진본처럼 착각하도록 작성된 편지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언론‧출판의 자유 행사로 표명되는 사상과 의견이 모두 일상적인 의미에서 언론기관의 보도인 ‘뉴스’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가짜 뉴스’의 정확한 의미는 실제로는 사사롭게 꾸며낸 것인데 마치 특정 공신력 있는 언론기관이나 자격을 갖춘 어떤 언론기관이 보도한 양 속여서 그 신뢰성을 착각하도록 만드는 표현물이다. 이런 정확한 의미에서의 가짜뉴스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의율할 수 있으며 별도의 입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짜 뉴스’라는 개념의 의미를 부정확하게 확장하여 쓰는 이유는, 어떤 것을 가짜 뉴스라고 지목하는 사람이 틀리거나 부당하다고 보는 표현을 규제하여 들리지 않게 하려는 욕구를 일반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실현하기 위하여,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는 인상적인 언어에 담음으로써, 표현의 자유 제한 원칙을 우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같은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다른 구성원들을 동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보지 아니하며 자신이 대신 판단해준 것만 들을 자격만 있는 예속적이고 부자유한 존재로 보는 전제에 서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가짜 뉴스'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써서는 안 될 것이다. 

 

4. 표현의 자유 제한 입법의 인기에 관하여

 

표현의 자유는 자유롭고 평등한 기본권 주체들의 지위를 규정한 규범이다. 규범은 가치와 상이한 것이다. '참인 정보가 보다 많이 유통되고 거짓인 정보는 적게 유통되는 상태'는 가치일 수는 있어도 규범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정보가 참인가 거짓인가 자체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에 의해 인식적 과정에 의해 확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1인칭의 자기중심적 관점을 취한다. 그래서 자신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정보는 객관적 참이며, 자신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정보는 객관적 거짓이라고 한다. 자신이 집권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면 집권 세력이 참이라고 판정하는 정보는 객관적 참이라고 보며, 자신이 야당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면 야당 세력이 참이라고 판정하는 정보는 객관적 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참은 객관적 참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그 참의 수용을 부과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1인칭의 자기중심적 관념은 정보와 지식의 참과 거짓에 대하여도 치열하게 다투는 다원적인 사회에서 구별되는 존재인 개인들이 있다는 점을 잊는다. 그러고는 자신과 정신이 일치하는 존재들을 사회의 전체로 환원하며 나머지 부분은 그 전체에 포함되지 않거나 그 전체를 위협하는 병원균과 같은 존재로 쉬이 생각한다. 이런 사고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이 참이라고 여기는 것만 통용되는 사회를 강제력으로 초래하는 데 아무런 잘못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것은 대단히 유아론적인 사고이며, 입헌 민주주의의 근본 과제인, 상이한 신조를 가진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공존하고 공정하게 협동하게 하는 규범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임무를 처음부터 부인하는 사고이다. 

이러한 입헌 민주주의와 근본부터 상치되는 사고를 취하는 사람들은 동상이몽식으로 과반수를 구성할 수 있다. A 정치세력을 강렬하게 지지하는 세력은 A 정치세력의 말에 반대되는 모든 표현이 명백한 거짓이라고 여기며 그 표현들을 탄압하게 해주리라는 희망 하에 '가짜 뉴스'와 같은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는 언론규제법을 지지하게 된다. B 정치세력을 강렬하게 지지하는 세력 역시 그러한 규제법이 B 정치세력의 말에 반대되는 표현들을 상당한 정도로 걸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이를 지지할 수 있다. 아무래도 국가기관을 통제하는 집권 세력에 비해서는 야권 세력에서 그러한 법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적겠지만, 야권 세력에서도 자신들이 믿는 것과 상치되는 것을 '가짜 뉴스'라고 한결같이 일상적으로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가짜 뉴스'를 규제한다면 바로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세력의 바로 그러한 표현들이 억제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를 품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의 다수와 야권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의 일부분이 합치면 과반수의 여론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들은 서로가 자신이 싫어하는 표현을 억제시키리라는 희망 하에 괴이한 입법 여론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처분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인식적 경로이며, 그 다른 사람들의 인식적 경로는 자유롭고 평등한 이들의 규범적 지위이므로 자신들이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처분할 특권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