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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립물]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의무론적 이해

by 시민교육 2019. 1. 10.

1.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사소한 의미 내지는 목적론적 의미로의 이해와 의무론적 제약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죄추정의 원칙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동어반복적인 의미로만 이해되고 있다. 즉,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 몇년형을 받기 전에는 징역형을 집행받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로만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죄추정을, 어떤 절차의 집행은 그 절차의 전 단계가 완료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로 사소화하는 것이다. 유죄 선고를 아직 확정 받지 않은 사람은 유죄 선고를 확정 받지 않은 사람임은 당연하다. 이런 동어반복이 헌법상 원칙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늘날 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한편, 목적론적 시대정신은, 목적의 달성이 규범에 의해 제약 받는 것이 아니라, 규범의 제약을 목적의 달성에 비추어 재주형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적정절차원칙과 그 원칙의 핵심 중 하나인 무죄추정의 원칙의 내용을 변경한다. 목적론적 시대정신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추구하는 목적 중 하나가 범죄의 억지와 안전의 확보이다. 이러한 목적이 중차대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은 이 목적을 잘 달성하도록 재주형될 대상이 아니라, 이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지켜야 하는 제약을 설정한다. 그 제약은 바로 국가가 처벌을 비롯한 해악(harm)을 시민에게 입히기 위한 법적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 시민의 자유롭고 동등한 지위를 존중하는 공정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간단한 사고실험을 통해 살펴보자.

 

당신은 판사이다. A라는 중범죄를 저질러 기소가 된 피고인이 있다. 당신은 이 피고인의 유죄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있긴 하지만, 무죄일 현실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유죄로 판결하여도 사람들은 당신이 전혀 엉뚱한 사람을 처벌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죄로 판결하여도 당신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여 판결문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 피고인은 그 사회에서 특별히 배척되는 소수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이 피고인이 체포된 이후부터 그 소수집단에 대한 린치가 이따금씩 벌어지고 있다. 린치를 벌이는 이들은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기가 어려운데다가, 심지어 경찰들까지 이러한 린치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린치가 적발되고 처벌되기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론은 피고인을 이미 유죄로 단죄하여 그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며, 당신이 피고인을 무죄로 판결하게 된다면, 소수집단에 대한 린치는 폭발적으로 될 것이라고 믿을 압도적 이유가 있다. 게다가 당신이 무죄 이유로 든 합리적 근거들은 여론에 의해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 반복하여 보도된 유죄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대중의 뇌리에 너무나 깊숙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무고한 그 소수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의 신체 온전성과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기에 처해 있다. 당신이 피고인에게 중한 형벌을 선고한다면, 여론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만족하여 린치를 그만둘 것임이 분명하다. 당신은 피고인을 유죄로 판결해야 하는가?

 

만일 '무고한 이에게 일어나는 범죄 발생의 최소화'를 목표로 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최소한 크게 고민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죄일 가능성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구금되는 피고인도 위법한 행위의 희생자일 수 있겠지만, 린치로 인해 희생되는 이들 역시 위법한 행위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적론적 이해를 취하는 경우에, 무죄추정원칙은 사회 전반의 위법성 발생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원칙이 되며, 따라서 이러한 판단은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있는 한, 무죄추정원칙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과정이 명명백백하게 판결문에 설시되는 경우에, 피고인은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우했다는 정당한 불평의 근거를 갖게 될 것이다. 피고인은 타인의 범죄를 억지하기 위한 한낱 수단으로 대우되었다고 볼 것이다. 만일 무죄추정원칙을 국가는 불공정하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되며, 범죄의 억지라는 목적을 더 잘 달성한다는 목적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으로 이해한다면, 유죄 판결은 무죄추정원칙을 위배한다.

 

이제 조금 변형된 사고실험을 해보자.

 

당신은 판사다. 당신은 A라는 범죄가 현실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범죄를 억지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로 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최대한 빠짐없이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당신은 A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된 피고인의 재판을 맡게 되었다. 기소가 되었다는 것은, 검찰에서는 유죄 선고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음을 의미한다.

당신의 신념은 A라는 범죄로 기소된 사람을 최대한 빠짐없이 처벌한다면, 이 범죄가 억지될 것이라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유죄 선고를, 누구라도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객관적인 물증이나 피고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증인의 증언을 피고인이 확보하여 제시하지 못하는 한, 피고인을 유죄로 처벌하기로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그런데 피고인은 그러한 물증이나 제3자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물론 A의 말대로, A가 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동시에, A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검사가 제시한 증거들은 이 양쪽 시나리오 모두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만 하지, 어느 쪽 시나리오는 터무니없는 상상된 사변적인 시나리오라고 결정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피고인을 무죄로 판결한다면, 동일한 종류의 범죄를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저지를 인센티브를 주게 될 것이다. 반면에 피고인을 유죄로 판결한다면, 동일한 종류의 범죄는 그 범죄를 저질렀다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판단만 든다면 거의 빠짐없이 처벌될 것이므로, 억지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피고인을 유죄로 판결한다.

 

위 사고실험에서 피고인은 전혀 무관한 다른 종류의 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해 처벌된 것이 아니라, 혐의가 제기된 것과 동종의 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해 처벌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피고인은 한낱 수단으로 대우된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피고인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누군가가 무죄일 현실적 가능성이 있음에도 유죄로 선고하고 자유와 권리 박탈에 나아가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불공정 대우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자기자신의 법적 지위를, 오롯이 그리고 철저히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기초하여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까지 투사하여 그 다른 사람들을 억지하기 위한 목적을 추구하는 법리에 의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이 개념적으로 묶일 수 있는 범주의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하여, 자신의 법적 지위를 허약한 기초 위에서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을 충분히 유의하지 못하는 것은 공정한 대우는 국가가 특정인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단지 어떤 가해가 발생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allowing)이 아니라 가해행위를 하는 것(doing)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여 본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범죄를 빠짐없이 처벌하게 되는 확장적 법리를 취하지 않고 엄격한 형사소송절차의 요건을 준수하여 일부 범죄자가 풀려나갈 확률을 그대로 두기 때문에, 사인에 의해 범죄가 벌어진다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인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태는 국가가 그런 사태를 내버려두는 것에 해당한다. 국가는 범죄를 계획하지도, 방조하지도, 여하한 방식으로 기여하는 개입도 하지 않았다. 즉 이 경우에는 국가의 소극적 행위자성이 문제될 뿐이다. 책임을 지는 주체인 다른 사인이 그러한 범죄를 범한 것이다. 반면에 국가가 처벌하는 것은 국가 스스로 하는 하기(doing)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국가의 적극적 행위자성이 문제된다.

 

내버려두기와 하기의 구분은 의무론적 이해를 취한다면 필수적이다.

 

Bernard Williams, “A Critique of Utilitarianism”, in J.J.C. Smart & Bernard Williams, Utilitarianism for and agains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3, 98-99면에서 제시된 사례를 조금만 바꾼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보자. (바꾼 부분은 아래 인용된 글에서 []로 표시된 부분이다. 즉, 원래 버나드 윌리엄스가 제시된 대로 인디언 20명 모두의 죽음 내버려두기 대 인디언 1명 죽이기의 선택지가 아니라, 인디언 19명의 죽음 내버려두기 대 인디언 1명 죽이기의 선택지가 제시되었다고 바꾼 것이다.)

 

"짐은 남아메리카 한 작은 마을의 중앙 광장에 있다. 20명의 인디언들이 일렬로 벽에 묶여 있으며, 대부분 공포에 질려 있고, 몇몇은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 앞에는 몇몇 무장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 땀자국이 선명한 카키색 셔츠를 입은 체구가 육중한 사람이 지휘권을 가진 대위이다. 그리고 짐에게 많은 질문을 퍼부어, 짐이 식물학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는 점을 확인 한 후에, 그 인디언들이 원주민 중 무작위로 뽑은 무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원주민들은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를 최근에 하였고, 다른 잠재적인 시위자들에게 시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짐이 다른 나라에서 온 명예로운 방문자이기 때문에, 대위는 그에게 인디언 중 한 명을 직접 죽이는 손님의 특권을 기쁘게 제안한다고 하였다. 만일 짐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 특별한 일의 표시로서, 다른 인디언들은 살려보내줄 것이라고 한다. 물론, 만일 짐이 거부한다면, 아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 거기 있는 페드로가 짐이 도착했을 때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그 한 명을 제외한] 인디언 모두를 죽일 것이라고 한다. [그 한 명은 짐이 죽이지 않았으므로, 원래의 마을로 돌려보내주기로 한다.] 짐은, 학생 때 읽은 소설을 필사적으로 상기하면서 상기하면서, 총을 빼앗으면 대위를 인질로 잡을 수 있고 페드로를 비롯한 나머지 군인들을 협박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지만, 처음부터 그런 식의 행동은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 상당히 명백하다. 그런 식의 어떠한 시도도, 인디언들과 짐 자신 모두 죽게 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벽에 묶인 사람들과, 다른 마을 주민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명백하게도 짐에게 그 제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목적론은 전형적으로, 짐이 인디언 한 명을 직접 죽일 것을 명한다. 그러나 의무론은 짐이 그 인디언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의무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짐이 직면한 질문은, 자신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세계 상태A와 세계 상태B 중 어느 것이 더 무고한 죽음을 적게 담고 있는가가 아니다.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책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게 될 경우에, 다른 자유롭고 평등한 이들과의 관계를 자신이 왜곡시키는 행위를 하는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뚱뚱한 사람을 선로 위로 밀면 트롤리를 멈추어 5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와 동일한 구조가 무죄추정원칙의 의무론적 이해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2. 무죄추정 원칙의 세가지 함의

 

(1) 증거법상 원칙

 

무죄추정 원칙은 세 가지 실질적인 함의를 갖는다.

 

첫번째, 증거법상 원칙으로 작용한다.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에 의해 증거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의심스럽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proof beyond reasonable doubt)이란 무엇인가?

 

헌법규범이 적법절차와 무죄추정원칙을 포함하고 있는 것에 아울러, 형사소송법은 이러한 헌법규범들을 구현하기 위하여 제307조에서 증거재판주의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①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하여 잘못된 이해가 만연해 있다. 

 

첫째는 주관주의적 이해이다. 주관주의적 이해란, 합리적 평균인을 가상적으로 설정해놓고, 그 평균인의 판단에서 보아 주관적으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이 드는 경우에는, 제307조 제2항을 준수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합리적인 미국인이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믿는다'는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었다'와는 전혀 다른 명제다. 앞의 것은 명제태도를 표현하고 뒤의 것은 명제 자체를 표현한다.

 

그 증명이 이루어졌는가는 객관적인 논증논리에 의하여 검토되어야 하지, 어떤 가상적인 평균인을 설정하여 그 평균인의 마음 속에 드는 표상이 '강한 확신'인지 아닌지를 상상해보는 방식에 의해 검토되어서는 안 된다. 즉, 증명 기준의 충족은 논증의 내용 속에 있는 것이지, 논증을 듣고 난 판단자의 주관적 표상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명제와 명제태도를 혼동하고, 자신의 명제태도를 실제로는 내세우면서 '평균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명제의 참을 증명하는 것으로 야바위 놀음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인간'이라는 주체를 강조하고 그 주체에 주관적 마음 상태를 귀속시키는 식의, beyond reasonable doubt에 대한 설명은 크게 오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오도하는 해명에 물든 사람은, 자신이 판단자로 섰을 때 자신이 곧 합리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므로,  자신의 마음 속에 확신의 표상이 떠오르면, 이 형사소송법 조항을 완전히 준수한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게 된다.

 

두번째는 목적론적 가치 최적화 이해방식이다. 목적론적 가치 최적화 이해방식이란, 무죄추정원칙은 우리가 억울하게 결백한 사람이 처벌받을 때 생기는 비가치(disvalue)와 그 발생확률을 곱한값과, 진범인 사람이 처벌받지 않을 때 생기는 비가치(disvalue)와 그 발생확률을 곱한 값을 더한 총비가치(aggregate disvalue)가 최소화되도록 1종 오류와 2종 오류를 조절해나갈 것을 명하는 원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죄인정 증명도의 임계적 기준 또는 역치를 낮추게 되는 경우 1종 오류(false alarm, 실제 죄가 없는데 죄가 있는 것으로 보는 오류)인 유죄오판을 범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거꾸로 그 기준을 과도하게 높이게 되면 1종 오류는 줄일 수 있지만 2종 오류(miss, 실제 죄가 있는데 죄가 없는 것으로 보는 오류)인 무죄오판을 범하여 죄인을 풀어주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김상준,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연구-항소심의 파기자판 사례들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박사학위논문, 2013, 321-322면 설명 참조)는 점에 착안하여, 1종 오류와 2종 오류 상관하지 아니하고 총 오류를 줄이는 것, 또는 1종 오류와 2종 오류에 비가치(disvalue)의 가중치를 부여한 값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죄가 없는 데 유죄 판결을 받을 때의 비가치를 5로 보고, 죄가 있는데 무죄로 풀려나는 비가치를 1로 보고서는, 총 판결의 비가치가 최소화되도록 시도하는 것으로, 무죄추정원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첫째로, 무엇보다도, 국가가 진범을 잡지 못하는 것은 내버려두기(allowing)에 속함에 비해, 국가가 무고한 사람을 불공정하게 처벌하는 것은 하기(doing)에 속하는 것이라는 구조적 속성의 비대칭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고한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조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금지는 의무론적 제약(deontic restrictions)으로부터 나온다. 마찬가지로 무고한 한 사람을 유죄로 함으로써 미래의 다른 사람의 범죄 피해를 억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하기와 내버려두기의 비대칭성은 기본권을 떠받치는 구조의 핵심을 이룬다. 국가는 설사 기본권을 침해함으로써 모종의 방식으로 집계한 국민들의 이익을 크게 증진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만일 이러한 비대칭성이 없다면, 헌법은 각 기본권 조항과 제37조 없이 그저 '입법자는 전체 국민의 이익 최대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조항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판례는 이 점을 고려하여 "형사재판에 있어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민사재판이었더라면 입증책임을 지게 되었을 피고인이 그 쟁점이 된 사항에 대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여 위와 같은 원칙이 달리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대법원 2007. 10. 11. 선고 2007도6406 판결, 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도5255 판결 등)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둘째로, 1종 오류에는 11의 가중치를, 2종 오류에는 1의 가중치를 부여한다고 해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10명의 범인을 석방시키더라도 1명의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해서는 안 된다"는 법언은 종종, 1종 오류와 2종 오류의 비율을 1 대 10 정도로 유지하라는 최적화 명령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즉 "1명의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함으로써 10명 보다 1명이 더 많은 11명의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라"는 법언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이 법언은 하기와 내버려두기의 비대칭성에 관하여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10명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 1명의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해서는 안 되지만, 11명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허용된다는 비가치 비율에 대한 적극적 법언이 아니다.

 

헌법이 명령하는 하기와 내버려두기의 비대칭성은 엄격하다. 1명의 무고한 사람을 수단으로 다루어 죽임으로써 100명을, 1000명을, 1만명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1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경우에 그 1명은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 당한 것이다. 헌법은 본질적 침해 금지 원칙을 함께 담음으로써, 비례의 원칙에 대한 목적론적으로 오도된 해석을 금지하고 있다. 비례의 원칙에 대한 오도된 해석에 따를 때, 기본권에 대한 침범을 위헌적인 침해가 아니라 합헌적인 제한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그 기본권이 보호하는 이익보다 충분히 큰 공익의 존재뿐이다. 그러나 그런 이해를 따를 경우 비례의 원칙은 단지 대립하는 이익을 저울에 올려놓고 저울이 기울어지는 쪽을 보는 과정으로 형해화된다. 헌법은 이러한 형해화를 경계하기 위하여 본질적 침해 금지 원칙을 함께 두고 있다. 만일 1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하여 수단으로 죽임을 당한다면, 그 사람의 생명권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권을 박탈한 것은, 그 사람을 존엄을 가진 독립된 이성적 존재로서 다루지 아니하고, 단지 전체 유기체의 하나의 세포처럼 다른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처분가능한 존재로 다루는 전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이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한 권위는, 하기와 내버려두기 사이의 엄격한 비대칭성을 준수하는 권위일 뿐이다. 만일 현실의 정부가, 그 비대칭성을 위배하고, 내버려둘 때 발생하는 큰 해악을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악을 스스로 가한다면, 그 때 정부의 권위는 입헌정부의 권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입헌 민주주의의 정당성 있는 권위는, 그 어느 누구도 합당하게 거부하지 않을 원리에 의거해서 통치하는 권위이다. 만일 인격적 통합성과 신체적 통합성을 가진 누군가가 합당하게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책을 강제력으로 관철시킨다면, 그 때 정부의 권위는, 무언가 다른 것, 즉 그 정부의 조치로 인해 혜택을 입을 사람들의 강렬한 소망을 힘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자기독백적 표현이 된다. 일인칭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을 이러저러하게 발현하겠다는 자기독백은, 규범적 논증대화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것은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지위에서 나오는 거부권을 묵살하고, 이의가 제기되든 아니든 어떻게든 가장 강력한 소망으로 집계된 것을 관철시키고자 순수 사실적인 사태가 된다. 한 마디로 정치적 권위는, 전혀 다른 성격(nature)으로 변질된다. 그것은 다수라는 숫자의 힘이 관철된 힘의 발현 양식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가치의 비율을 정하는 것은 자의적이다. 왜 10명 대 1명은 되지 않고 11명 대 1명은 되는지 이유가 없다. 블랙스톤(Balckstone)이 말한 법언이 우연히 그 비율을 언급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고정된 비율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기와 내버려두기의 구분이 엄격한 비대칭성이 유지되지 않고, 단지 문턱 수준의 비율을 지시할 뿐이라면, 문턱 수준이 어디에 놓일지는 전적으로 자의적인 기초 위에 놓이게 된다. 가치의 비중이란 그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에 의해 정해지는데,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2명 대 1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판단한다면, 그렇게 되지 아니할 근거가 없다. 그 사회에서 별로 공감을 얻지도 못하는 10명 대 1명을 고집할 아무런 이성적인 근거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무죄추정원칙을 이와 같이 비가치의 비율을 준수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했을 때에, 그 원칙은 증거법상으로 구현되었을 때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피고인이 자신의 유죄를 뒷받침하기에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을 때, 예를 들어 자신의 현장부재주장에 대하여 검사가 이를 기각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고 이의를 제기했을 때, 판사의 답변은, 그러한 합리적 의심의 경로가 신빙성 있는 증거에 의해 닫혔다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 경우 판사의 답변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즉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이라는 말은, '무고한 유죄 1명 대 진범인 무죄 11명의 비율을 유지할 법한 증명의 기준에 의한'이라는 뜻이다. 피고인의 현장부재주장이 검사의 입증에 의해 반박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고인의 현장부재주장이 절대적 확실성을 가질 정도로 입증된 것도 아니다. 피고인은 피고인 말대로 범행이 일어난 그 날,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지만, 공소사실대로 범행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요즘은 CCTV가 많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그런 CCTV 기록을 구하여 자신의 현장부재증명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이 1명 대 11명의 비율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피고인은 현장부재증명을 CCTV 같은 명백한 물증으로 입증하지 못하고 단지 휴대폰 위치 기록과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같이 다른 사람이 대신 사용할 수도 있는 증거만을 제출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 지워진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경우 사건 당시 피고인이 있었던 장소에 관하여는, 검사의 공소사실대로 사실인정을 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된 사실인정이다. 다시 말해 1명 대 11명의 비율을 달성할 법한 입증책임 부담에 의한 사실인정이다."

즉,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을 1종 오류와 2종 오류에 대한 결부된 비가치 최소화로 볼 때에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진다는 입증책임 부담마저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된다.

 

셋째로, 1종 오류와 2종 오류를 합한 총 오류 최소화, 또는 1종 오류와 2종 오류에 모종의 비가치 비중을 곱한 값의 최소화를, 증거법상 원칙을 이리저리 변경함으로써 달성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최소화 계산에 전제가 되는 정보(information) 자체가, 증거법상 원칙을 경유해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상에서 얻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보란 재판에서 현출된 사건들(증거가 되는 사건들)이 있을 때, 그 사건들이 피고인이 실제로 범행을 범한 것을 전제로 발생하였을 확률인 조건부 확률이다.

 

 

어떤 사건에서 물증 등으로 밝혀진 다른 사정들은 모두 피고인의 유죄 및 무죄와 양립가능하고, 오로지 한 유형의 증거를 어떻게 고려하느냐에 따라 유, 무죄가 달라진다고 해보자. 즉, 동일한 유형의 증거로서, 공소사실에 찬성하는 증거(A1)가 하나 있고 공소사실에 반대하는 증거(A2)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문제되는 사건의 성부에 따라 이후의 법적 지위가 반대로 달라지게 되는 당사자들의 진술 증거라고 하여보자. 이 사안의 정의상, 이 진술 증거 각각은 다른 물증과 동등하게 양립가능하다.

이 경우 법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공소사실에 찬성하는 증거에 따라 판결하는 법리를 취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소사실에 반대하는 증거에 따라 판결하는 법리를 취하는 것이다.

만일 법원이 어느 법리를 취할 것인가의 결정을, 어느 법리가 총 오류 최소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에 의지해 내린다고 하여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부 확률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조건부 확률은 사건 AB가 있을 때, 사건 B가 일어난 것을 전제로 한 사건 A의 발생 확률을 의미한다. 조건부 확률은수직 막대기(vertical bar) ∣ 를 이용하여 표시한다. 일반적으로 조건부 확률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P(AB)=P(BA)/ P(B) 

다시 말해 조건부 확률을 구하려면 P(BA)와 함께, B 사건 그 자체의 독립적 P(B)를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독립적 P(B)는 그 구체적인 특정 범행이 일어났을 확률을 의미하는 것인데, 재판부가 알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즉 재판부는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P(B)를 실제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비율로 구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형사소송상의 증거법리E의 타당성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그런 증거법리E를 사용하였을 때,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x%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든다. 예를 들어 검사가 기소를 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받은 비율이 3%에 불과하다면, 증거법리E의 오류율은 3%에 불과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순환논리이다. 그런 순환 논리에 의하면 유죄추정원칙을 강하게 따르는 증거법리일수록, 더욱 타당한 것이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심지어 형사재판이 완전히 형해화되어 검사가 기소하는 모든 피고인이 100% 유죄판결을 받게 하는 증거법리를 취할 때, 판사는 오류를 결코 범하지 않는 아주 현명한 판관이 된다는 기이한 결과가 나온다. 

 

이런 논리적 맹점 때문에 판결에서 1종 오류와 2종 오류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목표는 애초에 달성 정도를 평가할 수 없는, 일종의 추임새, 덧붙이는 외관상의 정당화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균인의 감각에 따르는 주관주의적 이해, 가치 최대화 또는 비가치 최소화를 추구하는 목적론적 이해, 그리고 총오류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이해는 모두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는 증명을 해석하는 잘못된 방식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결국,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이란, 다름 아니라 자기 자신 또는 공동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단히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사실 인정 문제를 주제로 하여 사람들이 합리적 논증대화의 논증논리에 따라 필요한 검토가 왜곡없이 이루어짐으로써, 합리적 이의는 모두 처리되어 특정한 결론을 내려도 대화당사자들이 여하한 불공정도 없다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증명을 말한다.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proof beyond reasonable doubt)은 학계에서 "증거를 주의깊고 공정하게 고려한 후에 이성과 상식에 기초하여 발생하는 의심을 말한다.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거란 이성적인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닥쳤을 때 주저 없이 근거로 삼아 행할 수 있는 정도의 확실한 특징을 가진 증거를 말한다." (조현욱,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에 있어 합리적 의심 - 대법원 2008. 3. 13. 선고2007도1075 판결 -", 홍익법학 제13권 제2호, 2012, 449면)고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중립적으로 사실적 오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으로 무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나리오들이 모두 다, 합리적으로 논박당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영어로는 reasonable이고, '합당한'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갖고 있다. 사람들이 그러한 근거로 인해 유죄로 단죄되는 것에 대하여 불공정하다고 불평을 제기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유죄인 A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해도 피고인이 무죄인 B시나리오가 가능함을 합당하게 배척할 수 없다면, 피고인은 유죄로 판결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특히 민사소송의 증거법상 기준, 그리고 강제수사 개시의 기준과 비교되어야 한다.

 

민사소송에서 필요한 증명의 정도는 '증거의 우세(preponderance of evidence)'이다. 해당 사실인정에 관한 모든 증거들을 종합하여 어느 한 쪽이 우세하다면, 우세한 쪽의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만일 같은 사건을 두고 민사소송으로 먼저 제기했을 때에, 당사자의 주장만 두드러질 뿐, 객관적 증거가 없는 사건이라고 판단될 사안인데, 형사에서는 오히려 그 당사자의 주장이 증언으로 다루어져 유죄의 판단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합리적 의심 여지 없는 증명이라는 기준이 잘못 적용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강제수사 개시의 기준인 '상당한 이유'를 넘긴 정도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증명을 가지고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경우에도 역시 형사소송법의 규정이 준수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형사절차 전반에서의 불이익 처우 금지

 

 둘째, 형사절차에서 불이익처우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라는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다는 별개의 독립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근거가 없는 한, 수사와 재판은 불구속으로, 즉 인신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중대한 혐의가 제기되기만 하면 구속수사를 하라는 여론은, 이런 의미에서 무죄추정원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신의 구속뿐만 아니라 무기대등의 원칙을 훼손하는 모든 불이익 처우가 금지된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검찰 기록을 열람, 등사하지 못하는 것, 그러한 열람 등사가 오로지 검찰의 자의에만 광범위하게 달려 있는 상황은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와 함께, 무죄추정의 원칙도 위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검찰이 혐의를 걸고 기소하였다는 이유로, 그 사람은 자신을 대등하게 방어할 지위를 잃고, 검찰이 법정에 제출하는 불리한 증거만에 의해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검찰이나 경찰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면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된다. 이것의 규범적 예외는 적정절차를 왜곡시킬 수 있는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위행위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의 네트워크에 대한 방비책으로서 국민의 투명한 감시에 노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취지는 사인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서도, 형사상 명예훼손죄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적용과 관련하여, 마찬가지로 효력이 있다.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에 의해 보호되는 여러 기본적 인권들이고, 기본적 인권은 국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사인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인에 의한 침해가 있을 때, 국가는 형사적, 민사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게 된다. 따라서 적정절차의 왜곡의 견제적 감시라는 목적과 무관하게 만연히 사인이 사인에 대해서 범죄행위나 비위행위를 발표하였을 경우에 이는 무죄추정원칙의 취지에 어긋나, 사인이 사인의 기본적 인권에 대하여 위법한 가해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피의사실을 함부로 공표할 수 없는 것처럼, 사인들도 피의사실을 함부로 공표할 수 없다고 하겠다. 고발사실을 단정하면서 피의사실을 함부로 공표하고 그에 터잡아 사람들이 혐의가 제기된 당사자를 단정하여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이 경우, 국가가 아니라 위헌 결정은 받지 않겠지만, 관련된 사실들을 기초로 의심을 표하는 것을 넘어서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자유의 조건을 왜곡한 행위는 불법행위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는 피해를 호소한 고소인이나 증인에 관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범죄 행위에 대한 공적 토론은, 가능성의 영역에 사안이 놓여 있다는 점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 형사절차 이외에서의 불이익 처우 금지

 

셋째, 형사절차 이외에서의 불이익 처우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많은 이들이 무죄추정 원칙을 형사절차에서의 불이익 처우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하여 “아직 공소제기가 없는 피의자는 물론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이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하고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되며 가사 그 불이익을 입힌다 하여도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하면서(헌재 1990. 11. 19. 90헌가48, 판례집 2, 393, 402; 헌재 1997. 5. 9. 96헌가17, 판례집 9-1, 509, 517; 헌재 2009. 6. 25. 2007헌바25, 판례집 21-1하, 784, 798. 등등) 여기서 무죄추정의 원칙상 금지되는 ‘불이익’에는 “범죄사실의 인정 또는 유죄를 전제로 그에 대하여 법률적 ․ 사실적 측면에서유형 ․ 무형의 차별취급을 가하는 유죄인정의 효과로서의 불이익”까지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헌재 2010. 9. 2. 2010헌마418, 판례집 22-2상, 526, 542 등등)

 

예를 들어

 

(1) 구변호사법 규정은 변호사에 대하여 범죄혐의로 공소가 제기되면, 판결확정시까지 자동적으로 업무정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이것은 무죄추정원칙 위반으로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헌재 1990. 11. 19. 90헌가48)

 

(2) 교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직위해제처분을 하도록 규정한 구 사립학교법 규정도 무죄추정 원칙 위반으로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헌재 1994. 7.29. 93헌가3등),

 

(3) 공무원이 형사 기소되면 직위해제처분을 하도록 규정한 구 국가공무원법 규정도 위헌으로 (헌재 1998. 5. 28. 96헌가12)

 

(4)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그 형이 확정되기 전에도 부단체장이 그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한 구 지방자치법 규정도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2010. 9. 2. 선고한 2010헌마4181 결정)

 

다시 말해 "여기서 ‘불이익’이란" "유죄를 근거로 피고인에 대하여 사회적 비난 내지 기타 응보적 의미의 차별 취급을 가하는 유죄인정의 효과로서의 불이익을 뜻한다", 

 

많은 이들이 검찰의 기소가 있으면 피고인이 속한 통상의 생활세계에서 피고인을 자동적으로 배척하는 것이 국가나 고용주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이를 법이나 여론을 통하여 강제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해법은 유죄를 근거로 비난하면서 차별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 2010헌마4181 결정의, “공소의 제기가 있는 피고인이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하고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된다고 할 것으로, 가사 그 불이익을 입힌다 하여도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도록 비례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헌법 제27조 제4항의 무죄추정의 원칙이며, 여기의 불이익에는 형사절차상의 처분뿐만 아니라 그 밖의 기본권제한과 같은 처분도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에 어긋난다.


피고인에게 일정한 영역에의 배제를 명하는 것이 타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는 피고인이 유죄로 추정된다는 이유 이외의 이유에 근거하여야 한 것이다. 그것은 혐의가 제기된 사람이 범죄를 범했으리라는 상당한 이유에 더하여, 회복불가능한 손해에 관한 조건부 비교판단에 의해 배제로 인해 방지되는 손해가 더 크다는 판단까지 내려져야 정당화된다.

 

우선 혐의가 제기된 사람이 범죄를 범했으리라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의 존부는 법원이 영장의 발부하여 강제수사를 허가한 결정에서 내린 판단을 인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원이 강제수사를 허가했다면 이를테면 고용주는 피고용자의 범죄 혐의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용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강제수사를 개시하지도 않았거나, 경찰 또는 검찰의 긴급체포 후 법원의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거나,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었다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혐의가 제기된 사람에게 업무를 배제하거나, 계약을 취소/파기하거나, 계약갱신을 하지 않거나 하는 불이익을 가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에 더하여, 회복불가능한 손해를 언급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막연히 혐의가 제기된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다는 소망의 좌절은 회복불가능한 손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망은 그 자체가 위헌적 소망이므로, 법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회복불가능한 손해는 재범의 우려, 적정절차의 왜곡 우려, 해당 업무 수행을 의무의 기준에 맞춰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 등의 항목으로만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혐의가 제기된 쪽에는 항상 회복불가능한 손해가 있다. 즉, 수사나 재판 기간 동안 생활공간에서 명시적으로 배제됨으로 인해서 오명과 낙인을 안게 되고, 또한 타인의 통상적인 협조를 바탕으로 한 원래의 인생 기획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는 손해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손해의 크기를 비교하여, 무죄인데도 배제되어 피의자가 입게 되는 회복불가능한 손해보다 유죄인데도 배제되지 아니하여 어떤 다른 사람들이 입게 되는 회복불가능한 손해가 더 크다는 분명한 판단이 있을 경우에만,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배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나게 되었을 경우에는 회복가능한 금전적 손해에 대해서는 금전 보상을 하여야 하고, 회복불가능한 손해에 대해서도 정신적 손해에 해당하는 금전 보상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신중한 비교판단 없이 자동적으로 어떤 직위나 업무나 생활공간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법상 계약상 조치는 따라서 위헌과 위법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3.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원칙 - 유죄추정의 원칙

 

많은 이들이 추상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목전에 둔 목적이 그것을 무시할 것을 요청할 때에는, 무죄추정 원칙은 머리에 잠깐 떠올리지조차 않는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을 우리가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죄추정의 원칙은, 혐의를 제기하는 국가 권력이나 사인에 의하여, 우리의 법률적 지위나 사회적 생활관계가 위협받고 좌우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의 책임이 아닌 다른 변덕스러운 요인에 의해서 우리의 법률적 지위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그리고 통상적 생활 관계가 통제될 가능성을 기꺼이 수용하는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도입된 삶은 평등하게 자유로운 시민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특히 중대하게 여기는 가치가 원하는 바에 못 미치게 달성될 수밖에 없다고 하여도 그 가치를 더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유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행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