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M. Ricci, “Fabian Socialism: A Theory of Rent as Exploitation”, Journal of British Studies, Vol. 9, No. 1 (Nov., 1969), pp. 105-121
요약번역: 이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주장
110 (1) 사회는 경제적으로 생산적이거나 비생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다. 비생산적인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국가의 부의 어떠한 몫도, 윤리적으로 불로소득(ethically unearned)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 부에 어떠한 호혜적인 경제적 기여도 하지 않았디 깨문이다. 전체 계급이 그러한 불로소득으로 연명한다. 즉 그 계급은 일하는 대신 소유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111 여건의 작용으로 인하여 비생산적으로 된 사람들, 어린 사람들, 병든 사람들, 나이든 사람들은 예외를 제외한다. 재산 계급은 순전히 기생적이다. (Fabian Tract No. 233, Socialism and Fabianism)
이 계급에 포함되는 정확한 범주는 그 자체로 아무데도 열거되지는 않았지만, 확실이 그 수는 지주계급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부재지주는 가장 명백한 사안이다. 담보대출 채권자, 무담보사채 보유자(deenture holders), 국채 소유자, 즉 게으르고 기능하지 않는 부유한 인간들은 투자된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이자, 이윤에 의해서만 사라간다. 능력 지대의 수취자들은 이 금리생활자 계급(rentier class)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능력 지대(rent of ability)는 사실상 어느 누구의 소득의 한 부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분석적 용어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금리생활자 계급은 그 소득이 지대이며, 그 소득의 액수가 그 사람의 노동의 정도와 아무런 합리적인 관련을 갖고 있지 않는 모든 이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2) 지주는 토지의 지대를 토지 비옥도를 이유로 징수한다. 이 진정한 지대는 실제로는 그 임차인에 의해 기여된 개선의 혜택을 지주에게로 전달한다.
112 페이비언들은 이 신념을 데이비드 리카도의 영향력 있는 연구로부터 빌려왔다. 그 작업은, 리카도가 말하듯이, 토지의 비옥도가 ”원래적이고 파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가정에 기대고 있으며, 지주가 그들이 이 토양의 힘을 이유로 지대를 징수하는 정도만큼 다른 계급을 먹이로 삼아 먹고 산다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논선에 반대하여, 사적 소유권을 옹호한 영국 옹호자들은, 실제로는 지대가 노동하여 얻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영국은 수세기 동안 지주에 의해 개간되어 왔으며, 그리고 그 토지의 자연적 비옥도를 유지하고 보충하는 데 노력이 투여되었다는 것이었다.
페이비언들은 실제로 그러한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공로가 지주의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 가치를 더한 것은 임차인이라고 하였다.
113 Fabian Essays, pp. 36-44에서 쇼는 이 과정을 추상적인 용어로 분석했다. 즉, 선점자가 먼저 도착해서 토지를 소유하고, 그 다음에 도착한 농부들에게 땅을 임대하고, 농부들이 개간을 하고 선점자들이 지대를 수취하였다는 것이다.
(3)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수에서나 산업적 복잡성에서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는 토지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키고 그 가치가 상승하도록 야기한다. 이 가치 상승은 재산소유자의 생산적 노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사회적 요인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로소득으로 얻은 증가(unearned increment)“를 구성한다. 같은 과정으로 유사한 증가가 자본의 가치에 더해질 수 있다.
불로소득으로 얻은 가치 증가는 이중으로 중요하다. 첫째로, 그 증가분은 금리생활자의 서비스와 비용과 상관없이 금리생활자에게 가고, 그리하여 착취를 표현한다. 둘째, 그것들이 사회적으로 창출된 가치이기 때문에 따라서 부의 생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침이 없이 금리생활자로부터 국가-그 정당한 소유주인-에게로 이전될 수 있다. 금리생활자로부터 불로소득 증가를 과세하는 것은 그들의 생산을 억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페이비언의 견해에서는 (114)_ 금리생활자는 생산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가 그러한 과세는, 만일 그 증가가 윤리적으로 불로소득으로 얻은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4) 토지와 자본이 그 희소성의 직접 비율로 가격이 매겨지듯이, 능력 또한 그것이 공급이 부족할 때 더 높은 가격을 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능력의 보유자는 그들의 개인적 소득이 노력이 아니라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정도만큼 지대를 받는 것이다.
”능력의 지대“에 대한 페이비언의 두 접근이 있다. 하나는 한계 효용에 대한 경제 이론에 기반하고 있는 분석적인 것이다. 그 이론은 모든 경제적 요소들은 그 요소의 자연적 생산성이 아니라 그들의 상대적 희소성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토지, 능력, 자본, 또는 다른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여하한 경제적 요소가 그 활용가능성에 따라 대가를 끌어내게 되면, 그것은 마치 토지가 부족할 때 토지 소유자가 지대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정도만큼 지대를 얻게 되는 것이다. 페이비언들은 ”능력의 가격은 그 장점에 근거하지 않고 수요와 공급에 근거한다.“(Fabian Tract No. 146, Socialism and Superior Brains (1909), p.11)고 하였다.
두 번째 접근은 분석적이기보다는 더 실제적이다. 사회에서 사회적 경직성과 지위 경직성에 의해 확실히 야기되는 일정한 능력 지대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의 아이들은 부유한 사람의 아이보다 교육을 받을 기회가 더 적게 되고 그리하여 그로부터 귀결되는 경제적 능력을 가질 기회도 더 적게 된다. 만일 모든 아이들이 교육받고 숙련된다면, 일부 능력 지대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재능의 풍부한 공급이 이루어질테니까 말이다.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부모의 우연한 행운의 보유에 기한 능력 지대는 ”사회적 지대social rents“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지대에 더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꽤나 평범한 사람들도 과잉급여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페이비언의 견해에서는, 귀족의 구성원들, 전 장군, 전 의원에 해당될 것이다. 이들은 기업에서 명목상의 대표로 고용되어 공중의 확신을 고취시킨다는 대가로 과잉급여를 받는다. 그들의 능력 지대는 ”지위 지대(status rents)“라고 불릴 수 있다.
(5) 영국은 영국 재산가들에게 속해서는 안되고, 모든 영국인에게 속해야 한다. 영국의 국부의 적어도 세 구성 부분이 개인에 의해 윤리적으로 불로소득으로 얻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사적 시민이 아니라 국가 정부의 재산이 되어야 한다: 토지의 자연적 생산력; 토지와 자본에 의해 축적된 불로소득의 증가분; 그리고 영국인의 이전 세대에 의해 창출되고 지금은 금리생활자 계급에 의해 보유되고 있는 자본의 저량.
지대가 국가 공동체에서 속한다고 논하고 나서, 페이비언들은 그 지대가 징수되고 국가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지대가 발생하는 곳에 국한하여 지역적으로가 아니라 말이다. (116) 이 교설은 사회를 작은 단위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과 대척하는 입장에 서게 하였다. 그것은 두 근본적인 현실에 기대고 있었다. 첫째로, 만일 지대가 발생하는 지역민들에 의해 보유된다면, 한 지역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훨씬 잘 살게 될 것이다. 둘째로, 지방 정부가 아니라 중앙 정부가 전체 국가를 대표한다.
지대에 대한 가혹한 과세는 윤리적으로 비용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금리생활자에게 정당하게 소유한 자원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개인 지대의 몰수(expropriation)은 풍족하지 않은 시민들을 위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정부의 힘을 엄청나게 증대시켜 줄 것이다.
(6) 비록 오늘날 전통적인 도덕이,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몰수하고자 하는 소득을 일반적으로 용납한다 할지라도, 비윤리적인 지대에 반대하는 공중의 혐오감이 (117) 그러한 부의 사적 향유를 종식시킬 날이 올 것이다. 반지대 윤리가 언젠가는 소득의 분배를 결정할 것이다.
IV.
결론적으로 말하면,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여섯 구성 부분으로 된 논제는, 토지, 자본, 능력, 그리고 기회로부터 나오는 지대적 소득이 호혜적 기여 없이 금리생활자들에게 수취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금리생활자 계급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 경제적으로 기생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118 결과적으로 그들의 이익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하는 비금리생활자의 이익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120 페이비언 사회주의에서 지대에 대한 언급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왜 그랬을가? 비윤리적인 지대라는 이념이 무관한 것으로 틀리게 간주되어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보다는 입법을 통한 성취가 이런 노선에 부합해서 진척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건강보험제도의 제공, 포괄적인 사회 보험 프로그램의 시행, 급격히 누진적인 과세의 유지, 그리고 중요 기간 산업들의 국유화. 즉 설사 페이비언 아젠다에서 비윤리적인 지대 개념이 떨어져 나갔을지라도, 그러한 지대를 완화하려는 원리는 영국 제도와 실천에 깊이 배태되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