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A. Edmundson, An Introduction to Rights(second e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ch.2.
인간의 권리 : 계몽 The Right of Man – The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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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의 주관적 개념(a subjective concept of rights)-중요하지만 아직 상세히 설명되지 않은 방식으로 권리 보유자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에서 주관적인 개념-의 등장은 중세 후기만큼이나 일찍 이루어졌다. 이는 가톨릭 성직자들의 논쟁에서 등장하였다. 이러한 출현을 그러나 도덕적 진보의 틀림없는 표지라고 보는 것은 실수이다. 권리의 역사에서 더 흥미롭고 덜 다툴만한 시대는, 노예제에 대한 옹호에서 권리 개념이 했던 역할과 관련된다. 우리가 주관적이라고 불렀던 그런 뜻에서의 권리는 프란체스코 공동체주의에 대한 도미니크회의 답변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을 배제할 권리를 취득하며, 그러한 배제적 사용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증여나 거래 대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할 수도 있다는 답변 말이다. 그러나 도미니크회의 답변에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질문이 내재한다: 만일 사물을 자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것들에 대한 사용 재산권을 준다면, 그 경우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재산권도 자연적으로 취득하지 않는가?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것-그들이 거래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는 것-에 대한 재산권을 자연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면, 그들은 왜, 그들의 인신이나 그들의 자유를 거래로 줘버리거나 아니면 내기로 걸어서 스스로를 노예로 자연적으로 만들 수 없는가?
리처드 더크(Richard Tuck)가 지적했듯이, 신세계의 발견은 이 질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성직자들에게는 학술적인 흥밋거리를 훨씬 넘는 것으로 만들었다. 프란체스코회에 대한 도미니크회의 답변은, 아프리카인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착취를 직설적으로 옹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노예는 그들의 스스로에 대한 지배권을 위태롭게 하거나 거래로 줘버린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사용에 의해 취득한 여하한 가축이라도 거래로 줘버리거나 내기로 걸어 뺏길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다. (...)
그래서 권리에 대한 주관적 관념의 출현은, 그 자체로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진보의 도구는 아니었다. 이 암시적이지만 흐린 배경에서, 우리는 첫 번째의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계몽시대의 정치, 법, 그리고 도덕 이론의 인물인 휘크 데 그루트(Huig de Groot), 오늘날 통상 그의 라틴어 이름인 휴고 그로티우스라고 불리는 인물을 살펴보게 된다.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
그로티우스는 인간이 사회적 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물과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기 위해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성인 인간은 표현과 이해의 고유한 능력을 갖고 있다. 사회성과 이해력이 인간에게 결합하여, 한낱 공감과 대비되는, 정의를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케 한다. 정의는 그러므로 (15) 자연을 지배하는 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확정적인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자연법 관념(this conception of natural law)는 “최악의 사악함 없이는 할 수 없는 양보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라고 가정했을 때에도, 얼마간의 타당성(some degree of validity)을” 갖고 있을 것이다.[13쪽-쪽수 인용은 Grotius, Hugo. [1646] 1925. De Jure Belli Ac Pacis Libri Tres. Vol. 2. Trans. Francis W. Kelsey. Oxford: Clarendon Press. (Vol. 2: English translation. Vol. 1: Latin original).] 이 온건하게 보이는 문구를 가지고서, 그로티우스는 도덕을 신학과 분리할 가능성을 도입하였다. 그럼으로써 신학이 도덕이라는 주제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수세기를 걸쳐 지속된 기독교 전통에서 이탈하였다. 그로티우스는 명백히도,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국가들 사이의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할 기초가 있으려면, 그런 분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로티우스 그 자신은 신학에 대한 회의론자가 아니었다. 그가 쓴 책 중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의 번역 제목이 기독교의 진리에 대하여Of the Truth of the Christian Religion)이다.
그로티우스는 다른 면에서도 혁신적이었다. 그는 그 이전에 누구도 그랬던 바가 없을 정도로, 권리의 문제로서 정의라는 전체 주제를 분석하기로 단단히 결심하였다. 권리는, 그로티우스가 강조하기를 원했던 뜻에서는 “사람을 언급한다.”(has reference to a person)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적법하게 갖거나 어떤 것을 적법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도덕적 성질이다.” 즉 정의롭게 갖거나 하는 것 말이다.[35쪽] 그로티우스의 관념은 주관적 권리 관념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영역에는 … 다른 사람의 것을 삼가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반환(restoration)하는 것, 약속을 이행할 책무, 그리고 응분에 따라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 속한다.”-이 모두는 그의 분석에서는 권리 존중 또는 권리 행사의 문제이다.[12-13쪽] 정부는 사회적 생활의 목적을 진작하기 위해 형성된 사람들 사이의 협정(pacts)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쟁 그 자체는, 권리 침해에 의해 전형적으로 발생하며 그래서 “권리 집행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18쪽]
(...) 그로티우스의 이론에서 권리는 재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개인의 행위의 전 범위에 추정적으로 확장된다. 이 권리들은 어떻게 알려질 수 있는가? 그로티우스는 자연법의 원리는 스스로 이성을 훼손하여 속이지 아니하며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체계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스스로 드러나며 명백하다고 하였다.[21-23쪽] 그리고 자연법을 산수법칙과 비교하며, 신조차도 이를 변경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터무니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16) 그러니 그로티우스는 권리가 알려질 수 있는 통로로, 생생한 준감각적 지각(a vivid sort of quasi-sensory perception)을 들었다. 즉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추론에 밀접한 순수 지성을 가지고서 그리고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이루어진 증언들의 합의에 의해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인식된 권리는, 인간 본성에 관하여 무지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주권을 가진 군주가 도덕적으로 부당한 명령을 발하는 경우, 정부 권리에 한계를 설정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티우스는 권리가 주권자의 정의로운 권력을 견제한다는 이념을 거부했으며, 17세기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놀라워보일 수 있는 주장을 하였다. 즉 히브루와 로마법에서 사람이 사적 소유재산이 되도록 간청하여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듯이, 자신의 법적 권리를 주권자에게 양도하여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103쪽]
비록 그로티우스가 실제의 법체계를, 주권에 대한 비굴한 복종의 협약에 정초한 것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긴 했지만 그는 그러한 복종의 논리적 가능성과 정당성,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합리적일 가능성까지 인정했다. 양도가능성-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철회불가능하게 이전시키는 것-은 그로티우스가 이해한 권리 관념에 내재해 있는 것이었다. 그로티우스는 사실상,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맥락에서 권리의 본질적 양도가능성이라는 도미니크 수사회의 이념을 정부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곳으로 옮겨 적용하였다. 권리 보유자의 본성적인 사회성과 추정된 양식이, 인민이 스스로를 위해 건설하는 다양한 국가에서 권리 분배의 형태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배를 평가할 어떤 이상적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로티우스는 단일한 최선의 정부 형태가 있다는 이념을 거부하였다.[104쪽]
즉 그로티우스는 플라톤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 이상적 정치 상태를 규명하는 문제를 풀 가능성을 간결하게 거부해버렸다. 그 문제는, 모든 종류의 인민이 살기에 단일한 최선의 유형의 삶이란 없으며 그래서 최선의 삶을 촉진하는 최선의 단일한 종류의 정치 상태는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해결불가능한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근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가치들에 관하여 다원주의자였다.
이 다원주의가, 정부는 본질적으로 다기한 선관을 견지하는 다기한 사람들 사이의 협정이라는 이념과 결합하면, 그로티우스가 기꺼이 끌어내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혁명적인 함의를 갖게 된다. (17) 인민이 갖고 있는 권리는 그 본질상 이미 행사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래서 정부 형태는 이미 결정되어버린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민에게는 선택의 권리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로티우스의 의도는 혁명적이기보다는 평화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활용한 권리의 잠재적으로 폭발적 관념은 이후 사상가들에게 도전이기도 하거니와 유혹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로티우스의 세 가지 위대한 혁신은 다음과 같았다: (1) 정의를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행사하는 문제로 여긴 것; (2) 권리 연구를 신학과 분리시킨 것; (3) 상이한 여건에서 상이한 인민의 권리 행사로부터 나오는,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정당성 있는 형태의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정부 형태의 이상적 형태를 찾아나서는 문제로부터 철학의 방향을 돌린 것. 그의 사상의 이 세 측면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러나 오도하는 것이 될 터이다. 만일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그로티우스의 관심을 흐리게 한다면 말이다. 자연은 정의의 법만 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law of love)도 명한다. 이것은 “완전히” 책무적이거나 집행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따르면 칭찬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고 따르지 않으면 아마도 비난 가치 있는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그래서 완전 권리와 불완전 권리를 구분하였다.(Grotius thus distinguished between perfect and imperfect rights)-완전 권리는 법적 과정이나 자구행위에 의해 집행가능한 것인 반면에, 불완전 권리는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표제 하에 집행가능한 것은 아니고 도움이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 권리와 불완전 권리의 구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로티우스는 국가를 재앙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어도 되는지의 문제를 살펴본다. 그는 그 희생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만일 무고한 시민이 정치 사회에 그 자신의 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만 진입했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희생할 책무를 질 수 있는가?(If the innocent citizen has entere political society soley to secure his own advantage, how can he be obligated to sacrifice himself?) 그리고 만일 시민이 스스로를 희생할 책무가 없다면, 국가가 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를 희생시키는 것이 어떻게 허용될 수 있는가?(And if the citizen has no obligation to sacrifice himself, how can it be permissible for the state to sacrifice him over his protest?) 또는 권리의 용어로 그 문제를 표현하자면, 국가가 무고한 시민에게 스스로를 희생하라고 요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면, “완전한” 권리가 될, 그 시민의 의사에 반하여 그를 희생하도록 할 수 있는 권리로서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는가?(Or, to put the question in terms of rights, if the state has no right to demand that the innocent citizen sacrifice himself, what right can it have to sacrifice him against his will, which whould be a “perfect” right?)
그로티우스가 제시하는 답은 미묘하다. “시민이 적절히 법이라고 불릴 수 있는 법에 의해 스스로 굴복할 의무를 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사랑이 달리 행위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결론도 따라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의의 영역이라고 적절히 불릴 수 있는 영역에 속하지 않고 사랑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많은 의무들이 있으며, 이 의무들은 칭찬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비난 없이는 해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과 애정을 어떤 의무의 근거로 거론하고나서 그로티우스는 재빨리 덧붙인다. “그런 의무는 아주 분명히, 아주 많은 수의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그 자신의 생명보다 더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고 재빨리 덧붙인다.[579쪽] 그 의무의 기초는 이제, 희생할 것이 요청되는 사람이 느끼는 실제의 애정이 아니라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에 쓰인 숫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뜻에서 “사랑의 법”은 비개인적인 법이며, 우리가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데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법이다.
이것들은 엄격한 정의의 의무에 이르지는 않지만, 희생을 할 사랑의 의무에는 이른다. 그러나 그로티우스는 지적한다. “그가 도덕적으로 구속되는 것을 하도록 강제될 수 있는가의 질문은 남는다.”(There remains the question whether he may be compelled to do that to which he is morally bound) [580쪽] (18) 만일 그로티우스가 허용하는 대로, 부유한 사람이 거지에게 구호금을 주도록 강제될 수 없다면, 무고한 사람이 어떻게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도록 강제될 수 있는가? 사랑의 법이 산출할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권리 또는 집행불가능한 권리가 최대한이다.(An imperfect or unenforceable right is the most that the law of love yields.) 그럼에도 그로티우스는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설사 자선을 받을 권리 같은 다른 불완전 권리는 그렇게 강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강제하여도 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고대의 권위 있는 이들과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 중차대한 구분의 기초는 무엇인가? 그로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부분들 사이의 관계 그 자체와, 그들의 지배를 받는 이들과 대조되는 우월자와의 관계는 다른 것이다. 동등자는 동등자에 의해 강제될 수 없다. 적절하게 권리라 불릴 수 있는 것에 따라 빚지고 있는 것을 수행하여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우월자는 열등자에게 덕이 요구하는 다른 것들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월자 그 자체의 적절한 권리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580쪽]
만일 “우월자”가 기근 시기에 공동 곡물저장소에 곡식을 기여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다면, 무고한 이도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강제로 희생될 수 있다. 또는 적어도 그로티우스는 그렇게 결론내렸다. 그렇지만 신비스럽게 남아 있는 부분은, 다른 이들의 손에 있을 때에는 집행불가능한 불완전한 권리인 것이 어떻게 국가의 “우월한” 권위의 손에서는 집행가능한 완전한 권리가 되는지이다. 그 신비는 집행불가능한 권리가 있으며 그것으로 논의 끝이라는 발상에 만족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티우스는 그렇게 만족하고 마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우리가 다시 살펴볼 문제 중 하나이다. 한 면에서는 적어도, 그로티우스는 국가의 우월한 권위를 받아들이기 꺼려했다. 왜냐하면 그로티우스 자신이, (아이러니하게도 예정설에 관련된) 종교 논쟁에서 잘못된 쪽을 택했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는 길 대신, 자신이 쓴 일련의 책에서 자유를 몰래 들려왔기 때문이다.
2장 요약번역생략된 내용: 토머스 홉스/사무엘 푸펜도르프/ 존 로크/ 미국독립선언/ 임마누엘 칸트/ 윌리엄 페일리/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 권리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