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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활이야기] 유도하기 신공(神功)

by 시민교육 2022. 10. 25.

1. 서론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끈기와 집중력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보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의미 있게 하고 싶은 과제들보다 약하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끈기와 집중력만으로 과제를 해내려고 하는 것은 실수다. 어느 누구도 하고 싶은 만큼만 과업을 하고 하기 싫은 때는 언제든 과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는 과업을 다 해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업을 밀리지 않고 해내려면 신체와 정신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방법과 아울러 완전히 기꺼운 마음으로 과업을 하고 싶지 않더라도 과업을 계속 하게끔 정신과 육체를 유도하는 레일을 까는 요령이 중요하다. (이하의 논의는 평소에 신체와 정신의 컨디션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잘 관리하는 방법을 실행한다는 전제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과업을 진득하게 할 시간이 없을 때에는 오로지 다른 할 일들 때문에 그 과제를 하지 못하는 것뿐이며 그 과제에 오롯이 바칠 수 있는 시간만 통째로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끈기와 집중력이 솟아날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통째로 주어졌을 때 마음이 방황하여 그 시간을 오히려 충실하게 못 쓰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과업을 할 시간이 충분하든 충분하지 않든, 컨디션이 최상이건 아니건, 어느 정도는 과업을 해낼 수 있는 레일 위에서 어느 정도는 자동적으로 일이 진행되도록 한다면 좋을 것이다. 

 

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대길 싫어하는 마음은 비유하자면 잠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자기 싫어하는 아기의 마음과 같다. 아기는 잠이 오지만 자기 싫어서 운다. 마찬가지로 과업을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지만 과업을 하지 않아서 괴롭다. 이것은 복잡화된 문명 사회에서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처지인 것 같다. 야생 토끼를 보면 그런 처지에 있지 않은 것 같다. 토끼는 풀을 뜯어먹어야 하지만 뜯어먹고 싶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없다. 굴을 파야 하지만 굴을 파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없다. 부자연스럽게 갇혀서 이상행동을 하게 된 토끼가 아닌, 야생의 보통의 토끼는 그렇다. 야생의 유인원도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인간도 야생에서 작은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자연 속에서 살 때에는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복잡한 문명 사회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복잡한 문명 사회에서는 과제 수행과 보상이 생리적으로 직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냥을 하면 고기를 먹는다. 그러나 농경사회 이후 시대 인간에게는 지금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다음 순간에 고기 먹는 것과 직결되어 있지 않다. 다른 하나는 자연상태에서라면 생존과 직결된 과업수행에 유의미한 형태의 자극이었지만 복잡한 문명사회에서는 그 형태의 자극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은 것들이 정신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우호적인 동물의 반응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생존에 유의미한 자극이다. 나의 관찰은 그 동물에 대한 나의 행동과 곧바로 연결되고, 그것은 나의 생존이나 번영과도 곧바로 연결되며, 이러한 연결고리는 몸으로 체험된다. 반면에 인터넷상에서 흥미로운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타인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의 재롱 부리는 것을 감상하는 것은 생존에 유의미한 자극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자극의 매혹하는 힘은 남기 때문에, 어쨌든 주의를 사로잡힌다는 측면에서는 그 자극에 반응한다. 또한 자료를 살펴본다거나 문제의 해법을 설계한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일들은 인류가 생존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사용한 사고법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사냥을 계획하고 사냥감을 계획한 대로 몰아대는 식의 과업이 가진 몸과 직접 결부된 매혹하는 힘을 그다지 갖고 있지 않다. 즉 이전에는 과제수행에 들어가면 주어지는 자극이 몸과 정신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면, 지금 시대의 과제는 그런 종류의 이끄는 힘을 가진 자극을 주지는 못한다.  

 

물론 이러한 난점에 대한 대응은 시민교육센터에서 여러 번 다룬 주제이기는 하며 <인생을 바꾸는 탐구습관>에서도 상세히 이야기한 주제이다. 같은 주제도 사람의 기질과 여건,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점과 상황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심지어 표현만 달리 하여 다루는 것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다른 글이나 <인생을 바꾸는 탐구는 습관>을 읽은 사람들도 다시 한 번 변주해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 특히 이번 글에서는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고자 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주로 컴퓨터, 문헌, 서류, 필기구 등을 다루며 어느 정도 창조성이 내재된 작업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작성된 것이다. 

 

 

여기서는 보다 직관적으로 와 닿도록, 최소 수준의 컨디션과 여건만 주어지면 레일에 일단 올려서 과제를 하는 나의 몸과 정신이 어느 정도 진행은 할 수 있게 하는 요령을 '유도하기 신공'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신공은 무협에서 '무당신공', '화산신공'이라고 할 때의 그 신공을 의미한다. 이름이라도 일단 거창하고 눈에 띄게 붙여서 기분을 환기하여 활용이 보다 쉽도록 해보자는 의도가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네 가지 주된 신공과 네 가지 보조적 신공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신공을 적용하는 전제 조건은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충분한 잠-7시간 내외의 잠-을 잤고 현재 의료적으로 휴식을 권고할 만한 건강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이 신공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잠과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매일 30분의 근력운동에 더해 총1시간의 걷기에 상응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권고되는 일일 것이다.) 

 

2. 네 가지 주된 신공 

 

(1) 공책에 써보기와 쉽고 단순하게 만들기 신공

공책에 과제 풀어 써보기 신공은, 네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지금 처한 과제에 관한 상황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하고 어떤 쟁점과 틀로 작업을 할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막연히 '글을 고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부분을 이런 내용으로 고쳐야지'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면 과업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작음이 드러나고 정신이 구체적 행위에 보다 뚜렷이 집중될 수 있게 된다.  

둘째,복합 과업을 보다 단순한 과업으로 나누어, 일단 그 중 하나를 분명하게 식별하고 해내는 데 유용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에 곧바로 진입하는 것을 쉽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어떤 양식에 따른 문서 작성이 있다면, 일단 그 사건에 관하여 가장 형식적인 문서 양식부터 작성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아예 그런 양식조차 만들지 않았을 때에와는 레일에 올라간 정도가 다르게 된다. 

셋째, 현재 과업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거나 집중할 수 없는 원인을 분석해서 그것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의자가 너무 낮아서 집중하기가 어렵다면 의자를 높여 조정하거나, 의자와 책상 간 거리가 적당한 곳으로 옮겨 일할 수도 있다. 다른 단순한 몇 가지 일이 신경 쓰여 집중할 수 있다면, 그 단순한 일부터 몰아서 하나씩 처리하고 나서 돌아올 수 있다. 만일 감정적인 간섭이 일어난다면 그 감정적 간섭을 방지할 수 있는 거리두기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넷째, 과업을 어떻게 하면 가장 최소한의 수준으로 일단 쉽고 단순하게 완성할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해준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하기 싫은 일은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잘 해내려고 막연히 생각하면, 더 까다롭고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 손을 못대게 된다. 그러므로 최소한도의 표준만 맞춰서 필수적인 핵심만 우선 하고, 나중에 혹시 여유가 되면 추가로 장인정신을 발휘하자고 생각하면, 일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섯째, 과업을 다시 돌아보고 비중을 두고 다루어야 할 것과, 가볍게 처리할 것이 무엇인지 보다 거리를 둔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다. 

 

(2) 과업에 따라 책상 좁게 쓰고 넓게 쓰고, 과업의 종류를 세분화하여 몰아서 하기 신공

과업 수행에 불필요한 자극이 간섭하는 경우에는, 뚜렷하게 의식하지는 못해도 그만큼 하기 싫은 마음이 커진다. 그런데 과제의 종류에 따라 책상을 좁게 쓸 때 오히려 간섭을 물리치기 쉬운 때가 있는가 하면 책상을 넓게 오히려 쉬운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신이 초점을 맞춰야 하는 대상만이 시야에 보이는 환경은 과업 수행을 하고 싶은 마음을 유도하는 데 유리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 곧바로 구비되지 않으면 또 정신이 산만해진다. 모든 과업은 이 양면을 가지고 있지만, 과업의 종류에 따라 어느 면에 관해서 더 방비해야 하는지가 달리진다. 그래서 과업의 종류에 따라 책상을 좁게 쓸 때와 넓게 쓸 때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물리적 환경을 그 과업의 종류에 맞도록 구성하는 것은 정신의 번거로움을 줄이는 데 상당히 유용하다. 

하나의 작업을 일정 시간 꾸준히 이어서 하려면 책상을 좁게 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언제나 물리적으로 넓은 책상을 좁히라는 말은 아니다. 넓은 책상에 불필요한 물건들이 올려져 있다면 그것을 치워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논문 한편을 보고자 한다면, 그 논문만이 시야에 보이는 것이 좋다. 10페이지 정도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그 번역대상이 되는 글과 번역하는 글이 하나의 방향에 나란히 하나의 화면 안에 놓이는 것이 좋다. 보통 카페나 스터디카페, 독서실, 도서관의 경우에는 자리를 좁게 쓸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집중할 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읽을 논문 3편을 들고 간다거나, 번역해야 할 것 하나만 들고 가는 식이다.   

다른 내용을 함께 참고해야 할 때에는 책상을 넓게 쓰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편집된 원고와 영어 원문을 대조하려면 그 원고와 영어 원서가 함께 놓일 정도로 책상은 넓어야 할 것이다. 문헌을 참조해가면서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종류의 문헌을 참고한다면, 주된 참조를 할 문헌은 독서대에 올려져 바로 곁에, 부수적 참조를 할 문헌은 의자에서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있으면 좋다. 책상을 넓게 쓰며 작업할 때에는 무조건 듀얼 모니터를 사용해야 한다.  듀얼 모니터를 쓰면 글을 쓰는 프로그램과 문헌이나 자료를 검색하는 프로그램을 돌리는 화면을 각각 따로 쓸 수 있어 능률이 훨씬 올라간다.  그런 종류의 작업을 할 때에는 하나의 모니터만 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니 책상은 듀얼 모니터를 올리고도 여러 작업을 할 정도로 넓은 책상이어야 한다. 옆으로만 길 것이 아니라 앞뒤로도 길어야 한다.

하루의 시간대를 분할하여,  아침과 낮에는 주로 책상을 넓게 쓰는 작업을 자신의 주요 작업장에서 하고, 저녁 이후의 시간은 좁은 책상 위에서 보면 좋은 작업을 장소의 변화를 주어 하는 것이 좋다. 즉 책상을 좁게 쓰는 과업과 책상을 넓게 쓰는 과업을 구분하고, 시공간도 달리 하는 것이 과업을 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면 하나의 장소에서 정신이 소진되도록 오래 있게 된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정신이 일과 중간에 쇄신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과업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이렇게 책상 넓이가 적합한 종류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이를테면 번역 원고 편집본을 검토하는 일 중, 한 번 원고를 죽 읽어가며 곧바로 고칠 수 있는 것을 고치는 것은 좁은 책상에서 하는 것이 적합하다. 반면에 수정할 문장을 오래 생각해보거나 원문과 대조하는 일은 넓은 책상에서 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 두 가지 과업을 처음부터 분리하여, 좁은 책상에서 원고를 한 번 죽 읽어가고,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은 스티커를 붙여서 표시해놓고 나서, 나중에 책상을 넓게 쓰면서 한 번에 몰아서 원문과 대조하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글을 직접 작성할 때에도, 자신의 논증을 뚜렷하게 전개하는 내용은 좁은 책상에서 쓰되 넓게 책상이나 화면을 쓰면서 다른 자료와 문헌을 찾아 보충하여 완성해야 하는 부분은 ** 등으로 표기하여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저녁 시간대는 축적의 시간, 아침과 낮 시간대 중 어느 일부 시간대는 예전에 축적한 것을 바탕으로 과업을 실제로 수행하는 시간으로 구분되게 된다. 이렇게 일하는 시공간을 달리 하는 것은 적절한 리듬감도 부여한다. 또한 하나의 장소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일을 함께 함으로써 생기는 정신의 번잡함과 피로함을 줄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은 여러가지 일이 일정상 함께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때 이러한 복합적 과제 부여 상황 때문에 정신이 번망하지 않게, 시공간에 과업의 성질을 종류별로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일을 하면, 정신이 단순화되면서 효율이 오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것도 상당히 유용한 신공이라 하겠다.  

이 방식은 뒤에서 살펴본 여러 번 덧대어 중층구조로 작업하기와 연관이 있다. 

 

(3) 거리두기와 기대 조정하기 신공

그 다음은 과제와 거리를 두고 적정한 기대를 설정하는 신공이다.

과제의 어떤 면과 감정적으로 얽혀 있으면 과제 수행에 그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든다. 예를 들어 협업을 하여, 동료가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지 못하였거나 다소 엉터리로 처리하곤 한다면, 그 후속 작업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짜증과 화가 나서 하기 싫은 마음이 자연스레 들게 마련이다. 어떨 때는 오로지 자신만 잘 하면 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최고 수준으로 잘 해내기에는 버겁다고 생각되어 목이 조이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연유로 그 과업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경우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가끔씩 있다. 이 때에는 첫째로 그 과업과 거리를 두고, 둘째로 그 과업에 관련된 사람(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관찰된 바에 따라 곧바로 조정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1) 거리두기 

과업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과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부지불식간에 들기 쉬운 과장된 관념을 잘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일 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플레를 없애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 자체는 중요하더라도 우리가 통제하고 책임지는 부분의 범위에 대한 인플레를 없애는 것이다. 

 

먼저 일 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플레는, 우선 기법적인 면에서 제거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상사가 지나가면서 지시한 간단한 보고에 관한 업무를 부풀려서 어마어마한 것이 걸린 양 부산을 떨어댄다면 원래 주어졌던 정규적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엄청 받을 것이다.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 무엇인가 일을 똑부러지게 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결과물을 제출하고 싶은 마음 등등 부지불식간에 중요성의 인플레를 일으키는 요소를 다 제거하고 나면, 담백하게 그냥 그 사항에 관하여 결론과 중요한 근거를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는 한도에서 알아보고 간략하게 보고하면 된다. 만일 자신이 알고 있는 조사 방법을 동원해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조사하는 방법을 다시금 물어보면 될 일이다. 사람들은 장인정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장인정신의 한결같은 관철은 드라마나 영화의 재밌는 주제가 되기는 하지만, 장인정신을 모든 과업에 대해 시도때도 없이 발휘함으로써 감정적으로 소진된다면, 그런 장인정신은 발휘하지 않음만 못하다.

 

그 다음으로, 일 자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플레된 감각은 반성적인 조망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우선 많은 경우에 일의 내재적인 객관적 가치는 조건적이다. 그런데 상당한 경우에 있어서 그 조건은 충족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직업적인 일은 최소한 하나의 수단적 의의를 갖고 있다.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재적인 의의는 그렇게 해서 하는 일이 객관적으로 가치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영상을 만드는 것은 내재적인 객관적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분업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잘 해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객관적 가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원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업무는 내재적인 객관적 가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런 내재적인 객관적  가치가 그 과제의 중요성에 대한 주관적 감각이나 확신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하는 일이 내재적인 객관적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상충하는 가치들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 모두가 가치 있다고는 할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가치가 최소한의 일관성을 가지려면 그 중 누군가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무가치하거나 적극적으로 반가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적어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아주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때에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도움이 된다. 지난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가치 없는 일을 가치 있다고 착각하고 추구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 때는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현재 나의 사고에서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가치가 그다지 크지 않거나 무가치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적극적 반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가치에 관한 나의 사고가 앞으로도 발전하고 전회를 겪을 여지가 있으며 정교화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면, 현재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내 과제의 중요성에 대한 감각은, 미래에 벌어질 그러한 변화를 전혀 감안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시간적으로 속박된 존재가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인플레된 부분을 포함하는 것이다. 인플레된 부분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현재의 나의 영원한 포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거리를 어느 정도 둘 수 있다.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반성 없는 확신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며, 그렇게 매몰되지 않고 반성하는 자세를 취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하는 업무가 정말로 그렇게까지 가치 있지는 않을 수 있다는 회의의 감각을 늘 함께 가지면서도 잠정적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자신에게 귀속된다고 보는 불합리한 사고를 교정함으로써 인플레된 감각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객관적 가치 면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변함없이 유지되리라고 확신을 가지고서 추측할 수 있는 일도, 우리가 통제하고 책임지는 부분은 제한되어 있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지만, 의사가 현대의 의료기술에 따라 절차대로 적정하게 의료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허다하다. 변호사가 무죄라고 믿는 피고인의 증거를 적정하게 수집하고 관련된 법률과 판례를 검토하여 논증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인류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신기술-예를 들어 탄소포집 기술이나 역노화-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원하는 해법이 오랜 시간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의 결과가 우리에게 속하려면 그 결과를 의도한 다음 의도한 대로 집행하면 결과가 나온다는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사에 그런 경우는 잘 없다. 어떤 사람이 시험준비를 한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적정요령을 따라 적정시간을 공부하여 적정한 컨디션 관리법을 따라 적정한 수험기간을 보낸 후 시험을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그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어떤 수행을 한 결과의 객관적(규범적) 귀속을 인플레하여 다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봤자 과업을 더 잘해내는 생산적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과 통제의 인플레는 반생산적 결과를 초래한다. 하기 싫어져서 절차에 따라 집행하면 되는 적정수준을 하지 않아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2) 기대 조정하기 

다음으로 과업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기대는 이성적인 기대여야 한다. 그런데 이성적 기대는 적정한 규범적 기대와 사실적 기대를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개인의 삶에서 괴로움을 초래하는 원인에는, 규범적 기대가 이중적 층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잊고 최대한의 규범적 기대 하나만 있다고 생각한 다음 역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여 사실적 기대수준을 계속 높게 잡는 것이다. 그러면 사실적 기대 수준이 충족되지 않으므로 크게 좌절하게 되고, 다시금 규범적 기대에 못미쳤다는 생각에 분개하게 된다.

과업과 관련된 사람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나 자신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다른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서 같이 협업하는 동료 직원이 스마트하고 이미 숙련되어 있고 배려심 있게 일을 잘 처리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하나의 전제를 놓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선택지들 중 하나를 실행하면 될 뿐이다. 이를테면 새로운 직원들을 뽑았는데 직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이 평균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글을 쓰게 했는데 학생들이 글을 지나치게 못 쓴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특히 십년 전 즈음에는 직원들이 모두 일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잘 해냈고, 학생들의 글도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면, 일단 그 일차적 결과물을 보고 나면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자신의 통제 범위에 있지 않은 것이다. 통제 범위에 있는 것은, 적어도 그것만큼은 개선해야 한다는 지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지점에 있어서의 개선을 꾀하려면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뿐이다. 언제나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탄식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인가만 고민하고, 그것을 미래를 향해 실행할 뿐이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함께 일하는 직원이 업무 과정에서 어떤 일을 고질적으로 망각하곤 한다고 해보자. 이번에도 또 그렇게 했다. 그렇다면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 이제 와서 화를 내고 탄식해보았자 별 의미가 없다. 분명한 업무 지침을 주기, 효과적인 체크리스트를 만들기, 경우의 수 별로 제안 사항을 분명하게 하기 등의 방안을 생각해보고 실행할 수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보통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쉽게 탄식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일관된 자세로 미래지향적으로 업무상 대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자신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거나, 아니면 효과적인 방책을 고민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선 비현실적인 기대 면을 살펴보자. 일인칭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다른 모든 사람은 타인이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몰라도 나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대를 해도 되며 오히려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 온당한 것 같다. 다음으로 효과적인 방책을 고민하지 않는 면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 대해서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오히려 심리적인 함정을 만든다. 즉 스스로를 면밀히 객관적으로 관찰하지 않아도 되며, 또한 언제든 숨겨진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몰라도 자신에 대해 이런 예외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현명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모두 그 사람들마다 '나'이듯이, 나 역시 평범하게 '나'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하며 또한 자신을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거나 효과적 방책을 고민하지 않고 숨겨진 의지력을 발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성향이 심하면 그들이 실수하거나 잘 해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타인에 대해서건 나에 대해서건 어느 경우든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기대만이 실천적으로 현명하다. 예를 들어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타인이 갑자기 매일 운동을 1시간 30분씩 할 것이라는 것이 비점진적이고 그에 비례하여 비현실적인 기대이듯이,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내가 갑자기 매일 그러리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친구에게 최대한 집에 가까운 곳에 헬스를 끊고, 저녁 시간에 기분을 신선하게 하기 위해서 샤워하러 가듯이 20-30분만 머무르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할 것이라면,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또한 타인에 대해서건 나에 대해서건 신뢰할 수 있는 관찰자료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다. 따라서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즉 나에게 효과적인 방책은, 나에게 드러난 행동을 근거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집에서는 공부나 업무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해보자. 그것이 객관적인 관찰자료이다. 내가 집에서 달리 행위할 수 있었다는 숨겨진 자유의지와 의지력에 대한 감각은, 내가 타인으로서 관찰하는 (집에서는 소파에서 늘어져서 스마트폰만 보다가 시간을 훌쩍 보내버리는) 타인들도 각자 다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집에서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고 그 결과 저녁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지 못하다면, 결국 샤워를 위해 헬스장에 들른 후 곧바로 다른 공부할 장소에 가는 것이 효과적인 방책이다. 또한 한꺼번에 많은 업무를 몰아서 하면 업무를 오히려 잘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 타인에게 성립하는 이치라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성립하는 이치이므로, 업무가 일정 이상 쌓이게 되면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추가적인 일은 일단 벌이지 않는 것이 좋다. 

 

(4) 여러 번 덧대어 중층구조로 작업하기 

 

어떤 과업이 전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거나, 손을 대긴 했지만 도통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면, 여러 번 덧대어 중층구조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전환해봄직하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그 과업이 물리적 공간의 순서에 따라 수행하기에는 부적합할 과업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중층구조로 시도를 해보면서, 그 구조를 명확하게 도해 등으로 남겨두고, 다음 번에 비슷한 작업을 할 때에는 그에 따라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오랫동안 해 오던 익숙한 종류의 작업도, 이렇게 중층구조로 체계화해서 하게 되면 훨씬 효율적으로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3. 네 가지 보조적 신공

 

네 가지 주된 신공을 먼저 제대로 익혀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본에 중심이 잡혔을 때, 필요한 경우마다 네 가지 보조적 신공을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1) 눈 감고 휴식하기 신공

 

앉아서 일을 하다가 지루해지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다른 활동으로 도피하기 쉬운데 그러면 흐름이 끊어지게 된다. 이 때 눈을 감고 휴식하는 단순한 방법만으로도 많은 이탈을 줄일 수 있다. 눈을 감고 휴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을 벗고) 손으로 옆머리를 자연스럽게 쥐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은 자연스럽게 허벅지 위로 떨어뜨린 채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있는 시간은 1분 정도면 충분하며, 자주 해도 무방하다. 

 

(2) 좋아하는 음악을 잠시 들으며 하나의 작은 과업 조각 끝내기 신공

 

좋아하는 음악 중 공부나 업무를 하면서 듣기 적절한 음악 한 두 곡 정도를 틀고 당면한 과업 하나만 해결해본다. 음악의 종류는 할 업무에 상대적으로 적합한 것을 고르면 된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라면 비트가 강한 음악을, 약간의 생각을 요하는 업무라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음악이나 가사가 없는 음악을 고르면 좋다. 과업을 하는 내내 음악을 듣게 되면 귀의 건강에도 좋지 않거니와 매너리즘에 빠져 음악이 더 이상 부스터 효과를 가지지 않는 지점이 오게 된다. 그래서 과업에 추진력과 리듬을 부여하는 곡들을 구입해놓고 리스트를 만들어 그때그때 1-2곡 정도 듣고 다시 필요할 때 다시 듣는 것이 좋다. 

 

(3)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기 신공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현재의 과업의 구조에 관하여 설명하고 어떻게 돌파할까 그냥 잠시 이야기만 해도 틀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 이 때 들어주는 사람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자극을 주는 제안의 단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훨씬 지름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이렇게 도움을 받으려면 자신도 때때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4) 스트레칭 및 아주 간단한 운동 루틴

과업을 수행하면서 운동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운동과 과업을 같이 하려는 시도는, 필자가 해본 결과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어느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앉아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퇴락하므로, 스트레칭과 아주 간단한 운동 루틴을 만들어서 그것을 종종 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15초~ 1분 내에 할 수 있는 완전히 정형화된 하나의 루틴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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