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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외국문헌소개

[요약번역] N.E. 시먼즈, "분명히 거짓됨: 크레이머 법실증주의의 붕괴"

by 시민교육 2025. 9. 14.

시먼즈_크레이머법실증주의의붕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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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해제>

 

I. 논문 내용 소개

 

크레이머는 사악한 정권(evil regimes)조차 법치(rule of law)를 준수할 실질적 이유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준수 유인이 약화된다(sapped)”고 주장한다. , 법을 어겨도 처벌받고, 법을 지켜도 처벌받으면 준수 동기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러한 논변이 오해에 기초해 있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사악한 정권의 폭력은 법 준수 여부에 조건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준수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준수에 따른 처벌 위험은 단순히 추가적인위험으로 작동하며, 그 자체가 준수 유인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이는 준수해도 처벌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고 해도(예를 들어 소급 입법이 드물지 않다고 해도) 어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추가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준수 요인을 소멸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시먼즈는 이를 조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설명한다. 조는 체제에 비판적이지만 소극적인 불평만 늘어놓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럼에도 밀고자들에 의해 정권에 보고되어 그는 정권의 폭력에 일정한 확률로 노출된다. 이 상황에서 새로 제정된 혁명 기념일에 깃발 게양의무가 추가되었을 때, 조는 여전히 법 준수 동기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는 깃발을 게양하지 않을 경우, 기존의 폭력(50% 확률) 외에 별도의 처벌(90% 확률)을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준수 유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법치 준수보다는 법 위반에 대한 법정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식이 사악한 법체제에 더 저렴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정권이 법을 준수하는 자들에게만 추가 폭력을 면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경우, 이는 일종의 보상으로서 준수 유인을 강화할 수 있지만, 이는 불필요하게 비용이 큰 방식이다. 단순히 법 위반에 대한 법정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더 저렴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크레이머는 법치 일탈이 조직 부패, 허위 고발,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정권 유지에 해로울 수 있다고 본다. 시먼즈는 이에 대해 사악한 정권도 내부 감시와 교차 확인 체계를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허위 고발도 관리할 수 있다고 반박된다. 따라서 법치 일탈은 무질서와 혼란을 낳기보다는 오히려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관련된 견해의 대립으로는 개념을 기준 개념으로 보는지 원형적 개념으로 보는지 의견 차이가 있다. 크레이머는 법치(rule of law)를 단순히 법체계가 존재하고 기능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면서, 일정 정도의 일탈을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을 원형적(archetypal) 개념으로 본다. , 법체계는 론 풀러의 8가지 법치 원리에 얼마나 근접하는가의 정도 문제이지, 단순히 기준을 충족/불충족하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크레이머가 문턱(threshold)” 개념을 도입해 사악한 정권도 일정 수준만 충족하면 동일하게 법체계라 부른다는 것은 부적절하며, 풀러와의 논쟁 맥락도 왜곡한다고 시먼즈는 주장한다.

시먼즈는 크레이머가 초기에는 사악한 정권도 선한 정권과 똑같이 법치를 준수할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후기 글에서는 사악한 정권은 더 자주 법치에서 일탈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약화시켰다고 본다. 이 변화는 결국 법치는 선한 정권에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사실상 시인하는 것이며, 이는 크레이머가 애초 의도했던 법치는 선악 모두에 똑같이 유용하다는 강한 논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한다.

시먼즈는 최종적으로 법치의 가치는 도덕적 가치, 특히 자유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법치가 지켜지는 한, 시민은 제한적이지만 선택 가능한 영역을 확보하며, 그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법에 의해 보장된다. 이는 단순히 선택지의 수적 범위가 아니라, “타인의 권력 하에 있지 않음”(Williams의 표현)이라는 자유의 본질적 차원과 연결된다. 따라서 법치는 본질적으로 자유와 결부된 도덕적 이상이지, 권력 유지의 도구로 환원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크레이머의 법실증주의적 주장사악한 정권도 법치를 준수할 강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잘못된 추론에 기초해 있으며, 오히려 사악한 정권에게는 법치를 준수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법치에 대한 존중은 편의적·도구적 이유가 아니라 도덕적 이유에 근거하며, 법치는 본질적으로 도덕적 이상이라고 한다.

 

II. 논쟁의 정식화: 합법성 원칙의 지위

 

시먼즈와 크레이머 모두, 풀러의 합법성 원칙(명확성·일반성·공개성·비모순성·예측가능성 등)이 법체계의 구성적 요소라는 점에서는 실질적 이견이 없다. 다툼은 그것이 본유적 도덕적 이상인가(시먼즈) 아니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제도적 조건인가(크레이머)이다.

요약번역자의 견해로는, 개념 분석의 차원에서는 크레이머의 중립성 논지가 설득력이 있다. <법은 객관적인가>에서 크레이머가 전개한 논지가 보여주듯이, 법을 원형 개념으로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개연성과는 별도로, 명확성, 일반성, 공개성, 비모순성, 예측가능성을 만족시키면서 사악한 법체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개념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작동 법칙·심리 법칙을 고려한 높은 개연성의 차원, 통상의 환경 내에서 풀러의 합법성 원칙이 작용하는 방향에 대한 논지로서는 시먼즈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 형식적 법치는 개념적으로 필연적인 도덕성은 아니나, 실제 세계에서는 사악한 법체계가 완전한 형식적 법치를 지속적으로 준수하기 어렵다. 법치의 합법성 원칙은 현실사회 맥락에서 거의 언제나 도덕적 견인력을 갖는다고 보인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 풀러의 합법성 원칙을 준수하는 법체계의 운용은 그 자체가 도덕적인 당위에 그만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상상 속에서 그릴 수 있는 사악한 체계가 합법성 원칙을 온전히 지키면서 운용될 수 있다는 점과는 별개의 논제이다.

그리고 개념적 논지 정리가 아니라, 현실의 합법성 원칙 준수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실천적 의의를 더 갖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합법성 원칙을 준수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쪽이 정치도덕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실천적 의의가 더 높은 측면들을 드러낸 것은 오히려 시먼즈라고 할 수 있다.

 

III.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법치가 명기된 헌법을 가진 법체계에서 논쟁의 실천적 함의와 수렴의 가능성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처럼 성문헌법이 법치주의를 명시하거나 불문헌법상 법치가 근본원리인 체계에서는, 두 이론은 실무적 해석에서 수렴한다.

시먼즈는 법치는 도덕적 이상이므로, 무죄추정·적법절차·명확성 등을 준수하도록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크레이머(포함적 법실증주의)는 도덕은 법 개념에 내재하지 않지만, 헌법 규범이 도덕적 이상으로서 법치/무죄추정을 규정한 이상, 그 원칙은 법체계 내부의 해석 지침이 된다. 따라서 입법 당시의 관념이나 종전 판례만으로 해석을 고정할 수 없고, 도덕적 이상인 법의 지배의 이상과 합치되는 실천적 의미를 구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무죄추정 조항을 문자·과거 관념에 묶어 두기보다, 법치의 원리에 합당한 동태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은 실천적 귀결에 도달한다. 특히 이 둘은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 등 제도적 효력 배제 장치가 있는 체계에서는 결과가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부 헌법 규정이 개방구조적이지 않은 닫힌 규칙의 형태를 가질 때, 법치의 도덕적 이상에 의거한 해석 여지가 협소해 보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분기가 뚜렷할 수 있다. 시먼즈라면 합법성 원칙에 반하는 닫힌 규칙은 개념상 법이 아니므로 무효이거나, 문언을 넘어 원칙합치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크레이머는 해당 규정은 여전히 법이고 해석을 통해서는 원칙합치적으로 해석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실증주의는 해석 이론(문언이 의미하는 규범 내용을 밝히는 이론)과 판결 이론(결국 재판상 공권력 행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밝히는 이론)을 구별한다. 따라서 판사는 정치도덕적 의무(국가 권력을 사용하여 국민에게 가하는 중대한 해악을 정당화하려면 바로 그 구체적인 경우에서 충분한 정당화 이유가 있어야 한다)에 비추어 적용을 거부할 수 있다.

이 논쟁은 하트데블린처럼 규범정책을 가르는 분기선 논쟁이라기보다는, 롤즈하버마스처럼 이론적 언어는 다르지만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서는 실천적 수렴이 큰 유형에 가깝다. 법원 실무는 필요에 따라 법치 원칙을 때로는 도덕적 이상으로, 때로는 제도적 안정성으로 원용하며, 판결의 귀결이 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본 논쟁의 실천적 함의는 제한적이되, 법치의 도덕적 지위를 개념적으로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지속된다.

합법성 원칙의 개념적 성격에 관해 요약번역자는 크레이머의 중립성 테제가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회적·심리적 현실을 고려한 실천적 의의에서는 시먼즈의 논의가 더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이 양립가능한 평가를 전제하면, 법치가 헌법원리로 자리 잡은 법체계에서 두 이론은 해석과 판결의 실천적 수준에서 사실상 수렴할 수 있다. 그 결과, 시먼즈크레이머 논쟁은 자유민주주의 헌정실무에 큰 분기선을 만들지는 않지만, 법치의 원리를 도덕과 제도의 경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를 정교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상사적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