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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외국문헌소개

[요약번역] 비키 묄러, 링비 페데르센,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해악: 중심적인 비후견주의적 논증에 관하여"

by 시민교육 2021. 10. 7.

비키묄러링비페데르센_자신또는타인에대한해악_중심적인비후견주의적논증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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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논문은 외관상 후견주의적 정책을, 후견주의적 근거에 의하지 않고, 그러니까 오로지 비후견주의적 근거에 의해서만 정당화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 논문은 그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적인 사례로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안전 헬멧 착용 의무화 정책'을 듭니다. 논문은 외관상 후견주의적 정책을 비후견주의적 근거로만 정당화하고자 하는 기획을 조화 전략(외관상 후견주의적 정책을 반후견주의와 조화시키는 전략)이라고 칭하면서, 조화 전략에서 주되게 거론된 두 가지 방식의 논증을 검토합니다. 

하나는 공적 비용 청구 논증(간단히 '공적 비용 논증'으로 번역했습니다)으로, 분별없는 행동으로 행위자 본인이 고난을 겪게 된다면 이를 구조해줘야 하는 의무 이행의 비용 내지는 의무 이행을 하지 않아서 악화되는 도덕적 여건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이런 외부성을 내부화하는 정책으로, 분별없는 행동을 규제하는 정책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심적 해악 논증으로, 분별 없는 행동으로 인한 비참한 결과를 직접 보거나 그런 결과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생기는 심적인 충격이 해악이고, 이런 해악은 자유 제한의 근거가 되므로, 해당 행위를 규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두 논증 실패하므로, 전적으로 비후견주의적인 근거에서 헬멧 착용 강제와 같은 정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저자의 주장의 근거는 저자가 결론부에 요약하였으므로 바로 아래에 밝히도록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논문에서 다루는 것과 가장 가까운 쟁점이 안전벨트 착용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가의 문제로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정의견은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지 아니하고 제3자에게 가는 비용에 근거해서만 결론을 내렸는데, 그것이 공적 비용 논증과 상당히 가깝습니다. 저는 안전벨트의 문제에 한정해서 보자면 1차 사고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경우 운전자나 차량 탑승자가 크게 다치거나 정신을 잃거나 튕겨나가게 되었을 때 2차 사고의 위험이 충분히 높으므로 이미 그것이 타인관여적인 행동이라는 점에 근거한 헌법재판소의 논증은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다른 사안에까지 일반화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이 회의는 이 논문에서 개진된 내용이 타당하다는 동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와 자율성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결국 후견주의 근거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비자유주의자와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이 논문의 가장 큰 맹점은 이 논문이 약한 후견주의와 강한 후견주의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약한 후견주의는 자유의 전체계 강화를 위한 조정 규칙의 일환으로서 이미 자유주의의 신조 내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자유와 자율성이 정당성 있는 질서의 초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제 어디서나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자유의 전제가 되는 인신의 안전에 치명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 의사결정과 정보의 여건에 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강한 후견주의와 약한 후견주의가 구분되는 점은, 강한 후견주의는 미덕이나 쾌락과 같은 어떤 목적론적 선(good)을 개입을 당하는 사람의 삶에서 가장 잘 달성하기 위한 것인 반면에, 약한 후견주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결코 정당성 있게 국가가 확언할 수 없는 선에 대한 설명에 기초하지 아니하고 자유 행사의 형시적 여건 자체의 복구나 보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익 형량>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저자의 결론-

 

자유주의적 조화 전략은, 비후견주의적인 근거에서 일정한 외관상 후견주의적인 정책들을 온전히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적 비용 논증과 심적 해악 논증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공적 비용 논증은 실제로 촉발되는 구조 의무에 기초한다. 일정한 사안에서는 구조 의무는 실제로 촉발되지 않으며, 이는 그 논증을, 사람들이 심각한 면에서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행위함이 명백한 사안들에 이상할 정도로 무감하게 만든다. 이에 더하여, 그 논증의 강도는 제3자에게 가는 비용의 규모에 달려 있게 된다. 만일 제3자에게 가는 비용이 작다면, 그 논증은 문제의 정책들을 온전히 정당화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논해질 수 있다. 반대로 그 논증은 분별없는 행동에 유인을 주는 의도하지 않은 일정한 제한들을 정당화하게 된다. 심적 해악 논증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영역들이 그럼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잠재적으로 제한된다고 함축한다. 같은 이유로, 개인의 자율성에 마음을 쓰는 반후견주의자는 심적 해악 논증을 적용함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 심적 해악이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어떤 그럼직한 규준들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심적 해악 논증은 방지 조치를 요청하는 제한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논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논증은 유관한 정책들의 정당화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에 관한 사실들에 호소한다. 결과적으로 두 논증 중 어느 것도, 그것들이 옹호하는 역할을 떠맡았던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정당화하지 못한다. 이것은 반후견주의자들이, 비후견주의적 정당화 근거를 찾아헤매었던 그 정책들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후견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선택지에 직면했다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중대한 문제이다.